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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대비 전담팀 꾸려 ‘CEO 보호’ 방패 세우는 로펌들

등록 :2022-01-14 04:59수정 :2022-01-14 07:24

 ‘노동자 보호’ 법취지 훼손 우려

로펌 8곳, 20~100여명 대응팀
노동부 등 고위전관 영입 배치
법시행 앞 기업고객 유치 나서
“산재 사건 무죄” 홍보하기도
노동자 6명이 실종된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현장에서 사고 사흘째에 매몰자 1명이 발견된 13일 오후 추운 날씨에 눈까지 오는 악조건 속에서 수색대원과 구조견이 사고 현장에서 실종자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광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노동자 6명이 실종된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현장에서 사고 사흘째에 매몰자 1명이 발견된 13일 오후 추운 날씨에 눈까지 오는 악조건 속에서 수색대원과 구조견이 사고 현장에서 실종자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광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기업 발목을 잡는다’며 비판을 쏟아내던 재계와 보수언론이 대형 인명사고가 난 광주광역시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이후 목소리를 줄인 채 여론을 살피고 있다. 그 사이 대형 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들은 ‘경영책임자도 형사처벌될 수 있다’는 기업들의 위기감을 파고들고 있다. 각종 산재사건에서 기업을 대리해 왔던 주요 로펌들은 일찌감치 ‘노동 전관’을 앞세운 전담대응팀을 꾸려 대기업 고객 유치를 위한 물밑 경쟁을 벌여왔다. 법조계와 노동계에선 기업들이 비용이 많이 드는 안전·보건조치 강화보다 경영자 처벌을 막는 법률 서비스에 기댈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취지가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오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뒤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면 시공사 현대산업개발 유병규 대표이사는 ‘경영책임자’로서 처벌 받을 가능성이 높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이 주로 현장소장 등 단위 사업장 수준에서 제재하던 것과는 큰 차이다.13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주요 로펌은 대규모 전담팀을 꾸리고 큰손인 기업 고객 유치에 한창이다. 국내 최대 법률사무소인 김앤장은 지난해 초 ‘중대재해대응그룹’을 만들었다. 노동·형사, 건설, 인사노무, 기업지배구조 분야 사건을 맡아온 변호사를 주축으로 100여명 규모다. 기업에 안전·보건 시스템 등 선제적 대응 체계 구축과 함께 중대재해 발생 시 고용노동부·환경부·수사기관 조사 및 수사에 즉각 대응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광장·태평양 등도 20~100여명 규모로 대응팀을 꾸렸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중대재해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경영자 처벌 리스크가 생겼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기업이 이 법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발맞춰 로펌들도 대형 대응팀을 꾸리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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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취재 결과, 국내 10대 로펌 가운데 김앤장·광장·태평양·세종·율촌·화우·대륙아주·지평 등 8곳이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공단, 환경부, 국토교통부 등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부처에서 근무한 고위 전관들을 영입해 전담대응팀에 배치했다. 문기섭 전 고용부 고용정책실장(세종), 박영만 전 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율촌), 신인재 전 산업안전보건교육원장(광장), 고재철 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장 및 신현수 전 서울동부고용노동지청 근로개선지도과장(화우) 등이다.법 시행 초기 중대재해처벌법의 구체적 해석과 적용, 판례 쌓기를 두고 기업, 노펌, 노동계, 수사기관, 법원의 힘겨루기가 불가피하다. 기업이 새로 시행되는 법령을 점검하고, 로펌이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문제 삼긴 어렵다. 다만 과거 산재사건 대응 사례에 비춰볼 때 로펌이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경영책임자 책임을 최소화하는 논리 개발에 집중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실제 전담대응팀을 꾸린 일부 로펌은 ‘OO기업 산재사건 무죄’ 등을 주요 변론사건으로 홍보하고 있다. 민주노총법률원 권두섭 변호사는 “로펌 대응팀이 사고 예방을 위한 조언보다는 경영자 책임을 덜거나 회피할 방안을 세우고 안내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고 했다.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주상복합아파트 붕괴 사고 사흘째를 맞은 13일 오후 붕괴 현장에 함박눈이 내리고 있다. 광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주상복합아파트 붕괴 사고 사흘째를 맞은 13일 오후 붕괴 현장에 함박눈이 내리고 있다. 광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작년 산재 800명 스러졌는데…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만든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을 위한 안전경영 가이드북’을 보면,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사망 사고를 계기로 만들어진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재계가 느끼는 ‘위기감’을 엿볼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전적 재해예방 측면에 방점이 있기 보다는 재해발생 시 강력한 처벌에 방점을 두어 재해를 예방하고자 함. 따라서 관련 수사는 평상시 의무위반 여부를 점검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중대재해 발생 이후 본사 등에 대한 전면적 압수수색 등 집중적인 조사와 점검이 이루어지게 될 가능성이 높음.”이에 대형 로펌들은 노동·중대재해 분야 전문 변호사를 중심으로 고용노동부 출신 등 전관들을 영입해 별도 대응팀을 꾸려 대기업 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걸맞게 노동자 안전을 중심에 둔 중대재해처벌법 취지를 살리기 위한 법원과 수사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오는 27일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지난해 1월8일이다. 그 사이 800여명의 노동자가 노동 현장에서 떨어지고 끼이고 깔리고 묻히고 부딪혀 숨졌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 현장에서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일어나면 사업주는 물론 경영책임자까지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지금까지는 노동자 사망·부상 등 중대재해 발생 시 현장 관리 감독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현장 관리자와 함께 경영책임자인 기업 대표이사도 책임 소재에 따라 재판에 넘겨질 수 있다.기업들의 중대재해처벌법 자문 수요는 늘고 있다. 국내 주요 로펌들이 대규모 전담팀을 꾸리고 법 시행을 기다려 온 이유다. 국내 최대 법률사무소인 김앤장은 지난해 초 ‘중대재해대응그룹’을 만들었다. 노동·형사, 건설, 인사노무, 제품안전, 기업지배구조 등 분야의 사건을 맡아온 변호사들과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공단, 환경부, 국토교통부 등 유관 부서 근무경험이 있는 전관 등 모두 100여명 규모다. 다른 주요 로펌들도 인원 규모만 차이가 날 뿐 대체로 비슷한 형태로 대응팀을 꾸렸다.특히 눈에 띄는 점은 이들 로펌이 중대재해처벌법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와 그 산하기관에서 일했던 노동부 출신 전관 등을 적극적으로 영입했다는 점이다.

