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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밭길 ‘비정치인 대통령’ 여소야대 어떻게 돌파할까?

등록 :2022-03-12 06:59수정 :2022-03-12 09:40

 
[한겨레S]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19
윤석열 당선자 첫 시험대는?
지난 11일 서울 한 아파트 단지 앞에 내걸린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인사 펼침막. 연합뉴스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여당과 야당은 국회의원 총선거로 결정됩니다. 과반 의석 정당이나 다수 연합 참여 정당이 여당이 됩니다.대통령제 국가에서 여당과 야당은 대통령 선거로 결정됩니다. 국회의원들은 자기 선거를 치른 것도 아닌데 하루아침에 여야가 뒤바뀔 수 있습니다.3·9 대선으로 더불어민주당은 졸지에 야당이 됐습니다. 국민의힘은 여당이 됐습니다. 국회 의석은 더불어민주당 172, 국민의힘 110, 정의당 6, 국민의당 3, 기본소득당 1, 시대전환 1, 무소속 7입니다. 3·9 재보궐선거로 국민의힘 4석, 무소속 1석이 늘었습니다.우리나라 정치사에서 네번째 맞는 여소야대 정국입니다. 1988년 총선, 1997년 대선, 2016년 총선으로 여소야대가 됐습니다. 대선으로 여야가 바뀌면서 여소야대가 된 것은 1997년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입니다.
 
대선 뒤 역대 두번째 여소야대…역대 여소야대 살펴보니

 

온고지신이라고 했습니다. 1997년 대선 이후 만들어진 여소야대 정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새정치국민회의 대선 후보였던 김대중 대통령과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는 디제이피(DJP) 연대로 공동정부를 공개적으로 약속하고 대선에서 이겼습니다. 그러나 정국은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거대 야당 한나라당이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가장 중요한 국무총리 임명 동의부터 해주지 않았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의 마지막 국무총리였던 고건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장관들을 임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도 한나라당이 임명 동의를 해주지 않자 김종필 총재를 국무총리 서리로 임명했습니다. 헌법적 근거가 없는 편법이었습니다.김대중 대통령은 여소야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소속과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끌어들이는 등 안간힘을 썼습니다. 1998년 8월 15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선거에서는 3차 투표까지 가는 진통 끝에 자민련의 박준규 의원이 국회의장으로 선출됐습니다.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했습니다.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도 선거 결과는 여소야대였습니다. 새천년민주당과 자민련을 합쳐서 132석, 한나라당이 133석이었습니다. 민주당과 자민련은 군소 정파를 끌어들여 이만섭 민주당 의원을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했습니다.그 뒤 공동정부가 무너지면서 자민련이 야당으로 돌아섰습니다. 확실한 여소야대가 됐습니다. 후반기 국회의장은 한나라당 박관용 의원이 선출됐습니다.여소야대는 대통령에게 불리한 정치 환경입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여소야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1990년 3당 합당을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탄핵을 당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2016년 탄핵을 당했습니다. 이번 여소야대 정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두고 볼 일입니다.어쨌든 윤석열 당선자에게 여소야대는 이른바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국회의 협조 없이 국정을 이끌어갈 수 없습니다. 심지어 윤석열 정부 또는 행정부를 제대로 출범시킬 수도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번 기회에 헌법을 좀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대통령의 모든 권한은 헌법과 법률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를테면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군을 통수합니다.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입법권은 국회에 속합니다. 대통령은 법률안 제출권이 있을 뿐입니다. 대통령은 재의 요구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국회가 그 법률안을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다시 의결하면 법률로 확정됩니다.예산안 심의·확정권도 국회가 가졌습니다. 국회가 예산안을 의결하지 않으면 정부가 마비됩니다. 대통령이 국무총리, 감사원장을 임명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대법원장과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임명에도 국회 동의가 필요합니다.국회는 국무총리, 국무위원 해임 건의권을 가졌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포함해 고위 공무원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하면 탄핵할 수 있습니다. 국회가 법률을 만들고 그 법률을 위반하는 고위 공무원은 쫓아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대통령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 발의와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있어야 하지만, 다른 고위 공직자들은 재적 의원 과반수 찬성이면 충분합니다. 쉽게 말해서 국회의 협력이 없으면 대통령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허수아비나 다름이 없습니다.윤석열 당선자에게 당장은 국무총리가 가장 큰 문제일 것입니다. 국무총리를 임명하지 못하면 장관 제청 절차를 밟을 수 없습니다. 정부조직 개편도 불가능합니다.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요? 더불어민주당이 동의할까요?윤석열 당선자가 이처럼 촘촘하게 짜여 있는 헌법 조항을 잘 숙지하고 있을까요? 혹시 검사 시절 몸에 밴 ‘형님’ 리더십과 폭탄주 실력으로 대충 돌파하려는 것은 아닐까요? 그랬다가는 큰일 납니다.이번 대선에서 윤석열 당선자를 찍지 않은 절반의 유권자가 앙앙불락(怏怏不樂)에서 벗어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윤석열 당선자가 오버해서 가속페달이라도 밟는 날이면 광화문에서 촛불집회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대연정 혹은 국정협의체 가능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윤석열 당선자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윤석열 정부, 윤석열 행정부를 제대로 출범시키고 국정을 이끌어갈 수 있을까요?대선 투표 당일 아침 <중앙일보>에 박명림 연세대 교수의 흥미로운 칼럼이 실렸습니다. ‘대권이냐 감옥이냐: 대연정을 하자(1)’라는 제목입니다.

