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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볼턴은 1회용…北은 폼페이오팀 받아야"

[정세현의 정세토크] "돌파구는 남북 정상회담, 6월 넘어가면 김정은 힘들어져"
2019.03.06 19:03:45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 배경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일(현지 시각) 본인의 트위터 계정에 "(마이클 코언 청문회가) 북한과 정상회담에서 걸어 나오도록 기여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역시 '몸은 하노이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워싱턴에' 있었던 트럼프 대통령이 코언 청문회를 덮기 위한 카드로 북미 정상회담 결렬을 활용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그는 "트럼프는 코언 청문회를 덮기 위해 예상을 뒤엎는 상황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즉 트럼프 입장에서는 서명을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그러려면 서명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동안 협상을 해왔던 스티븐 비건 특별대표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이 할 수 없으니 난데없이 확대 정상회담에 악역을 맡을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배석시킨 것"이라고 해석했다.  

합의 결렬 이후 볼턴 보좌관이 전면에서 대북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 전 장관은 향후에도 볼턴 보좌관이 큰 역할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정 전 장관은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 4일(현지 시각) 향후 몇 주 안에 평양에 협상팀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협상의 주도권은 여전히 폼페이오가 쥐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볼턴은 (트럼프가) 국내 정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잠시 들여온 1회용일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합의 결렬 이후 북미가 공개한 요구조건을 둘러싼 간극은 쉽게 좁혀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은 중재자가 나서서 빨리 만나라고 이야기하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며 "누군가 북한과 미국 사이를 중재하면서 어르고 달래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할 수 있는 곳은 결국 한국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원포인트'로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가지는 게 좋다. 지금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 답방을 겸해서 남북정상회담을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라며 "우리는 어차피 중재자를 자임하고 있고 북한 속내를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정상회담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 역시 확실하게 비핵화하고 경제적 번영을 이루려면 미국을 움직여야 하는데, 이걸 가능하게 할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우리가 만나자고 하면 북한에서 거절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는 폼페이오의 협상팀을 받아들이라고 권고해야 한다. 폼페이오가 저렇게까지 공개적으로 말을 꺼내놨는데 북한에서 협상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북미 정상회담을 다시 하고 싶어도 미국 내 여론이 나빠져서 상황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폼페이오든 비건이든 평양에 가는 정도의 그림은 북한이 만들어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터뷰는 6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국 결렬됐습니다. 정확한 원인을 따져야 대책과 처방이 나올 것 같은데요.  

정세현 : 사실상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 판을 깬 것으로 봐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문제가 결국 회담을 이렇게 만든 거라고 봅니다. 

회담이 열리고 있던 시기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전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의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이 청문회가 미국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을 보고 트럼프는 상당히 불편했을 겁니다. 앞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앉아있지만 사실상 생각은 워싱턴에 가 있던 것이죠. 

트럼프는 코언 청문회를 어떻게 덮어야 할까에 대해 생각했을 겁니다. 이를 덮기 위해서는 뭔가 예상을 뒤엎는 상황이 벌어졌어야 했죠. 즉 트럼프 입장에서는 북한과 합의문에 서명하고 자랑스럽게 입국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겁니다. 오히려 그렇게 합의할 경우 북미 정상회담이 코언 청문회에 묻혀버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서명을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러려면 서명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동안 협상을 해왔던 스티븐 비건 특별대표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이 할 수가 없으니 난데없이 확대 정상회담에 악역을 맡을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배석시킨 겁니다. 

프레시안 : 정상회담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에 실무 차원에서는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졌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정세현 : 비건 특별대표는 지난 2월 6~8일 평양에 다녀온 뒤 12개의 '소의제'를 확정했고 이걸 어떤 순서로 논의할지에 대해 하노이에서 결정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또 그는 1월 31일(현지 시각) 스탠퍼드 대학 강연을 통해 상응 조치에 대한 언급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미 북미 정상회담 테이블에 올라갈 것들에 대해 많이 이야기해 둔 것이죠. 

2월 28일 회담이 결렬되기 전까지만 해도 양측 분위기는 좋았던 것 같습니다. 27일 친교 만찬 전에 단독 회담을 가진 양 정상의 표정도 좋았고, 특히 트럼프는 이 때 "저희가 (대화했던 내용을) 실제 문서로 작성할 수 있다면 다들 아마 돈 내고 보고 싶어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증폭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8일 확대 정상회담 자리에 볼턴 보좌관이 앉아있었습니다. 그 순간 17년 전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볼턴 보좌관은 제네바 합의를 깬 주역입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악연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번에 또 나오기에 불안했습니다. 볼턴이 나오면 판이 이상하게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볼턴 보좌관은 국무부 비확산 및 군축 담당 차관으로 재직하던 2002년 7월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HEUP)을 가동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한국에 방문한 볼턴 보좌관에게 한국 정부는 어떤 증거가 있냐고 물어봤는데, 볼턴은 증거는 없다면서 북한을 압박하면 증거를 내놓을 거라고 했습니다.  

