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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보법 위반 옥살이’에도 포기할 수 없는 IT사업가의 꿈

김지현 기자 kimjh@vop.co.kr
발행 2019-04-21 21:00:48
수정 2019-04-21 23:3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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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IT사업가 김호씨를 지난 18일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IT사업가 김호씨를 지난 18일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민중의소리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국가보안법이 말이 되느냐! 지금이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아니고!”

지난해 8월 9일 이른 아침. 가족들이 아직 단잠에서 깨지 않은 그의 보금자리에 공안경찰이 들이닥쳤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하겠다는 황당한 이야기에 김호씨는 이같이 말하며 강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이내 공무집행 방해로 수갑을 채우겠다는 경고에 차마 아이들 앞에서 수갑을 찰 수 없던 아버지는 경찰을 따라나섰다. 

당시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민족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고, 4.27 판문점 선언까지 성공적으로 치러진 이후다. 사람들이 모이면 ‘이러다 정말 통일되는 것 아니야?’라는 식의 대화가 기분 좋게 오가던 때였다. 

남북 평화 분위기 속에서 오래전부터 이어온 대북사업이 드디어 빛을 보겠구나 희망을 품은 그에게 국가보안법은 생각지도 못한 청천벽력이었다. 국가보안법은 그렇게 김씨의 보금자리로 쳐들어왔고, 남북교류협력 사업의 새로운 길을 제시해보겠다는 꿈을 무너뜨렸다.

갑자기, 국가보안법이라니! 

“낭떠러지로 떨어진 줄 알았어요. 제 희망이 짓밟혔어요. 울분이 가득 했습니다. 화가 너무 났어요. 독방에 있으면서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북한 건강식품 판매를 시작으로 2002년 일찍이 남북경제협력 사업에 뛰어든 그는, 2010년 5.24 대북 제재조치로 사업이 불가능해지자 IT사업으로 눈길을 돌렸다. 중국법인을 통해 북한 개발팀에 얼굴인식 프로그램 하청을 맡기는 제3자 무역 방식이었다. 간접적으로 북한과 접촉하기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검찰은 양모씨 등 중국 중개인들을 구체적 근거도 없이 ‘북한 공작원’으로 지목하고, 김씨가 과거 학생 운동을 한 전력이 있다는 내용 등을 적어 공소장을 완성시켰다. 김씨가 ‘북한’이라는 존재를 숨긴 채 사업을 했고, 그 과정에서 북한의 ‘지령’에 따랐다는 것이다.

김씨는 인터뷰 과정에서 이 같은 검찰 주장에 반하는 서류를 공개했다. 2006년부터 2012년 까지 매년 통일부에 제출했던 대북 사업 계획서, 사업 내용 등이 담긴 접촉신고서였다. 검찰이 ‘존재를 숨겼다’고 주장한 양씨의 이름이 기재돼있었다. 

그는 양씨에 대해 “숨길 이유가 없다”며 “그의 정체성은 조선족, 중국국민이다. 사업을 위해 소개받은 수많은 중국 중개인 중 하나였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검찰은 김씨 회사의 얼굴인식 기술 프로그램이 ‘악성 프로그램’이라며 ‘파일삭제’, ‘화면캡처’ 기능 등을 위험 요소로 꼽았다. 이러한 악성 프로그램이 북한의 목적에 따라 국내 주요 기관의 컴퓨터에 접속해 핵심 정보를 삭제하거나 빼내가는 등의 사이버 테러에 이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얼굴인식 프로그램으로서 ‘파일삭제’는 정상적‧필수적인 기능이다. 행정안전부 가이드라인에는 수집된 개인 영상정보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삭제하도록 돼있다. 영상 파일 속에서 얼굴을 인식해내기 위한 화면캡처 기능 또한 마찬가지다. 

