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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는 광복절인데, 3월 1일은 왜 삼일절이라고 부를까

AI로 생성한 3.1 운동 이미지 ⓒ 오마이뉴스

삼일절이 다가오고 있는 와중에, 예로부터 궁금한 점이 있었다. 8월 15일은 '광복절'이고, 10월 3일은 '개천절'이며, 7월 17일은 '제헌절'이다. 모두 그날의 의미가 이름 속에 담겨 있다. 그런데 유독 3월 1일만은 숫자로만 기억된다.

'삼일절'. 우리는 왜 독립을 선언한 날을 숫자로만 부르고 있을까.

1919년 3월 1일, 조선의 독립을 세계 만방에 알리기 위해 작성된 기미독립선언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하노라."

이 문장은 요청이 아니다. '독립하게 해 달라'가 아니라 '독립국임을 선언한다'는 문장이다. 주권의 주체 역시 분명하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황제도, 지배층인 양반도 아닌, 조선인 자신이다. '자주민'이라는 표현은 혁명적인 개념이었다. 신민도, 백성도 아닌, 스스로 주인인 '사람'이라는 선언이었다.

3·1 독립선언은 일본 제국에 무언가를 요구한 문서가 아니라, 조선이 어떤 나라가 될 것인지를 스스로 규정한 선언이었다. 선언서 어디에도 왕정 복고를 요구하는 문장은 없다. 대신 '독립국', '자주민', '민족'이라는 말이 반복된다. 이는 3월 1일의 선언이 국민이 주권의 주체가 되는 나라를 선택한 선언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선언을 바탕으로 같은 해 4월 11일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다. 임시정부는 임시헌장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명시했다. 이건 동아시아 역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중국이 신해혁명으로 공화정을 선택한 게 1912년이었고, 일본은 여전히 천황제 국가였다. 조선은 왕조가 무너진 지 10년도 안 돼 민주공화국을 선언한 것이다.

그 기원이 바로 3월 1일이었다. 3월 1일은 시위의 시작이 아니라, 국가 구상의 출발점이었다. 임시정부는 이 날을 '독립선언일'로 불렀다. 임시정부는 수립된 그해부터 3월 1일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1920년에 3월 1일을 국경일로 정식 지정했다. 그리고 그 명칭을 '독립선언일'로 정했다.

1921년 3월 1일, 독립선언 2주년 기념식이 상하이에서 열렸다. 이른 아침부터 상하이 곳곳의 한인들은 상점에 태극기를 걸어 이 날을 기념하고 축하했다. 공식 명칭은 분명했다. '독립선언일'이었다. 일제강점기 내내 3월 1일은 독립운동가들과 광복을 염원하는 민족 전체의 가장 큰 기념일이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이 전통은 계속됐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독립선언일'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삼일절'만 남았다. 하지만 헌법은 이미 3·1의 의미를 분명히 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이렇게 말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헌법은 대한민국의 출발점을 1948년 정부 수립이 아니라, 1919년의 독립선언과 임시정부에 두고 있다. 이건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법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헌법이 1919년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함으로써, 우리는 법적으로도 일제강점기 내내 주권국가였다는 정통성을 확보한다.

이름은 기억의 방식이다

▲기미독립선언서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공표한 기미독립선언서(己未獨立宣言書). 앞면 상단에 태극기 문장을 중심으로 좌우에 독립만세(獨立萬歲)가 인쇄되고, 중앙에 선언서 본문과 공약 3장, 민족대표 33인의 명단이 기재되어 있다.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현행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보면 차이가 분명하다. 광복절, 제헌절, 개천절은 모두 의미가 드러나는 이름을 갖고 있다. 반면 3월 1일만 유독 숫자로만 불린다.

이 차이는 사소하지 않다. 이름은 기억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삼일절'이라는 명칭은 그날이 무엇을 선언한 날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 결과, 3월 1일은 점점 만세운동, 거리 시위, 유관순 열사의 이미지로만 기억된다.

실제로 젊은 세대에게 삼일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만세 부른 날", "독립운동한 날" 정도의 답이 돌아온다. 독립을 '선언'한 날이라는 답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날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시작점이었다는 인식은 더욱 희미하다.

