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
중국 춘절(설 명절·2월1일)에 맞춰 국가체육장(국립경기장)에 큼지막한 ‘복’(福) 자를 새기는 것으로 시작된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개막식은 이날이 입춘인 점을 고려해 24절기로 카운트다운을 하는 등 중국적인 색채를 드러냈다. 총연출을 맡은 장이머우 영화감독은 1만1600㎡에 달하는 무대를 에이치디 엘이디(HD LED) 스크린으로 꾸며 짧지만 강렬한 개막식을 선보였다.
도쿄올림픽이 팬데믹 시대 치러진 초유의 올림픽이었다면, 이날 개막한 겨울올림픽은 정치 논란까지 더해져 21세기 들어 가장 논쟁적인 올림픽으로 떠올랐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등 14개국의 외교적 보이콧이 이어졌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 무력 충돌 가능성은 올림픽 기본 정신인 평화마저 위협하고 있다. 강력한 방역대책 아래 코로나19를 통제하고 있다지만, 전염성 강한 새 변이 오미크론 확산은 언제 터질지 모를 화약고나 다름없다.
암울한 상황에도 변함없이 빛나는 건 스포츠에 대한 열망이다. 여러 논란 속에서도, 올림픽을 위해 선수들이 흘린 땀과 열정은 그대로였다. 이들은 갈등과 대립을 넘어, 도쿄에서 보여줬던 감동을 또 한번 전하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쳐 있다. 물론 상황을 낙관하긴 어렵다. 이번 올림픽은 어떻게 막을 내리든 정치적 입장에 따라 완전히 상반된 평가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하나의 대회에서, 보이콧을 중심으로 두개의 갈라진 세계가 충돌하는 셈이다. 그러나 한쪽에선 선수들이 보여줄 스포츠 정신으로 위기의 시대 우리가 되찾아야 할 가치를 보여주리란 희망도 조심스레 피어난다.
4일부터 17일간 91개국 5천여명 열전…한국은 이상호, 최민정, 팀킴 등에 기대
중국 입장에선 이번 대회가 각별하다. 베이징은 이번 대회를 열며 세계 최초로 여름올림픽과 겨울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도시가 됐다. 아시아에서 3번 연속(평창·도쿄·베이징) 열리는 올림픽의 마무리이자, 겨울올림픽-아시안게임-월드컵이 잇달아 열리는 스포츠의 해 2022년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특히 중국은 오는 9월 항저우아시안게임도 개최한다.
2008년, 중국은 베이징여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며 국제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14년 만에 계절만 바꿔 돌아온 올림픽에서 이들은 중국의 달라진 위상을 과시하고, 중국이 만들어갈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겠다는 의욕으로 가득 차 있다. 이날 개막식은 이런 ‘중국몽’을 담은 한 편의 종합예술이었다. 2008년 개막식 총감독을 맡아 극찬을 받았던 장이머우 감독이 다시 한번 기획한 이번 개막식은 환경 보호와 과학 기술을 융합해 자연·인문·스포츠가 하나로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굴뚝의 나라’에서 벗어나, 친환경 첨단 기술을 선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강력한 방역대책에선 중국이 추구하는 새로운 질서를 엿볼 수 있다. 중국은 그동안 다른 나라의 ‘위드 코로나’ 정책을 비판하며 사회적 통제를 더욱 강화하는 ‘제로 코로나’ 정책을 펼쳐왔다. 이번 대회에서도 중국은 이른바 ‘폐쇄 루프’ 시스템을 통해 대회 참가자와 중국 일반인을 완전히 분리하는 강력한 조처를 실시했다. ‘중국식 방역’을 통해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 체제의 우수함을 증명하겠다는 심산이다.
폐쇄 루프는 일견 성공적이다. 특히 ‘버블 방역’을 공언했지만, 개막 전부터 거품처럼 방역 체계가 무너졌던 도쿄올림픽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다만 불안 요소는 여전하다. 전염성 강한 오미크론이 골칫덩이다. 실제 이번 대회 코로나19 확진자 증가세는 가파르다. 한국 선수단 본진이 입국한 1월31일 기준 대회 누적 확진자는 248명(1월4일부터 추산)이었는데, 개막 직전까지 3주 동안 121명이 확진 판정을 받은 도쿄올림픽보다 이미 두배 이상 많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살얼음판 위를 걷는 모양새다.
