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다살다 윤석열 후보 같은 사람한테“당신같이 가난한 사람은 자유가 뭔지 모르니 좀 가르쳐야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살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내 비록 지식이 일천하여 누구를 가르치거나 훈계를 늘어놓을 깜냥이 결코 되지 않으나, 굳이 자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면, 자유를 위해 길바닥에서 돌이라도 한 번 던져본 내가 윤석열 후보를 가르쳐야지 댁이 뭔데 나를 가르친단 말인가?
아니나 다를까 본인도 발언 이후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변명을 늘어놓고 신지예 씨 같은 사람도 가세해 온갖 실드를 치던데, 웃기지들 말라. “극빈한 생활을 하고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를 뿐 아니라 자유가 왜 개인에게 필요한지에 대한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 이게 당신의 정확한 발언이다. 이 발언에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은 자는 자유가 뭔지 모른다”는 해석 외에 어떤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말인가?
역사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의해 한 걸음씩 발전해 왔다. 그리고 그 투쟁의 주인공은 윤 후보가 말하는 ‘가난하고 못 배운’ 민중들이었다.
윤석열 후보, 댁이 출세를 위해 고시 공부한다고 책상에 처박혀 있는 동안 수많은 ‘가난하고 못 배운’ 민중들은 자유를 위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와 싸웠다. 그 결과를 지금 한껏 누리는 주제에 감사한 줄 알아야지, 감히 누가 누구한테 자유를 아네 모르네, 가르쳐야 하네 마네 하는 거냐고?
자유를 위한 투쟁의 주체
내가 이런 것까지 설명해야 하나 싶지만, 멍멍이 소리를 먼저 꺼낸 쪽이 그쪽이니 이야기를 해보자. 추정이지만 구한말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90%를 넘었다. 1922년 1월 5일 동아일보의 사설에는 “신문 한 장은 고사하고 일상 의사소통에 필요한 서신 한 장을 능수하는 자가 100인에 1인이면 다행”이라는 문구까지 나온다.
그런데 1919년 벌어진 3.1운동 때 수백만의 민중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에 나섰다. 보수적으로 집계된 조선 총독부의 공식 기록에도 집회 참가자 수가 106만여 명, 사망자 553명, 체포자 1만 2,000명으로 나온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 등에 따르면 시위 참여 인원은 200만여 명, 시위 건수는 1,500여 회, 사망자는 무려 7,000여 명, 체포자는 4만 6,000여 명으로 증가한다.
그런데 이게 ‘부유하고 유식한’ 사람들의 지침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나? 천만의 말씀이다. 3.1 운동을 계기로 다음 달인 4월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된다. 바로 대한민국의 건국이다.
그런데 순서를 잘 봐야 한다. 임시정부가 수립된 이후 3.1운동이 벌어진 게 아니라, 3.1운동이 벌어진 이후 임시정부가 수립된 것이다. 지금 윤석열 후보가 누리는 한국인으로서의 권리, 그건 바로 수백만 민중의 항거와 수천 명 민중의 목숨값 위에 서있는 거다. 그 민중들이 바로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었다.
근대 시민사회의 태동, 즉 중세 봉건사회의 종말을 알린 역사적 사건이 1789년 벌어진 프랑스 대혁명이었다. 그런데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그 시기 프랑스의 문맹률은 50%를 넘었다.
하지만 그 ‘가난하고 못 배운’ 민중들은 기꺼이 목숨을 바쳐 투쟁에 나섰다. 혹시 윤 후보가 “그게 자유와 무슨 상관이냐?”고 무식한 소리를 할까봐 덧붙이자면, 당시 혁명의 기치가 바로 리베르테, 에갈리테, 프라테르니테(Liberte, Egalite, Fraternite), 즉 자유, 평등, 연대였다.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하자. 윤 후보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은 어디 외국에서 수입해온 이념에 사로잡힌 것”이라며 그 ‘외국 이론’이 “남미의 종속이론, 북한에서 수입된 주체사상 이론”이라는 멍멍이 소리를 했다는데, 무식하면 좀 제발 입을 닫아라. 이런 노래가 있다.
