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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조선일보 둘째 아들 회사, 싱가포르에 60억원...‘수상한’ 대여

페이퍼컴퍼니 의심되는 싱가포르 현지 법인에 60억원 대여한 하이그라운드, 전문가들 “법인 설립 목적 불분명, 조사 필요”

홍민철 기자 plusjr0512@vop.co.kr
발행 2020-08-11 19:41:46
수정 2020-08-11 20: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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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방상훈 회장 둘째 아들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가 최대 주주로 있는 드라마 제작사에서 해외로 흘러 들어간 60억원이 어디에 쓰였는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선 “회사 자금을 해외로 빼돌려 총수 일가 입맛대로 투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11일 <민중의소리>가 취재한 내용을 종합하면,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 드라마 제작사 하이그라운드가 지난해 60억원을 빌려준 싱가포르 현지 법인은 서류 상에만 존재하는 페이퍼컴퍼니일 가능성이 크다.

싱가포르 하이그라운드 법인 등록문서
싱가포르 하이그라운드 법인 등록문서ⓒ출처 : ACRA

싱가포르 기업회계관리청(ACRA)에 따르면 돈을 빌려 간 회사 ‘HIGRIOND PTE.LTD.(싱가포르 현지법인)’는 지난해 4월 19일 설립됐다. 회사 주식은 100% 한국 하이그라운드가 소유하고 있으며 정모(48) TV조선 드라마 제작 팀장이 현지 법인 대표자로 이름을 올렸다.

법인 주소는 싱가포르 남동지구 중심지인 파야레바로드의 한 대형 빌딩 8층으로 등록됐다. 확인 결과, 주소지에는 싱가포르 하이그라운드 사무실이 없었다. 대신 현지에서 법인 설립과 회계·감사를 대행하는 T컨설팅업체가 상주해 있었다.

싱가포르 한 재계 관계자는 “싱가포르는 법인세가 낮고 규제가 적어 여러 나라에서 법인을 세운다. 그중 상당수가 페이퍼컴퍼니”라며 “하이그라운드 주소에 있는 컨설팅 업체가 그런 법인을 만들고 관리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T컨설팅업체는 세금계산, 회계감사·보증, 매출 관리, 재무제표 작성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 T업체 홈페이지에는 “필요한 경우 싱가포르에 실제 사무실이 없는 고객을 위해 주소지 제공, 상주 이사 및 비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적혀 있다.

T 업체 주소지에는 하이그라운드 이외에도 20여 개 법인이 등록돼 있다.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S 부동산 관리회사, 미국계 D 기업정보 제공회사, 대만계 U 여행사 등이 하이그라운드와 같은 주소지를 쓰고 있다.

싱가포르 파야레바로드(PAYA LEBAR ROAD) 파야레바스퀘어 8층에 위치한 컨설팅 업체, 하이그라운드는 이 주소지에 법인이 있다고 신고했다.
싱가포르 파야레바로드(PAYA LEBAR ROAD) 파야레바스퀘어 8층에 위치한 컨설팅 업체, 하이그라운드는 이 주소지에 법인이 있다고 신고했다.ⓒ민중의소리
싱가포르 하이그라운드 법인 주소지에 있는 컨설팅 업체
싱가포르 하이그라운드 법인 주소지에 있는 컨설팅 업체ⓒ출처 : 화면캡쳐

싱가포르 법인에 60억원을 빌려준 방 전 대표 회사 하이그라운드는 TV조선에서 방영한 드라마 대부분을 공동 제작하는 회사다. TV조선 드라마 제작으로 총수 일가 회사가 돈을 벌고 이 회사에서 번 돈이 정상적이지 않은 해외 법인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관건은 해외로 흘러간 자금 60억원이 어디에 사용됐는지다. 싱가포르 법인은 드라마와 예능 등 TV프로그램 판매를 목적으로 한다고 당국에 신고했다.

하지만 싱가포르 현지 방송사에서 TV조선 드라마 판권을 매입해 방영한 적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TV조선 드라마를 볼 수 있지만, 이것이 싱가포르 현지 법인의 영업활동을 통해 판매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이그라운드측에 ‘60억원을 대여한 이유가 무엇인지’ ‘싱가포르에서 드라마 판권 판매 사례가 있는지’ 등을 여러 차례 문의했으나 답변하지 않았다.

업계에선 하이그라운드는 물론 원청인 TV조선도 해외 드라마 판매 역량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TV조선과 사극을 제작했던 드라마 제작사 고위 관계자는 “드라마 제작 비용을 협의할 때 해외 판매 문제도 계약으로 정리하는데, TV조선측은 ‘우리는 루트가 없으니 판권은 양도하겠다’고 했다”며 “당시 계약에서 판권 판매 예상 수익만큼 제작단가를 낮췄다”고 말했다. 실제 이 제작사는 TV조선 대신 아시아권 방송사에 사극 판권을 판매했다.

전문가들은 싱가포르로 흘러 들어간 60억원이 방정오 전 대표 개인 투자 활동에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회계 전문가는 “드라마 판권 영업은 명분이고, 총수 일가 개인 투자 등을 위해 해외에 법인을 세우고 자금을 보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이그라운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싱가포르 현지 법인은 60억원을 한국 법인으로부터 빌려 59억원 규모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보유하고 있는 자산이 주식인지, 펀드인지, 부동산인지 또다른 무엇인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다. 다만, 보유하고 있는 자산으로부터 하이그라운드에 지급한 이자 등 비용을 제외하고 5,200만원 정도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고 금융 당국에 신고했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대표는 “싱가포르 법인이 무엇을 위해 설립한 법인인지 의심스러운 상황”이라며 “필요하다면 관계 당국이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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