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펜데믹에 방역 최일선에서 대응 업무를 하던 인천시 부평구 보건소의 신입 공무원이 과로를 견디다 못해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이에 민주노총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인천지역본부 부평구지부를 중심으로 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대책위원회는 부평구청과 함께 ‘치유와 회복을 위한 고 천민우 주무관 과로사 원인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지난 4개월여 간 사망 원인을 조사했다.
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재발 방지를 위한 권고안을 담은 보고서가 채택됐고, 보고서는 지난 4일 보고회를 통해 공개됐다. 이는 단순히 천 주무관과 부평구 보건소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보고서와 보고회를 바탕으로 이 사건의 원인과 대책을 두 편의 기사에 담았다.
“(코로나19) 상황실에 빨리 복귀해야 하는데 상담시간을 10분 정도 줄여줄 수 있나요?”
지난해 8월 17일 인천시 부평구 보건소에서 코로나19 대응 업무를 하던 8급 공무원 천민우(당시 35세)씨가 부평구청의 심리지원 상담서비스에 참여해 먼저 꺼낸 말이었다. 상담이 시작된 첫날, 마지막 시간인 오후 5시에 그는 권은정 심리상담사를 찾아왔다. 권 상담사는 “할 일이 많아 급히 보건소에 복귀해야 하는 사정으로 인해 조금 일찍 회기를 마친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코로나19 확진자 동선 파악 등 업무를 담당하던 천씨는 상담 당시 예민한 민원들의 불만을 비롯한 감정적인 반응에 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고, 익숙하지 않은 코로나19 대응 업무와 계속 이어지는 초과근무로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였다고 권 상담사는 기억했다.
실제 근무내역에 따르면 천씨는 그날 아침 9시에 출근해 밤 11시 넘어서 퇴근했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극심한 야근은 이어졌다. 그렇게 그는 8월에만 110시간의 초과근무를 했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한 결과였다.
상담 후 한 달이 흐른 9월 15일 오전 10시께 천씨는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죽음은 ‘과로사’로 꼽히고 있다. 업무에 따른 고통이 ‘코로나19 방역 최전선’에 있던 신입 공무원을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공무원이 되자마자 코로나19 발생
재활치료실 본래 업무 뒤로 하고 방역 최일선으로
대전시의 한 대학에서 물리치료 분야를 전공한 천씨는 어느 한 병원에서 재활치료사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일과 삶의 균형’, 그리고 ‘안정성’을 위해 새로운 길을 가기로, 나름 어려운 결심한 것이었다. 천씨의 어머니 머릿속에는 나홀로 키운 아들이 공무원 합격증을 받은 날 함께 “만세”를 외쳤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렇게 천씨는 2020년 1월 13일 지방의료기술서기보로 입직했다. 그는 애초 부평구 청천보건지소 보건관리팀에서 재활치료실 운영, 재활보건사업 계획 수립 및 운영 등을 담당했다. 하지만 자신의 담당 업무는 제대로 수행해보지도 못한 채 부평보건소로 지원근무를 가게 됐다. 그해 코로나19가 처음 확산되기 시작하면서다.
천씨는 2020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부평보건소 코로나19 상황실을 지원하는 일을 했다. 말이 ‘지원’이지, 방역업무, 역학조사업무 보조, 자가격리업무 보조, 물품 지원 및 구입, 검체이송 등 코로나19 대응 관련 업무를 대부분 수행했다. 그러다보니 상황실은 모두가 기피하는 부서로 꼽혔다.
특히 의료기술서기보로서 실무업무를 중심으로 하던 천씨에게 행정업무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감염병을 맞닥뜨리면서 업무 체계도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업무 부담도 확진자 수 증가와 함께 점점 커졌다. 그해 12월 한달 동안에만 천씨는 127시간 초과근무를 했다. 그야말로 ‘살인적인’ 노동 강도였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1년이 2년이 되고, 코로나19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천씨가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날도 그만큼 점점 멀어지는듯 했다. 청천보건지소장이 천씨의 복귀를 6월과 9월 두 차례 요청했으나 상황실 내 업무가 과중하다는 이유로 모두 무산된 것으로 조사됐다. 천씨가 상황실 업무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절망하고 좌절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확진자 증가 추세에 따라 부평보건소는 코로나19 상황실 내 추가인력이 필수적인 상황에서 천씨에게 기존 지원 방식과 정식 발령 중 하나를 선택을 하도록 했다. 천씨는 기존 방식의 경우 행정 절차가 복잡해 더 간소한 방식인 정식 발령을 택했다. 이듬해인 2021년부터 그는 상황실에 정식발령을 받아 본격적으로 코로나19 대응 일을 하게 됐다.