우리를 치려고 독재자는 살육의 깃발을 올렸다.
들리는가, 저 들판의 짖어대는 난폭한 병사들의 고함소리가?
놈들이 지척까지 와서 우리 가족의 목을 베려 한다!
무기를 들라, 시민들이여. 대열을 갖추라!
전진, 또 전진하라. 적들의 더러운 피가 우리의 밭고랑을 적시도록!
남미 종속 이론과 북한 주체사상 이론에 막 현혹돼 선동당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죽창 들고 불렀던 노래 같은가? 이건 18세기 후반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 민중들이 가두에서 불렀던 노래다. 그리고 이 노래가 바로 지금 프랑스의 국가(國歌)다. 윤석열 후보 말마따나 가난하고 못 배운 민중들의 처절한 노래가 지금 프랑스를 상징하는 국가가 된 것이다.
현대를 사는 그 누구도 프랑스 혁명 정신을 기리는 행위를 “어디 외국에서 수입된 이론으로 민주화 운동이나 하고 있다”고 폄훼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노래를 부르는 프랑스인들을 보며 “가난하고 못 배운 민중들이 자유의 의미를 모른다”는 헛소리를 늘어놓지 않는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윤 후보, 제발 어디 외국 나가서 그런 헛소리는 절대 하지 말라. 프랑스 같은 곳에서 그런 멍멍이 소리 하면 속된 말로 다구리 맞는다.
자유가 뭔지는 윤석열 당신이 모른다
내가 경제학을 공부한 이후 당최 이해할 수 없었던 사실 중 하나가 윤석열 같은 보수주의자, 시장주의자들이 자유를 무슨 자기들만의 전유물처럼 떠들고 다니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재벌을 옹호해온 단체 이름이 ‘자유기업원’이었던가? 아, 맞다. 윤 후보가 속한 국민의힘 전신도 무려 ‘자유’한국당이었지?
그런데 윤석열 후보, 진지하게 물어보자. 댁이 생각하는 자유가 도대체 뭐냐? 돈을 마구 벌 자유, 그래서 사회적 연대와 공생을 무시하고 나 혼자 막 떵떵거리고 살 자유, 뭐 이런 거냐? 그게 아니라면 “가난한 사람한테는 불량식품이라도 먹게 해야 하고” 같은 발언이 어떻게 입 밖으로 튀어나오나?
그런데 그거야 말로 진짜 무식한 소리다. ‘인류가 누려야 하는 보편적 자유’라는 개념은 서구 사회에서 인문주의와 함께 성장한 것이다. 중세 봉건사회 때 세상의 중심은 신과 왕이었다. 하지만 ‘신과 왕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인문주의가 대두되면서 자유의지(Free Will), 즉 ‘자신의 행동과 의사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의 중요성이 등장한 것이다.
이 말은, 근대 시민사회를 연 자유의 철학적 개념이 ‘나 스스로 나의 삶을 결정한다’는 데 있다는 뜻이다. 그게 왕이건, 혹은 신이건 그 누구라도 나의 의지에 기반을 둔 나의 자유의지를 폭압적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 이게 바로 근대 시민혁명의 기반이 된 자유의 의미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가난하고 못 배운’ 민중들이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목숨을 건 투쟁에 나선 이유가 이것이다. 나의 삶을 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이 굳건한 믿음은 가진 것 많은 이들의 것이 아니라 그 자유를 빼앗긴 자들의 것이었다. 윤석열 당신 같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돌 던지며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민중들의 것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윤석열 후보는 민중들보고 자유를 모른단다. 그래서 그걸 교육을 시켜야 한단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지금 장난하냐? 당신이 뭔데 민중들한테 자유를 가르치나? 민중들이 당신한테 자유를 가르쳐야지! 알고 있는 게 법전 말고는 당최 없어 보이는 윤 후보, 지금이라도 겸손하게 민중들에게 자유를 배워라. 교육이 필요한 건 우리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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