이후 그해 10월 3일 제임스 켈리 차관보를 특사로 한 미국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합니다. 이들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에게 고강도 알루미늄이 북한에 들어갔다는 송장을 제시하며 HEUP를 운영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물어봅니다. 이에 대해 김계관 부상은 그런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고, 자기들은 제네바 기본 합의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당시 북한 전력 사정으로 봤을 때 전기가 많이 필요한 HEUP를 운영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이 없다고 하는데도 미국의 추궁은 계속됐고, 결국 첫 만남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이튿날 당시 외무부 제1부상인 강석주는 미국 대표단을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은 주권 국가이며 NPT 탈퇴 선언도 했기 때문에 당신들이 문제 삼는 프로그램을 가지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통역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강석주는 "We are entitled to possess such a program and more than that"이라고, 즉 "우리는 그러한 프로그램(HEUP)뿐만 아니라 그것보다 더한 것도 가질 자격이 있다"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통역 과정에서 'are entitled to'(자격이 있다)가 빠진 채 'possess'(보유하다)만 남은 겁니다. 이 때 북한의 통역이 최선희였다고 하는데, 통역이 상당히 거칠었던 것이죠.  

당시 통역을 맡았던 김동현 미국 국무부 선임통역관에 따르면 이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미국 측 대표단이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드디어 북한의 자백을 받아냈다'는 생각이었겠죠.  
 

▲ 2월 28일(현지 시각)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확대 정상회담. 맨 왼쪽에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자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후 10월 19일 평양에서 열린 장관급회담에서 저는 북한에 이 부분에 대해 확실히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지방에 있다고 하면서 대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일단 회담 대표단 5명을 이끌고 김영남을 만나러 갔습니다. 김영남과 독대를 하면서 어떻게 그런 위험 천만한 일을 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김영남은 자신들은 분명 HEUP가 없는데 미국이 자기들을 압박한다고 말했습니다. 자기들은 주권국가고 NPT 탈퇴를 선언했는데 미국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을 우리가 못 가질 이유가 뭐가 있냐고 이야기했다는 겁니다.  

저는 그런 대답 말고 실체적 진실을 말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김영남은 미국이 압박하니까 그런거라면서 기존 대답을 되풀이했습니다. 이후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 영문판은 당시 북측 대표단이 미국 대표단에게 "We are entitled~"(자격이 있다)라고 말했는데 미국은 이를 북한이 HEUP를 보유한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미국은 북한이 HEUP를 돌리고 있다고 자백했는데 무슨 경수로 사업을 하냐며 한국 정부를 압박했고 결국 사업은 중단됐습니다. 이렇게 되자 북한은 핵 활동을 하겠다고 세 게 치고 나갔습니다. 이후 비핵화 과정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죠. 

이번에도 볼턴이 등장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가 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볼턴은 트럼프에게 '빅 딜' 카드를 줬다고 했습니다. 이건 볼턴 입장에서는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대량살상무기(WMD) 폐기 등 북한 비핵화에 대한 조치만 있는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장애물이 너무 높은 것이죠. 아무튼 이번 일로 봉투를 들고 온 볼턴은 위험하다는 것이 밝혀진 셈입니다.  

리용호, '한 가지 더' 발언의 속내는 

프레시안 :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회담이 결렬된 당일 밤 하노이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미국이 영변 핵 시설 폐기와 함께 한 가지를 더 요구했다고 밝혔습니다.  

정세현 : 볼턴은 북한에 최대한의 조치를 요구했을 겁니다. 그런데도 리용호 외무상이 영변과 더불어 한 가지를 더 요구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음번 회담을 위한 포석으로 보입니다. 즉 영변 핵 시설 폐기와 함께 한 가지 정도는 더 할 수 있다는 것이죠. 북한에서 '플러스 알파'의 내용을 너무 상세하게 공개하면 미국도 퇴로가 없어지지 않습니까? 

리용호 외무상의 '한 가지 더'라는 부분은 비건 특별대표와 김혁철 대미특별대표 간 협상에서는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영변 핵 시설의 경우 지난해 평양 정상회담, 10월 폼페이오 장관 방문 등에서 이미 이야기 됐던 사안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상응 조치는 짝을 맞춰 놓았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볼턴이 들어와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대해 줄줄이 쏟아 놓는 바람에 협상의 진전이 어려워졌는데, 리용호 외무상이 이걸 있는 그대로 공개해 버리면 이후 미국의 양보를 받아내기 어려워집니다. 이러한 판단하에 북한은 그 중에 최소한 한 가지는 하겠다는 뜻을 이런 방식으로 나타낸 것으로 보입니다. 상당히 계산된 발언으로 볼 수 있습니다. 
 

