[차례]
1. 미국 정치사에 세 번째 출현한 미치광이전략
2. 미치광이전략의 핵심내용은 최대 압박과 군사적 선택
3. 소련에게 북베트남 압박 요구한 닉슨, 중국에게 조선 압박 요구하는 트럼프
4. 실패로 끝난 키신저의 ‘오리낚시작전’
5. 미치광이전략의 종착점은 완전철군과 동맹포기
6. 닉슨의 참혹한 실패를 불러오는 트럼프의 비극
▲ <사진 1> 이 사진은 2017년 9월 1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는 장면이다. 그는 연설에서 조선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향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폭언과 모독을 쏟아냈다. 그가 미치광이연설로 유엔총회를 혼란에 빠뜨렸다는 소식을 듣고 전 세계가 경악하였다. 트럼프의 미치광이연설은 몇 달 전부터 미치광이전략을 수행해오는 과정에서 나타난 광기표출현상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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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정치사에 세 번째 출현한 미치광이전략
2017년 9월 19일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미국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단에서 조선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향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폭언과 모독을 토해냈다. 그 소식이 전파를 타고 보도되자, 전 세계가 경악하였다. 미국의 주요일간지들도 폭언과 모욕을 내뱉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일제히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이를테면, <뉴욕타임스>는 백악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조선파괴폭언과 관련하여 해명해야 한다고 비판하였고,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이 깡패두목의 발언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비난하였고, <월스트릿저널>은 그의 연설이 그를 야만인으로 보는 외교전문가들을 불쾌하게 만들었으며, 10대 청소년들이나 할 수 있는 모욕처럼 들렸다고 비난하였다. <사진 1>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조선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향해 폭언과 모독을 내뱉은 대목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아래와 같다.
“지구 위에 있는 어떤 나라도 이 범죄집단이 핵무기와 미사일로 무장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미국은 강한 힘과 인내심을 가지고 있으나, 자국과 동맹국들을 방어해야 한다면, 우리에게는 북조선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은 없을 것이다. 로켓 쏘는 사람은 자신과 자기 정권의 자살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누가 들어봐도 위의 인용문은 미치광이가 아니면 내뱉을 수 없는 폭언과 모독이다. 조선의 초강력한 전략적 핵압박공세로 지난 8개월 동안 실컷 두들겨 맞은 트럼프는 두뇌타박후유증으로 정말 미쳐버린 게 아닐까? 유엔총회 연설 이전이나 이후 그의 발언과 행동을 살펴보면, 그가 정신질환에 걸린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유엔총회 연단에서 왜 미치광이처럼 굴었던 것일까?
미국의 언론매체들과 분석가들은 트럼프의 미치광이연설을 비난하기만 하였을 뿐, 그 연설 뒤에 보이지 않는 속사정까지 밝혀내지는 못하였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속사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치광이연설 속에 숨겨진 속사정을 들춰내려면, 우선 그 연설문이 작성된 경로를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 연설문은 대통령이 직접 작성한 것이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스티븐 밀러(Stephen Miller) 백악관 선임정책보좌관이 연설문을 작성하였고, 트럼프 대통령이 가필하였다고 보도하였는데, 연설문을 작성하고 가필한 실무절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가 미치광이연설을 강행하려는 정치적 결정을 내렸는가 하는 것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처음으로 유엔총회에서 진행한 연설은 매우 중요한 정치활동인데, 그처럼 중요한 정치활동을 트럼프 대통령이 단독으로 결정하였을 리 만무하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2017년 9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기 하루 전인 9월 18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고위관리들이 연설문을 “검토(review)하고 심사(vet)하였다”고 한다. 이런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주재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미치광이연설을 강행하기로 결정한 것이 분명하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2017년 9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고위관리들이 자기 연설문을 검토하고 심사한 직후 연설문에 가필하였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는 극악한 폭언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심히 모독하는 인신공격을 가필한 뒤에, 유엔총회 연단에 올라 미치광이노릇을 연출했던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왜 전 세계를 경악시킨 미치광이연설을 강행하려는 정치적 결정을 내린 것일까? 