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이 공정과 미투의 기치를 들고나온다. 그리고 부동산값 폭등을 공격한다. 심지어 미래통합당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지난 4·15총선 참패 이후 경제 민주화의 상징인 김종인이 보수 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정강·정책 개혁 초안에 놀랍게도 민주화 정신, 공정과 정의, 사회적 약자와의 동행, 노동의 존중과 노동자의 권리 등이 담겼다.
보수 야당도 진보의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진보 담론의 독점이 사라져 정체성의 위협을 받는 정의당의 행보가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하다. '합선'처럼 정의당과 미래통합당이 조우하기도 한다. 묘한 반대의 일치이다. 정의당의 탈당 러시는 이러한 혼란에 대한 반작용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의 주류가 교체되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이념 지형이 변하고 있다는 간접증거들이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지난해 떠들썩했던 이른바 '조국 사태'다. 검찰과 언론이 앞장서 여권에 가하는 총체적 반격으로 시작되었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촛불 시민 중심으로 도리어 여권의 결집이 단단해졌다. 올해 초 검찰 개혁과 코로나19 방역 성공에 힘입어 총선 압승으로 이어졌다. 180석을 차지한 거대 여당이 탄생했다.
하지만 교체의 여진(餘震)은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과거를 그리워하는 보수 언론이 보수적 이념과 정책이 아닌 진보적 가치들을 내세워 현 여권의 아픈 곳을 찌르고 있다. 그럴수록 보수는 점점 더 위기로 몰리고 더욱더 그 세력이 축소될 것이다.
그토록 간절히 공정을 외치고 싶으면
지난 6월 보수 언론이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정규직 전환에 대해 일부 공무원 시험 준비생(공시생)들의 울분과 분노를 전하며 여권을 날카롭게 공격했다. 이들이 내세우는 공정 프레임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공시생의 노력을 무시하는 불공정의 대표적 사례이다.
과거제와 고시 제도는 일종의 능력주의 신화에 기대고 있다. 능력주의도 불평등을 제도로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원래 능력은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운, 부모의 능력과 역할, 사회적 조건 등의 다양한 요소에 따라 불평등하게 각 사람에게 주어지고 키워진다. 쌍둥이마저 능력이 다른 것을 보면 우연적 요인들이 능력을 좌우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신분제를 비판하는 이유는 혈연이라는 대단히 우연적인 요소에 근거를 두기 때문이다.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느냐가 제일 중요한 분배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런 부당함 때문에 신분제는 폐지되었다.
그런데 현대의 평등 사회에서도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있다는 것은 여전히 출생이 능력 발휘에 큰 역할을 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교육에 의한 능력주의는 엘리트 대물림의 새로운 포장지인 것이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은 인국공 정규직 전환을 공시생의 노력과 능력을 무시하는 불공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들이 외치는 공정 프레임은 능력주의라는 불평등의 제도화에 기초를 두고 있다. 더군다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새로운 형태의 신분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토록 간절히 공정을 외치고 싶으면 먼저 비정규직 차별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들만의 공정, 즉 엘리트끼리의 공정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말이다. 이렇게 보수의 진보 흉내 내기는 진정성이 없는 정략적 차원에 불과하다.
보수의 끝없는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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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11월 28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 남소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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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언론의 앵무새 놀이는 주류 교체에 직면한 보수 위기의 반영이다. 점점 쪼그라들고 있는 자신들의 영역에 놀라 극심하게 새로운 주류로 부상하고 있는 세력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런 초조함은 채널A 검언유착 사건에 잘 나타난다. 정치검찰과 받아쓰기 언론이 검찰개혁에 놀라 성급히 대응하다 스스로 덫에 빠지고 말았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한 불공정 프레임은 재판 진행과 더불어 도리어 기존 언론의 불공정성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은 오히려 부동산 이익집단들을 위협할 보유세 강화 및 공공주택공급 등의 개혁 정책으로 실현될 것이다.
보수 언론이 진보 언어를 흉내내 떠들수록 점점 개혁 대상으로 전락하여 자신을 옥죄는 형국이다. 스스로 덫에 빠졌다. 과거 진보가 보수를 모방하다 덫에 걸려 정권을 넘겨줬듯이 말이다. 최장집 교수가 말한 진보의 위기가 아니다. 주류 교체에 직면한 보수의 위기이다.
최장집 교수가 외치듯이 양당 정치 위주의 간접 민주주의의 위기가 아니다. 촛불 시민에 의해 촉발된 정치 민주화가 경제 민주화로 나아가 사회 민주화로 나아가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촛불 민주주의는 극우적 포퓰리즘이 아니다. 다중의 민주주의이다.
검찰개혁도, 언론개혁도, 부동산 정책 개혁도, 사학 개혁도, 다중 민주주의가 보수 기득권 동맹 세력의 반동적 흐름을 막고 정부와 여권에 힘을 실어준 결과로 진행되고 있다. 개혁이 더디고 정책적 실수도 있지만, 주류 교체와 개혁의 물결은 도도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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