검찰의 주장은 IT기술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경우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다. 김씨는 “기술에 대해 잘 모르는 대중들에게 근거 없는 공포감을 조성하려 하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말에 변론해야 한다.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재판 초기 검찰은 이 같은 논리를 펼치며, 김씨의 회사가 납품한 얼굴 인식기술 프로그램에 ‘악성코드’가 심어져있다고 주장했다. 디지털포렌식, 증인신문 등을 통해 이를 입증하려 했다.

그러나 별다른 악성코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검찰이 진행한 디지털포렌식 결과를 통해서도 사이버테러로 볼 수 있는 파일 등은 추적된 바 없다. 

또한 검찰이 법정에 불러 세운 다수의 거래처 업체 직원들은 하나같이 “바이러스 피해 사례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실제 한 증인은 재판장이 김씨 측이 보낸 이메일에 첨부된 파일에 바이러스가 심어져있었느냐고 묻자 “초등학생도 아니고 그런 멍청한 짓을 왜 하느냐”고 반문했다. 상식적으로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족적이 뻔히 남는 이메일이 아니라, 직접 만나서 USB 등을 통해 건넸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법원 자료사진
법원 자료사진ⓒ민중의소리

‘위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있는 국보법 

최근 검찰은 기존의 주장을 바꿨다. ‘현재로서 사이버 테러라는 결과가 일어난 적은 없었지만, 앞으로 그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김씨 업체가 실제 사이버테러를 벌인 적이 없고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 사업 자체가 지닌 사이버테러 ‘위험성’ 자체로 국보법 혐의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악성코드의 존재 등 사이버테러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검찰, 김씨는 ‘입증을 못하니, 갑자기 위험 가능성을 강조하기로 전략을 바꾼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든다고 했다.

김씨는 “위험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 그런 말장난을 검찰이 재판에서 하고 있다”고 격분했다.

검찰은 최근 재판부에 김씨에게 적용한 혐의인 ‘국가보안법 위반 상 군사상 기밀’은 “반국가단체에 대하여 비밀로 하거나 확인되지 아니함이 대한민국의 이익이 되는 사실, 물건 또는 지식 등 ‘모든 정보자료’를 의미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그러면서 “군사기밀보호법상 ‘군사기밀’과 구별되는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군사기밀보호법상 ‘군사기밀’은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아니한 것으로서 그 내용이 누설되면 국가안전보장에 명백한 위험이 따르는 정보를 뜻한다. 

김씨는 “이걸 보고 사건의 실체를 더 명확히 알게 됐다”며 “도대체 ‘모든 정보자료’라는 게 뭐냐. 이얼령 비얼령,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뭐든지 마음대로 ‘위험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된다. 그런 가능성 자체로 처벌하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건 그냥 괴롭히는 거다. 결과적으로 북한과 사업을 하는 자체로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인데, 지금과 같은 평화 시대에 너무 부당한 처사다”고 울분을 토했다.

7일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떠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내외와 문재인 대통령내외가 환송행사에서 참석자들에게 박수를 받고 있다.
7일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떠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내외와 문재인 대통령내외가 환송행사에서 참석자들에게 박수를 받고 있다.ⓒ2018남북정상회담 공동사진기자단

검찰은 왜 나를 가뒀나? 

그는 요즘 들어 ‘대북사업을 하는 다른 큰 회사들도 많은데 왜 나 같은 피라미를 가뒀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한다. 김씨는 고민 끝에 ‘내가 운동권 출신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기소하진 못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영장을 보면 제가 학생 운동권 출신이라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옵니다. 실질적으로 제 경력을 가지고 대중의 반북정서를 자극해 공포를 심어준 것이 아닌가요. 제 얼굴인식 기술 프로그램은 아직 판매가 된 것도 아니었고 개발과 투자가 더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운동권 출신이 아니었다면 이정도의 경제 교류를 가지고 문제 삼을 수 있었을까요. 검찰이 기소하자마자, 보수매체에서는 즉시 ‘운동권 출신 대북 사업가’라고 보도했습니다.” 