이 의문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미치광이전략(madman strategy)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2017년 9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지난 몇 달 동안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모독하는 인신공격을 감행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설왕설래(argue)해왔다”고 한다. 이것은 그들이 몇 달 전부터 미치광이전략을 수행하는 방도를 놓고 설왕설래해왔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미국의 전문지들은 이미 지난 4월에 트럼프 대통령의 미치광이전략을 거론하였다. 이를테면, 정치전문지 <슬레잇(Slate)> 2017년 4월 13일부에 실린, ‘돌아온 미치광이이론(Return of Madman Theory)’이라는 제목의 분석기사, 그리고 외교전문지 <포른 팔러씨(Foreign Policy)> 2017년 4월 18일부에 실린, ‘트럼프의 미치광이이론은 전략적으로 예측불가능한 게 아니라 미친 짓일 뿐(Trump's Madman Theory Isn't Strategic Unpredictability. It's Just Crazy)’라는 제목의 분석기사 등을 손꼽을 수 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미치광이연설은 미치광이전략의 수행과정에서 나타난 광기표출현상이라는 점,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미치광이전략은 몇 달 전부터 단계적으로 강도를 높여가며 실행되어오다가 이번 유엔총회 연설에서 광란적으로 표출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 <사진 2> 이 사진은 1951년 7월 8일 개성에서 진행된 정전회담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정전회담 초기에는 판문점이 아니라 개성에서 회담이 진행되었다. 미국 정치사에서 미치광이전략을 처음으로 꺼내든 사람은 정전협정이 체결되기 6개월 전 전쟁종식을 공약으로 내걸고 대선에서 승리하여 대통령직에 취임한 미국의 제34대 대통령 드와잇 아이젠하워였다. 그는 미국이 도저히 이길 가망이 없는 6.25전쟁을 조기에 종식시키고, 조선과의 정전회담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조선과 중국에게 핵공갈과 핵위협을 들이대는 미치광이노릇을 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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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이전략은 트럼프 대통령의 ‘작품’이 아니다. 트위터에 거의 매일 같이 잡소리나 늘어놓는 그의 저급한 지적 능력으로는 방대하고,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풀어내는 전략적 사고를 하지 못한다.
미국 정치사에서 미치광이전략을 처음으로 꺼내든 사람은 6.25전쟁 마지막 해에 전쟁을 자기가 끝내겠노라고 큰소리를 쳤던 미국의 제34대 대통령 드와잇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였다. <사진 2> 정전협정이 체결되기 6개월 전 전쟁종식을 공약으로 내걸고 대선에서 승리하여 대통령직에 취임한 그가 6.25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꺼내든 것이 미치광이전략이다. 아이젠하워는 미국이 도저히 이길 가망이 없는 6.25전쟁을 조기에 종식시키고, 정전회담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조선과 중국에게 핵공갈과 핵위협을 들이대는 미치광이노릇을 했다. 이를테면, 아이젠하워는 1953년 5월 국무장관 존 덜레스(John F. Dulles)를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 파견하여 인도 총리 자와할랄 네루(Jawahalral Nehru)에게 6.25전쟁이 조기에 끝나지 않고 계속되면, 미국은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핵공갈을 중국에게 전하도록 조치하였다. 핵공갈로 미국의 패전을 막아보려고 미친 듯이 날뛰었던 아이젠하워의 종전전략, 바로 이것이 미국 정치사에 처음 출현한 미치광이전략이다.
여기서 말하는 핵공갈이란 핵무기를 사용할 것처럼 공갈하여 적국이 핵공포를 느끼도록 윽박지르는 행위다. 그와 달리, 핵위협이란 핵타격수단을 동원하여 적국이 핵공포를 느끼도록 윽박지르는 행위다.
▲ <사진 3> 이 사진은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의 패색이 짙어진 1969년 1월 20일 미국의 제3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리처드 닉슨이 미국 텔레비전방송에 출연하여 베트남전쟁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다. 아이젠하워처럼 닉슨도 미국이 도저히 이길 가망이 없는 베트남전쟁을 조기에 종식시키고, 북베트남과의 종전회담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북베트남과 소련에게 핵공갈과 핵위협을 들이대는 미치광이전략에 매달렸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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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의 패색이 짙어진 1969년 1월 20일 미국의 제3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도 베트남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미치광이전략에 매달렸다. <사진 3> 아이젠하워처럼 닉슨도 미국이 도저히 이길 가망이 없는 베트남전쟁을 조기에 종식시키고, 종전회담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북베트남과 소련에게 핵공갈과 핵위협을 들이대는 미치광이노릇을 했다. 바로 이것이 미국 정치사에 두 번째 출현한 미치광이전략이었다.
그리고 지금 아이젠하워와 닉슨의 뒤를 따라 트럼프도 미국이 사실상 패한 조미핵대결을 종식시키고, 조선과의 최후담판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조선에게 핵공갈과 핵위협을 들이대고 있다. 바로 이것이 미국 정치사에 세 번째 출현한 미치광이전략이다.
