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전 총장은 이날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절실함으로 나섰다"며 정치 참여를 공식 선언했다.
윤 전 총장의 출사표 대부분은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현 정부의 실정으로 국민이 고통받고 있기 때문에 정권교체를 반드시 이뤄야 한다는 식의 논리다. 하지만 '정치인 윤석열'이 왜 대통령이 돼야 하는지, '정치인 윤석열'은 어떤 정치를 보여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알맹이가 빠진 셈이다.
윤 전 총장은 문재인 정권을 두고 "경제 상식을 무시한 '소주성(소득주도성장)', 시장과 싸우는 주택정책, 법을 무시하고 세계 일류 기술을 사장시킨 탈원전, 매표에 가까운 포퓰리즘 정책으로 수많은 청년·자영업자·중소기업인·저임금 근로자들이 고통받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민을 내 편, 네 편으로 갈라 상식과 공정, 법치를 내팽개쳐 나라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국민을 좌절과 분노에 빠지게 했다"며 "이 정권이 저지른 무도한 행태는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다"고 맹비난했다.
윤 전 총장은 "이들의 집권이 연장된다면 대한민국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뻔하다"며 "이제 우리는 이런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의 집권 연장과 국민 약탈을 막아야 한다. 여기에 동의하는 모든 국민과 세력은 힘을 합쳐야 한다"고 야권 통합을 발판으로 한 정권교체를 강조했다.
이어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하면 개악과 파괴를 개혁이라고 말하고, 독재와 전제를 민주주의라 말하는 선동가들과 부패한 이권 카르텔이 지금보다 더욱 판치는 나라가 되어 국민들이 오랫동안 고통을 받을 것"이라며 "그야말로 '부패완판'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헌신할 준비가 되었음을 감히 말씀드린다"며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모든 분들과 힘을 모아 확실하게 해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윤 전 총장은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국가상에 대해서는 키워드 식으로 짧게 언급하는 데 그쳤다.
그는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산업화에 일생을 바친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민주화에 헌신하고도 묵묵히 살아가는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세금을 내는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또한 "청년들이 마음껏 뛰는 역동적인 나라,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혁신의 나라, 약자가 기죽지 않는 따뜻한 나라, 국제사회와 가치를 공유하고 책임을 다하는 나라를 반드시 만들겠다"고 제시했다.
다양한 질문 쏟아졌지만
여전히 모호했던 윤석열의 정치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도 대권 주자로서 윤 전 총장의 구상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이날 윤 전 총장에게는 시대정신으로 꼽히는 공정과 경제 정책, 한일관계 해법 등 다양한 분야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윤 전 총장의 답변은 모호하기만 했다.
그는 여권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내세우는 공정과 윤 전 총장이 강조하는 공정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는 "공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하나는 특정 분야에서 특정 시장에서 공정한 룰에 따라 경쟁하고 거기에 따라 어떤 보상이 주어지는 공정이 있고 국민 전체, 국민 한 분 한 분의 생애 전주기에 기회의 공정이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윤 전 총장은 "지금은 청년 세대가 취업이라든가 입시라든가 이런 데 있어서 불공정을 많이 느끼기 때문에 어떤 특정 분야에서 공정한 경쟁을, 공정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그러나 국가나 정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국민이 생애 전 주기에 자기들이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의 균등, 공정한 기회의 보장이 큰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복지와 성장 두 가지 가치 중 어느 부분에 더 방점을 찍느냐는 질문에도 복지와 성장 모두 중요하다는 식의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그는 "지속가능성이라는 데 방점을 두고 싶다"며 "복지도 지속가능한 재정이 있어야만 제대로 집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복지와 성장 중 어느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해법으로는 "이 정부 들어와서 망가진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이런 것들과 한일 간 안보 협력이라든가, 경제 무역 문제 등 이런 현안들을 전부 다 같이 하나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그랜드 바겐을 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며 "한미관계처럼 한일관계도 국방 외무 또는 내무 경제 이렇게 2+2, 3+3의 정기적인 정부 당국자 간 소통이 향후 관계를 회복하고 풀어나가는 데 필요하지 않겠냐"고 제시했다.
반면, 윤 전 총장이 비판받는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 반박했다.
그는 우선 "2019년 가을부터 총장으로서 수사한 내용들은 법과 원칙에 따라 이뤄졌다"고 자신했다.
이후에도 비슷한 취지의 질문이 나오자 검찰총장이 선출직에 나서지 않았던 것은 "관행"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그는 "공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고 국민을 위한 검찰이 돼야 하기 때문에 검찰의 정치적 독립, 그리고 최고 지휘자인 검찰총장이 선출직에 나서지 않는 관행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절대적 원칙은 아니라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법, 검찰 공무원이 선출직에 나서는 게 맞나, 안 맞나라는 논란은 제가 볼 때 일반적으로는 관행상 하지 않았지만, 결국 국민이 판단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입당 여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그는 "정치철학 면에서는 국민의힘과 생각을 같이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향후 제 정치 행보에 대해서는 이미 이 자리 서기 전에 말씀을 다 드렸기 때문에 그것으로 갈음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밝혔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 문제와 관련해서는 "두 전직 대통령의 장기 구금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국민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저 역시도 그런 국민들 생각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편, 이날 윤 전 총장의 정치참여 선언식이 진행된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는 윤 전 총장의 지지자들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행사 시작 전부터 윤 전 총장을 응원하는 화환과 현수막들이 기념관 주위를 둘러싸기도 했다.
윤 전 총장이 선언식을 마친 뒤 행사장 밖으로 나오자 그를 기다렸던 지지자들은 일제히 "윤석열 대통령"을 연호했다. 지지자들에 둘러싸인 윤 전 총장은 마이크를 잡고 "여러분의 열망, 기대, 저 역시 실망시켜드리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며 "우리가 다 함께하면 할 수 있다"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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