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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공동행동 공동대표 박석운 “촛불주역들은 모두 ‘팽’ 당했다”

[원희복의 인물탐구]민중공동행동 공동대표 박석운 “촛불주역들은 모두 ‘팽’ 당했다”

글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사진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입력 : 2018.12.30 09:36:01 수정 : 2018.12.30 09:45:06

 


 

[원희복의 인물탐구]민중공동행동 공동대표 박석운 “촛불주역들은 모두 ‘팽’ 당했다”
 

누가 뭐라 해도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촛불혁명의 ‘주역’이다. 그는 박근혜 정권에 맞서 삭발과 단식까지 했고, 2015년 민중총궐기를 주도했으며, 2017년 박근혜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공동대표로 활동했다. 그래서 그는 촛불시민을 대표해 2017년 12월 5일 독일 베를린까지 가서 에버트 인권상을 받았다. 그는 2018년 청와대에 들어가 ‘떡국’도 얻어먹었다. 이는 청와대도 그를 촛불 주역으로 대우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는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이며, 민중공동행동 박석운 공동대표(63)다. 그러나 그는 요즘 불 꺼진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아무런 반응 없는 청와대 앞에서 ‘여전히’ 주먹을 치켜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촛불 핵심 주역이던 민중총궐기투쟁본부를 재규합, ‘민중공동행동’이라는 연대단체까지 만들었다. 왜 그는 촛불 이전으로 되돌아갔을까. 

-왜 촛불혁명 주인공이 이 추운 겨울에 청와대 앞에서 손을 치켜들고 있는가.

“우리가 문재인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이다. 그런데 개혁에 역주행하니 저지하러 나섰다. 대통령이 발표한 경제활력안을 보고 경악했다. 사회공공시설(SOC)에 대한 전면적 민간 개방은 이명박·박근혜 시절에서도 못했던 것이다. 너무 빨리 ‘노무현 말기’처럼 되고 있다. 그래선 안 된다.” 

-이제 채 2년도 안 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입장에 서는 것도 고민스러웠을 것이다.

“그렇다. 일면 모순이지만 개혁 역주행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문재인 정부가 왜 개혁 역주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사실 왜 그런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나마 제일 진보적이고, 나머지 모두 우클릭하고 있다. 촛불항쟁에서 제일 미진했던 부분이 국회 개혁이다. 국회가 적폐의 온상으로, 민주당에도 준적폐세력이 끼여 있다. 청와대 핵심 보좌진들은 내공이 약하고, 겉멋만 들었다. 개혁의 깃발만 흔들었지 내실화에 대한 내공이 약하다. 초기에 이벤트로 감동은 줬지만 막상 서민들의 삶에 변화를 주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의 전교조 처리문제, 통합진보당 해산 원인 규명, 그리고 민주노총에 대한 불신 등은 보수세력이 제기하는 소위 ‘촛불청구권’이라는 진보 갈라치기 프레임에 빠졌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민주당이 촛불을 주도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일종의 자격지심이나 경계심 아닐까.

“촛불청구권이라는 얘기는 정말 웃기는 것이다. 촛불은 2015년 노동자·농민·도시빈민 등이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민중총궐기 투쟁에서 시작했다. 1~3차 촛불항쟁도 민중총궐기투쟁본부에서 주도한 것이다. 그 탄압으로 백남기 농민이 죽었다. 촛불 양상은 민중들의 절규에 일반 시민들이 호응해 전국민적 항쟁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런데 가장 앞장선 민중이 가장 소외됐다. 백남기 농민이 죽고, 트랙터 투쟁으로 제일 앞장선 농민에 대해 대통령은 연두회견에서부터 농민의 ‘ㄴ’ 자도 꺼내지 않았다. 촛불청구서는커녕 노동자·농민·도시빈민 모두 ‘팽’당했다.”

-바로 그 팽에 분노해 민중공동행동을 만든 것인가. 

“팽당한 것에 대한 불만보다 제대로 된 적폐청산과 개혁 역주행의 저지를 위해 만든 것이다. 지난해 5월 민중공동행동을 만든 결정적 계기가 최저임금산입 범위 개악과 은산분리 개악을 보면서다. ‘그냥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이 일어서 50여개 단체가 결성했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 단체들이 새로운 시대에 맞게 진화·발전시킨 것이다.” 