2. 미치광이전략의 핵심내용은 최대 압박과 군사적 선택
닉슨의 미치광이전략이 무엇인지 밝혀주는 비밀문서들이 2015년 5월에 기밀해제되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백악관의 은밀한 행동은 비밀문서에 수록되었으므로, 닉슨의 미치광이전략도 백악관 비밀문서들에서 진상을 파악할 수 있다. 백악관 비밀문서들이 말해주는 닉슨의 미치광이전략은 사람들이 피상적으로 알고 있거나 정반대로 잘못 알고 있는 허상을 걷어내고, 충격적인 진상을 드러내 보여준다. 그 진상을 서술하면, 아래와 같다.
닉슨 행정부가 출범한 날로부터 1개월 13일이 지난 1969년 3월 2일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의 특별보좌관이었던 알렉샌더 헤익(Alexander M. Haig)이 키신저에게 보낸 비망록이 있다. 그 비망록에는 멜빈 레이어드(Melvin R. Laird)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 1969년 2월 21일에 작성한 비망록이 첨부되었다. 헤익의 비망록에 따르면, 닉슨은 대통령직에 취임한 날로부터 1주일이 지난 1969년 1월 27일 백악관에서 비밀회의를 소집하였다. 비밀회의에는 닉슨, 키신저, 레이어드, 합참의장 얼 윌러(Earl G. Wheeler)가 참석하였다. 4인 비밀회의에서 그들은 베트남전쟁을 조기에 종식시키기 위해 북베트남을 최대로 압박하기로 결정하였고, 합참의장에게 군사적 선택방안(military option)을 작성하는 과업을 맡겼다. 닉슨의 미치광이전략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진 4>
▲ <사진 4> 이 사진은 1969년 1월 27일 백악관에서 진행된 4인 비밀회의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닉슨 대통령,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 레이어드 국방장관, 윌러 합참의장이 그 비밀회의에 참석하였다. 4인 비밀회의에서 그들은 베트남전쟁을 조기에 종식시키기 위해 북베트남을 최대로 압박하기로 결정하였고, 합참의장에게 군사적 선택방안을 작성하는 과업을 맡겼다. 닉슨의 미치광이전략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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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비밀회의 결정에 따라, 1969년 2월 21일 국방장관 레이어드는 북베트남을 최대로 압박하는 군사적 선택방안을 작성하였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북베트남 해군기지를 공격하는 공수-상륙합동작전을 전개한다.
(2) 북베트남군이 라오스 접경지대와 캄보디아 접경지대에 설치한 통신망과 군사거점을 파괴하는 공수-공습합동작전을 전개한다.
(3) 북베트남 하이퐁항과 북베트남 해군기지를 해상봉쇄하기 위한 공군-해군합동작전을 전개한다.
(4) 북베트남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한 내란을 준비한다.
(5) 핵공갈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인다.
1969년에 북베트남을 윽박지르기 위해 작성되었던 군사적 선택방안은 근 반세기의 시간적 간극을 뛰어넘어 오늘 다시 출현하였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에게 이른바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을 가하면서 군사적 선택방안을 들먹이고 있다. 트럼프의 미치광이전략이 닉슨의 미치광이전략과 다른 점은 조선의 보복공격이 두려워 조선에 대한 선제타격을 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조선의 보복공격이 두려워 해상봉쇄를 고강도 경제제재로 대체한 것이다.
닉슨의 미치광이전략에서 주목되는 것은 핵공갈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인다는 것이다. 위에 인용한 백악관 비밀문서에 따르면, 닉슨의 미치광이전략은 미국의 핵무기전문가들을 동북아시아(오끼나와를 뜻하는 것으로 보임-옮긴이)에 파견하거나, 미국 국방부가 핵타격수단들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있다고 밝힌 성명을 미국군 고위지휘관들이 발표하게 하여 미국이 베트남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북베트남에게 강하게 암시하면서 핵공갈 수위를 높였다.
그에 비해, 오늘 트럼프의 미치광이전략은 핵공갈과 핵위협을 혼합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를테면,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을 향해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를 언급한 것, 그리고 허벗 맥매스터(Herbert R. McMaster) 국가안보보좌관이 “예방전쟁”을 언급한 것은 미치광이전략에서 드러나는 전형적인 핵공갈이다. 그와 더불어, 항공모함이나 전략폭격기 같은 핵타격수단들을 한반도 작전구역에 거듭 출동시키는 행동, 미니트맨-3 대륙간탄도미사일을 2017년 4월 26일, 5월 3일, 8월 2일에 각각 시험발사한 행동, 2017년 9월 13일 제임스 매티스(James N. Mattis) 국방장관이 미국 최대 핵공격기지인 미놋 공군기지(Minot AFB)를 시찰한 행동 등은 미치광이전략에서 드러나는 전형적인 핵위협이다.