세계 첫 여름·겨울대회 모두 연 도시…인권탄압 문제로 ‘외교적 보이콧’ 속앓이도
정치 갈등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티베트·위구르 문제와 중국 내 인권 탄압 등을 이유로 미국 등이 외교적 보이콧을 주도했고, 14개 나라가 공식·비공식으로 이에 동참했다. 베이징겨울올림픽 개막식에 정상이 직접 참석한 나라는 러시아, 파키스탄, 폴란드, 몽골 등 20여개 나라뿐이다.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한 중국은 코로나19를 이유로 대회에 참석할 만한 일부 정상만을 초청하는 등 외교적 보이콧을 무마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2008년 티베트 관련 논란에도 불구하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등 100여개 나라 정상이 참석했던 베이징여름올림픽 개막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대회 시작이 되고 말았다.
이번 베이징 대회는 올림픽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도 촉발하고 있다. 먼저 정치적 책임에 대한 비판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곤 있지만, 실제론 개최국 정권을 돕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8 베이징여름올림픽 유치 때 중국은 “올림픽이 중국 인권 현실을 개선할 것”이라며 국제사회에 읍소했다. 하지만 이후 중국은 성장하는 시민사회와 노동운동 등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며 역행했다. 반면 당시 부주석이었던 시진핑(69) 주석은 2008년 베이징 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아 성공적으로 대회를 치렀고, 이 성과를 바탕으로 주석 자리에 올랐다. 시진핑 주석은 올가을(10월) 열릴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3선에 도전하는데, 겨울올림픽 성공이 그 발판이 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올림픽이 초국적 기업의 포로가 됐다는 비판도 이번 대회 들어 특히 거세졌다. 올림픽이 스포츠 정신이 아닌 대형 방송사와 다국적 자본의 이익에만 복무한다는 지적이다. 이번 베이징 대회에선 각종 인권 문제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돈줄’ 중국 시장 눈치를 보느라 대회 후원을 철회하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어느 때보다 크다. 후원사들은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국내외 반대가 심했던 도쿄올림픽에 이어 베이징 대회에서도 적극적인 마케팅을 피하고 있다.
중국 테니스 스타 펑솨이(36)의 폭로와 실종, 그리고 번복은 상징적인 장면이다. 펑솨이는 지난해 11월 웨이보를 통해 장가오리(76) 전 부총리에게 지속적인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글은 몇분 만에 사라졌고, 펑솨이도 자취를 감췄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지금은 조용한 외교가 필요하다”며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 이후 토마스 바흐 위원장은 펑솨이와 화상 통화 장면을 공개하며 “그는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펑솨이는 자신의 폭로를 부정했다. 그들이 말한 조용한 외교가 결국 문제 제기를 무마하는 것이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뉴욕 타임스>는 “바흐 위원장은 조직 수입의 91%를 차지하는 올림픽을 위험에 빠뜨릴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정치·경제적으로 올림픽 이용’ 논란 속에도 한계와 차별 넘는 스포츠 감동 예고
끝이 안 보이는 팬데믹, 갈수록 심해지는 정치 갈등, 그리고 올림픽의 변질까지.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스포츠다. 흔들리던 도쿄올림픽을 선수들이 바로 끌고 갔듯, 이번에도 선수들의 열정과 투혼이 올림픽 정신을 구현하고 코로나19에 지친 세계를 위로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다.
