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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와 접촉 늘면서 젊은 세대의 의식변화 빠르게 진행

<연재> 정창현의 ‘김정은시대 북한읽기’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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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05 07:2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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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아나운서가 태블릿PC를 들고 방송하고 있다. [자료사진 - 민족21]
지난 2008년 6월 24일 오후 12시 20분 중국 베이징국제공항. 평양행 고려항공을 타기 위해 기다리는 손님들로 1번 출입구 앞은 붐비고 있었다. 무료함을 달래려는 듯 초상휘장을 단 북한의 노동자들이 디지털카메라를 꺼내 서로 사진을 찍어준다. 중동에 3년 동안 건설노동자로 파견 나갔다가 돌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면세점에서 물건을 살 때 보니 지갑에 달러가 두툼하다. 이 노동자들은 베이징공항에서 수속할 때 DVD플레이어, 벽걸이 칼라TV 등 여러 전자제품을 부쳤다.

 

전자제품 사 들고 귀국하는 해외파견 근로자


   
▲ 중국 베이징국제공항에서 해외파견을 나갔다가 돌아가는 북한의 근로자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자료사진 - 민족21]
나흘 후 평양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고려항공 비행기 안. 건너편에 앉은 3명의 북한 사람들이 자료를 꺼내놓고 열심히 뭔가를 논의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전시회를 열기 위해 가는 내각 교육성 소속의 정무원(공무원)이다. 앞좌석에 앉아 있는 북한 사람은 여성 승무원에게 뭔가를 물어보고 있다. 쿠웨이트에 파견 나가는 노동자다. 베이징공항에 도착해 짐을 찾으려고 기다리는데, 흰색저고리에 검정치마 교복을 입은 북한의 여대생 2명이 짐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2008년 당시 중국에 파견돼 일하는 북한 근로자수는 수백 명 수준이었다. 현재는 중국 동북지역에만 2만명 이상의 북한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4년 동안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중국 국가여유국(관광청) 통계에 따르면 중국을 방문한 북한인 수는 2005년 이후 10만명 선을 꾸준히 유지하다 2010년 북중정상회담 이후 큰 폭으로 늘기 시작해 2011년 15만2천명, 2012년 18만명을 기록했다.

 

올해도 6월까지 9만 9천1백 명이 중국을 방문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 늘어났다. 그중 공장이나 식당 등에서 일하기 위해 중국을 찾은 북한 사람이 4만 7천9백 명으로 전체의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 특히 2010년 5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정상회담 때 문화, 교육, 체육 등의 영역에서 청소년 교류를 강화하기로 합의한 후 지난해 중국을 찾은 15~24세 북한 청소년 수는 2009년보다 3.2배 늘어난 1만8천900명에 달했다. 중국에 유학 가는 북한 학생들 수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통상 북한 사람들이 국제사회와 단절돼 살고 있다고 선입견을 갖고 있지만 의외로 해외를 오가는 공무원, 노동자, 유학생들이 많은 셈이다. 특히 해외파견 근로자들의 수가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다. 러시아에 2만명, 쿠웨이트 4천명을 비롯해 중동 및 동남아시아에 1만명, 몽골에 1천700명 정도가 파견돼 있고, 이외에도 아프리카, 동유럽 등에 수천명 규모로 나가있다. 2010년 6월 16일 남아공 월드컵 G조 예선 북-브라질 전에 아프리카에 파견된 근로자 100여명이 북측 응원단으로 모습을 드러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해외파견 노동자들은 주로 건설과 서비스업, 가공업 등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011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했던 한 경제전문가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하는 북측 노동자가 1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들었다”며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건설사업의 50% 정도를 북측 노동자들이 담당한다”라고 말했다. 2006년에 3천명 내외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3배정도 늘어난 셈이다.


   
▲ 북한과 중국과의 직항 노선이 늘어나고 있다. 올해에는 중국 하얼빈-평양 노선에 이어 상하이와 평양을 오가는 직항 전세기가 중국인들의 북한 관광을 위해 투입됐다. [자료사진 - 민족21]
북한의 해외파견 근로자는 북중경협이 활성화되면서 앞으로 더욱 큰 폭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중국은 용정시, 훈춘시 등에 국제협력통상구를 설치하고, 여기에 북한 근로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북한과 중국이 10만명 이상의 근로자파견에 합의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해외 파견 노동자들의 월급은 지역과 업종에 따라 다르다. 통상 500~1000달러 내외로 알려져 있지만 중동 파견 노동자의 일부 직종과 중국 파견 IT인력의 경우 1만달러가 넘는 월급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몽골 파견 건설노동자의 경우 600~700 달러의 월급을 받는다. 중국 내 북한 여성근로자의 경우 평균 월급은 1500위안 정도로, 한국 돈으로 26만여 원. 임금 수준이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개성공단 노동자가 받는 평균 월급(110달러)의 갑절이 넘는다. 참고로 현재 광복지구상업중심(슈퍼마켓)의 환율은 1달러에 북한돈 6천원 내외로, 이를 적용하면 120만원이 넘는 큰 돈이다.