3. 소련에게 북베트남 압박 요구한 닉슨, 중국에게 조선 압박 요구하는 트럼프
1969년 3월 22일 키신저가 닉슨에게 제출한 ‘베트남 문서(Vietnam Papers)’에 따르면, 만일 소련이 북베트남을 압박하면, 베트남전쟁을 종식시키는 데서 소련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므로, 소련이 북베트남을 압박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비밀문서에 따르면, 베트남전쟁이 장기화되어 미국이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으며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라는 점을 소련에게 알려주고, 북베트남에 대한 무력공격을 더욱 확대함으로써 북베트남을 압박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소련이 받아들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소련이 북베트남을 압박하게 만들어 베트남전쟁을 조기에 종식시키려고 하였던 닉슨의 미치광이전략은 오늘 트럼프의 미치광이전략으로 전이되었다. 지금 트럼프는 중국이 조선을 압박하게 만들어 조미핵대결을 종식시키려는 미치광이전략에 매달리고 있다. 이를테면, 2017년 9월 21일 백악관은 조선과 거래하거나 조선에게 금융을 지원하는 중국의 기업, 은행, 개인들을 미국이 단독으로 제재하는 이른바 제3자 제재조치(secondary boycott)를 발표하였는데, 이것은 소련이 북베트남을 압박하게 만들려고 하였던 닉슨의 미치광이전략과 궤를 같이하는 트럼프의 미치광이전략이다.
그러나 소련이 북베트남을 압박하게 만들어 베트남전쟁을 미국에게 유리하게 종식시키려던 닉슨의 술책은 그들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당시 소련에게는 북베트남을 압박하려는 의사도, 그렇게 할 능력도 없었으며, 프랑스 빠리에서 진행되던 종전회담은 미국의 요구대로 진전되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 난감해진 키신저는 닉슨에게 또 다른 군사적 선택방안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1969년 4월 11일 레이어드가 키신저에게 보낸 비망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비망록에 따르면, 키신저가 닉슨에게 제시한 군사적 선택방안은 미국 태평양사령부에 배속된 항공모함에서 함재기들을 출격시켜 필리핀 인근해역과 통킹만(Gulf of Tonkin, 북베트남과 남중국에 걸쳐 있는 해역)에서 각각 기뢰투하연습을 감행하여 북베트남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사진 5> 기뢰투하연습계획을 작성한 레이어드 국방장관은 자신이 작성한 계획이지만 실행을 보류했으면 좋겠다고 건의하였고, 윌러 합참의장도 그 계획에 대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지만, 베트남전쟁의 수렁에서 하루빨리 빠져나오려고 안달하던 닉슨과 키신저는 군수뇌부의 의견을 듣지 않고 기뢰투하연습계획을 강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 <사진 5> 이 사진은 1972년 11월 베트남전쟁 중에 미국 태평양사령부에 배속된 군함들이 북베트남과 남중국에 걸쳐 있는 통킹만에서 기뢰투하연습을 감행하는 장면이다. 그보다 앞서 1969년에 기뢰투하연습계획을 작성한 레이어드 국방장관은 그 계획실행을 보류했으면 좋겠다고 건의하였고, 윌러 합참의장도 그 계획에 대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지만, 베트남전쟁의 수렁에서 하루빨리 빠져나오려고 안달하던 닉슨과 키신저는 군수뇌부의 의견을 듣지 않고 기뢰투하연습계획을 강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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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말할 나위 없이, 기뢰투하연습은 미국이 북베트남을 질식시킬 해상봉쇄를 단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북베트남을 굴복시켜보려는 술책이었다. 1969년 5월 13일에 작성된 미국 해군 제7함대 사령관의 비밀통보문에 따르면, 닉슨의 명령에 따라 제7함대 소속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함(USS Enterprise)에서 이륙한 A-6 함재기, A-7 함재기 편대들이 필리핀 수빅(Subic)만에서 기뢰투하연습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북베트남은 자국에서 멀리 떨어진 필리핀 수빅만에서 감행된 기뢰투하연습을 위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기뢰투하연습은 실효가 없었다.
