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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복종을 강요한 '집'…버텼다면 달라졌을까

조해람·강은 기자
<picture><source type="image/webp"><img src="https://img.khan.co.kr/news/2022/01/17/l_2022011701001985200168571.jpg" class="__se_object" s_type="attachment" s_subtype="image" style="display: block; border: 0px none; vertical-align: top; max-width: 710px;" width="700" jsonvalue="%7B%7D" alt="경향신문 일러스트" /></picture>

경향신문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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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방’은 공포였다.

보육원의 규칙을 어긴 여자아이들은 언니들이 지내는 언니방으로 보내졌다. 이하은씨(19·가명)도 자주 언니방에 끌려갔다. 밥을 먹다 반찬을 남기거나 외출 복귀가 늦거나 청소를 잘 못하면 그랬다. “언니방 가!”라는 말을 끝으로 선생님들은 그 안에서 벌어질 일을 묵인했다. 10대들에겐 어른보다 한 두 살 위의 선배가 더 무섭다는 것을 선생님들은 잘 알고 있었다.

‘선도부원’이 된 언니들은 위임받은 권력을 거리낌없이 행사했다. 엘리베이터가 언니방이 있는 5층에 도착하면 이씨는 벽을 본 채 무릎을 꿇거나 양배추 잔반을 꾸역꾸역 삼키는 벌을 받아야 했다. 맞기도 많이 맞았다. 초등학생 시절 방아깨비를 잡다가 수업에 늦었을 때도 폭행을 당했다. 남은 잔반을 죄다 섞어서 화장실에서 먹으라는 지시를 거부하고 몰래 수면양말에 버리다 들켰을 때도 맞았다.

같은 시설 출신인 김서연씨(19·가명)도 한 마디 거들었다. “맞는 게 익숙했어요. 뭐 어쩔 수 없죠. 워낙 어릴때부터 그렇게 살아서…. 언니들은 또 자기 언니에게 맞고.” 통제와 규율이라는 명목 하에 묵묵히 대물림되는 폭력이었다.

이씨는 결국 중학교 1학년 때 보육원에서 도망쳤다. 주변에는 “가출했다”고 말했다. 시설 이전의 기억이 없는 이씨에게는 보육원이 곧 집이었다. 집을 나온 순간 떠돌이 생활이 시작됐다. 처음 가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잡혀 심사원(위탁·유치 소년을 일시적으로 수용하며 비행의 정도를 분류하는 시설)에 보내졌을 때는 매일 울었다. 2주 뒤 다시 보육원에 돌아가야 했지만 언니방은 죽어도 가기 싫었다. 차 창문을 열고 도망쳤다. 도망치고 잡히고, 또 도망치고 잡혀 들어가고…. 남자친구 집에 얹혀 지낼 때는 불쑥 찾아오는 경찰을 피해 세탁기 안이나 침대 밑에 숨었다. 안정적 거처 없이 떠도는 삶은 스트레스성 위염을 불렀다.

가출하지 않았으면 이씨는 떠돌지 않았을 것이다. 집(보육원)이 집다웠다면 이씨가 가출하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아동복지법 4조3항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아동이 태어난 가정에서 성장할 수 없을 때에는 가정과 유사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이 법전의 내용과 무서운 언니방, 잔반 담긴 수면양말의 거리는 아득히 멀다.
 

보호대상 아동 매년 4000여명
그중 3분의 2가 보육원 등 시설행
만 18세 이후 자립정착금·자립수당
시설 만기까지 머물러야 지급

■“견뎌야 했다. 열여덟까지…자립지원금을 받기 위해”

매년 4000여명의 보호대상아동이 생기고 상당 수가 시설에 맡겨진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보호조치된 아동 4120명 가운데 3분의 2인 2727명이 시설로 갔다. 보육원 등 양육시설이 1133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공동생활가정(그룹홈) 712명, 보호치료시설 451명, 일시보호시설 343명 등의 순이었다. 2020년 기준 전국의 아동복지시설 274곳에서 1만1356명이 지낸다. 그 중 1만352명이 양육시설(237곳)에서 산다.