상황실은 역학조사팀, 자가격리팀, 동선팀, 선별진료팀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천씨는 이중 동선팀에 속했다. 동선팀은 역학조사팀이 기초역학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확진자 동선을 조사하게 되는데 다중이용시설, 종교시설, 교육시설 등 규모가 큰 동선들은 현장조사가 필수였다. 동선팀은 현장조사를 통해 확보한 CCTV 자료를 분석하고, 접촉자들을 분류한다.
동선팀의 인원은 천씨를 포함해 3명에 불과했다. 공무원인 천씨 외에 나머지 두 명은 시간선택제 공무원과 공무직이었다. 이중 공무직은 근로기준법을 적용한 초과근로제한이 있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천씨와 시간선택제 공무원의 업무 비중이 상대적으로 컸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것도 애초 2명뿐이었는데, 천씨가 사망하기 불과 두 달 전인 2021년 7월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확진자가 급증하자 한 명이 추가된 것이었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그해 7월에는 전달의 약 3배 가량인 394명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8월에는 4배에 달하는 518명, 9월에는 5배가 넘는 713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자가격리자 수는 7월 3천68명, 8월 2천613명, 9월 1~14일 3천878명이었다.
이에 따라 확진자 동선 파악과 접촉자 분류 등 천씨의 업무 가중 역시 더욱 심화됐다. 천씨의 2021년 초과근무 내역을 보면 6월 53시간, 7월 117시간, 8월 110시간이었다. 천씨가 숨지기 전인 9월 1일부터 14일까지 보름 동안에만 58시간의 초과근무를 했다. 야간근로 기준인 밤 10시 이후의 퇴근도 부지기수였다. 그는 사망 바로 전날에도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근무했다.
이를 바탕으로 ‘치유와 회복을 위한 고 천민우 주무관 과로사 원인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보고서는 천씨의 사망 원인 중 하나로 ‘만성적 과로’를 꼽았다.
보고서는 “고인은 2021년 1월부터 9월 14일까지 월평균 82시간 초과근무를 했고, 사망 직전 10주 간은 월평균 116시간 초과근무를 했다”며 “과도한 초과근무로 업무상 스트레스가 많이 누적되면서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으로 많이 지친 상태였다”고 분석했다. 또한 “휴일근무는 물론 연차휴가를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업무량이 과다했고, 퇴근 후에도 업무 관련 카카오톡이 계속되어 일과 삶이 분리되지 못한 채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사망 전날까지 욕설 난무한 ‘악성 민원’ 시달린 공무원
천씨의 ‘과로사’는 노동 시간만으로 따질 수 있는 단순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는 사망 전날까지 ‘악성 민원’에도 시달렸기 때문이다.
천씨는 확진자 동선에서 나온 자가격리 대상자에게 ‘자가격리 대상’이라는 점을 직접 통보하는 일을 했다. 문제는 확진자와 달리 자가격리 대상자들은 통보에 반발한다는 점이었다. 이들을 설득하는 것도 천씨의 몫이었다. 이 과정에서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천씨는 상담 과정에서 ‘예민한 민원들의 불만을 비롯한 감정적인 반응에 심한 피로감을 느꼈고, 의무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이들이 일상의 상실과 소득경감 등의 영향이 이해가 된다’며 그로 인해 자신이 담당한 업무가 심정적으로 더 힘들다고 토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천씨가 사망하기 전날에도 자가격리 통보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7명의 일행 중 5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는데, 테이블에 나눠 앉은 이들은 역학조사 과정에서 ‘일행’이었다고 진술하지 않아 초기 자가격리 통보 과정에서 차질이 발생했던 것이다. 뒤늦게 사실관계를 파악한 천씨는 일행이었던 나머지 2명에게 밀접접촉자로서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고 추가 통보를 했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건 욕설이었다. 이들은 “왜 이제와서 자가격리 통보를 하는 것이냐”고 반발하며 천씨와 30분 넘게 통화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같은 날, 코호트 격리 업무 도중에도 천씨는 민원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천씨는 코호트 격리된 A 복지센터 관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A 복지센터에서 확진자가 추가로 발생했고, 천씨는 전화로 이를 통보했다. 그러자 A 복지센터의 B 관리장은 추가 확진자로 인해 코호트 격리 기간이 길어진 데 대해 불만을 천씨에게 쏟아냈고, 심지어 화를 내고 소리도 질렀다. 그리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뚝 끊었다.