4. 실패로 끝난 키신저의 ‘오리낚시작전’
기뢰투하연습에서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닉슨은 북베트남 수도 하노이(Hanoi)로 직통하는 전략요충지 하이퐁(Haiphong)항을 봉쇄하여 북베트남 경제를 질식시키는 기뢰투하계획을 작성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 지시에 따라 미국군 지휘부가 작성한 것이 ‘오리낚시(DUCK HOOK)’라는 작전명으로 불린 해상봉쇄작전이다. 1969년 7월 21일 레어드가 키신저에게 보낸 서한에는 미국 해군 작전사령관실이 작성한 50쪽 분량의 비밀문서가 첨부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항공모함 3척을 동원하는 대규모 기뢰투하작전으로 하이퐁항을 완전히 봉쇄하겠다는 ‘오리낚시작전’ 문서다.
1969년 7월 15일 백악관에서 쟝 쌩뜨니(Jean Saintney)를 만난 닉슨은 그에게 자신의 밀사로 하노이를 방문하여 자신의 구두친서를 북베트남에 전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쌩뜨니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을 태평양전쟁 중에 점령한 일본이 패망을 앞둔 시점에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프랑스 정부가 하노이에 파견하였던 프랑스 정치인이다. 1969년 7월 16일 쌩뜨니가 작성한 비망록에 따르면, 닉슨이 쌩뜨니에게 부탁한 것은 미국이 북베트남 해상봉쇄를 단행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북베트남에게 전해주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당시 빠리에서 진행 중이던 종전회담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결과가 1969년 11월 1일까지 나오지 않으면, 북베트남 해상봉쇄를 단행하겠다고 위협한 것이다.
1969년 7월 키신저는 닉슨에게 제출한 ‘오리낚시작전을 실행하기 위한 개념계획’이라는 제목의 비밀문서에서 그 작전을 실행하기 위한 개념계획을 서술하였다. 그 비밀문서에서 키신저는 ‘오리낚시작전’이 군사적 선택방안에 외교적 선택방안을 첨가한 방식으로 실행될 것이라고 서술하였다. 이것은 북베트남 무력침공과 빠리 종전회담을 병행하겠다는 뜻이다.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빠리종전회담에 북베트남 대표로 참석한 레둑토 베트남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위원장과 미국 대표로 참석한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이 통역을 사이에 두고 대화하는 장면이다. 빠리종전회담은 1968년 5월 10일에 첫 회담을 시작하였고, 1973년 1월 27일 빠리평화협정을 체결함으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 기간에 닉슨은 미치광이전략에 매달리면서 종전을 미국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온갖 술책을 동원하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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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9월 17일 키신저의 특별보좌관 앤서니 레이크(Anthony K. Lake)가 키신저에게 제출한 ‘베트남 급변사태 계획: 작전개념’이라는 제목의 비밀보고서는 군사적 선택방안에 외교적 선택방안을 첨가한 ‘오리낚시작전’이 “모든 선택방안들을 탁자 위에 올려놓은 명백한 사례(clear example of putting all options on the table)”로 된다고 지적하였다.
2017년 8월 29일 조선이 북태평양 상공으로 화성-14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였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을 향해 “모든 선택방안들이 탁자 위에 있다”고 말하였는데, 48년 전 키신저의 보좌관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트럼프의 미치광이전략이 닉슨의 미치광이전략을 그대로 따라간다는 사실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레이크가 키신저에게 제출한 비밀보고서에 따르면, 키신저가 최종 결재한 군사적 선택방안은 아래와 같다.
(1) 공습으로 북베트남의 방공망과 발전소들을 파괴한다.
(2) 상륙작전으로 북베트남을 침공한다.
(3) 전술핵타격으로 북베트남군이 라오스에 설치한 남진통로를 파괴한다.
(4) 전술핵타격으로 북베트남과 중국을 연결하는 두 개의 철로를 파괴한다.
위에 열거한 네 가지 군사적 선택방안에 더하여, 베트남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하는 즉시 그에 대응하고, 소련에게 미국의 단호한 결의를 보여줄 수 있도록 전략항공사령부가 핵공격준비태세를 갖추는 군사적 선택방안이 거론되었다. 1971년 전략항공사령부가 작성한 ‘역사연구 제117호’라는 제목의 비밀문서에 따르면, 핵공격준비태세는 아래와 같이 네 단계에 걸쳐 전개되는 것이었다.
(1) 1969년 10월 12일부터 경계태세를 갖춘다.
(2) 10월 18일 전략폭격기 편대비행을 재개한다.