한국 선수단 초반 기세를 책임질 쇼트트랙 대표팀은 1월30일 베이징에 입국해 빙판 위 금빛 질주를 준비하고 있다. 대표팀은 “쇼트트랙은 역시 한국”이라는 평가를 받겠다며 자신감을 보인다. 승부처는 이번 대회에서 첫선을 보이는 혼성계주 2000m. 5일 열리는 이 경기에서 쇼트트랙 첫 메달이 나오는 만큼, 반드시 금메달을 따내겠다는 각오다. 도쿄올림픽 때도 한국은 양궁에서 김제덕-안산 짝이 혼성단체전에서 첫 금메달을 목에 걸며 선수단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최고 기대주는 대표팀 에이스 최민정(24)이다. 2018 평창겨울올림픽 2관왕(1500m, 3000m 계주) 최민정은 올림픽을 앞두고 부상 악재 등을 겪었지만, 여전히 세계랭킹 7위로 건재하다. 이번 대회에선 평창을 뛰어넘는 성과를 노리고 있다. 평창 은메달리스트(500m) 황대헌(23)도 주목할 만하다. 황대헌은 1000m 세계기록(1분20초875) 보유자로, 아시아 선수가 취약했던 500m 금메달도 노릴 수 있는 선수다. 한국은 그동안 겨울올림픽에서 31개의 금메달을 땄는데, 이 가운데 24개가 쇼트트랙에서 나왔다.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2개 이상 추가하면, 양궁(25개)을 다시 제칠 수 있다.
루지 대표팀의 투혼도 눈에 띈다. 루지 국가대표 임남규(33)는 약 한달 전 정강이뼈가 드러날 정도로 심하게 다쳐 한국에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올림픽이 간절했던 그는 3일 만에 다시 출국해 붕대를 감고 대회를 치렀다. 썰매 위에 똑바로 누워 슬로프를 내려오는 루지는, 직접 코스를 볼 수 없는데다 최고 속도가 시속 150㎞에 달해 ‘공포의 썰매’라고 불린다. 정강이를 다친 그에겐 다리를 아래쪽으로 내밀고 썰매에 몸을 맡기는 일 자체가 고역이었지만, 그는 공포와 속도 모두 이겨내고 결국 올림픽 3회 연속 출전권을 따냈다.
2018년 평창 대회 때 귀화한 루지 국가대표 아일린 프리쉐(30)도 부상을 딛고 올림픽에 도전한다. 프리쉐는 2019년 대회 도중 양손이 부러지고 꼬리뼈가 골절됐다. 끔찍한 부상에 신체적·정신적 고통으로 신음했지만, 그는 3년 만에 역경을 이겨내고 당당하게 출전권을 획득했다. 올림픽에 대한 열망이 이끈 기적이었다. 평창 대회 귀화 선수들 대부분이 자기 나라로 돌아간 지금도 한국을 지키는 그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손톱에 태극기 네일아트를 하며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평창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각 종목 첫 메달을 선사했던 이들도 베이징에서 다시 한번 기적 같은 드라마에 도전한다. 평창 때 아시아 최초 올림픽 스노보드 메달리스트에 오른 ‘배추 보이’ 이상호(27)는 이번 시즌 월드컵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로 선전했다. 현재 세계랭킹 1위(360점)로, 2위 독일 슈테판 바우마이스터(290점)보다 70점을 앞선다. 이상호는 “하던 대로만 한다면, 금메달이 충분히 가능하다”며 이번엔 아시아 최초 스노보드 금메달을 노린다.
“영미!”로 세계를 달궜던 컬링 대표팀 ‘팀 킴’도 같은 멤버로 올림픽 도전에 나선다. ‘안경 선배’로 불렸던 주장 김은정(32)은 “코로나19로 경험해보지 못한 훈련 환경과 대회 취소와 개최 번복 등 적응하기 어려운 변수들이 우리를 힘들게 했지만 2연속 올림픽 출전이라는 목표를 꺾을 순 없었다”며 “코로나19로 많이 힘든 국민 여러분께 조금이나마 위로와 기쁨을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국외에선 자메이카 봅슬레이 대표팀이 주목할 만하다. 자메이카 대표팀은 1988년 캘거리겨울올림픽 도전 과정을 담은 영화 <쿨 러닝>으로도 유명하다. 열대 기후로 눈이 내리지 않는 나라인 자메이카에서 온 이들은 1998년 나가노겨울올림픽 이후 24년 만에 다시 올림픽 트랙에 오른다. 이번 대회에선 남자 4인승·2인승과 여자 1인승(모노봅) 등 역대 최다 종목 출전권을 따냈다.