구체적인 내용까지 포함하지는 않았지만 쉽게 말해서 윤석열 당선자의 국민의힘과 국회 다수 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손잡고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인 것 같습니다.대연정이 뭘까요? 가치와 이념이 다른 주요 정당이 손잡고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1966년 독일 사회민주당과 기독교민주연합의 대연정 사례가 유명합니다.저는 윤석열 당선자가 박명림 교수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첫째, 여소야대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분열과 대립의 정치를 끝내고 통합과 공존의 정치를 하기 위해서입니다.좀 따져보겠습니다. 대연정이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불가능하다는 반론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헌법에는 내각제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제도, 국회의원의 각료 겸임 제도 등이 대표적입니다.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이런 제도를 이용해서 공동정부를 구성한 일이 있습니다.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반론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더불어민주당이 진보 정당이라고 생각하십니까?그럴 리가요. 정의당이 진보 정당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중도 보수나 ‘리버럴’에 가깝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정책 공약이 별로 다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은 그런 이유입니다.시간이 없고 경험이 없어서 불가능하다는 반론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20대 대통령은 5월10일에 취임합니다. 앞으로 두달 가까이 충분한 시간이 있습니다.대연정이 당장 어렵다면 우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두 당의 대선 공약 가운데 공통된 내용을 모아서 정책 연합을 추진하는 방안도 추진할 수 있습니다.여러분은 여·야·정 국정 상설협의체를 기억하십니까? 2018년 11월5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가 12개 항의 합의문을 발표했습니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법안과 예산을 초당적으로 처리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경제 활력을 위한 규제 혁신을 신속히 추진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탄력근로제를 확대해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합의했습니다.아쉽게도 여·야·정 국정 상설협의체는 단 한차례로 끝났습니다. 정치 지형이 달라지며 여야 대립이 격화했기 때문입니다.

 

2018년 11월 5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첫 회의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원내대표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민주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문 대통령,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아무튼 문재인 대통령과 5당 원내대표들이 한 일을 윤석열 당선자와 여야 지도부가 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대연정이나 정책 연합은 윤석열 당선자의 의지와 결단에 달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윤석열 당선자가 대연정이나 정책 연합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당장 문재인 대통령이나 민주당 지도부와 고위 정치 협상에 나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대선 유세에서 말한 것처럼 민주당 인사들을 ‘탐욕스러운 패거리’와 ‘양식 있는 사람들’로 갈라치려고 하면 실패할 것입니다.이번 대선에서 윤석열 당선자를 지지한 민주당 출신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윤석열 당선자가 통합을 명분으로 이들을 장관직에 앉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 될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으로서는 정치적 배신자들을 장관직에 앉히려는 윤석열 정부나 윤석열 행정부 출범에 협조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분권형 개헌 추진 소극적이었지만…

 

윤석열 당선자가 꼭 해야 하는 또 한가지 중요한 과제가 있습니다. 개헌입니다. 대통령 권한을 대폭 넘기는 분권형 개헌입니다. 자신의 임기를 4년으로 줄여 2026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같이 치르도록 하는 임기 단축 개헌입니다. 이재명 후보의 개헌 공약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윤석열 당선자는 대선 기간에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개헌에 소극적이었습니다. 사실은 개헌 의제로 정권교체라는 명분의 집중력이 떨어질까 봐 걱정했을 것입니다.이제 대선은 끝났습니다. 곧바로 개헌을 추진해야 합니다. 당선자 기간이나 대통령 임기 초에 개헌에 착수하면 대화와 타협의 정치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습니다. 윤석열 당선자에게 큰 이득입니다.개헌은 대통령도 발의권을 가졌지만,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서 추진하도록 하는 것이 옳습니다. 개헌하지 않으면 윤석열 당선자도 실패한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전임자들처럼 말입니다.또 한가지 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양당제를 다당제로 바꿀 때가 됐습니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물론 국회에서 의원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자나 임기 초 대통령이 정치개혁 의제로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처럼 말입니다.2024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어느 정당이 이길까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로 지금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고쳐야 합니다. 얄팍하게 계산하면 안 됩니다. 2024년이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2년이 되는 시점입니다. 윤석열 정권이 심판받을 수 있습니다.마무리하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시대가 열렸습니다. 긴 여정이 될 것입니다.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정치인입니다. 그런데 윤석열 당선자는 정치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걱정입니다.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잘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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