(3) 10월 25일부터 30일까지 경계태세를 갖춘다.
(4) 10월 27일부터 30일까지 ‘자이언트 랜스 작전(Operation Giant Lance)’을 수행한다.
‘자이언트 랜스 작전’은 제92전략항공비행단 소속 B-52 장거리전략폭격기 18대가 전략핵폭탄을 가득 싣고 소련군 방공레이더망에 일부러 포착되도록 북극해 상공에서 공중급유를 받으며 장시간 비행하는 대소핵타격위협이었다. <사진 7>
▲ <사진 7> 이 사진은 베트남전쟁 중에 북베트남 영공을 침범한 B-52 전략폭격기가 폭탄을 투하하는 무차별 공습장면이다. 닉슨은 1969년 10월 27일부터 30일까지 전략핵폭탄을 가득 실은 B-52 전략폭격기 18대를 소련군 방공레이더망에 일부러 포착되도록 북극해 상공에서 공중급유를 받으며 장시간 비행하는 대소핵타격위협을 감행하였다. 닉슨의 미치광이전략은 그처럼 위험천만하고, 무모하며, 광란적이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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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앙정보국(CIA)이 1969년 10월 28일에 작성한 ‘공산주의자들이 미국의 군사준비태세시험에 대해 보일 수 있는 반응들’이라는 제목의 비망록에 따르면, 키신저는 미국군이 핵공격준비태세에 진입하기 직전 미국 국가정보기관들에게 소련이 미국의 핵공격준비태세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탐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미국 중앙정보국의 탐지보고는 키신저의 기대와 크게 어긋났다. 미국은 대소핵타격위협을 노린 핵공격준비태세를 격상시키며 소련에게 핵위협을 가했으나, 소련의 베트남정책은 변동을 보이지 않았으며, 당시 빠리에서 진행 중이던 종전회담에서 북베트남의 태도도 여전하였다.
5. 미치광이전략의 종착점은 완전철군과 동맹포기
키신저는 베트남전쟁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소련과 비밀협상을 벌였다. 1969년 5월 14일에 작성된 회담비망록에 따르면, 그 날 키신저는 워싱턴 주재 소련대사 아나톨리 도브리닌(Anatoly Dobrynin)과 비밀회담을 진행하였는데, 그 회담 중에 키신저는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회담비망록에 따르면, 키신저는 도브리닌에게 “(베트남전쟁) 종전합의가 결속되는 시점과 남베트남 정치체제가 안정되는 시점 사이에 매우 합리적인 시간적 간격(interval)이 주어진다면, 닉슨은 남베트남에 어떤 정치체제가 들어서는 것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은 베트남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면, 백악관은 완전철군과 동맹포기를 선택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다.
베트남전쟁을 종식시키느냐 아니면 남베트남의 안보를 지켜주느냐 하는 전략적 양자택일의 벼랑끝에 내몰린 닉슨은 결국 베트남전쟁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남베트남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키신저-도브리닌 비밀회담이 진행된 때로부터 불과 몇 시간 뒤에, 닉슨은 텔레비전방송을 통해 담화를 발표하였다. 그는 담화에서 1970년에 미국군과 북베트남군이 동시에 남베트남에서 철수하자는 동시철군방안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닉슨의 동시철군방안이 베트남의 분단선을 국경선으로 대체하려는 정치음모라는 것을 간파한 북베트남은 그 제안을 거부하였다. <사진 8>
▲ <사진 8> 이 사진은 1968년 3월 16일 미국군이 베트남의 두 농촌마을들인 미라이와 미케에서 무고한 주민 504명을 무참히 학살한 장면이다. 학살당한 주민 대부분은 여성들과 어린이들이었다. 미국군은 베트남의 다른 마을들에서도 무고한 주민을 학살하였다. 미국의 돈을 받고 베트남전쟁에 동원된 한국군도 무고한 베트남 주민을 학살하였다. 이런 양민학살만 보더라도, 닉슨의 미치광이전략은 명백한 전쟁범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 미치광이전략에 매달리며 전쟁범죄를 저지른 닉슨과 키신저는 전범으로 처형받았어야 했다. 그런데 전범으로 처형받았어야 할 키신저에게 노벨평화상이라는 것을 주었으니, 너무 기가 막힐 노릇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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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되는 것은, 닉슨이 키신저-도브리닌 비밀회담에서 남베트남을 포기하고 베트남전쟁을 종식시키려는 의사를 밝히면서도, 같은 날에 있은 담화에서는 동시철군안을 북베트남에게 제안하였다는 사실이다. 동시철군안은 북베트남이 거부하리라고 예상하고 꺼내놓은 가짜제안이었고, 키신저-도브리닌 비밀회담에서 닉슨이 남베트남을 포기하고 베트남전쟁을 종식시킬 준비가 되었다고 밝힌 것은 진짜속셈이었다.