영원히 시설에서 살 수 없기에 언젠가는 시설을 떠나 자립해야 한다. 국가는 그 나이를 만18세(희망 시 만24세)로 정했다. 500만~1000만원의 자립정착금과 월 30만원 자립수당 등을 받을 자격은 모두 그 나이에 주어진다. 자립수당 지급은 ‘보호종료일로부터 과거 2년 이상 연속 이용’(보건복지부 시설) 또는 ‘보호종료일로부터 과거 3년 중 2년 이용 및 퇴소 직전 1년 이용’(여성가족부 시설)이라는 조건이 더 붙는다.

폭행을 당하고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도 꾹 참는 구조가 여기서 만들어진다. 제대로 된 지원을 받으려면 무탈하게 시설 이용기간을 채워야 하고, 당연히 시설의 규칙을 잘 따르는 ‘착한 아이’가 돼야 한다. 외출 제한, 잔반 남기지 않기, 취침시 휴대폰 사용 금지 등이 착한 아이의 조건이다. “그런 규칙들은 시설이 이 아동을 어떤 존재로 보는지를 말해 줍니다. 존중받는 경험을 잘 못하는 거예요.”(이윤경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 활동가) “일반 가정에서는 내 아이가 외출했다고 내치지 않는데, 시설에서는 쫓아내죠. 그러면 주거와 관련해서도 여러 혜택을 못 받게 됩니다.”(신인성 고아권익연대 사무국장)

<picture><source type="image/webp"><img src="https://img.khan.co.kr/news/2022/01/17/l_2022011701001985200168573.jpg" class="__se_object" s_type="attachment" s_subtype="image" style="display: block; border: 0px none; vertical-align: top; max-width: 710px;" width="700" jsonvalue="%7B%7D" alt="폭력과 복종을 강요한 '집'…버텼다면 달라졌을까" /></picture></source>

김서연씨도 엄격한 규칙과 폭력을 참기 어려워서 보육원을 나왔다. 보육원의 1~5단계 벌점체계에서 그는 항상 가장 낮은 1단계였다. “1단계 가면 핸드폰도 안 주고 귀가도 오후 5시에 해야 했어요. 항상 언니들 눈치를 봐야 하고. 지들이 먹은 걸 우리가 설거지 하고….” 그룹홈, 쉼터, 자립지원관, 친구 집을 전전하는 생활이 시작됐다.

수도권과 지방을 계속 오갔지만 ‘지낼 만한’ 시설은 한 군데도 없었다. 한 생활시설을 운영하던 교수는 수면바지를 입고 PC방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가정교육을 못 받아서 그렇다”고 폭언을 퍼부었다. 그룹홈은 종종 말도 없이 도어락 비밀번호를 바꿨다. 그룹홈에 김씨의 이름으로 나오는 지원금이 있었지만 시설장은 “말을 안 듣는다”며 용돈을 주지 않았다. 같이 살던 언니와 공금으로 마련된 시설 내 저금통을 깼고, 이 사건이 발단이 돼 절도 혐의로 소년보호시설에 갔다.

“자기들이 한 행동을 생각하고 내가 왜 엇나갔는지 생각해줬으면 좋겠네요.” 김씨는 환대보다 외면과 괄시를 자주 겪다 보니 어른은 다 싫어하게 됐다. ‘안 좋게’ 시설을 나온 그는 재정적으로 자립지원도 받지 못했다. 취약계층 아동 앞으로 나오는 디딤씨앗통장을 깨 스스로 원룸을 마련했다. 마음 붙일 안정적 주거가 있었다면 “담배도 안 피고 집도 안 나오고,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갔을 것”이라고 김씨는 말했다.
 

