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되면 항상 바쁘죠. 오늘은 오랜만에 시민들이랑도 많이 만났어요. 이렇게 같이 서울 시내를 걸은 건 2년 만인 것 같아요. 다음 주에는 안산에 가려고요."
단원고 2학년 8반 안주현 군의 어머니 박정해 씨는 행진 대열의 맨 앞에 있었다. 세월호 참사 8주기의 일주일 전인 9일 4.16연대 주최로 진행한 세월호참사 8주기 국민대회의 '노란 물결 행진'이었다. 참여한 이들은 노란색 마스크를 쓰고 바람개비와 함께 서울 동대문성곽공원에서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공간으로 걸어갔다.
다양한 이들이 거리로 모였다. 지난 8년 가까이 거리에서 싸워 온 유가족들을 비롯해 다른 참사로 세월호와 연결된 이들, 움직이지 않는 정치인들에게 분노한 이들이 다시 거리에 모였다. 자녀의 손을 잡고 나온 부모와 미래의 자녀를 위해 힘을 낸 젊은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세월호는 부채감
이동준(27)씨는 우연히 행진 포스터를 보고 친구와 함께 했다. 대학교에 다닐 때는 '세월호 진상규명 촉구'와 관련된 활동을 했었다. 그에게 세월호는 '부채감'이었다.
"항상 부채감이 있죠. 4월이라는 기억할 수 있는 날짜가 있다는 사실이 좋기도 한데 그 시기가 아니면 관심이 없어지니까요. 유가족들은 매 순간 사투고, 힘든 순간일 수 있는데 저는 4월이 되어서야 세월호를 떠올리죠. 한 달 말고 나머지 11개월 동안은 잊고 사는 거잖아요."
'경험과 상상' 극단에 소속되어 있는 연극배우 고권령 씨도 오랜만에 나왔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기대가 있어서 관심이 조금 덜했었다"라며 "이제는 정권도 바뀌고 계속 바라만 봐서는 안 될 것 같아서 나왔다"라고 말했다. 고 씨에게 세월호는 '억울함'이었다.
"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렬한 감정이 억울함이거든요.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사람이라도, 억울함에는 크게 공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구할 수 있었는데 못 구했던 참사니 이렇게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 진상규명을 외치는 유가족들을 보면 같이 억울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행진에 참여한 이들 중에 가장 어렸던 이는 김수근(50)씨의 7살 아들이었다. 8년 전 세월호 참사 때는 태어나기 전이었다. 김 씨는 아들과 함께 매년 세월호 기억 주간 행사에 참여했다. 그는 아들에게 "희생되는 사람이 없도록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세월호라는 배가 침몰했고, 고등학교 형 누나들이 돌아가셔서 다시는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부모님들이 나와서 진실을 밝히려고 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초등대안학교인 광명YMCA 볍씨학교 학생들도 교사들과 참여했다. 이희연 볍씨학교 교사는 "매년 세월호 주기에는 유가족들 만나서 이야기도 듣고, 박래군 선생님이 쓴 책도 읽고, 세월호뿐만 아니라 성수대교 붕괴 등 안전과 관련한 의제를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라며 "오늘 행진에 먼저 같이 가고 싶다고 한 학생들과 함께 참여했다"라고 말했다.
볍씨학교 조승호(14) 씨는 오전에 초졸 검정고시를 마치고 바로 행진에 참여했다. 조 씨는 "세월호에 대해 들을 때마다 '진실을 놓치고 있다'라고 생각했다"라며 "제가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 너무 억울할 것 같고 유가족분들을 응원도 해주고 싶어서 참여했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과하고 윤석열 당선인은 노력해달라"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박정해 씨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후보 시절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 정책 과제'를 제시하고 정책 과제 제시를 요구했지만 답변이 없었다"라며 "2024년 생명안전공원 완공을 추진하고 있는데 아이들한테 엄마아빠가 이거라도 했다고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지난 2월 대선 후보 시절 세월호 단체들이 보낸 '세월호 6대 과제' 질의서에 주요 대선 후보 중 유일하게 답변하지 않았다. 6대 과제에는 세월호 참사와 국가 폭력에 대한 공식 사과·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국가 보유 세월호 참사 기록물 공개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박승렬 4.16연대 공동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진상이 규명되고 생명이 존중받는 새로운 사회가 만들어질 것을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무너졌다"라며 "새 정부를 담당할 윤 당선인은 416연대 가족들이 생명 존중 사회를 만들자고 해도 약속을 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윤 당선인의 정책이 "새로운 생명 존중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정책을 만드는지 보이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박래군 4.16재단 상임이사 또한 "대통령의 권한을 가지고 문 대통령이 5년 동안 뭐 했는지 묻고 싶다"라며 "지금이라도 유가족 사찰, 국가 폭력 등 국가가 인정하고 사과해달라"라고 말했다. 또한 윤 당선인의 세월호 6대 과제 무응답을 비판하면서 "국정과제에 생명 안전과 관련한 약속 찾아볼 수 없다"라며 "또다시 '세월호 참사'가 계속되는 대한민국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달라"라고 말했다.
김종기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아픈 4월이지만 현실은 아파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세월호 참사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국가가 반드시 해결할 의무이지만 정부는 제대로 나서지 않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산업재해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가족들도 국민대회에 참석해 "생명안전사회 건설"을 촉구했다.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하지만 달라진 게 없었다"라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생명안전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시금석이지만 아직도 진상규명이 안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재난참사와 산재처벌을 위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지만 여전히 기업의 이윤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진다"라며 "일터와 사회 곳곳에서 노동자와 시민은 여전히 죽어간다"라며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주장했다. 시민사회에서 주장하는 생명안전기본법은 국민의 ‘안전권’과 국가의 책무, 재난 피해자의 법적 정의와 권리, 조사 참여권과 알 권리, 피해자 지원에 대한 구체적 규정 등의 내용이다.
서울시의회 세월호 기억공간 앞에서 진행된 '국민대회'에는 정부 방역 지침인 300명보다 넘는 사람들이 참여해 경찰이 출입을 통제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8주기인 16일에는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8주기 기억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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