그로부터 48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조미핵대결로 파탄에 빠진 자국의 국가안보를 건져내느냐 아니면 한국의 안보를 지켜주느냐 하는 전략적 양자택일의 벼랑끝에 내몰렸다. 그래서 요즈음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거나 정상회담을 진행할 때마다 “철통같은(ironclad) 한미동맹”을 유지할 것이라는 약속을 거듭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위에 인용한 회담비망록을 읽어보면, 트럼프의 그런 재확인 발언은 진짜속셈과는 동떨어진 입버릇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969년 6월 8일 닉슨은 북태평양 미드웨이섬에서 당시 남베트남 대통령 응웬 반 티우(Nguyen Van Thieu)를 만나 그에게 철군계획을 통보하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1969년 7월 8일 미국군 전투병력 800명이 남베트남에서 제1진으로 철수하였다. 미국군 철수는 그 날부터 1972년 11월까지 15차례에 걸쳐 단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사진 9>
▲ <사진 9> 이 사진은 1969년 12월 24일 베트남전쟁에 동원되었던 미국 해병대 제3사단 병력 22,000명이 일본 오끼나와에 있는 해병대기지로 퇴각하기 위해 베트남 다낭항에서 트리폴리 상륙함에 승선하는 장면이다. 그보다 앞서 1969년 6월 8일 닉슨은 북태평양 미드웨이섬에서 당시 남베트남 대통령 응웬 반 티우를 만나 그에게 철군계획을 통보하였다. 1969년 7월 8일부터 시작된 남베트남 주둔 미국군 철수는 1972년 11월까지 15차례에 걸쳐 단계적으로 진행되었다. 닉슨의 미치광이전략이 도달한 종착점은 완전철군과 동맹포기였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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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군 철수는 곧 남베트남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1972년 10월 23일에 작성된 키신저와 헤익의 대화록에 따르면, 닉슨은 헤익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것(키신저가 추진하는 종전회담을 뜻함-옮긴이)을 표면적인 타협이라고 부르던지 아니면 뭐라고 부르던지 괜찮다. 그것은 남베트남이 살아남을 기회를 주는 방향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남베트남이 언제까지나 살아남을 필요는 없으며, 적당한 시간 동안 살아남아주면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빌어먹을, 우리가 제몫은 했구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나는 남베트남이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닉슨의 미치광이전략이 도달한 종착점은 베트남전쟁 패전에 따른 완전철군과 동맹포기였다. 지금 닉슨의 전철을 밟고 있는 트럼프의 미치광이전략이 도달하게 될 종착점도 조미핵대결 패배에 따른 완전철군과 동맹포기로 귀결될 것이다. 역사는 미래를 내다보는 창문이다.
6. 닉슨의 참혹한 실패를 불러오는 트럼프의 비극
닉슨의 미치광이전략을 밝혀준 비밀문서는 1969년 10월 말에 작성된 비밀문서까지만 기밀해제되어 세상에 공개되었다. 그 이후 미국이 남베트남을 포기하는 과정, 남베트남이 패전하여 베트남이 통일되는 과정을 밝혀주는 비밀문서들은 아직 기밀해제되지 않았다. 하지만 1970년 1월부터 빠리평화조약이 체결된 1973년 1월 27일 까지 베트남전쟁의 전개상황은 닉슨이 미치광이전략에 더욱 광분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1970년 4월 30일 미국은 캄보디아를 무력침공하였다가 6월 30일에 철수하였다. 1970년 9월 5일 미국은 ‘제퍼슨 글렌 작전(Operation Jefferson Glenn)’이라는 작전명으로 북베트남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였다. 이것은 미국군이 단독으로 감행한 마지막 공격이었다.
