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작성했으나, 내부 사정으로 보도하지 못했다. 지난해 내가 <뉴스타파> 한상진, 심인보 기자와 함께 펴낸 <윤석열과 검찰개혁>(1부 '부풀려진 영웅신화')에는 당시 인터뷰 내용이 담겼다.
윤석열 검찰의 이상징후
2019년 조국 수사는 '윤석열 검찰'의 이상 징후였다. 장관 인사청문회 전 군사작전처럼 전개된 대규모 압수수색. 괴이하고 미심쩍은 일이었지만, 사모펀드를 비롯한 갖가지 혐의가 워낙 무거워 보여 섣불리 판단할 수 없었다. '강직한 검사' 윤석열에 대한 믿음이 한 가닥 남아 있을 때였다.
곧 정경심씨 전격 기소의 명분인 공소시효 만료 논리가 엉터리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재판이 시작된 후 검찰이 이중기소, 즉 표창장 위조 시점/방식을 바꾸어 새 공소장을 제출하는 걸 보고 나는 거의 확신했다. 명백한 검찰권 남용임을.
이는 조국 전 장관 부부의 혐의와는 별개 문제였다. 권력형 비리도 아닌 과거의 개인 비리를 그토록 다급하고도 요란하게, 그토록 거칠고도 집요하게 파헤친 의도와 먼지떨이 수사방식에 대해서는 그간 많은 비판이 제기됐으니 생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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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과 조국 민정수석 "화기애애"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과 조국 민정수석이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리는 임명장 수여식 전 차담회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19.7.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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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역대급 검찰주의자로 꼽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2011년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가 대검 중수부 폐지를 결정하자 부산저축은행 비리를 수사하던 중수부 검사들이 집단 반발했다. 이들은 수사를 중단하고 피의자들을 돌려보내는 방식으로 항의를 표출했다. 그 중심에 선 검사가 바로 윤석열 중수2과장이었다. 당시 그의 직속상관은 우병우 수사기획관이었다.
2012년 검찰총장과 중수부장이 충돌하는 '검란(檢亂)'이 벌어졌다. 한상대 총장이 중수부 폐지 방침에 반발한 최재경 중수부장에 대해 감찰을 지시한 게 발단이었다. 검찰 2인자인 채동욱 대검 차장을 비롯한 특수통 검사들이 중수부장 편을 들며 총장을 압박해 끝내 물러나게 했다. 그때 앞장선 검사 중 한 명이 윤석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이었다.
윤 후보는 좋게 말하면 승부사 기질이 있다. 승부사는 결정적인 국면에서 자신을 내던진다. 운명에 대한 도박이다. 성공하면 영웅이요, 실패하면 이단아다. 그 점에서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수사 때 평검사인 그가 사표를 품고 검찰총장을 찾아가 정몽구 회장 구속을 이끌어냈다는 일화와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때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수사 외압을 폭로한 것은 일맥상통한다.
조국 수사도 일종의 승부수였다. 여권의 공격은 그를 반대쪽 사람들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야당 대선후보의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검찰개혁과 적폐 수사에 짓눌렸던 검사들은 그 수사를 기점으로 똘똘 뭉치며 반격에 나섰다. 윤석열 사단 인사 독식에 대한 검찰 안팎의 비난도 잦아들었다.
그에게 검찰은 절대선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조직을 건드리면 참지 못한다. 물러서는 게 아니라 외려 더 세게 나아간다. 그것이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조국 수사를 그렇게 펼칠 게 아닌데, (여권에서) 조국 수사를 너무 많이 공격했지"라는 김건희씨의 녹취록 발언도 참고할 만하다.
검찰청 앞 촛불시위를 촉발한 조국 수사 이후 아예 청와대를 직접 겨냥한 수사를 벌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직자 감찰을 제대로 했는지 확인하겠다며 민정수석실을 압수수색하고,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했다면서 전 정무수석 등 13명을 기소하면서 공소장에 대통령을 30여 차례 언급했다.
윤석열이 대통령 되려는 이유?
윤 후보가 내놓은 사법개혁 공약의 핵심은 검찰권 강화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속셈은 따로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검찰개혁을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공약만 해도 그렇다. 수사지휘권과 수사 독립성은 별개다. 정권과 검찰이 한 통속이던 시절, 대통령은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검찰을 관리하고 통제했다. 굳이 서면으로 공식 수사지휘권을 행사할 필요가 없었다. 개인적 한풀이가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도 있다. 총장 재임 중 그와 그의 처가, 측근 검사들이 연루된 사건들에 대해 추미애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일을 떠올리게 하니 말이다.
2020년 하반기 현직 총장의 대선 출마 여부가 화제일 때 나는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윤 총장이 대통령이 되려는 이유 중 하나가 '윤석열 사단 구제'라고. 정권을 겨냥한 수사를 벌였다가 인사보복을 당했다는 검사들 말이다.
그때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공감한다. '독립투사' 한동훈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하겠다는 구상을 윤 후보가 공개적으로 밝히는 걸 보고서다. 아마도 한 검사는 그 자리를 연임한 뒤 총장에 올라 정권과 운명을 같이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문재인 정부에서 '핍박받은' 검사들은 중용되고, '친정권'으로 분류됐던 검사들은 학살당할 것이다. 그렇게 검찰공화국의 정의가 실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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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2022.1.27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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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 전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은 대군을 이끌고 침략한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한시를 지어 보냈다. <삼국사기>에 실린 '여수장우중문(與隋將于仲文詩)'이라는 시다.
귀신같은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신책구천문(神策究天文)]<br />오묘한 꾀는 땅의 이치를 깨우쳤네 [묘산궁지리(妙算窮地理)]<br />싸움에서 이긴 공이 이미 높으니 [전승공기고(戰勝功旣高)]<br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이르노라 [지족원운지(知足願云止)]
민주당 심판도, 정권교체도 좋다. 그것이 민심이고 시대정신이라면. 하지만 검찰공화국은 아니다. 한때 그와 인연을 맺었던 '쓰는 놈'의 소박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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