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여론조사 기관이 모여 이룬 조사협회와 조사학회는 조사방법을 개선하기 위해 꾸준히 논의하고 있지만 대중에 널리 알리긴 쉽지 않다. 노력이 빛을 보고 있진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꾸준한 개선의 노력으로 표본 추출틀로 무작위 추출 전화번호(RDD)를 도입하기도 했고, 법제도적 개선을 요구해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이용하고 있기도 하다.
다수 여론조사 기관 연구자는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와의 협의를 통해 여론조사를 빙자한 불법 탈법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노력도 한다. 업계의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엔 현실적 개선 방안을 제출하는 등 노력이 상당하다. 그럼에도 선거 후 여론조사 무용론은 여전하다. 여론조사 무용론이 왜 제기되는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고민해봤다.
문제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왝더독(Wag the dog)' 현상이 여론조사에 깊이 배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가 여론을 만드는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여론조사가 내포하는 한계를 극복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또는 오히려 그 한계를 이용하는 조사가 있다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론 왜곡과 같다.
'공표용' 선거 여론조사에서 ARS 조사 제외를 검토해야
필자의 주장이 다소 과격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름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해 지난 기사의 주장을 짧게 반복해 강조하고 싶다. ARS 조사가 여의도 정치무대에 도입되던 시기부터 경험해 본 바에 따르면, 이제 국민 대상 공표용 여론조사로는 ARS 조사가 적합하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정당이나 캠프에서는 ARS 조사를 자유롭게 활용하더라도 언론에 공표하는 여론조사를 위한 방법으론 적합하지 않다는 뜻이다. 고관여 유권자의 표층 여론만을 취합하는 방식이라 '국민 여론'과는 동떨어질 때가 너무 잦고, 응답 과정에서 응답자의 성실성에만 의존할 뿐 고령자가 청년이라고 응답하든 남성이 여성이라고 응답하든 품질을 관리할 방법이 없다.
후보 단일화 조사와 같은 민감한 이슈도 그렇지만, 사실 대통령 국정수행 긍·부정 평가와 같은 문항에서도 ARS는 극단적인 응답이 많다. 4점 척도로 물었을 때에 전화여론조사에서는 '매우 긍정'보다 '어느 정도 긍정' 응답이 더 많고, '매우 부정'보다 '어느 정도 부정'이 더 많다. 그런데, ARS에서는 '매우' 긍·부정 응답이 '어느 정도'보다 더 많다. '어느 정도' 긍·부정이 각각 15%인데, 국민 30%는 대통령 국정수행을 '매우 부정'하고 다른 30%는 '매우 긍정'하고 있다는 게 이상하지 않나?
이렇게 정치 고관여자 중심의 표본추출은 사회 이슈에 대해 갈등을 증폭시키는 부정적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왝더독 현상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일부 고관여자들의 싸움이 전 국민의 여론인 것마냥 언론을 타게 돼 작은 갈등을 크게 부풀리곤 한다. 선거여론조사는 더 문제가 된다. 작은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진다. 이번 선거에서 1%P 미만의 격차가 10%P를 넘는 격차로 부풀려지기도 하는 기현상을 목도하지 않았는가.
전화 여론조사 연구자도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전화 여론조사를 수행하는 연구자들도 조심해야 할 게 많다. 지난번 기사에서 필자는 판세를 '극초박빙'이라고 표현했는데, 댓글을 단 독자 중 '다수 여론조사가 격차를 보여준다'라고 주장하신 분이 있다. 틀린 주장이 아니다. 언론을 보면 다수 여론조사가 벌어진 격차를 보여줬다. 이중엔 전화 여론조사도 있다.
전화 여론조사 연구자 중 오랜 기간 여론조사를 해온 숙련 연구원 중에서도 조사 시간대나 문항효과에 대해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문항의 문구, 단어 하나 하나로 결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의혹'이라 표현해야 할 이슈를 '특혜'라는 단어를 넣는 순간 응답자의 분노가 한쪽으로 쏠린다.
이번 대선에서 필자는 단일화 문항을 넣을 때에 단일화 대상으로 언급되지 않는 후보 지지자의 이탈이 나타날 수 있음을 알렸다. 그러나 대다수 여론조사는 단일화 문항을 끝까지 넣고 조사했다. 다음의 차트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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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BS 대선 기간 후보 지지율 추이 NBS가 발표한 후보 지지율 추이를 모았다. 마지막 조사는 표본 규모가 2천명이어서 같은 챠트에 넣지 않았으나, 이재명 40% vs. 윤석열 40%로 동률이었다. (강조된 부분은 필자) |
ⓒ NB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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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전국지표조사)가 발표한 여론조사를 모아봤다. 마지막 3월 1주 발표는 2000명 대상 조사여서 같은 차트에 넣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 조사에서는 이재명 대 윤석열이 40% 동률이었다.