'광복절'이라는 이름은 빛을 되찾은 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 '제헌절'은 헌법을 만든 날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려준다. 하지만 '삼일절'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세계는 '선언의 날'을 독립기념일로 기념한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은 1776년 7월 4일이다. 이날은 전쟁이 끝난 날도, 영국이 독립을 승인한 날도 아니다. 독립선언문을 채택한 날이다. 실제로 미국 독립전쟁은 1783년까지 계속됐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전쟁이 끝난 날이 아니라, 독립을 선언한 날을 기념한다.

베트남은 1945년 9월 2일, 호찌민이 하노이 바딘 광장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날을 국경일로 기념한다. 프랑스와의 전쟁은 그 후에도 9년이나 계속됐지만, 베트남인들은 선언의 날을 택했다.

아일랜드는 1916년 4월 24일 부활절 봉기를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기억한다. 이 봉기는 실패로 끝났고, 주동자들은 처형 당했다. 하지만 이 봉기에서 낭독된 '아일랜드 공화국 선포문'이 훗날 아일랜드 독립의 법적, 정신적 기반이 됐다. 그래서 아일랜드인들은 성공한 독립의 순간이 아니라, 선언과 희생의 날을 역사의 시작점으로 삼는다.

식민 지배를 경험한 나라 대부분이 독립을 '완성된 순간'이 아니라 선언된 순간으로 기억한다. 주권은 누군가 허락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선언함으로써 시작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 기준에 따르면, 우리에게 해당하는 날은 분명하다. 1919년 3월 1일이다. 그리고 임시정부가 이미 그렇게 명명했다. '독립선언일'이라고.

광복절과 3·1의 역설

우리는 8월 15일을 '광복절'이라고 부른다. 광복절은 일제가 항복한 날이지, 우리가 독립을 선언한 날이 아닌데도 의미 있는 이름을 갖고 있다.

반면 3월 1일은 우리가 스스로 독립을 선언한 날인데, 숫자로만 불린다. 어쩌면 우리는 '독립을 되찾은 날'보다 '독립을 선언한 날'을 더 어색하게 생각해 왔는지도 모른다. 선언은 능동적 행위다. 주체적 결단이다. 반면 광복은 결과다. 국가의 기원을 말할 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능동적 결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1919년 3월 1일, 사람들은 독립을 '요청'하지 않았다. 선언했다. 일본 제국의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 조선이 독립국임을 스스로 규정했다. 그 선언이 당장 현실이 되지 않았어도, 선언 자체가 이미 정치적 행위였고, 역사를 바꾸는 시작점이었다.

3월 1일을 독립선언기념일로 부르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바로 부르자는 문제가 아니다. 이건 현재를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독립선언기념일'이라는 이름은 우리를 다른 위치에 놓는다. 선언하는 사람, 스스로 규정하는 사람,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시민들은 끊임없이 선언한다. 광장에서, 법정에서, 일상에서. 부당한 현실에 맞서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고, "우리에겐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게 민주주의다. 누군가 허락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선언하는 것.

3월 1일을 독립선언기념일로 부르는 것은, 바로 그 정신을 기억하자는 뜻이다. 우리는 기념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선언하는 사람이라는 것.

삼일절의 이름을 바로 세우는 일, 정명(正名)

3월 1일은 이미 헌법 속에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사실을 어떻게 부르고, 어떻게 기억하느냐다. '삼일절'이라는 이름은 그날의 의미를 담기에는 너무 작다. 3월 1일은 만세의 날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이 말로 먼저 태어난 날이다. 민주공화국이라는 꿈이 처음 선언된 날이다.

법을 바꾸는 건 어렵지 않다. '국경일에 관한 법률' 제2조 1항을 "삼일절: 3월 1일"에서 "독립선언기념일: 3월 1일"로 고치면 된다. 정확히 말하면 임시정부가 정했던 이름을 되돌리는 일이다.

하지만 이름을 바꾸는 건 단순히 조문을 수정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를 다시 묻는 일이다. '삼일절'이 아니라, 독립선언기념일로 불릴 충분한 이유가 이미 역사와 헌법 안에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사실을 외면할지, 정면으로 받아들일지에 대한 우리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 역시, 어쩌면 하나의 선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떤 시민으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삼일절#기미독립선언#독립선언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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