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 녹조 독소 전문가인 충북대 교수는 "우리 국민이 '녹조'에 대한 근거 없는 공포감에 휩싸여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태도가 적어도 문재인 정부에선 다를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4대강 사업을 이전 시대 대표적인 적폐로 규정했기에 말입니다. 하지만 예상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9월 환경부 회의에 참여했습니다. '환경정책개선TF'라는 명칭이지만, '환경부 적폐청산TF' 성격이었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서울대 교수는 "우리나라 녹조는 해외보다 독성이 낮아 큰 문제가 안 된다. 우리나라 물 문제가 녹조 독소만 있는 게 아닌데, 여기에 국력을 집중하면 다른 일을 못 한다"라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녹조 위해성 의도적으로 낮게 인식하는 전문가들
국내 주류 전문가 태도가 이랬습니다. 이들 전문가는 녹조 관련해 새롭게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는 행정관료와 결합해 녹조 독성을 저평가하도록 채수와 분석 방법 등 관련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의미로 저는 현행 녹조 독소 측정과 분석 방식을 '제도화된 사기극'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국내에서 농산물 내 녹조 독소 축적을 분석해줄 전문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2015년 4대강에서 마이크로시스틴을 분석한 일본 신슈대 박호동 교수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농작물 샘플을 일본으로 보낼 방법이 난제였지만, 일단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분석비는 사단법인 '세상과 함께'에서 지원을 해줬습니다.
2020년 여름 전에 준비를 끝냈지만, 하늘이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여름 내내 너무 많은 비가 장기간 내려 녹조를 뜨기 어려웠습니다.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2021년 초부터 다시 모여 준비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세상과 함께'에서 다시 지원을 해줬습니다.
<뉴스타파> 최승호 PD님을 통해서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10년 넘게 녹조 독소를 분석했던 국립 부경대 이승준 교수님을 소개받았습니다. 월 100여만 원 수입의 개인 활동가로서 교통비가 부담돼 서울역에서 가장 저렴한 열차를 탔고 그에 따라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부산에 있는 부경대를 찾아갔습니다.
이승준 교수님은 해외에서 농작물은 물론 과실류, 어패류에서 마이크로시스틴 축적 사례가 다수 보고 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친수성 마이크로시스틴은 미세한 액체 미립자, 즉 에어로졸을 타고 확산한다는 연구 결과도 확인해 줬습니다. 미국에선 녹조 면적이 1% 증가할 때 비알콜성 간질환 사망자가 0.3% 증가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승준 교수님과 함께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금강 하굿둑 지역은 <오마이뉴스> 김종술 시민기자가 담당했습니다. 낙동강은 대구환경운동연합 곽상수 운영위원장과 정수근 국장, 임희자 낙동강 네트워크공동집행위원장이 맡았습니다. 지난해 7~8월 뙤약볕 속에서 주 2회 낙동강·금강 녹조를 채수해 당일 부산 부경대로 전달했습니다.
녹조 독소 농작물 축적, 민간단체가 처음으로 밝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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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7월 26일 낙동강 자모2양수장 쪽에서 촬영한 녹조. |
ⓒ 곽상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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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금강 녹조 독소 분석 결과 미국 환경보호청(EPA) 물놀이 금지 기준의 875배가 넘는 최대 7000 ppb의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습니다. "이렇게 높은 마이크로시스틴 농도는 처음 봅니다"라는 게 이승준 교수의 말이었습니다.
녹조 물로 상추 재배 실험도 했습니다. 부경대 이상길 교수님의 분석 결과 국내에서 처음으로 농작물에 마이크로시스틴이 축적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30kg 어린이는 상추잎 3장만 먹어도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을 초과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때까지 환경부는 "녹조 독소는 식물 흡수가 어려워 농작물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라 했습니다. 심지어 농작물에 "녹조가 생긴 물을 줘도 된다"라고도 밝혀왔습니다.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 등이 주도한 연구를 통해 정부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혔습니다.
지난해 11~12월 낙동강·금강 노지 재배 쌀·배추·무를 구입해 지난 2월과 3월 각각 분석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녹조 전문가인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이지영 교수를 통해서 마이크로시스틴의 악영향이 간독성, 뇌 질환만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프랑스와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마이크로시스틴이 남성 정자수 감소, 여성 난소 악영향 등 생식 독성까지 영향을 줄 수 있기에 기준치를 매우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생식 독성 기준을 프랑스는 0.001,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0.0064µg/kg을 하루 허용량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이 기준을 낙동강·금강 농작물 축적 마이크로시스틴을 비교했습니다. 쌀은 우리 국민의 주식이고, 배추·무는 우리 밥상의 기본 반찬입니다. 이들을 같이 먹는다고 했을 때 프랑스 생식 독성 기준의 최대 20배 이상 초과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WHO 하루 허용량 기준(0.4 µg/kg)으로 보면 50% 수준입니다만, 밥상 위 다른 농산물에서도 검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안전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국민 먹거리 안전 위해 계속 조사해야
우리는 정부에 요구했습니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맹독성 녹조 독소가 검출된 만큼 정부가 나서서 신속하고 체계적인 조사를 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이에 대해 정부는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비례) 의원실을 통해 환경부, 식약처 관계자와 간담회를 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질의를 했습니다.
이들 부처는 하나 같이 "자기 소관 영역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식약처가 평가 기준을 세우고 환경부가 수질 대책을 세워야 농림부가 할 수 있다는 기계적인 답변만 계속했습니다. 낙동강에선 벌써 녹조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날이 더 풀리면 올해도 어김없이 녹조라떼가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물로 농사지으면 또다시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될 것입니다.
한심합니다. 녹조라떼라는 말이 나온 지 올해로 만 10년째입니다. 해외 다른 나라에선 실질적인 녹조 독소 예보제를 통해 국민건강과 먹거리 안전에 대책을 세우는데, 대한민국에선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책임 방기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기에 말입니다. 세계 경제 순위 10위 권의 대한민국이 돈이 없어 못 하는 게 아닙니다. 정부 부처 행정관료가 책임지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국민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다면, 민간단체들이 다시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은 어렵습니다. 마이크로시스틴 분석은 EPA 공인 효소면역측정 장비인 일라이저 키트(ELISA kit)를 사용했는데, 지난해 구매한 걸 다 소진했습니다. 미국에서 수입해야 하기에 비용이 상당히 나갑니다.
올해 분석 비용은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일라이저 키트 구매 비용 마련을 위해서 환경운동연합에서 네이버 해피빈에 모금 계좌를 열었습니다. 해피빈에서 '녹조'를 검색해 접속할 수 있으며, 환경운동연합 누리집(
바로 가기)을 통해서도 접속할 수 있습니다.
올해도 계속 현장 모니터링과 분석을 할 수 있도록 시민이 함께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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