중국의 한 무역업자는 “과거에는 북측 파견노동자가 받은 임금 중에서 충성자금, 세금, 보험료, 숙식비 명목으로 상당한 액수가 국가에 귀속됐지만 최근에는 월급의 25%정도만 국가에 내면 돼 파견노동자의 실질수입이 크게 늘었다”라고 전했다. 올해 1월 북한 근로자들이 파견돼 일하는 동북지역의 기업들을 취재한 일본의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기업관계자는 “월급은 식비와 숙소비 등의 관리비를 포함해도 1인당 2천위안(약 34만 원)이 안 되며, 중국인 근로자보다 몇백 위안은 싸다. 그래도 ‘일할 때의 태도가 성실하고 매일 즐거운 듯 지낸다’라고 말했다. 이 신문은 북한 근로자가 월급의 30% 전후를 북한정부에 납부하고 있어 수령액은 매월 1천위안(약 17만 원) 정도라고 덧붙었다. 귀국하는 북한 근로자들이 칼라TV 등 다수의 전자제품을 사 갈 수 있는 이유다. 북한 근로자들은 이러한 전자제품을 북한 내부 시장에 팔 경우 큰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학생 수도 크게 늘어

 

   
▲ 중국 베이징국제공항에서 짐을 찾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북한의 유학생. [자료사진 - 민족21]
중국, 유럽 등지에서 공부하는 북한 유학생들도 크게 늘고 있다. 중국 유학생의 경우 2011년 기준으로 2010년보다 2배 이상 늘어 동북 3성에만 2천여명이 유학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은 동유럽 사회주의국가들이 붕괴한 후 유럽으로 유학생을 파견하는 일이 뜸했으나 2009년 이후 유학생을 늘리기 시작해 2011년 30명 정도가 유럽국가에서 유학 중이었다. 지역별로는 러시아의 모스크바, 폴란드 바르샤바 등 구 사회주의권 국가를 비롯해 북한 대사관이나 대표부가 있는 프랑스 파리, 스위스 제네바, 독일 베를린 등에 집중 파견돼 있다. 과학기술의 수준이 상당한 스웨덴도 북한 유학생의 선호지역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도 지난해 교수 2명과 학생 1명 등 3명의 북한 유학생이 체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과 캐나다 등 자본주의 국가에서 북과의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대학들이 늘어나면서 북한의 대학교수들도 자본주의 국가로 유학.연수를 다녀오고 있다. 2010년에는 김일성종합대학과 정준택인민경제대학의 거시 경제.조세.국제 통상.금융 통상 분야 교수 여섯 명이 캐나다의 명문 대학인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UBC)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밟기도 했다. 이들은 국제 경영, 국제 경제, 재정, 무역 등을 공부했다.

 

해외유학생들은 북한 내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의 지휘로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합동공연을 한 은하수관현악단의 단원들이 대표적 사례다. 100여명으로 조직된 은하수관현악단의 가수와 연주자들은 대부분 이탈리아와 프랑스, 중국 등에서 전문 예술을 전공한 연주자들로, 독창가수인 황은미는 이탈리아에 있는 산타 세실리아 국립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국제성악콩쿠르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또 성악가 리향숙과 백미영, 그리고 바이올린 연주자 문경진 등도 모두 해외 유학과 국제대회 수상 경험을 갖고 있다.