지난 촛불혁명 과정을 좇아 <촛불민중혁명사>를 저술한 기자의 입장에서 촛불혁명은 친일 및 민주화 역사왜곡에 항의하는 민주화 원로 모임 가운데 함세웅 신부의 퇴진행동이 시작해 민주노총 중심의 민중총궐기투쟁본부가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희생자 연대모임 416연대 등이 가세하고,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자 백남기투쟁본부가 촛불혁명을 이끌었다. 뒤늦게 가세한 시민사회단체 출신은 청와대·정부 등 요직에 등용됐다. 

그러나 처음 촛불을 든 전교조와 민주노총, 그리고 농민들은 여전히 추위에 떨고 있다. 노동자가 요구한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노동은 거꾸로 가고 있다. 전교조는 여전히 법외노조이고, 심지어 민주노총은 ‘귀족노조’라는 비난의 대상이 됐다. 박 공동대표는 “전교조 문제에 대응하는 모습은 일종의 ‘패륜’, 표현이 너무 과하다면 촛불에 대한 배반”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중공동행동 박석운 공동대표가 2018년 12월 17일 한국서부발전 김용균씨 죽음에 항의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민주노총 제공

민중공동행동 박석운 공동대표가 2018년 12월 17일 한국서부발전 김용균씨 죽음에 항의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민주노총 제공 

■촛불 100대 과제 중 39개 과제 진척 없어 

민중단체 진영에서는 전두환·노태우 정권도 단행한 양심수 석방을 문재인 정부가 외면하고 있는 것도 대표적 섭섭함으로 꼽고 있다. 특히 8대 종단 대표가 청와대를 방문해 이석기 전 의원의 석방을 요청했지만, 문 대통령은 이를 외면했다. 박 공동대표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은 점점 옥타브가 높아가는 느낌이다. 

그래도 기자가 ‘한반도 평화 정착은 가장 큰 성과’라고 문재인 정부의 치적을 언급했다. 이에 그도 “뒤뚱거리긴 하지만 한반도 평화의 흐름이 주류가 된 것은 주요한 성과”라고 인정했다. 지난 5월 민중공동행동 발기문에는 촛불이 요구한 100대 과제 중 39개 과제가 전혀 진척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그는 “그나마 그때는 ‘똑바로 하라’는 것에 중점을 뒀기 때문에 후하게 점수를 매겨준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민중공동행동의 비판처럼 문 정부를 탄생시켰던 민중·진보세력은 급속히 이반하는 반면, 보수세력은 결집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도 여론조사에 나타난 지지층 이반 실태를 면밀히 분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산토끼를 잡기 위해 집토끼를 버리는 ‘우클릭’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일까. 이 방법이 20년 집권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 

“나도 청와대의 그런 정국 인식이 의심스럽다. 만약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3대 실패는 부동산 폭등과 보수대연정으로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한 점, 그리고 한·미 FTA로 진보세력에 등을 돌리고 신자유주의에 빠진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보수언론과 경제관료가 만든 프레임에 빠지고 있다. 그렇게 가선 안 되기 때문에 우리 민중세력이 나선 것이다.”

박 공동대표는 1955년 부산 출신이다. 어머니가 야채행상을 하는 가난한 집안이었지만 그는 ‘천재’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부산고를 나와 1973년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다. 그는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집안을 챙겨야 하는 의무감 때문에 판사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유신헌법을 배워보니 너무 엉망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1974년 반유신·민주화운동인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됐다. 그는 만 스무 살이 안 된 ‘소년범’으로 4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했다.

기소유예로 석방된 그는 대학에 복학해 열심히 공부했다. 그는 1976년 12월 8일 졸업시험까지 치르고 한국은행에 특채까지 됐다. 그러나 그해 12월 박동선 사건(한국 정부가 박동선을 통해 미국 의회와 정부에 거액의 뇌물을 뿌린 사건)이 터졌다. 그를 포함한 법대생 3명이 이 박동선 사건의 진상 공개와 유신 철폐, 긴급조치 해제를 요구했다. 그는 다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고 1979년 10월 만기 출소했다. 곧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는 10·26사태가 터지고 제적생들이 복학하는 ‘서울의 봄’이 왔다. 

