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비평] “언론이 주도하고 정부가 책임 방기” 지적
이제라도 의료 붕괴 근본 원인 찾고 언론이 대안 내놔야

 

“방역 당국이 샴페인(방역 완화)을 너무 일찍 터뜨린 측면이 있다.” (중앙일보 11월25일 사설)
“감염병 대응의 기본인 병상 확보조차 하지 않고 있었나.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조선일보 12월11일 사설)
“정부는 높은 백신 접종률만 믿고 위드 코로나에 따른 위험을 과소 평가했다.” (한겨레  11월30일 사설)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전환 한 달 만에 의료와 방역체계가 역대 위기를 맞았다. 일일 확진자가 4000명을 넘어 7000명을 넘나든다. 하루 사망자는 10여명에서 90명을 넘겼다. 위중증 환자도 연일 최대치다. 정부가 방역 강화책 발표를 미루면서 의료 현장에선 우려가 쏟아진다. 언론도 일제히 방역당국 비판에 가세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선 현 상황을 불러온 원인으로 한 가지를 더 꼽는다. 언론이다. 그간 보도 흐름을 보면 언론은 불과 지난달까지 방역 완화를 재촉하며 ‘장밋빛 그림’을 그려왔다. 병상과 인력 등 의료체계가 미비한 현실을 먼저 따진 언론은 없다시피하다. 방역 완화가 필요한지 논하기 전에 ‘거리두기에 따른 정부의 지원 책임’을 언급한 곳도 찾기 힘들다. 언론이 스스로 자초한 결과에 대한 성찰 없이 방역당국 등 외부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는 위드 코로나” 기대감 키운 언론


넉 달 전으로 돌아가 보자. 언론은 정부보다 앞서 위드 코로나를 입에 올렸다. 중앙 일간지 9곳과 방송사 보도를 보면, 7월에 기사가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해 8월 중순부터 보도 흐름이 본격화했다. 핵심 내용은 두 갈래다. 접종률이 높은 해외 나라들은 위드 코로나가 가능하다고 조명하거나,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들며 ‘봉쇄 방역’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때이르다’는 입장을 보였다. 

조선일보는 8월3일 ‘英·美 방역 빗장 푸는데… 백신 접종률 낮은 한국은 중증 환자 늘어 엄두 못내’, 4일 ‘이젠 우리도 위드 코로나? 전문가들 “접종속도부터 높여야”’ 등 기사를 냈다. 미국과 영국의 경우 “봉쇄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있다”며 국내의 낮은 접종률이 위드 코로나 도입을 가로막는다고 비판했다. ‘백신 접종자만 충분히 늘어나면 위드 코로나가 가능하다’고 전제한 보도다.

▲지난 8월3일 조선일보 보도 갈무리
▲지난 8월3일 조선일보 보도 갈무리
▲9월7일 중앙일보 ‘“이젠 미래 계획할 수 있다” 접종완료 81% 싱가포르식 위드 코로나’ 보도 갈무리
▲9월7일 중앙일보 ‘“이젠 미래 계획할 수 있다” 접종완료 81% 싱가포르식 위드 코로나’ 보도 갈무리

언론사 논조를 막론하고 해외의 ‘위드 코로나’ 사례를 따라갈 것을 시사하는 보도들이 나왔다. ‘“이젠 미래 계획할 수 있다” 접종완료 81% 싱가포르식 위드 코로나’(중앙일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위드 코로나 배워가는 다른 나라들’(서울신문) ‘“영원히 갇혀 살 순 없다” 베트남도 위드 코로나 시대로 전환’(한국일보) ‘유럽은 위드 코로나가 대세’(조선일보) ‘위드 코로나 영국·이스라엘, 확진자 늘었어도 사망자 급감’(한겨레) 등이 일례다.

해외 위드 코로나 여파를 사실과 다르게 전한 기사도 나왔다. 한겨레와 KBS, 연합뉴스 등은 9월 영국와 이스라엘, 싱가포르 등에서 방역 완화를 실시한 뒤 확진자는 폭증했지만 사망자는 줄었다고 보도했다. 실상 영국과 싱가포르에선 위드 코로나를 기점으로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

▲지난 10월2일 한겨레 토요판 1면
▲지난 10월2일 한겨레 토요판 1면

자영업자 어려움 들며 ‘방역 완화’ 재촉


언론은 자영업자들이 거리두기로 겪는 생계 곤란을 들며 방역 완화를 주문하기도 했다. 세계일보는 9월 사설에서 자영업자의 경영난과 생활고를 들며 “약효가 떨어진 사회적 거리두기에 집착할 때가 아니다”라며 “위드 코로나로 서둘러 전환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일보도 사설에서 “거리 두기에 많은 시민들이 지쳐 있는 것은 물론이고 손실보상제를 도입했지만 자영업자 피해도 더는 감내하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고 했다. 조선일보도 인터뷰로 “K방역, 국민 고통 겪는데 무슨 성공...통제·규제 대신 자발적 방역 시급” 등 기사를 냈다.

한겨레도 8월 중순부터 위드 코로나 도입을 주장하는 전문가의 기고를 ‘대전환의 시간’이란 제목으로 1면에 5차례에 걸쳐 실었다. 사설로도 감염자가 폭증한 유럽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면서도 “단기간 내 코로나19 종식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위드 코로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7월21일 국민일보 보도 갈무리
▲7월21일 국민일보 보도 갈무리
▲한겨레도 8월 중순부터 위드 코로나 도입을 주장하는 의료전문가의 기고를 연속으로 실었다.
▲한겨레는 8월 중순부터 위드 코로나 도입을 주장하는 의료전문가의 기고를 연속으로 실었다.