내부 구성원 사이서 되물림되는 폭력
남긴 잔반 억지로 먹이고, 때리고…
그저 견디거나 도망쳐 여기저기 전전

■‘자립’을 앞두고 ‘복종’을 강요한 시설

김씨와 이씨가 꾹 참고 시설의 모범생으로 남았다면 어땠을까. 질문을 바꿔 불합리한 생활을 애써 견디며 만기일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다른 사람들은 어떤 감정일까. 김소영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나눔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2020년 보호종료아동 8명을 심층 면담하고 논문에 이렇게 적었다. “(당사자들의) 논의는 결국 시설 내에서의 긍정적 생활, 만기퇴소,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자립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인과관계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자립 후 퇴소했던 시설을 통해 오는 지원이 자립 지원의 거의 전부인 상황에서 긍정적 시설 생활은 그것을 유용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기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자립 지원 대부분이 시설을 통하기 때문에 싫든 좋든 참아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보육원을 만기 퇴소하고 대학까지 다닌 A씨(26)에게도 시설은 속 터지는 곳이었다. 선생님들은 자신들이 정한 규칙을 잘 지키는 아이들만 편애했다. 그들은 외출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고 설거지도 면제받곤 했다. 불합리한 것을 참지 못하는 A씨가 “공평하지 않다”며 문제제기 하면 “넌 왜 이렇게 비관적이니”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는 곧 선생님들이 주시하는 아이가 됐다. “우리끼리 민주적으로 규칙을 지키고 정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선생님이 아이들을 관리하기 쉽게 규칙을 정해요. 이건 좀 아니다 싶어서 말하면 낙인이 찍히죠. 복종해야 관리하기 편한 환경이니까요.” 예쁨받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저 견뎠다.

자립 이전에는 ‘누가 시키는 대로 하는’ 아이여야 한다. 주체성을 기르기 어렵다. 자립 이후에는 갑자기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는’ 어른이어야 한다. 안 그래도 홀로서기 연습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겐 갑작스러운 변화가 더 혼란스럽다. 황정아 아동권리보장원 자립지원부장은 “시설 아동들은 가정이 아닌 단체생활을 하다 보니 가족이 빨래하고 밥하고 하는 모습을 보고 배우는 일상 경험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월세·공과금 납부 등을 위해 재무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른다면 불안정 주거에 빠질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신인성 사무국장은 “단체생활만 하다가 자립훈련이 부족한 채로 갑자기 혼자가 되면 집을 어떻게 관리할지 모른다. 집을 방치하다가 결국 돈이 떨어져 전전하게 되는 일도 생긴다”고 말했다. 보호종료를 앞둔 아동이 자신의 경제적 자립준비 정도를 10점 만점에 4.8점으로 인식한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 결과도 있다.

종사자가 아이들을 잘 돌보겠다는 열정이 있더라도 부족한 인력과 열악한 근무조건 때문에 소진되기 쉽다. 2019년 서울시 기준 아동양육시설 종사자 1인당 담당하는 아동은 1.83명이지만, 여기서 영양사·사무직원·안전관리원 등을 뺀 보육사는 7세 이상 아동 7명당 1명 수준이다. 시설에 14명의 아동이 있다면 2교대 시 1명이 14명을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생활복지사는 보호아동이 30명일 때 1명, 30명을 초과했을 때 2명이 배치될뿐이다. 김진석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보육시설 종사자들은 급여 수준부터 다른 사회복지 종사자들에 비해 낮으며, 인원도 빠듯하고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에 소진도 빠르다”고 했다. 예산상 이유로 지역에 따라 인프라 격차가 생기기도 한다.
 

보육 인력난 속 복종은 ‘편한 관리법’
한계 뚜렷한 시설에서 벗어나
10대 공공주택 등 선택지 다양화해야

■“아동의 이익 최우선으로 고려돼야”

홀로서기의 시작점은 시설일 수밖에 없다. 괜찮은 시설을 만나 제대로 된 자립지원을 받으며 나오면 그나마 다행이다. ‘나쁜 시설’을 만나 부당한 대우를 꾹 참거나 도망나와야 할 때가 문제다. 좋은 시설에서 자랄지, 나쁜 시설에서 자랄지를 아동 스스로 선택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좋지 못한 시설을 만난 탓에 자립의 첫발을 위태롭게 떼면 주거 상실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보금자리를 잃는 순간 노동, 건강, 인간관계까지 쓰러지는 연쇄효과가 일어난다.