주목되는 평양과기대 교육과정

 

   
▲ 평양과학기술대는 평양시 락랑구역 승리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100만㎡의 부지에 제1단계 건물로서 본관동과 학사동, 종합생활동 등 17개 동의 교육시설과 국제수준의 화상세미나실, 영상강의실 등을 갖추고 있다. [자료사진 - 민족21]
선진 과학기술을 습득한다는 측면에서 더욱 주목되는 것은 2010년 10월에 개교한 평양과학기술대학이다. 이 대학은 2001년 남측의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과 북 교육성의 합의로 평양시 낙랑구역 보성리 승리동의 100만㎡의 부지에 착공해 2009년 9월 완공됐다. 현재 평양과기대는 농업생명과학부와 전기콤퓨터공학부, 국제금융경영학부 등 3개 학과로 구성돼 있고, 미국과 영국, 독일, 중국, 네덜란드 국적의 교수 47명이 강의를 담당하고 있다. 첫해에는 학부 100명과, 대학원 60명이 입학했고, 2011년에는 추가로 석사 과정의 신입생 100명이 입학했다. 이들은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대학 등에서 2~3학년에 재학하다 편입한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최고 인기학과는 컴퓨터공학과. 평양과기대 관계자는 “북한에서 최근 서류 전산화 작업과 CNC(컴퓨터수치제어) 등 컴퓨터 관련 기술이 강조되면서 첫 입학생 가운데 60%가량이 전기 컴퓨터 공학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그는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국제금융과 경영에는 관심이 매우 적었고 농업생명과학부에서는 벼 품종개발 등 농업 연구에 관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모든 강의는 영어로 진행되며, 학생들의 영어 실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이 대학 박찬모 명예총장은 “평양과기대 재학생들은 이론적인 것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것을 많이 배워서 자기 지식을 산업화하고 상업화해서, 경제발전에 이바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미국 국적의 교수도 “대학원 재학생들은 원래 김일성 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대학 등 북한의 명문대 출신으로 모두 뛰어난 학생들이지만, 미래에 대한 준비에 재학생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쟁도 작용해 매 강의마다 집중해서 듣고 학구열에 불타는 분위기”라고 소개했다.

평양과기대는 해외에 유학을 나가지 않고도 평양의 대학생들이 세계의 선진기술을 배울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해 주고 있다. 특히 평양과기대 학생들은 인터넷을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하며 외국문화를 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문화와 사고방식 변화 중

 

   
▲ 2010년 북에서 생산한 ‘휴대용 다매체 전람기’(PDA)의 첫 화면. [자료사진 - 민족21]
해외 파견, 교류, 유학 등을 통해 해외문화를 접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북한의 문화와 사고방식에서도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평양 거리 곳곳에서 휴대전화 통화를 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보여 놀랐다. 북한은 지난 12년보다 최근 1년 반 동안 더 많이 변했다. 앞으로 북한을 이끌어 갈 신세대는 대부분 해외 유학 경험이 있고, 컴퓨터 등 통신기기에 익숙하다.”
지난 1997년부터 의료봉사를 위해 23차례 평양을 방문했던 인요한(미국명 존 린튼) 연세대 국제진료센터 소장이 2011년 12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2011년 5월 4박5일 동안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그 역시 북한 내부에 부는 변화의 바람에 놀라움을 표시한 것이다.

 

최근에는 아이패드를 사 가지고 가는 북한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비록 인터넷은 사용할 수 없지만. 2010년 말부터는 어른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크기에 칼라 액정화면의 PDA가 평양의 컴퓨터 상점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 제품은 러시아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화면 위쪽에 ‘주체 99년’, ‘유희’, ‘비데오(비디오)’, ‘조선지도’라는 특유의 표현이 적혀 있어 한눈에 북한 단말기임을 알 수가 있다. 북한은 이 단말기를 ‘휴대용 다매체 전람기’라고 부른다. 이 단말기는 음악과 영화를 넣어 다니면서 즐길 수 있고, 북한지도에는 지역 이름과 철도, 도로 위치 등이 비교적 상세히 나와 있다. 또 전자사전은 영어와 중국어, 러시아어 등을 북한 말로 바꿔주는 번역 기능과 자체 북한 말 검색 기능을 함께 사용하게 돼 있다.

북한에서 자체 생산된 판형콤퓨터(태블릿PC)도 젊은층 사이에서 최근 인기상품으로 등장했다. 북한은 2~3년 전부터 태블릿PC 제작을 본격화해 현재 삼지연과 아리랑, ‘아침’ 등 3가지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북한에서 생산되는 태블릿PC는 주로 학생들의 학습과 일반인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 TV는 “판형컴퓨터에는 6개 나라 다국어사전을 비롯하여 정보기술용어사전, 조선말사전, 그리고 중소학교 학생들을 위한 교재와 참고서들이 들어 있어서 교과서를 따로 지참하지 않고 다녀도 가지고 다니면서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최신 정보기술 제품입니다”라고 태블릿PC를 소개했다.