위 차트 중 A구역에서 지지율이 급격히 올라간 이유는 경선 컨벤션 효과다. B구역에서 윤석열 지지율이 하락한 이유는 배우자 학·경력 의혹과 선대위 구성 난항 때문이다. C구역에서 다시 윤 지지율이 올라간 이유가 바로 윤-안 단일화 컨벤션 선행 효과다. 그 전주엔 같은 시기에 같은 기관 같은 방법 조사에서 무려 10%P 정도 윤석열의 지지율이 높았던 조사가 등장했었는데, 윤-안 단일화 문항효과라고 봐야 한다. 그 영향으로 윤 지지율은 탄력을 받고 상승했다.
마지막 D구역에서 동률이던 지지율은 9%P 격차로 벌어진다. 이런 큰 변화를 만든 원인도 단일화 문항이다. 안철수의 단일화 제안에 따라 NBS는 처음 단일화 문항을 조사에 포함시켰는데, 그로 인한 변화였다. 그리곤 다시 동률로 수렴해갔다.
위와 같이 전체 흐름을 본다면, 윤석열 당선인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컨벤션 효과 혹은 선행 효과로 인한 흐름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여성가족부 폐지' 메시지가 1월 7일, '사드 추가 배치' 메시지가 1월 30일 나왔는데, 여론조사의 지지율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여론조사는 '있는' 여론을 파악하는 데 힘써야 한다
여론조사가 '없는' 여론을 만드는 데에 몰두해서는 안 된다. 여론조사라는 방법이 어쩔 수 없이 응답 적극성이 강한 대상자를 우선 추출하는 한계를 내포하고 있을지라도 최대한 피하고 저관여자까지 추출해 정확한 여론을 조사해야 한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조원씨앤아이에서 대선 3일 전인 3월 6일 일요일에 판세 분석을 위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전체 베이스에서 0.2%P 윤석열 우세, 사전투표자와 적극 투표 의향자 중에서는 1.7%P 윤석열 우세, 사전투표자와 적극 투표 의향자의 비율을 총투표율 80%로 환산한 보정치에서는 0.2%P 이재명이 우세하다는 결론이었다. 오차범위를 고려할 것도 없이 극초박빙 판세였다.
ARS 조사이지만 모든 측면을 고려해서 극도로 조심해 시간대와 문항의 문구를 조정했다. 투표를 못 할 것 같다는 기권자의 여론도 파악해야 하니, 투표 의향 문구도 세심하게 다듬었다. 결론은 기권자 중 이재명 지지자가 다수였다는 것.
예전 미국정치학을 배울 때 날씨에 따라 투표 적극성이 달라진다는 내용을 들은 바 있다. 날씨가 궂으면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율이 달라진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측면이 강하게 작용한다. 진보성향자는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대세에서 멀어지면 투표 적극성을 잃게 된다. 보수성향자와 투표 행동에 차이를 보인다.
고관여자 중심으로 추출한 후에 '선행 지표'라고 우겨서도 안 된다. 오히려 고관여자 중 격차가 여론을 선도하는 역작용에 주목해야 한다.
당선인 직무수행 긍·부정 평가로도 여론을 분열시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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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오후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선대본부 해단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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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윤석열 당선인의 직무수행 기대감, 새 정부 출범 후엔 국정수행 평가 등 같지만 또 다른 여론조사가 진행되고 공표될 것이다. 새로운 리더십이 공고화 되기 전에 선거전에서 쏟아낸 말들로 논란이 많다.
만일 당선인의 선거 캠페인 메시지를 모두 공약으로 받아들인다면, 많은 갈등이 초래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선거는 선거고 국정은 국정이니 새롭게 비전을 만들고 세부 정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과정에서 또다시 여론조사가 작은 갈등을 극대화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문항의 문구 하나하나 결과의 파장을 고려해서 만들어야 하고, 조사 시간대와 추출틀도 세심하게 봐야 할 것이다. 극초박빙을 오차범위 밖의 격차로 부풀렸던 오류를 더 이상 범해선 안 된다.
이제 다시 시작하는 5년, 국민 통합과 민생 안정에 기여하는 여론조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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