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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발 베이징행 기차표는 과연 얼마일까?

[기고] 남북 소통의 물리적 장치로 철도 활용해야
 
 
프랑스 파리 동역 승강장에서는 신기한 장면을 볼 수 있다. 프랑스 고속열차 떼제베(TGV)와 독일의 고속열차 이체(ICE)가 나란히 서 있다. 현지인들에게는 이상할 게 없는 모습이지만 대륙으로 연결된 육로가 닫힌 채 70여년을 보낸 한국 여행자 입장에서는 낯선 풍경이다. 파리 동역의 이체(ICE)는 독일을 떠나 국경을 넘어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 도착한 국제열차이다. 
 
철도는 기계문명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산업혁명의 기관차였고 자본주의 체제를 꽃피운 기둥이었다. 철도는 시공간을 재편하면서 철도 이전의 인류가 결코 도달하지 못했던 벽을 깨버렸다.  
 
뉘른베르크와 퓌르트에 이어 라이프치히와 드레스덴을 잇는 철도 노선이 개통되자 달리는 열차가 일으키는 바람은 중세 봉건의 껍질을 날려버렸다. 철도는 북쪽의 발트해에서 남쪽의 알프스 자락까지 여러 공국으로 조각난 지역들을 프로이센 제국으로 꿰매는 실과 바늘이었다. 독일제국 통합의 기계장치이던 철도는 두 번의 세계 대전을 통해 비극을 실어 날랐다. 20세기에는 유럽연합을 엮는 견인차가 되기도 했다.  
 
2018년 한반도는 하늘이 내려준 기회를 맞았다. 전쟁위기까지 치달았던 남북, 북미 관계가 화해와 평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됐다. 아직은 위태로운 불씨이기에 최선을 다해 불꽃을 피워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매개체로 철도만큼 유용한 인프라는 없을 것이다. 식민지 철도로 시작해 수탈과 침략의 도구였던 한국철도가 평화의 도구로 전환되는 기적은 꿈이 아닌 현실로 성큼 다가서고 있다. 
 
북 핵 폐기와 북미관계 개선이 차질 없이 진행되면 남북교류협력은 본궤도에 오를 것이 분명하다. 한때 추진됐던 북한체제의 붕괴나 급변사태 유도 방식의 흡수통일론은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분쟁과 분단의 영구화뿐만 아니라 한국경제에도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북한 체제 보장과 번영은 북한 시민의 생활안정뿐만 아니라 지난한 통일 과정에서 남한이 책임져야 하는 통일비용 부담도 덜 수 있다.  
 
상호 이해와 평화는 끊임없는 소통과 협력에 기반 둘 때 든든해질 수 있다. 이와 같은 소통의 물리적 장치로서 철도가 갖는 장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거대 장치산업인 철도의 특성상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 철도는 남한보다 열악한 상태이다. 대륙 연결의 주간선인 경의선 북쪽 구간에 대한 남한의 투자는 남북협력 사업의 가장 중요한 분야 중 하나일 것이다.  
 

▲ 중국 단둥역에 도착한 고속열차에서 내리는 승객들. ⓒ박흥수

 
경의선 연결의 장점은 1, 폐쇄회로와 같은 철도의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외부세계와의 급격한 접촉을 불편해하는 북한 당국의 부담을 덜 수 있고 2, 남북 소통의 상징적 인프라로서 그 자체로 평화를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3, 통행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을 남북이 공유할 수 있으며 4, 한국의 숙원이었던 대륙과의 연결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경의선은 압록강을 건너 중국 단둥과 연결된다. 이로써 한국철도는 국제선을 운용하게 되어 눈높이로 국경을 넘는 유라시아 대륙철도의 출발점이 된다. 경의선은 크게 두 단계의 개량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은 북쪽 재래선 선로의 개량을 통해 서울역에서 신의주까지의 운행속도를 높여 소요시간을 단축하는 것이다. 현재 운행되는 평양발 선양행 국제열차의 평양-신의주간 운행시간은 6시간 10분에서 7시간 사이이다.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신의주 까지 10시간에서 1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북쪽 선로의 개량을 통해 서울-신의주간 운행시간을 7시간 내외로 단축한다면 서울-베이징 구간을 1일 생활권으로 만들 수 있다. 신의주를 지나 압록강을 건너면 단둥역이다. 단둥역에는 베이징행 고속열차가 운행된다. 단둥-베이징 간 고속열차 운행시간은 6시간 20분 정도 소요되고 2등석 요금은 한화 6만5000원 내외이다. 
 
서울역에서 오전 7시에 경의선 열차를 타고 북중 국경을 넘어 단둥 역에서 베이징 행 고속 열차로 환승 하면 저녁 9시쯤에는 베이징 시내에서 북경오리에 고량주 한 잔을 할 수 있다. 편도 열차 요금은 12만 원 내외로 유지할 수 있다. 북쪽 선로를 한국의 일반철도노선 수준으로 개량한다면 시간은 훨씬 단축할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서울-신의주간 고속철도를 신설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 최고의 고속철도망을 가진 중국철도와 연결되어 중국의 여러 도시에 연결된다. 이에 따른 경제, 문화 효과는 얼마나 클지 상상할 수 없다. 중국의 고속열차가 서울역에 정차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반대로 한국의 KTX 산천을 베이징 중앙역 승강장에서 만날 수도 있다. 
 
국제선 고속열차 운행으로 국제선 남북중 공동관제센터와 국제선 기관사, 승무원도 생길 것이다. 국제역으로 거듭난 서울역에서 오전에 고속열차를 타면 오후에 베이징 이화원 호수를 거닐 수 있게 된다.  
 
철도차량제작산업이나 철도기술 분야도 발전할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의 철도를 모두 달릴 수 있는 차량 개발과 시설 개량은 철도차량제작능력과 시설부분을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게 된다. 당연히 한국철도산업의 국제경쟁력도 커지게 된다. 세계 최고의 철도산업 국가로 부상한 중국과의 철도분야 협력도 기대할 수 있다.  
 
남북 평화정착과 중국과의 철도 협력은 동북아 평화를 향한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무엇보다 일본의 정치개혁을 이끌게 되는 효과도 낳을 수 있다. 전후 반짝 꽃피웠던 일본의 진보세력은 냉전질서 속에 질식해버렸다. 북한에 대한 악마화는 일본 극우 세력이 태평양 전쟁의 책임을 회피하고 장기 집권체제를 유지함으로써 평화헌법 폐기와 군사대국화의 길을 맘 놓고 가게 하는 알리바이였다.  
 
동북아 평화 정착을 통해 일본의 양심세력이 새롭게 성장한다면 평화를 바탕으로 한 동북아 공동번영의 길도 열릴 수 있다. 유레일 철도 패스처럼 한중일 청년들이 한중일 철도 패스로 자유롭게 여행하고 소통하는 미래도 상상할 수 있다.  
 
평화철도 경의선의 의미와 역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소중할 수가 있다. 이 중대한 세기적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면 국제역이 된 서울역에서 런던행 열차표를 끊을 수 있는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 수도 있다. 서울역 열차 출발 안내 전광판에 베이징, 울란바토르, 하얼빈, 치타, 이르쿠츠크, 모스크바, 베를린, 파리, 런던을 알리는 엘이디 불빛이 반짝이는 풍경은 비극의 땅이었던 한반도에서 시작된 세기적 대전환의 성공을 알리는 상징적 장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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