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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과 SR '황당한' 경쟁, 국토부는 뭐하나?

[기고] 비용 절감 아닌 추가비용 발생하는 두 철도 회사의 경쟁

 

 

 

세상에는 웃기는 일이 웃기지도 않게 벌어지는 일이 허다하다. 내가 오랜 시간 관심을 기울였던 철도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국민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박근혜 정권이 출범한 첫해인 2013년, 국토부는 대통령의 꿈을 앞장서 실현하겠다고 다짐 했는지 철도 경쟁체제란 것을 밀어 붙였다. 날치기 수준의 이사회 의결이 이루어졌고 새로운 회사 설립 절차가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양승태 체제의 법원은 국토부의 손을 들어줬다. 이 같은 행위가 대통령님을 위해서였다는 법원의 자화자찬은 대통령 베프('베스트프렌드'의 줄임말)의 말 타는 딸이 일으킨 날개 짓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철도노조는 파업에 들어갔고 노조위원장이 서울시 중구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 은신해 있다는 정보가 경찰에 입수됐다. 번개처럼 발급된 체포 영장을 든 경찰은 위세를 과시하려는 듯 수 천 명의 동료들을 동원했다. 피해는 애꿎은 신문사가 봤다. 경향신문 건물에 입주해 있는 민주노총 때문이다. 위원장 체포를 막는다며 건물 출입문을 막아선 철도노조원과 시민들에 맞선 경찰이 해머를 빼들었다. 현관 대형 유리창이 산산 조각나고 연행과 수색과정에서 사무실 여러 곳이 초토화됐다. 이런 활극 속에서도 경찰은 아쉽게 철도노조 위원장을 찾아내지 못했다.  

어쨌든 국토부의 경쟁체제 정책은 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SR)라는 옥동자를 낳았다. SR출범식과 개통식에선 페인트 색과 로고만 다른 열차를 앞에 두고 흰 장갑을 낀 사람들은 넉넉한 미소로 철도의 새 시대를 열었다며 서로 축하하고 격려했다. 이제 한국철도는 발전할 일만 남은 것 같았다. 적자도 금방 벗어 던지고 서비스도 좋아지고 국민행복시대로 달릴 것 같은 환상이 생겼다.  

사소한 잡음도 있었다. 2017년 3월에는 국토부 교통물류실장이 퇴임 2주 만에 SR 2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SR 출범 전 국토부 고위직 일자리 창출 용 아니냐는 세간의 비판은 가볍게 무시됐다. 또 이 와중에 회사 중견 간부와 노조위원장까지 가담한 취업비리로 33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해직되거나 퇴직했다. 개통 초기 차량 떨림 현상으로 승객 불안이 커졌지만 이와 관련된 기관들은 서로 상대방에 책임이 있다고 떠넘겼다. 철도공사와 시설공단, SR 중에 누가 이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는지 옥신각신 했다.

조금 더 심각한 문제도 있다. SRT는 수서에서 지제역까지 달리는 동안 지하터널 52.3킬로미터를 달린다. 한국에서 제일 긴 터널이다. 그 깊이도 대심도라고 부르는 지하 50미터를 자랑한다. 그런데 설계가 미흡했는지 개통을 서둘렀는지 몰라도 비상시 차량이 들어갈 수 있는 소방 통로가 한 개 뿐이다. 지진에 취약한 활성단층대를 통과하고 있음에도 외부로 탈출할 수 있는 수직 대피로는 16곳뿐이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수직 대피로에서 신속하게 승객을 대피 시킬 수 있는 비상용 고속 엘리베이터는 거의 고장 나 있다. 화재가 발생하거나 사고가 일어나 승객 대피 상황이 생기면 16군데 중 한곳의 대피로가 가까이 있는 운 좋은 승객들은 지하 50미터에서 계단을 타고 죽을힘을 다해 달려야 한다. 사건사고는 절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지 한국터널지하공간 학회는 율현터널 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며 철도시설공단에 올해 초대형터널프로젝트 부분 대상을 수여했다.

이제 진짜 웃기는 일이다. 원래 수서고속선은 철도공사가 운영을 맡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4대강 공사도 마무리 하고 무엇인가 새로운 길을 찾던 이명박 정권은 수서 고속선에 민영회사를 만드는 방법을 구상했다. 기존 고속선에서 분기한 60여 킬로미터의 인프라를 빌미로 번듯한 철도 회사 하나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럴듯한 논리를 원하면 언제든 제공해주는 연구자들과 학자들이 동원됐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가 조금만 더 길었으면 민영 고속철도 회사를 볼 수 있었겠지만 박근혜 정권이 들어섰다. 민영화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거세자 수서민영고속철도의 변형 버전인 공적자금 유치형 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SR)이 출범했다. 그 결과는? 

통합해서 운영하면 발생하지 않을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중의 예를 하나 들면, 코레일이 대신해 SR의 승차권을 판매해 준 대가로 2016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SR이 지출한 수수료가 17억이 넘는다. 반대로 SR이 KTX 승차권을 발매해 코레일로부터 받은 수수료는 2억 6500여 만 원이다. 경쟁체제 효율성으로 비용절감을 이루겠다던 국토부의 호언장담과 달리 현실에서는 굳이 발생하지 않을 돈이 공중을 떠다니고 있다.

하지만 이정도 비용은 꼬리에 불과하다. SR이 코레일에 제공하는 철도차량임차비, 교육훈련비, 파견직원 인건비, 차량정비비, SR정보시스템 개발비, 위수탁비 등의 출범이후 누적비용이 3875억에 이른다. 경쟁체제란 상호 거액의 거래비용을 발생시키면서 책임은 떠넘기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국토부는 SR을 출범시키면서 경쟁체제가 건설부분의 비용을 더 절감 시킬 수 있다고 자랑했다. 국토부는 코레일이 정부를 대행하는 철도 시설공단에 납부하는 시설 사용료를 고속철도 운송수익 기준 34%를 부과하고 있는데 SR은 운영의 효율성을 고려하여 50%로 부과한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SR은 차량중정비 비용 증가, 코레일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시설사용료 인하를 주장하고 있다. 신설 기관의 이해관계가 관리 부처와 충돌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국토부와 철도시설공단, 철도공사. SR의 갈등과 대립은 점점 더 깊어 질 것이다. 모든 기관이 나름의 이유를 들어 자기 이익을 관철 시키려하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드는 궁금 점은 하나다. 이런 웃기는 체제를 굳은 신념으로 만들고 지키려는 사람들이 믿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것이다. 세계 최초로 철도를 개척한 선구자로 불리는 조지 스티븐슨이 주는 교훈으로 글을 마친다. 철도에서의 경쟁은 황당한 일이다. 철도의 힘은 조화와 협력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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