지난 설 명절을 앞두고 보석 석방된 그는 수감됐던 6개월 간 상당한 고객들과의 계약이 무산돼 사업을 새롭게 일궈야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김씨에 따르면 그의 사업이 ‘국보법 위반’으로 지목되면서, 그의 사업체 외에도 남북협력으로 진행됐던 IT사업 전반이 타격을 입고 위축된 상황이다. 김씨 회사와 같이 중국법인을 통해 북한 기술자들에게 프로그램 기술 개발 하청을 주는 사업구조는 국내 IT 업계에서 알음알음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는 “북한의 기술력도 좋고, 이 분야 자체가 경쟁력이 있다 보니 대북사업 중 IT사업이 가장 성과가 좋다. 그런데 제 사건 이후 이 분야가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며 “애니메이션 제작, 아이콘 디자인 사업 등 북한 하청으로 큰 수익을 냈던 과거 성공경험이 있는 업체들은 노하우도 있는 만큼 이런 사업을 다시 하고 싶어 하지만 제 사건이 터진 이후 겁을 먹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죄’보다도 제가 더 바라는 것은...” 

“가장 화가 나는 것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남북 화해모드가 조성돼가는 과정에서, 제 사업과 같은 모범사례를 악의적으로 사장시키려 했다는 겁니다.” 

김씨는 자신 있게 그의 사업을 ‘모범사례’로 꼽았다. 

“사실 저희 얼굴인식 사업은 저를 구속하지 않아도 힘들었습니다. 앞서나갔던 분야였고, 저희가 국내 유일 사업체였으니까요. 저는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남북 경제협력의 정형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사업을 꼭 성공시켜서 그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남북 화해의 상징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사명감도 있었습니다. 오랜 개발 과정에서 사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웠지만 그래서 버텨올 수 있었는데….” 

그는 북한의 프로그램 개발 알고리즘의 경쟁력이 굉장히 좋다고 평가했다. 기술력과 개발자들의 근면성실함이 수준급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북한의 노동력이 값싸다고는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북한에 사람이 많으면 얼마나 많은가. 결국은 최첨단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사업가적 관점에서의 의견을 밝혔다. 

김호씨는 남북 경제 관계에서 미국 달러에 의존하지 않도록 가상화폐 형식의 특수목적 화폐를 마련하는 사업을 구상해 진행하고 있다. 최근 산업은행에서 사업설명회를 가졌다.
김호씨는 남북 경제 관계에서 미국 달러에 의존하지 않도록 가상화폐 형식의 특수목적 화폐를 마련하는 사업을 구상해 진행하고 있다. 최근 산업은행에서 사업설명회를 가졌다.ⓒ김호 제공

김씨는 한 차례 좌절을 겪었지만, 다시 사업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을 다하고 있다. 고객을 많이 잃고 위축된 얼굴인식프로그램 사업에 매진하는 것 외에도 또 다른 사업을 구축해나가는 일로 바쁘다. 건축업과 인공지능을 연결하는 사업, 남북 경제 관계에서 미국 달러에 의존하지 않도록 가상화폐 형식의 특수목적 화폐를 마련하는 사업 등을 구상하고 진행 중에 있다고 한다.

그는 “상황 탓만 해서는 안 된다. 이 시련의 의미가 뭘까 고민해보자. 그런 생각 끝에 다시 일어났다. 솔직히 스티브 잡스같은 대단한 혁명가는 아니지만, 길을 만드는 사람과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길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씨는 마지막으로 “재판에 최선을 다해 임하겠다”면서도 자신의 ‘무죄’를 크게 바라고 있지 않는다고 했다. 

“저의 유무죄를 떠나서 이번 기회에 남북 정상회담과 공존할 수 없는 국보법의 문제점이 공론화됐으면 합니다. 이런 정상적인 남북교류 협력 사업조차 ‘이적’이라며 처벌하려는 공안검찰의 모순이 알려져 오히려 국보법 폐지 및 수정으로 이어지는 것이 제가 바라는 바입니다.”

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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