‘삼지연’의 경우 7인치 화면을 탑재했으며 해상도는 1024X768 픽셀이고, 운영체제(OS)는 안드로이드 4.0 아이스크림이며 8GB와 16GB 모델이 있다. 가격은 구글의 최신 버전 태블릿인 넥서스7보다 싼 200달러 정도. 물론 국제 인터넷망에 연결은 되지 않는다.

중국 패션 평양에 상륙

 

   
▲ 북한에서 판매되고 있는 휴대전화 모델들. [자료사진 - 민족21]
휴대전화 보급대수가 200만대를 넘어서면서 이제 북한의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음성 및 문자메시지(SMS) 이용이 일반화되고 있다.
“설날 아침이었어요. 신호음이 울리기에 전화를 들었더니 손전화 화면에 ‘선생님! 새해를 축하합니다. 희망찬 새해를 맞으며 선생님과 온 가정의 건강을 바랍니다. 새해에는 선생님의 당부를 잊지 않고 제가 맡은 CNC화 연구과제를 꼭 성공하겠습니다. 철수 올림’이라는 글이 올라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북한의 주간 《통일신보》와 인터뷰에서 지난해 한덕수평양경공업대학 김순영 교원이 한 말이다. 평양에서도 글쪽지(문자메시지) 문화가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북한의 젊은 세대가 빠르게 디지털문화에 적응해 가고 있는 셈이다.

특히 평양에서 북중합작으로 ‘광복지구상업중심’(슈퍼마켓)가 들어서고, 중국의 각종 제품들이 평양의 시장과 상점에서 팔리면서 길거리의 여성들의 헤어스타일이나 복장 등에서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을 찾는 중국여행객들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지난해 중국 훈춘시에서 라선시까지 자가용을 이용한 관광길이 열렸고, 라선시에서 금강산까지 관광하는 뱃길도 열렸다. 올해에는 중국 하얼빈~평양 노선에 이어 상하이와 평양을 오가는 직항 전세기가 중국인들의 북한 관광을 위해 투입됐다. 2012년 북한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 수는 약 5만~6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90년대부터 시장경제 교육

 

   
▲ 평양에 등장한 패스트푸드점의 모습. 이용하는 북한 주민들이 많아 분점이 6개나 생겼다. [자료사진 - 민족21]
2000년대 들어 북한이 자본주의국가와 소통하면서 나타난 이같은 현상들은 다시 북한의 대외정책에 영향을 미쳐 대외교류에 더욱 적극 나서는 방향으로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북한이 본격적으로 자본주의에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한 시점은 대체로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1990년대 중반 이후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 1997년 유엔개발계획(UNDP)의 지원아래 경제관료 15명을 중국 상하이에 파견한 이후 200여명에 이르는 관료를 미국, 호주, 태국, 싱가포르, 헝가리 등지에 보내 시장경제에 관한 교육을 시켰다. 또 내각 무역성 산하에 자본주의제도연구원을 설치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본주의 생존방식과 대기업의 관리능력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따른 조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8년 10월 자강도 희천시의 압록강타이어공장을 시찰하면서 “모든 나라들이 자본주의 무역을 하고 있는 조건에 맞게 기업소 경영 관리를 사회주의원칙에 기초하고 무역은 자본주의 나라들과 상대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북한은 2003년 10월에 환경, 유기농업, 에너지, IT 등 과학기술분야에서 국제 협력을 도모하고 선진 기술을 받아들이기 위해 평양국제새기술경제정보쎈터(PIINTEC)를 조직해 해외교류에 나서기 시작했다. 특히 북한은 ‘주체과학’을 내세우면서도 선진 과학기술 도입을 강조했다.

북한의 계간 학술지 《정치법률연구》(2008년 2호)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다른 나라에서 이미 연구한 과학기술을 자체로 다시 연구하느라 10년, 20년씩 어물거리다가 오히려 과학기술이 뒤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고, “과학기술을 주체적으로 발전시키라는 것은 과학기술 분야에 사대주의와 교조주의를 반대하라는 것이지 결코 다른 나라의 발전된 과학기술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여러 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과학기술 교류사업을 활발히 벌이고 최신 과학기술 분야에서 앞선 나라들과 합영, 합작도 널리 조직해야 한다”며 비교적 구체적으로 선진 과학기술 수용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에 김정은시대를 이끌 경제대표단 파견

 

   
▲ 2011년 3월 19일부터 미국을 방문한 북한 경제대표단 일행이 4월 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앞에서 세미나가 끝난 뒤 대학 내 대북 전문가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제안보협력센터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맨 윗줄 왼쪽 끝),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첫째줄 왼쪽에서 다섯번째) 등이 참석했다. [자료사진 - 민족21]
이러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노선은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후계자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후 더욱 구체화됐다. 2011년 3월 15박16일 동안 북한의 경제대표단이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오가며 미국의 첨단 자본주의 시스템을 둘러본 것이 대표적 사례다.