그 이후 미국은 미국군 사상자를 많이 내는 지상작전은 더 이상 하지 못하였으나, B-52 전략폭격기 편대를 동원하는 북베트남 공습을 계속 감행하였다. 북베트남 공습을 날짜순으로 열거하면, 1970년 8월 24일, 1971년 1월 19일, 1971년 12월 26일부터 30일까지 5일 동안, 1972년 4월 10일, 1972년 4월 15일이다. <사진 10>
▲ <사진 10> 위쪽 사진은 1972년 5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된 제1차 라인백커 작전에 동원된 미국 전투기들이 공중급유를 받으며 비행하는 장면이다. 아래쪽 사진은 최근 괌의 앤더슨공군기지에서 이륙한 B-1B 전략폭격기가 전투기들의 호위를 받으며 조선을 자극하기 위해 한반도 중부 상공을 비행하는 장면이다. 반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미국의 미치광이전략은 공습이라는 군사적 선택방안에 매달리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미치광이전략은 전략폭격기와 호위기들을 조선인민군의 방공미사일 사정권 안으로 밀어넣는 매우 위험천만하고 무모한 행동으로 전개되고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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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종전회담에서 평화조약이 체결되기 직전 미국의 북베트남 공습은 극에 이르렀다. 이를테면, 미국은 1972년 5월 9일부터 10월 22일까지 제1차 라인백커 작전(Operation Linebacker 1)을 감행하였다. 이 공습에서 전략폭격기, 전투기, 함재기들이 무려 40,000회나 출격하였으며, 북베트남에 125,000t 이상의 폭탄을 투하하였다.
1972년 11월 30일 미국은 남베트남에서 단계적 철군을 완료하였으면서도, 북베트남 공습을 멈추지 않았다. 미국은 1972년 12월 18일부터 12월 29일까지 제2차 라인백커 작전을 감행하였다. 이 공습에서 폭탄 100,000발을 하노이와 하이퐁에 투하하였으며. 무차별 공습으로 하노이에서만 민간인 1,318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나 닉슨의 미치광이전략은 남베트남에서 미국군을 철수하고, 빠리평화조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결국 파산되고 말았다. 더욱이 닉슨은 ‘워터게잇 추문사건(Watergate Scandal)’이 폭로되어 거센 탄핵역풍이 몰아치자 1974년 8월 9일 백악관에서 쫓겨나는 치욕과 수모를 겪었다.
1975년 4월 30일 오전 11시경 사이공(Saigon, 당시 명칭)으로 진격한 북베트남군의 T-54 전차와 T-55 전차가 남베트남 대통령궁 철문을 깔아뭉개고 진입하였다. 그보다 조금 앞서 오전 10시 24분에 라디오방송을 통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던 남베트남의 마지막 대통령 두옹 반 민(Duong Van Minh)은 휘하각료 30명과 함께 대통령궁 대회의실에 놓인 커다란 타원형 탁자에 둘러앉아 최후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북베트남군 전투원들이 그 회의실에 들이닥친 순간, 모든 것을 체념한 두옹 반 민은 “혁명이 여기에 있소. 당신들이 여기에 있소. 우리는 정권을 넘겨주려고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었소”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두옹 반 민은 라디오방송을 통해 “나는 사이공 정부가 완전히, 전면적으로 해체되었음을 선언한다”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였다. <사진 11>
▲ <사진 11> 이 사진은 1975년 4월 30일 오전 11시경 사이공(당시 명칭)으로 진격한 북베트남군의 T-54 전차가 남베트남 대통령궁 철문을 깔아뭉개고 진입하는 장면이다. 그 시각 남베트남의 마지막 대통령 두옹 반 민은 휘하각료 30명과 함께 대통령궁 대회의실에 놓인 커다란 타원형 탁자에 둘러앉아 최후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북베트남군 전투원들이 그 회의실에 들이닥친 순간, 모든 것을 체념한 두옹 반 민은 "혁명이 여기에 있소. 당신들이 여기에 있소. 우리는 정권을 넘겨주려고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었소"라고 말했다. 베트남전쟁에서 패하여 결국 완전철군과 동맹포기로 귀결되었던 닉슨의 미치광이전략을 지금 트럼프가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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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에서 패하여 결국 완전철군과 동맹포기로 귀결되었던 닉슨의 미치광이전략, 이른바 ‘품위 있는 철수(decent withdrawal)’를 완료하기까지 북베트남과 소련에 대한 핵공갈과 핵위협으로 현상을 유지하려고 몸부림쳤던 닉슨의 미치광이전략, 그 전략을 놀랍게도 지금 트럼프가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24년 동안 지속되어온 조미핵대결에서 결국 패하여 미국의 국가안보가 사실상 파탄나버린 천길 벼랑끝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고작 40여 년 전에 파산된 미치광이전략밖에 선택할 수 없었던 것일까? 역사의 교훈을 망각하면, 전 세대의 참혹한 실패를 또 다시 되풀이하는 수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트럼프의 비극이며, 그의 통치를 받는 미국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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