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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물신이 된 돈, 언론, 권력

[세상읽기]물신이 된 돈, 언론, 권력

강수돌 고려대학교 융합경영학부 교수
 

입력 : 2019.10.12 06:00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향신문 자료사진

 

“신안리 아파트, 주민 불만 해소되어 계획대로 진행…” 2005년 6월경, 한 지역신문 1면 톱기사였다. 당시 나는 마을 이장으로 주민들과 함께 그간 물밑에서 진행하던 불법 아파트 사업을 막고 마을공동체 수호를 위해 투쟁 중이었다.

그런데 지역언론 ○○신문은 그 불법적인 1000가구 아파트 사업에 대한 모든 주민 저항이 끝나 순항한다고 보도했다. 그 기사를 본 나와 공동대책위원 15명은 ○○신문사로 달려갔다.

[세상읽기]물신이 된 돈, 언론, 권력

신문사를 불태우고 싶었다. 사장더러 “즉각 해명하라!”라고 외쳤으나 나타나지 않았다. 알고 보니 당시 군수와 그 사장은 사실상 공동 소유주였고, 군수 측은 ○○신문에 정기적으로 광고비조로 돈을 주고 있었다. 돈과 가짜뉴스, 언론 조작이 한 덩치였다.

“이제 주민들께 약속합니다. 군수 의견을 묻는다면, 신안리 아파트 사업은 하지 않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나와 50여 주민 모두 귀를 의심했다. 2005년 7월이었다. 허위민원서에 기초해 전 이장, 건설사, 공무원 간 유착이 드러나고 그에 따른 토지용도 불법 변경이 드러났음에도 아파트 사업이 착착 진행되자 나와 주민들이 격분해 손팻말과 머리띠 등을 두르고 군수와 담판 짓고자 몰려간 자리였다.

머리 허연 어르신들과 부녀회 여성들이 군수를 호되게 꾸짖고 내가 허위민원서와 도장들을 군수 앞에 보이며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따지자 겁을 잔뜩 먹은 군수가 항복했다.

마침 다른 언론 소속이지만 그나마 내가 믿던 기자도 그 현장에 있었다. 나는 당장 다음날 그 신문 1면에 “신안리 아파트, 군수가 원점 재검토” 내지 “신안리 아파트, 원천 무효”가 뜰 걸로 기대했다. 그러나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아무 말이 없었다. 배신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 돈, 권력, 언론은 한 덩어리였고, 침묵으로 배신했다.

그렇게 당할 수만은 없었다. 어렵게 소개받은 고교 선배 부장검사를 찾았다. 개인 면담에서 이 불법 아파트 사업의 전모를 밝히고, 불법에 연루된 모두를 철저히 잡아 정의를 바로 세우자고 제안했다. 내 나름 모은 증거 자료나 투쟁 경과도 설명했다.

그러나 그 부장검사는 처음부터 안색이 좋지 않았고 내 설명도 경청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불쾌한 기분을 드러냈다. “정말 이해가 안되는데, 강 교수는 시간이 있으면 논문이나 하나 더 쓰지, 뭐하러 이런 일에 뛰어드나, 거 참!”

귀를 의심했다. 이게 내가 믿고 찾아온 선배 맞나? 법과 정의를 바로 세우리라 믿었는데, 이게 말인가 고구만가? 속에서 들끓는 분함과 억울함의 눈물을 참으며 검찰청을 나왔다. 검찰한테 받은 트라우마에 몹시 우울하던 나를 ‘위로’한 건 한참 뒤의 뉴스였다. “모 검사가 대형 건설사 법인카드를 갖고 다니며 맘대로 쓰다 걸렸다”는 내용. 이 황당 뉴스가 나를 위로하다니,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일이었다. 결국 그 검사가 나를 모욕주기로 배신한 것 역시, 언론의 조작과 침묵에도 드러났듯, 돈·권력 물신주의(物神主義)의 산물이었다. 그런데 이 모두 과거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 아닌가!

물신주의는 사람이 만든 대상물에 권위와 권력을 부여, 신성시하고 숭배하는 풍조다. 상품, 노동, 화폐, 자본, 국가, 선거, 권력, 시장, 경쟁, 국기, 종교, 상장, 학력, 숫자 등이 모두 물신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아니 온 세상이 물신주의에 젖었다.

이 물신사회는 언론이나 검찰, 대학이나 국회, 종교나 정당 등을 가리지 않고 조작과 침묵, 부정과 모욕, 부패와 협잡을 마치 정상처럼 행한다. 비정상이 정상이 되고, 정상이 비정상이 되는 것, 이게 물신 중독 사회다. 만일 누군가 ‘아니요!’라 외치면 그 순간 왕따가 되거나 비정상 취급된다. 그 역사가 무려 백년이 넘는다. 그러니 할 일이 많다!

이제 ‘촛불’은 한편으로 기억의 촛불이다. 잃어버린 역사(근본 대안의 투쟁), 잊어버린 역사(패배와 좌절의 경험)를 기억하는 것이다. 또 촛불은 다른 편으로 연대를 상징한다. 자본과 권력이 암암리에 우리에게 강요한 경쟁과 분열, 공포와 불안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이다.

그래서 촛불은 기억과 연대다. 누구나 광장으로 나올 자유는 있지만, 진정 해방을 외치려면 스스로 자유로워야 한다. 조작이나 기만, 분노와 증오, 탐욕과 질투로부터의 자유! 광장민주주의는 이 자유인들이 기억의 연대를 통해 더 자유로워지면서 자기기만과 두려움을 이겨내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검찰개혁을 넘어 언론개혁, 교육개혁, 노동개혁, 경제개혁, 사회개혁으로 향한다.

우공이산(愚公移山)처럼, 당대에 안되면 대를 이어가며 할 일이다. 동학혁명 이후 100년 넘게 권력과 자본이 만든 적폐와 물신의 중독시스템을 혁파하는 일, 결코 간단치 않다.

신발 끈, 단단히 맬 일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0120600035&code=990100#csidxd9543b5846b282a8296fbd09be179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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