 

산재사망 유가족 및 시민사회 회원들이 2020년 12월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제대로 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릴레이 2400배를 올리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산재사망 유가족 및 시민사회 회원들이 2020년 12월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제대로 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릴레이 2400배를 올리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노동자 안전 법 취지 살리려면 노동부·검찰·법원 제역할해야”

로펌들의 움직임을 두고 노동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로펌들은 ‘대외비’를 이유로 기업 대상 컨설팅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이들이 기업에 제공했던 노동 관련 컨설팅 전례를 비춰보면, 중대재해처벌법 자문 역시 산업재해를 막기 위한 예방책 제시보다는 기업과 대표이사 등의 책임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무게가 쏠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노동부 전관 영입을 두고도 비판이 나온다. 로펌들은 “기업들이 중대재해를 원천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전직 공무원들을 영입했다”고 설명했다. 산업 현장을 잘 아는 인사들을 통해 기업에 안전·보건 컨설팅을 제공하겠다 취지다. 다만 중대재해 조사 등을 맡은 기관 출신 고위 전관들은 로비 창구로도 기능한다.전문가들은 법 시행 초기 중대재해처벌법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선례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법령 해석과 적용이 아직 불명확한 상황에서 초기 사건 조사·수사·재판을 어떻게 하느냐가 앞으로 발생할 사건 처리의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안전보건책임자(CSO)를 별도로 둘 경우 이를 경영책임자로 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오는 상황이다. 정우준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는 “대기업 등이 로펌과 손잡고 중대재해처벌법의 성긴 부분을 악용해 처벌을 피하는 논리를 만들고 수사상 지침이나 판례를 남기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원청이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한두 번 나오면 그 논리가 그대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수사기관과 법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민주노총법률원 권두섭 변호사도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산재 발생을 줄여 노동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노동부와 검찰, 법원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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