천씨의 마음엔 큰 상처가 됐던 것으로 보인다. 전화가 끊긴 뒤 천씨는 화장실로 들어가서 얼굴을 씻고 나왔고, 옆자리에 앉아 있는 동료 직원에게 “이 나이 먹고 이런 취급을 받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다”며 괴로워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음 날, 천씨는 검체 채취와 B 관리장과의 협의를 위해 A 복지센터로 출장을 갈 예정이었다. B 관리장과 처음으로 대면하는 자리였는데, 천씨는 동료 직원들에게 “그 관리장의 얼굴을 직접 볼 생각에 너무 힘들다. 가기 싫다”며 어려움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천씨는 당일 아침 출근 복장을 다 갖춘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보고서는 “코로나19 역학조사 업무 중 상대적으로 업무 강도가 높은 동선파악 업무와 코호트 격리 업무를 담당하게 되면서 과중한 업무와 악성 민원 응대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이 누적돼 있었다”고 고인을 분석했다.
특히 “사망 전날은 유독 강도 높은 악성 민원에 시달렸는데 강화도 자가격리 대상자의 자가격리 통보 과정에서 30분 이상 욕설을 들었고, 복지시설의 확진자 통보 과정에선 시설 관리장의 인격적 무시와 과도한 요구로 인해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사망 당일) 시설 관리장을 직접 대면해야만 하는 상황이 고인에게 큰 정신적 고통과 업무 부담을 안겼다”고 짚었다.
보고서는 천씨의 성장 배경과 가족관계, 그리고 개인 건강, 재정과 관련된 정보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그의 죽음이 이와는 연관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직장 안팎의 사적인 관계에서도 문제가 될 만한 요소는 없다고 봤다. 천씨의 죽음은 코로나19 대응 업무에 따른 것이었다는 결론이다. 보고서는 천씨의 사망이 공무원재해보상법에 따른 ‘공무상 재해’에 해당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기춘 부평구 자치행정국장은 “원인조사 결과 보고서를 겸허하게 수용한다”며 “고인의 숭고한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일반 순직과 위험직무 순직을 관계기관에 동시 신청했다. 앞으로 순직 인정을 위해서 필요한 모든 절차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인의 상황을 다른 이들도 겪게 해서는 안 된다”
천씨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번 조사의 의미는 더 크다. 원인조사위원회는 천씨의 사망을 계기로 지난해 12월 부평구 보건소 직원(187명 중 141명 응답) 상대로 업무환경 실태조사를 실시했는데, 천씨와 마찬가지로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이 상당수인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 중 55.2%는 ‘코로나19 이후 업무량의 증가가 크다’고 답변했는데, 특히 천씨가 속했던 상황실 근무 경험이 있는 직원들의 경우 ‘업무량 증가가 크다’고 답변한 비율이 86.9%에 달했다.
‘최근 3개월 동안 하루 평균 초과근로시간이 4시간 이상’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 응답자의 41%에 달했는데, 특히 상황실 근무 경험이 있는 경우에는 무려 절반가량(49.2%)이 하루에 4시간 이상 계속 초과근무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상황실 직원들은 주말에도 기본 4시간 내지 8시간 초과근로를 하고 있다’는 서술의견도 나왔다.
‘상황실 업무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을 모두 선택하라’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초과근무 및 업무량 과다’(34.6%)와 ‘민원인 대응 업무로 감정 소모’(34.0%)를 가장 큰 고충으로 꼽았다.
‘인천시 공무원 코로나19 과로사 재발방지 및 처우개선을 위한 대책위원회’는 “노사가 공동으로 원인조사를 진행한 이유 중 하나는 재발방지”라며 “남아있는 다른 동료들의 현실도 고인이 처했던 상황과 다르지 않다. 모두가 과로노동과 앞으로의 막막함을 애써 참으며 견디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인의 상황을 다른 이들도 겪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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