1980년 3월 그도 대학에 복학해 복학생대책협의회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전두환의 신군부가 5·18 학살을 일으켰고, 그는 1년여 도피생활 끝에 다시 검거됐다. 게엄령이 끝나 석방된 그는 그나마 1986년 졸업장을 받았다. 그는 1984년부터 조영래 변호사가 운영하던 시민공익법률상담소에서 일했다. 그는 “7~8월 노동자 대투쟁 때 전국을 다니며 노동법 상담을 했다”고 말했다. 89년 권인숙씨가 만든 노동인권회 초대 소장을 하면서 산재피해자 상담활동을 했다. 91년 원진레이온 투쟁이 그 대표적 활동이다. 
 

■그동안 역임한 집행·공동위원장 100여개 

그는 김영삼 정권 때인 1996년 ‘노동법 날치기 저지 범국민대책위’와 ‘올바른 노동법 개정을 위한 공동대책위’ 집행위원장으로 첫 연대모임의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그는 성은 ‘집’이요, 이름은 ‘행위원장’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각종 시국 관련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그가 맡은 집행·공동위원장은 100여개나 됐다. 2007년 한·미 FTA 반대 시위로 구속됐으나 집행유예로, 2008년 광우병대책위 투쟁으로 다시 구속됐다. 2008년부터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를 10년간 했고, 2009년부터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를 지금까지 하고 있다.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로 지난 촛불혁명을 주도했고, 현재 민중공동행동 공동대표로 있다. 

기자가 ‘언제까지 길거리에서 손을 치켜들 것인가, 운동권에서 은퇴할 생각은 없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그는 “나도 시골 가서 아내와 여행을 즐기며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 “민주화가 이뤄지고 노동자·농민들이 잘사는 세상이 되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이 말은 은퇴할 생각이 없다는 말과 같다. 오히려 그는 2019년 새로운 ‘과업’을 추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우클릭을 보면서 결국 민중문제는 민중 자신이 해결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원희복의 인물탐구]민중공동행동 공동대표 박석운 “촛불주역들은 모두 ‘팽’ 당했다”

-민중세력의 정치세력화는 과거에도 추진했지만, 일정한 한계에 부딪친 일이다. 민중·진보세력 내부도 쌓인 앙금이 아직 많아 보인다. 

“알고 있다. 현장 노동자·농민들에게도 허무·패배주의가 팽배해 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민중의 정치세력화다. 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민주빈민연합 등 기층 민중조직이 감동을 만들어야 한다. 2020년 총선을 예상하면 민중당·노동당·녹색당·사회변혁노동자당은 ‘무난한 안락사’가 될 것이다. 정의당은 자기들은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449통(고스톱에서 아슬아슬하게 점수를 못내는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의당은 현 여론지지율로 독자적 원내교섭단체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착각이다. 정의당의 가장 큰 약점은 기층 대중조직이 없다는 것이다. 선거는 기층 대중조직이 돈과 사람과 표를 모아줘야 한다. 돈·표·사람이 결합되면 제1야당, 아니면 확실한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다. 그 기세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민중공동행동의 공식 입장인가. 

“아니다. 개인적 생각이다. 나중에 진보진영에 공식 제안하려 한다. 이 작업은 실제 노동자·농민들이 해야 하고, 우리와 같은 원로들은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미 긴조세대(70년대 긴급조치 학생운동권 세대)는 물리적 나이도 60세 이상으로 운동권에서도 은퇴할 나이다. 하지만 그는 2020년 총선거를 겨냥해 진보진영의 대통합을 도모하고 있다. 그를 보면 마치 통통 튀는 찰고무처럼 단단하고 집요하다. 그는 부산고·서울대 법대 등 소위 일류 고교·대학을 나왔다. 유명한 삼성 장충기 사장도 고교 동문이고, 돈 잘 버는 로펌 대표도 대부분 대학 동문이다. 기자가 “동창회에는 가느냐”는 질문에 그는 “간다”고 대답했다.

기자가 다시 “대기업 임원이나 판·검사로 편안하게 산 동창을 보면 어떤가”라고 아픈 질문을 던졌다. 이에 그는 “동창회에 가면 내가 제일 큰소리를 치고, 친구들은 나의 행동을 존중해 준다”면서 “인생에 후회는 없지만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아쉬움이란 촛불민중항쟁으로 대통령만 바꾸고 나머지 정치권력을 바꾸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2300936011&code=940100#csidx331aaa250e097519ae4f804fe245b0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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