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 3월 11일 시민대표단 모집이 확정됐다. 마지막 일정인 4월 5일까지 대략 한 달 활동했다. 시간이 촉박했나?
이용희 : 우선 지금 내는 비판 의견이 혹시라도 다음 공론장에 해를 끼칠까 걱정된다. 공론화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과정이다. 그럼에도 평가하자면, 시간은 촉박했다. 관련 내용을 미리 숙지하려고 시민대표단에 선정된 후부터 자료실 홈페이지에 자주 들어갔는데, 자료는 거의 본 행사 직전에 올라왔다. 가장 빨리 올라온 게 일주일 전쯤이었다. 미리 보라던 강의 영상은 3일 전에 올라왔다.
본 행사도 토론 자체보다 '리허설'을 더 길게 했다. 4일 간의 행사 일정은 매일 오전엔 강의를 듣고, 오후에 관련 토론을 하고 질문 취합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현장 참석자 160명이 8~10명씩 찢어져서 조별 토론을 했다. 그런데 실질적 토론 시간이 2~3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같은 조라 해도, 다들 처음 본 이들이다. 진행자가 '자 얘기해 보세요' 하는데, 토론하기 보단 피상적인 인상을 더 많이 나눌 수 있었다. 저녁에 있을 생방송에 대비한 리허설이 더 길게 진행돼 더 기억에 남는다.
프레시안 : 왜 피상적인 인상을 나눴다고 느꼈나?
이용희 : 토론 진행 방식 때문이다. 이 부분은 정말 아쉽다. 서로가 생각을 원활히 나누는 토론이 전혀 아니었다. 조별 진행자가 의견 분포를 균질하게 하는 데만 집중한다고 느꼈다. 어떤 주장이 나왔을 때, 이를 어떻게 볼 것인지 대화가 이어져야 하는데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의도는 없었겠지만, 토론이 통제되는 느낌이었다.
참가자들이 신뢰 관계를 쌓을 시간도 없는 상태에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니 강의 듣고 점심 먹고 시작된 토론 자리에서 '교수님 생각에 동의한다' '이런 점을 새롭게 알게 됐다' 등 인상 깊은 점 위주로 이야기를 더 하게 됐던 것 같다.
프레시안 : 긍정적으로 본 부분은 없나?
이용희 : 당연히 있다. 가장 크게는 파편적으로만 알던 정보를 이번 기회에 종합적으로 공부하게 됐다. 평소 기후위기를 잘 몰랐던 시민들은 '이렇게나 심각한 문제였다니' 하고 새로 알게 됐을 것이다.
그런데 자료집이나 영상은 솔직히 '좋은 동화책을 보는' 느낌이었다. 내용이 단편적이었고, 진짜 고민해 봐야 할 질문은 다루지 않는다고 느꼈다. 무엇을 안다는 건 시작점이다. 그래서 이제 뭘 어떻게 할 건데, 우리가 어떻게 변할 건데, 이걸 구체적으로 얘기해 나가야 하는데 관련 내용은 없었다. 전문가들의 주제별 발표 내용도 많이 겹쳤고, 내용도 시민대표단에 맞게 쓰기보다 시간이 촉박하니 대학에서 쓰던 자료를 급히 편집해서 가져온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들었다.
일주일 전 통보, 도돌이표 논의
프레시안 : 시민대표단이 논의할 의제를 의제숙의단에서 먼저 검토했다. 우선 의제숙의단은 뭔가?
이보아 : 의제숙의단은 시민대표단의 토론과 숙의를 위해, 이들이 논의할 의제를 설정하고 구체화하는 기구였다. 청년, 청소년들과 노동, 시민사회, 산업계에서 17명이 모였다. 또 분야별 전문가 자문단 13명도 따로 있었다. 이들 30명이 2월 26일부터 2박 3일로 워크숍을 했다. 그런데 워크숍 자체를 일주일 전에 통보했다. 며칠 전 통보받은 사람도 있다. 이런 촉박한 결정은 시민대표단 토론 행사 직전까지 계속 같았다. 모두 급하게 준비했고 참여했다.
프레시안 : 전반적으로 숙의가 안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왜 그런가?
이보아 : 가령 불이 났다고 해보자. 그럼 나와야 할 질문은 '누가 불을 질렀느냐'다. 문제가 발생하면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밝혀야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 이런 게 몽땅 빠졌다. 그러니까 기후위기라면, '누가 탄소배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데? 그 책임을 어떻게 지워야 하는데?'란 의제가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 대기업, 화석연료 기반 기업, 부유층 등이 탄소 배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발표에 참여한 학자들도 절대 모를 리 없는 내용이다. 국제적 상식이니까. 그런데 여기선 일언반구하지 않았다.
프레시안 : 시민대표단 토론엔 법학·환경 분야 교수 등 박사 15명과 환경단체 관계자 3명이 함께 했다.
이보아 :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 특히 시민대표단에 탄소 배출 구조를 설명하는 발표 내용을 보면, 정말 문제가 많다. 계속 '우리'를 거론한다. 산업계가 생산활동으로 배출한 걸 '우리가 먹고 자고 입고, 온수를 쓰고, 전기를 쓰는 데서' 나오는 걸로 설명한다. 발표자 자료를 미리 검수할 때 호도하면 안 된다고 네 차례나 의견을 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구조는 설명하지 않고 개인의 책임으로 표현했는데, 이 개인마저도 소득별로 탄소 배출량이 엄청 차이 난다. 고소득층의 탄소 배출 책임, 당연히 언급하지 않았다. '모두의 책임'만 물었다. 즉 누구의 책임도 묻지 않았다.
프레시안 : 의제숙의단은 무엇을 논의해서 시민대표단에 전달했나?
이보아 : 3가지 의제가 있다. 탄소 배출을 얼마나 줄일지 감축 목표, 어떤 경로로 줄일지 감축 경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낼지 이행방안이다. 이 중 책임과 대안 부분인 이행방안을 의제숙의단이 거의 다루지 못했다. 산업계 측을 제외한 의제숙의단 모두가 감축 목표와 감축 경로를 헌재 결정에 맞게 방어하는데 급급했다. 공론화위가 사실상 산업계에 편향돼 있었기 때문이다.
공론화위가 '볼록' 경로(먼 미래에 탄소를 더 많이 감축하는 방식, 반대는 '오목' 경로)를 채택하자고 우기는 데서 드러났다. 헌재 결정 취지는 명확하다. "미래세대에 기후 부담을 지우지 말라"다. 그럼 적어도 국제 사회 수준에 맞게 감축량을 대폭 높이고, 지금 바로 급격히 줄여야 한다. 감축 목표와 경로 모두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워크숍에선 이를 두고 처음부터 다시 싸워야 했다. 끝내 30명 중 18명 이상이 '볼록 경로'를 설문조사 답변 항목에서 삭제하라고 투표해서 공론화위에 요구했다. 이후에도 여러 번 항의했다. 그런데 결국 넣었다. 다 누구를 위한 건가?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