 

내각 무역성 무역지도국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경제대표단은 미국 대학 교수들의 강의 수강과 산업 현장 답사를 병행했다. 북한 대표단은 강의보다 미국 산업 현장 답사에 더 비중을 둬 주제별로 다양한 산업 현장을 찾았다. 방문 초기 LA지역에선 주택관리용품을 판매하는 홈디포(Home Depot)와 생활 양판점 타깃 등 소매업체, 관광.오락산업을 대표해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둘러봤다. 이어 미국 정보기술(IT) 산업의 대표격인 구글과 퀄컴 본사를 방문해 비즈니스 혁신 모델에 대해 논의했다.

최근 인민경제 향상을 위해 경공업분야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을 반영하듯 북한 대표단은 식품산업 분야를 가장 많이 둘러봤다. 마운틴 미도 버섯농장, 카탈리나 시푸드, 클래밀 매뉴팩처링 코퍼레이션(식품가공회사), 캘리포니아 데이비스시 인근의 대형 쌀 농장 등이다. 이밖에도 LA 항구(무역 인프라), 셈프라 에너지(전력산업), 블룸버그통신(언론산업), 블루밍데일(백화점 소매업), 씨티그룹.유니언 뱅크(금융산업) 본사를 찾아 현장 강의를 들었다.

북한 경제대표단은 특히 “북과 미국이 현재 정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상거래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하며 북미 간 무역의 확대, 미국 기업의 대북투자 등에 관심을 표명해 주목을 받았다. 김정은시대 경제정책을 이끌어갈 차세대 경제 당 간부와 관료가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부를 들여다보고 미국과의 경제교류를 강조하며 북한이 국제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전달한 셈이다.

예상대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해 4월 제4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은시대를 공식 출범시키면서 대외 교류확대를 언급했다. 그는 한달 뒤인 5월 8일 평양에서 열린 국토관리총동원운동열성자대회 참가자들에게 전달한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의 요구에 맞게 국토관리사업에서 혁명적 전환을 가져올 데 대하여>란 문헌에서도 대외교류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다른 나라들, 국제기구들과의 과학기술교류사업도 활발히 벌려야 합니다. 국토관리와 환경보호부문에도 세계적인 발전추세와 다른 나라들의 선진적이고 발전된 기술들을 받아들일 것이 많습니다. 내가 이미 말하였지만 인터네트를 통하여 세계적인 추세자료들, 다른 나라의 선진적이고 발전된 과학기술자료들을 많이 보게 하고 대표단을 다른 나라에 보내여 필요한 것들을 많이 배우고 자료도 수집해오게 하여야 합니다.”

인터넷을 통한 선진 과학기술자료 입수를 언급한 대목이 눈에 띈다. 북한이 과거보다 더 적극적으로 문호를 열고 자본주의국가와 교류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북한이 ‘세계적 추세’와 ‘선진 과학기술’을 수용하기 위해서든, 해외 파견 근로자를 늘여 외화수입을 늘리기 위해서든 북한 주민들의 해외접촉과 교류가 늘어날수록 북한의 사회와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최근 북한과 교류를 넓혀가고 있는 몽골의 차히야 엘벡도르지 대통령도 2011년 6월 미국 의회에서 한 연설에서 “몽골은 북한과 대사관 개설을 포함해 정부간 교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라며 “교류를 위해 몽골에 오는 북한인들은 현재와 다른 생존 방식과 정부 형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 중국관광객들이 라진항에서 금강산으로 가는 배를 타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최근 북한을 찾는 중국관광객이 연 5만명을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남북 간의 금강산관광은 중단된 지 오래다. [자료사진 - 민족21]
한가지 아쉬운 것은 북한이 적극적으로 국제사회에 나오려고 하는데, 남북관계는 꽉 막혀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2002년 ‘경제고찰단’ 을 파견해 “눈이 두 개밖에 없어 더 많이 볼 수 없는 게 안타깝습니다”라며 남측의 주요 시설과 공장 등을 꼼꼼히 시찰한 것에 비하면 막말만 오가는 현재 남북관계가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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