시설 퇴소 후에 일어나는 이 연쇄효과를 중간에 멈춰세울 방법이 필요하다. 보호종료를 마치고 아름다운재단의 자립지원 프로그램 ‘열여덟 어른’에서 활동하는 박강빈씨(26)는 “말 그대로 보호만 받다가 보호종료 후엔 생활공간만 마련받고 그 이상의 뭔가는 거의 없다”며 “누군가 나를 들여다봐주는 지속성이 있다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는 보호종료 후 5년까지 이들의 자립을 모니터링하도록 하고 있지만 인력·예산 부족 등으로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상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아동정책연구센터장은 “위기와 탈위기의 반복 속에서 ‘두 번째 기회’를 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싸구려 고시원을 잃은 순간 모든 미래가 무너졌다[오늘은 또 어디서, 보호아동 홈리스 되다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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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때 주거지원을 받지 못하고 퇴소한 시설보호아동들은 불안정한 주거에 쉽게 내몰린다. 사진은 시설보호아동 출신 A씨가 지냈던 서울의 한 고시원 복도.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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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는 궁극적으로 ‘탈시설’을 추구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심하게는 폭력과 학대로 또는 비민주적 규칙 등으로 주체성을 기를 기회를 억압하는 공간이 ‘집’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윤경 활동가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시설은 구조적으로 민주적인 공간일 수 없다. 종사자 탓이 아니라 ‘시설성’ 자체의 문제”라며 “10대 청소년도 청년 공공주거정책 대상에 포함시키고 시설퇴소아동을 위한 주택공급을 늘리는 등 선택지를 다양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석 교수는 “대규모 집단생활에서는 원장부터 생활복지사를 거쳐 원아로 이어지는 위계가 생기고, 다양한 가시적·비가시적 폭력을 경험하게 된다”며 “대규모 시설은 아동에게 개별화되고 맞춤화된 관심과 보호를 주기 어렵다. 정부가 대규모 시설을 방치하는 것은 결국 경제적 효율성의 논리”라고 했다. 김 교수는 “당장 대규모 시설을 없애기 어렵다면 소규모 그룹홈, 위탁가정 등 더 나은 환경을 활성화할 방안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탈시설에 관한 논의는 단순히 ‘빨리 시설을 없애자’는 말보다 조금 더 큰 이야기다. 떠돌거나 떠돌게 될 아동에게 우리 사회가 어떤 자리를 마련해줄 것인지의 문제로 귀착된다. 논의가 시작 단계인 만큼 아직 결론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어떤 위치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할지는 비교적 분명하다. “아동에 관한 모든 활동에 있어서 아동의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아동복지법 2조3항) 결국 다시 법전이다. 이 조항에 담긴 ‘아동 최선의 이익 원칙’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의 기조이기도 하다. 적어도 ‘착한 아이’의 상에 맞춰 지원 여부를 가르는 지금의 체계에서 이 원칙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일단 부딪혀 봐라.” “사회는 만만치 않다, 긴장해라.” 떠돌이 생활을 해 본 시설보호아동들이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겪을 후배들에게 남긴 조언들이다. 사회가 책임지고 이들에게 안정된 자리를 제공했다면 조언의 온도는 달라졌을까. 시설퇴소아동으로 노숙을 경험한 김모씨(33)는 한때 자신을 외면한 사회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겼다. “저처럼 홀로 된 사람들에게 사랑을 더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도 결국 혼자가 아니라 여기 대한민국 사람들인데. 어떻게 혼자 두나요.”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몇 번의 기로 끝에 거리로 내몰린 이들이 있다. 우리 사회는 너무 오래 이들을 홀로 방치했는지 모른다.<iframe src="https://adv.khan.co.kr/RealMedia/ads/adstream_sx.ads/www.khan.co.kr/pvcheck@x01" width="1" height="1" frameborder="0" scrolling="no" marginheight="0" marginwidth="0" title="본문 배너 통계" hspace="0" vspace="0" allowtransparency="true" data-gtm-yt-inspected-1_12="true" data-gtm-yt-inspected-9656621_264="true" data-gtm-yt-inspected-55135588_83="true" style="display: block; margin: 0px; padding: 0px; font: inherit; overflow: hidden; border-width: initial; border-style: none; width: 0px; height: 0px;"></i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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