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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워킹그룹, 해체할 수 없다면

[황재옥의 '한반도 톡'] 남북관계 발목잡을 수 없도록 '대수술' 해야

잠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나니 '폭파' 라는 과격함 뒤에 가려진 북한의 간절함이 보였다. 김정은, 김여정 남매가 역할을 분담하고, '친절히' 사전 예고까지 해 가면서 극적인 폭파 장면을 연출했지만, 그건 우리 쪽에 보내는 간절한 SOS였다.

 

지난 16일 국제신용평가사 '피치솔루션스'는 북한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6%로 전망했다, -6.5%을 기록한 1997년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김정은은 8일 노동당 정치국회의에서 '평양시민의 생활보장'을 언급했다. '보류' 결정 이후 대남 비난기사가 사라진 노동신문 지면은 평양시민의 생활 고충을 헤아리는 기사들로 채워졌다. 제재 장기화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핵심계층이 모여 사는 평양까지 확대된 것 같다.


 

대북 제재에 코로나까지 덮친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던 북한이 그 분풀이를 '한반도 중재자' 역할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 비핵화와 남북협력을 논의하는 한미 워킹그룹으로 돌렸다. 이번 북한의 '악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빠져 있었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와 대미굴종적인 자세 때문에 남북협력이 속도를 내지 못한다고 비난했다. 마침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 덕분에 우리가 북한에 구차한 설명을 할 필요는 없게 됐다. 회고록에 따르면, 북미회담이 실패로 끝나기를 바라는 이들의 훼방을 무릅쓰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 문재인 대통령의 일화도 담겨있기 때문이다.


 

노력을 안 한 것이 아니었다. '비핵화 전에 대북제재 완화는 없다'는 미국과 비핵화 및 제재 완화의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뿐이다. 북한도 우리의 노력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이번 일은 한미워킹그룹이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얼마나 효율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


 

한미 워킹그룹의 탄생 배경은 이렇다. 2018년 9.19 평양선언과 군사분야합의서가 나온 후, 10월 10일 남북의 유화모드에 화들짝 놀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불편한 심기를 전했다. 이후 28일 스티븐 비건 당시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나 한미 워킹그룹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고, 11월 20일 미국은 일방적으로 한미 워킹그룹의 출범을 발표했다.


 

한미 워킹그룹이 남북관계 개선의 족쇄가 된 근본 원인은, 미국 앞에만 서면 자꾸 작아지는 우리나라 외교관들의 대미관, 대미자세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미 워킹그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해체론까지 나오는 상황이 되니 외교부는 한미 워킹그룹의 순기능을 강조하고 나서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결과로 봤을 때 똑 떨어지는 순기능이 과연 있었나 싶다.


 

시간이 갈수록 한미 워킹그룹은 대북 제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자산 점검 차원의 방북도 불허했고, 운반용 트럭이 제재 대상이라면서 독감약인 타미플루의 대북 지원도 금지했다.

 

그동안 득보다 실이 많았고, 순기능보다 남북관계 개선에 역기능이 많았다면 이런 협의체는 적어도 우리에겐 없느니만 못하다. 미국은 갑이고 우리는 을일 수밖에 없다는 민족패배주의를 걷어내지 않으면 수석대표를 장관급으로 격상시키고 운영방식을 비공개에서 공개로 바꾼다 할지라도 한미 워킹그룹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 발목 잡기는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반대로 워킹그룹을 당장 해체할 수 없다면, 그리고 해체시 한미관계를 걱정한다면, 해체에 준하는 대수술을 해야 한다. 적어도 남북관계가 의제일 때는 통일부 차관이나 차관급 공무원이 수석대표가 되도록 운영하고, 안보문제는 국방부 차관이나 차관급 수석대표가 참여하는 것이다. 남북관계 당사자인 우리 정부 실무자가 분야별로 적극적으로 나서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다. 우리의 국익에 입각해서 우리 정부의 입장과 정책에 협조하도록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운영방식이라면 해체 아닌 대수술을 통해 자율성과 전문성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2인용 자전거론으로 한미 워킹그룹의 순기능을 설명했다. 2인용 자전거는 앞자리에 앉아 핸들을 잡고 있는 사람 마음대로 가는 것이지 뒷자리에 앉아 열심히 페달을 밟는 사람은 자기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갈 수 없다. '2인용 자전거론'은 틀렸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63010055319982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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