▲ 3월 1일 0시(현지 시각)를 조금 넘긴 시각, 멜리아 하노이 호텔에서 리용호(오른쪽) 외무상이 최선희 외무성 부상과 함께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 볼턴 보좌관이 북한의 미사일과 생화학 무기를 이야기한 것은 사실상 북한에 무장해제를 요구한 것 아닌가요? 

정세현 : 앞으로 회담에서 볼턴이 어느 정도 참여하느냐에 따라 북미 간 진도 나가는 것이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단계적으로 할 것을 한꺼번에 쏟아 놓는다고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북한에 그러한 조치를 요구하려면 미국도 거기에 상응하는 것을 내놓아야 합니다. 물론 볼턴 식의 사고로는 그럴 필요가 없이 그냥 북한을 압박하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트럼프가 앞으로도 계속 폼페이오-비건을 통해 북한과 협상을 한다고 하면 이번에 만들어 놓았던 합의문과 리용호 외무상이 넌지시 던진 '한 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추후에 하게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 4일(현지 시각) 향후 몇 주 안에 평양에 협상팀을 보내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건 협상의 주도권을 여전히 폼페이오가 쥐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볼턴은 국내 정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잠시 들여온 1회용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프레시안 : 서방 언론들은 하노이 회담 결렬에 대해 트럼프뿐만 아니라 북한도 비난하고 있습니다.  

정세현 : 협상 중에도 핵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면 '북한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서훈 국정원장이 5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의 복구 움직임이 있다고 보고했다고 하던데요. 지붕과 문짝을 다시 달았다고 합니다. 

서훈 원장은 이미 폐허가 된 것을 폭파하면 홍보효과가 별로 없으니까 번듯하게 갖춰놓고 폭파하기 위해 복구했을 가능성도 있고, 북미 간 회담이 잘 안될 경우 미사일 발사대로 다시 활용하기 위해 복구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지금의 북한이라면 전자의 의도로 동창리를 보수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은 미국에 시그널을 주기 위해 상당히 치밀하게 움직입니다. 지난 1994년 경수로 협상 당시 미국 쪽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평소에는 영변에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데, 영변 지역을 체크하는 위성이 지나갈 때 북한이 영변 굴뚝에 연기를 내보낸다는 겁니다. 자신들은 계속 핵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신호를 미국에 주는 것이죠. 미국에 적극적인 태도를 촉구하기 위한 겁니다.  

또 이번 동창리의 경우 나중에 협상에서 값을 제대로 받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이 미국에 "지금 이렇게 다 시설 갖춰져 있는 것을 우리가 버리는 거니까 제대로 계산해 줘야 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죠. 이러한 교환 가치가 있게 하려면 복구 및 보수 작업을 어느 정도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원포인트' 남북 정상회담이 필요한 때  

프레시안 : 북미 간 대화의 모멘텀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 한국의 역할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중국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사나 남북 정상회담 활용 방안도 나오고 있는데요. 어떻게 해야 북미 간 대화 모멘텀을 살릴 수 있을까요? 

정세현 : 북한은 중재자가 나서서 빨리 만나라고 이야기하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다음번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라도 좀 시간을 끌면서 미적거릴 수 있습니다. 사실 김정은은 시간이 없기 때문에 빨리 나가서 미국과 협상하고 싶을 겁니다. 그런데 대뜸 나갈 수는 없는 상황인 거고요.  

실제 북한의 관영매체들은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고 김정은의 베트남 순방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역시 북한이 그만큼 미국과 회담을 하고 싶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미국과 회담이 잘 안됐다고 이야기하면 북미 정상회담을 또 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결국 누군가 북한과 미국 사이를 중재하면서 어르고 달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할 수 있는 곳은 결국 한국밖에 없습니다. 미국도 중국이 나서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겁니다. 
 

▲ 2월 27일(현지 시각) 메트로폴 호텔에서 열린 친교 만찬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AFP=연합뉴스


프레시안 : 그럼 결국 남북 정상회담이 필요한 걸까요? 

정세현 : '원포인트'로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가지는 게 좋습니다. 지금 김정은이 서울 답방을 겸해서 남북정상회담을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우리는 어차피 중재자를 자임하고 있고 북한 속내를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정상회담이 필요합니다. 북미 정상회담이 어그러진 이유, 미국이 요구한 사항, 리용호 외무상의 기자회견 의도 등을 우리가 정확하게 파악해야 중재를 할 수 있습니다. 

북한 역시 확실하게 비핵화하고 경제적 번영을 이루려면 미국을 움직여야 하는데, 이걸 가능하게 할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 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자고 하면 북한에서 거절할 이유는 없습니다.  