과정은 험난했다. 특히 코로나19 때문에 전지훈련을 갈 수 없는 게 문제였다. 봅슬레이 트랙이 사시사철 운영되는 곳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썰매 대신 길거리에서 자동차를 밀어가며 훈련에 매진했고, 끝내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자메이카 대표팀 션웨인 스티븐스(32)는 “이 모든 도전은 우리의 영광, 명예, 재산을 위한 게 아니”라며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하지 않는 일에 도전하고 장벽을 깨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선 역시 겨울이 없는 나라인 아이티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겨울올림픽에 처음 선수를 파견한다.
중국 스키 국가대표 아일린 구(19)가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도 관심사다. 아일린 구는 프리스타일 스키 하프파이프 최고 기대주로, 18살에 여자 선수 최초로 4회전 기술인 더블콕 1440을 성공한 타고난 스키 천재다. 구는 올 시즌 두차례 월드컵에서 하프파이프를 모두 석권하기도 했는데, 이번 대회에선 주 종목 하프파이프는 물론 빅에어와 슬로프스타일 금메달도 노린다.
스키 실력만으로도 이번 대회 최고 기대주로 꼽히지만, 구는 국적 문제로도 많은 주목을 받는다. 그가 미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200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구는 2019년까지 미국 국가대표로 대회에 나섰다. 하지만 그해 6월 “앞으로 중국을 위해 뛰겠다. 엄마가 태어난 곳의 젊은이들, 특히 어린 소녀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이 결정 때문에 살해 협박까지 받았다. 그는 “미국에 있을 땐 미국인, 중국에 있을 땐 중국인”이라며 국적 문제에 자신을 가두기를 거부하고 있다. 스포츠 선수, 그 자체로만 봐달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베이징겨울올림픽은 향후 올림픽이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 이정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여름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라는 기존 올림픽 슬로건에 “다 함께”가 더해졌지만, 이번 올림픽은 준비 기간 내내 오히려 더욱 분열된 세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더욱이 갈수록 올림픽 개최 희망국이 줄어들고 있어, 향후 올림픽이 더욱 정치화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고도 대회를 치러줄 나라가 필요한 국제올림픽위원회와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세력 사이에 이해가 맞닿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초국적 기업 문제도 여전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올림픽을 통해 희망을 찾는 건, 스포츠가 결코 극소수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빙판 위 칼날처럼 서 있는 쇼트트랙 선수들의 시원한 질주, 온몸으로 몇배의 중력을 받아내며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썰매의 속도, 세상 어떤 아름다움도 표현해낼 수 있을 듯한 피겨스케이팅의 연기…. 91개 나라 약 5천명이 7개 종목에서 17일간 벌일 이번 여정이 선사할 감동은 결코 정치나 경제 논리만으론 설명할 수 없다. 뜨거운 열정, 단단한 연대, 승패를 넘어선 우정까지. 여전히 이곳에서, 우리가 나아갈 미래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전세계는 올림픽을 통해 여러 한계를 넘어왔다. 올림픽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었다. 이제는 국적이 아닌 선수들이 보인 눈물에 열광한다. 메달 개수가 아닌 최선을 다하는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차이에 차별로 답하는 대신, 각자의 특별함으로 여긴다. 이런 변화는 올림픽을 통해 확인됐고, 올림픽을 통해 다시 그 변화의 폭을 더욱 넓히고 있다. 그렇게 조금씩 진정한 스포츠와 올림픽 정신에 가까워졌다.
이번 대회는 단순한 나라 간 경쟁이나 선수들 사이 경쟁이 아닌, 스포츠와 이를 왜곡하는 자본의 욕망이 맞부딪히는 장일지도 모른다. 모든 굴곡을 넘어, 세계가 진정한 올림픽 정신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까.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베이징/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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