열흘 만에 ‘병상 포화·의료붕괴’, 언론은 정말 몰랐나


이 같은 보도 흐름 속에 선 긋던 정부가 점차 입장을 바꿨다. 9월 말~10월 초 백신 접종률이 80%에 다다르면 ‘위드 코로나’로 전환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9월 말 추석 연휴 직후 확진자가 처음으로 3000명을 넘어섰지만 10월29일 위드 코로나 도입 계획을 밝혔다. 11월1일 언론은 위드 코로나로 활기를 띠는 시장과 식당 등 현장을 앞다퉈 보도했다.

▲지난달 2일 한국일보 1면 사진기사
▲지난달 2일 한국일보 1면 사진기사
▲지난달 2일 경향신문 1면
▲지난달 2일 경향신문 1면

이 같은 상황은 채 2주를 가지 못했다. 지난달 10일부터 의료체계가 확진자와 위중증 환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서울시 중증병상 4곳 중 3곳이 찼다. 정부가 일상 회복을 중단하는 ‘비상 계획’ 기준으로 내놓은 75%를 넘어선 수치다. 비수도권으로 환자를 이송하는 일이 벌어졌다. 위드 코로나 도입 2주만에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숨질 수 있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예견된 상황… 언론의 실패이기도”


현장에선 예견된 상황이라고 말한다. 간호사와 감염내과 의사 등 진료 현장의 의료인들이 일찍부터 우려 목소리를 냈지만, 언론이 이를 외면했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간호사였던 이향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장은 “정부가 위드 코로나를 도입할 당시 민간병상 확보나 인력 충원 계획이 전혀 없었다. 한국은 공공병상이 전체 병상의 10%에 불과하고 지난 겨울에 병상 부족 비상을 이미 겪었는데, 너무나 안일했다”고 했다. 반면 영국은 100%다. 당초 위드 코로나를 시작할 수 있는 의료 여건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본부장은 “노조가 성명을 내고 문제 제기를 했지만 다수 종합지는 귀담아 듣지 않았고 백신 접종률을 이유로 괜찮을 것이라는 기조를 이어갔다”고 했다. 

▲언론재단 뉴스 데이터 분석툴 빅카인즈에서 9월14일~12월14일 위드 코로나 보도량을 막대그래프로 시각화한 결과.
▲언론재단 뉴스 데이터 분석툴 빅카인즈에서 9월14일~12월14일 위드 코로나 보도량을 막대그래프로 시각화한 결과.

민관합동 일상회복 지원위원회에 참여하는 위드 코로나 도입에 신중론을 펴왔던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도 “(지금의 비상 상황을) 예상하고 경고해왔다. 그러나 정부 쪽 경제분야와 행정분야에서 위드 코로나를 더 빨리 도입하자고 요구했다. 보건의료 분야 쪽에서 막은 게 이 정도”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일상 회복으로 가야 한다는 이유로 준비가 부족한 상황을 합리화했고 언론이 이를 주도했다”며 “정부와 언론 모두 방역 필요성을 희석하는 얘기를 내놨다”고 꼬집었다. 예컨대 “자영업자가 힘들다면 방역 조치로 인해 고통을 받는 곳에 적극 지원해야 하는데, 관련 논의는 미루고 버텨왔다”는 것. 그는 “방역 완화 도입에 앞서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검증해야 할 언론이 꿈같은 이야기를 주로 실었고, 정부가 ‘병상을 확보하겠다’는 허술한 발표는 검증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의료 붕괴가 코앞에 다가오자 언론도 적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병상과 의료인력을 준비하지 않은 정부를 비판했다. 지난 23일 일일 확진자가 4000명에 다다르자 방역 강화를 주문했다. 한국일보는 ‘병상·의료인력 아우성 언제부턴데 아직 뒷북인가’, 한겨레는 ‘“현재 병상이 최대치”, 이 정도 준비로 ‘위드 코로나’ 시작했나’란 제목의 사설을 냈다. 조선일보는 지난 11일 사설에서 “정부가 미리 병상을 준비하지 않은 여파로 최근 의료 현장은 말 그대로 패닉 상태”라며 “번번이 때를 놓치고 허둥대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제라도 의료붕괴 근본 원인·정부의 거리두기 지원 책임 살펴야


현장 의료인들은 언론 전반의 태도를 “유체이탈”에 비유했다. 이 교수는 “기자들은 자신들이 한 달 전에 쓴 기사를 읽지 않나”라고 되물으며 “황당한 건 단계적 일상 회복을 더 빨리 해야 한다고 말하던 언론이 지금은 지금은 ‘단계적 일상회복 실패’란 프레임을 제기한다는 점이다. 실패라 한다면, 단계적 일상회복을 준비 없이 더 과감히 해야 한다고 말해온 언론의 실패”라고 꼬집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제공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제공

위드 코로나에 반대 목소리를 내온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의료체계 붕괴는 예상됐던 부분이다. 언론 보도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상황이 예상을 벗어났다면 빠르게 상황을 인식하고 대안을 내놓아야 할 때”라며 “언론이 현 정부 대책을 비난하더라도 상황을 통찰한 결과여야 하는데, 여전히 지엽적이고 말초적인 데 주목해 반대 의견을 내는 데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향춘 의료연대본부장은 “이제라도 언론은 정부 발표를 받아 적기에 그치지 말고, 왜 대한민국이 위드 코로나 도입 2주 만에 의료 붕괴 상황에 빠졌는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본부장은 “현재 재택치료 환자와 요양병원 환자가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죽어나가는 데에는 유럽과 달리 공공병상과 인력이 부족한 현실이 있다. 의료연대본부의 문제 제기 뒤 정부가 민간병상 확보와 인력 충원 계획을 내놓았지만 현재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언론은 정부 발표의 현실성을 검증하고 대안을 내놓을 때”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