물론 미국도 만나야 합니다. 이도훈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이 미국에 갔다고 하던데 비건 대표 통해서 미국 측 이야기도 들어봐야 합니다.  

미국 입장과 북한의 입장을 적절히 담을 수 있는 중재안을 만든 뒤에 원포인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동의를 받고 그걸 들고 문재인-트럼프 정상회담에서 협상이 가능할지 타진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북한에는 폼페이오의 협상팀을 받아들이라고 권고해야 합니다. 폼페이오가 저렇게까지 공개적으로 말을 꺼내놨는데 북한에서 협상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북미 정상회담을 다시 하고 싶어도 미국 내 여론이 나빠져서 상황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폼페이오든 비건이든 평양에 가는 정도의 그림은 북한이 만들어 줘야 합니다. 

프레시안 :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정부가 NSC 회의를 통해 후속 대책을 논의했는데요. 여기서 북미 간 중재 외에도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가동 재개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굉장히 강하게 드러났습니다. 이걸 보고 한미 간 엇박자 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요. 

정세현 : 사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가동 재개는 다 됐던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김정은이 지난 1월 1일 신년사에 이 대목을 구체적으로 넣었다는 것을 보더라도, 북미 간에 이 사안에 대해서는 물밑 대화로 양해됐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월 19일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금강산이나 개성공단은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남북 철도‧도로 사업과 경제협력 사업 등에서 트럼프가 요구한다면 그 역할을 떠맡을 각오가 돼있다고도 했습니다. 한미 간에도 남북경협이 북미 회담의 불씨를 살리는데 도움이 된다면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이뤄진 것 같습니다. 

결국 문 대통령은 트럼프가 이야기한대로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경협 카드를 활용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6월 넘기면 힘들어진다  

프레시안 : 미국과 북한이 이러한 교착 상태에서 버티기로 들어가면 어느 쪽이 더 힘들어질까요? 

정세현 : 북한이 절대적으로 불리합니다. 김정은은 국가경제발전5개년전략의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지금 외자 유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거 가능하게 하려고 했고 그 답을 하노이에서 찾으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올해 6월을 넘기면 김정은에게는 경제 발전을 위한 해외 투자 유치 기회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계산이 있기 때문에 북한에서 속이 상해도 미국에 대해 험한 말을 쏟아내지 않는 겁니다. 미국을 자극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하노이 현지에서 리용호-최선희의 기자회견 역시 나름의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입니다. 그게 사실 미국을 욕하는게 아니라 도와달라는 거죠. 

김정은이 5일 평양에 돌아왔을 때 평양 시민들이 나와서 엄청 환영해줬는데요. 이 역시 미국에 '다음 번 만남은 잘해보자'라는 신호를 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 5일 새벽 김정은 위원장 일행이 평양에 도착했다. ⓒ로동신문


프레시안 : 북미 간 비핵화에 대한 정의가 달라 이 부분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다음 회담도 어려운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정세현 : 현실적으로 북한도 지금의 비핵화는 일단 자신들의 비핵화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핵무기 없는 한반도'는 다음 단계에 나올 문제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4월 도보다리에서 미국이 불가침을 약속해주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냐고 하지 않았습니까? 거기에 답이 있다고 봅니다.  

북힌이 비핵화하고 평화협정 체결 이야기가 나오면 거기서 미 전략자산 전개 문제를 비롯해 한반도 비핵지대화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프레시안 : 그런가하면 북미 정상회담 이후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가 경질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데요. 

정세현 :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대신 나올 수 있다면서 그러한 관측이 제기되는 것 같은데요. 북한에서 그렇게 쉽게 내치지는 못할 겁니다. 그리고 '개천을 건너고 있는 중간에 말 바꾸지 말라' (Never swap horses crossing a stream)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이제와서 리용호-최선희로 협상 실무자를 바꾸는 것은 그렇게 쉬운 선택은 아닙니다.

프레시안 : 다음번 협상에서는 북미 양측이 단계적-동시적 해결 문제에 합의를 볼 수 있을까요?  

정세현 : 폼페이오가 평양에 협상팀을 보내고 싶다고 했는데 북한이 받아들이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비건 특별대표의 연설을 중요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건 특별대표의 1월 연설 전까지 미국은 비핵화만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비건 대표는 연설에서 북미 관계의 입구로 연락사무소, 평화협정 문제의 입구로 종전선언을 언급했습니다. 이건 기존 미국의 태도와는 다른 겁니다.  

즉 이는 미국 정부가 비핵화를 위해 북한의 체재 안전 보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드디어 이를 실천으로 옮기기 시작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전 미국 정부의 북핵 문제 접근 방법인 선비핵화가 아니라 동시적-단계적 해결로 간다는 철학이 정립됐다고 생각됩니다. 이건 북한이 지난 25년 동안 주장했던 해법이기도 합니다. 

 

이재호 기자 jh1128@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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