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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명령 막아낸 베를린 소녀상... 못다한 이야기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는 사람들 (1)

22.01.17 06:06l최종 업데이트 22.01.17 06:06l
베를린 미테구청의 평화의 소녀상 철거 명령을 막아내어 이름을 널리 알린 '코리아협의회'는 창립 30년이 지난 독·한 시민단체이다. 소녀상 이외에도 남북한의 정치, 사회, 문화, 분단과 통일, 국제교류, 교육, 이주민 등 광범위한 주제로 활동한다. 베를린에서 'Korea Verband'(코리아협의회)란 이름으로 살아오는 동안 못다한 이야기가 많다. 이 지면을 빌어 좀더 나은 세상을 위해 독일사회 한복판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소박하지만 야심찬 한 시민단체 이야기를 연재한다.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직 목소리를 찾지 못한 이들의 삶에 가 닿기를 희망한다.[기자말]
큰사진보기2020년 10월 13일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시민들이 거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당국의 철거명령에 항의하기 위해 미테구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2020년 10월 13일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시민들이 거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당국의 철거명령에 항의하기 위해 미테구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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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내 소녀상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영구 존치 결정이 이미 났다는데 이 엄동설한, 코로나 와중에 왜 데모는 계속 하는 거냐고 의아해하기도 한다(독일의 코로나 상황은 국내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험악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녀상은 아직도 안녕하지 않다.

설치 허가는 1년만 연장됐고(2023년 9월 28일까지), 담당공무원들과의 신경전은 간헐적으로 진행중이며, 정치인들을 설득하기 위한 로비활동과 미테구(Mitte 區) 대응을 위한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일본 측의 압력과 공격은 더욱 정교해졌다. 코리아협의회(아래 KV)와 관련 있는 기관이나 학교, 도시에 연락을 취해 협업을 방해하고, 극우들은 일본에 대한 혐오 메시지로 가득 찬 트롤(악플성) 이메일을 한국인 이름으로 담당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에게 뿌리는 등 공격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사실 2020년 베를린에 평화의 소녀상이 온 뒤로 KV는 정작 평화로울 새가 없었다. 독일에서, 그것도 공공 부지에, 조형물을 설치하려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으리라.

허가를 내주는 관청의 입장에서는 조형물 설치 후 누군가 꾸준히 조형물 관리를 해줄 수 있는지의 여부가 중요하다. 그래서 KV는 2018년, 일부러 지층으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사무실 내에 일본군 위안부 및 전시 성폭력 주제의 전시 공간을 마련하면, 건물 부근에 비슷한 주제의 조형물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조형물 설치를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동의가 필수라 하여 이사를 한 후 만반의 준비를 했다. 좁은 사무실 공간을 쪼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작은 전시를 시작했다. 또한 다양한 지역 커뮤니티 기반 행사에 참가하여 KV를 알리기 시작했다. 불고기도 굽고, 한국 록밴드와 전통무용단도 부르고, 공동체 텃밭에 깻잎까지 심으면서 주민들, 지역단체들과 친분을 쌓았다.

지역사회 동의, 전시공간 마련... 소녀상 설치 위한 노력들
 
 회원들. 코리아협의회가 회원단체로 가입한 <reunion>은 소녀상 주변지역 내 상점, 기관, 시민단체들의 연합체(Zusammenschluss der Nachbarschaft) "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image-rendering: -webkit-optimize-contrast;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reunion>
▲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서 축사를 하는 <reunion>회원들. 코리아협의회가 회원단체로 가입한 <reunion>은 소녀상 주변지역 내 상점, 기관, 시민단체들의 연합체(Zusammenschluss der Nachbarschaft)</reunion></reunion>
ⓒ ⓒDong-Ha Ch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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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공간의 첫 전시는 일본인 사진작가 츠카사 야지마의 피해생존자 연작과 이미래(kate hers RHEE)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으로, 오프닝에는 미테구청의 다양한 공무원들을 초청했다. 그 중 미테구 문화환경부 소속 공무원이 며칠 후 우리를 찾아왔다. 이에 소녀상 설치 의사가 있음을 설명하고 전시의 의미를 알렸다.

공무원은 영구 설치 허가는 대체로 쉽지 않기 때문에 도시공간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에 신청할 것, 주변에 있는 이웃들의 동의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예술위를 통한 조형물 설치제도는 기본적으로 1년 설치 허가를 받은 후, 별 문제가 없고 주민들의 반대가 없으면 계속해서 연장 신청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KV 내에 마련한 전시 공간.
▲  KV 내에 마련한 전시 공간.
ⓒ ⓒDong-Ha Ch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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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년간 문화전문가 3명의 추천서까지 추가해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신청서를 제출했다. 2019년 2월 19일에 제출한 신청서가 통과됐다는 소식을 들은 건 3월 말이었다. 예술작품을 대상으로 신청할 경우 해당 구청의 예술위에서 통과가 돼도 도로청과 녹지청의 최종 허가가 필요하다. 신청장소에 세울 수 있는 여건이 되는지 검토하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바짝 마음을 졸이고 있던 7월 초에야 최종 허가가 났다.

고르고 고른 문장으로 정리한 13쪽짜리 신청서에는 소녀상의 예술적 가치, 비슷한 주제의 동상들과의 비교, 작품의 의미와 역사적 맥락에 대한 설명이 담겼다. 하지만 신청서를 내기 전날 밤, 설치 후에는 틀림없이 일본대사관에 시달릴 공무원들한테 미안해서 밤새 잠이 안 왔다.

신청서 접수 막판에 과거 일본 정부의 소녀상 관련 행보에 대한 추가 설명을 상세히 달았다. 이 사실을 알면 설치 허가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쓴 것이다. 당시의 이 결정이 차후 소녀상 존치의 정당성을 지켜줄 줄은 몰랐다.

독일 측 답변... '일본이 왜 그렇게 개입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예술위는 우리 신청서에 대해, 소녀상이 보편적인 여성 인권과 전시 여성 성폭력을 반대하는 조형물임을 잘 밝혔다고 했다. 또한 일본정부가 왜 그렇게 개입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일단 신청단체가 이 기념비를 통해 교육사업을 하려고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선발했다고 했다.

신청서 통과 후 일본정부의 공격이 우려가 되어 미테구청에 전화를 하니,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터키정부와 티베트를 억압하는 중국을 예로 들며, 미테구청 홍보과는 벌써 훈련이 돼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를 치던 공무원도 있었다.

소녀상 설치 예정 날짜는 고 김학순 할머니가 침묵을 깨고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8월 14일이었다. 시간이 촉박하여 허가서를 받은 즉시 소녀상 설치 현장으로 달려갔더니, 별안간 도로공사 차량 하나가 멈춰 섰다.

당시 7월 27일부터 9월 7일까지 가스 파이프라인 정비를 위해 포장도로를 전부 뜯는단다. 말이 9월 7일이지, 통상 독일에서의 공사는 언제 정확히 끝날지는 점쟁이도 모르는 영역에 속한다. (다음 기사에 계속) 

[관련 기사] 
일본 외무상, 독일에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철거해달라" http://omn.kr/1p3a3
베를린 소녀상 영원히 지키기로... 지역의회, 영구설치 논의 결의 http://omn.kr/1qsof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재독 한인언론인 <교포신문>에 동시 게재됩니다. 여러분의 작은 정성이 큰 힘이 됩니다. 후원 및 회원가입 문의는 https://www.koreaverband.de/en/do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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