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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혈 낭자 우크라이나… 우리 세대 ‘핵 전쟁’이 다가온다

등록 :2022-04-12 04:59수정 :2022-04-12 09:57

러·미 핵무기 사용 문턱 낮춰
러, 핵전쟁 염두 연습도 벌여
위력 낮춘 전술핵탄두 2천기
미, 트럼프 때 핵 사용 옵션 확장

실수·오산이 충돌 불씨 될수도
‘핵 레드라인’도 모호하게 규정
유사시 자제력 발휘할지 의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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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를 두고 러시아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러시아가 핵 위협을 서슴지 않으며 핵전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 첫날인 지난 2월24일 “누구든 우리를 방해하거나 우리 나라와 국민을 위협하면 러시아는 즉각 대응할 것이며 그 결과는 역사상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핵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미국 등은 이를 사실상의 ‘핵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푸틴 대통령은 사흘 뒤엔 핵 운용 부대에 “특수경계태세” 돌입을 지시하며 위협의 수위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지난달 26일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이 나섰다. 그는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의 핵 사용 조건을 △러시아와 동맹국이 핵 공격을 받을 경우 △러시아의 핵 억제 전력 인프라가 공격받을 경우 △러시아와 동맹국의 존립이 위태로울 경우 등으로 구체화했다.

 

1945년 8월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진 뒤, 핵전쟁 우려가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핵 보유국인 인도와 파키스탄이 2000년 무력 충돌 했을 때 세계는 양국 간 ‘재래전’이 결국 ‘핵전쟁’으로 비화하는 것 아니냐며 촉각을 곤두세웠고, 1973년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의 욤키푸르 전쟁(4차 중동전쟁) 때는 이스라엘이 핵무기 배치를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오르면 1962년 소련의 쿠바 핵기지 건설 추진을 둘러싸고 미국과 소련이 핵 충돌의 한발짝 앞까지 다가갔다.

 

푸틴 대통령의 핵 위협 이후 미군은 감시위성 등을 동원해 러시아의 핵기지를 면밀히 감시하고 있지만, 아직 러시아가 실제 핵 사용을 준비하는 정황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23일 “우리의 핵 태세를 조정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찾아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당장 핵을 사용하려는 것보다는 미국과 나토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위협’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러시아, 핵 사용 문턱 낮춰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의 핵 위협을 단순한 ‘엄포’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러시아가 궁지에 몰릴 경우 핵 사용을 실제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울리히 퀸 독일 함부르크대학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서방의 제재와 압력은 더 가중되고 있어서 러시아가 핵을 사용할 가능성은 여전히 낮지만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우려가 나오는 것은 1989년 냉전 해체 이후 러시아가 계속 핵 사용의 문턱을 낮추는 쪽으로 핵 전략을 변화시켜왔기 때문이다. 미-소 냉전 시절에 핵무기는 사용할 수 없는 최후의 무기라는 인식이 강했다. 미-소가 치열한 핵무기 경쟁을 벌인 결과 미국은 히로시마 원폭(티엔티 15t 규모의 위력)보다 1천배, 소련은 3천배나 더 강한 핵무기를 개발했다. 이런 상황에서 핵전쟁을 하면 서로 공멸한다는 핵 공포, 이른바 ‘상호확증파괴’(MAD)가 작동했다. 소련은 1982년 공식적으로 핵 선제 사용을 포기했다.

 

이런 상황은 1991년 말 소련이 해체되고 경제난에 빠진 러시아군의 재래식 전력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극적으로 바뀌었다. 미군은 걸프전쟁 등에서 정교한 감시·정찰과 정보·통신, 정밀 유도무기 등 첨단 군사력을 선보였지만, 러시아군은 체첸과 조지아 전쟁에서 재래식 전력의 취약점을 드러냈다. 이렇게 되자 러시아군이 미군에 크게 뒤진 재래식 전력을 보완하기 위해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군사전략을 마련한 것이다.

 

러시아는 1993년 공식적으로 핵 선제 불사용 정책을 폐기했고, 2000년대 이후엔 적국의 어떤 공격에 대해서도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러시아는 2010년 군사 독트린에서 적이 핵이 아닌 재래식 무기로 공격하더라도 “국가의 존립이 위협받을 때”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고, 2020년 군사 독트린에선 “핵무기를 억지력의 수단으로만 간주하겠다”고 덧붙였지만 여전히 사용 옵션을 비교적 폭넓게 열어놓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월10일 모스크바에서 정부 각료들과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월10일 모스크바에서 정부 각료들과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러시아군은 이런 전략 변화에 맞춰 핵전쟁 연습도 해왔다. 러시아군은 1999년 나토의 칼리닌그라드 공격을 가정한 전쟁연습을 했는데, 시나리오엔 러시아군이 폴란드와 미국에 핵 공격을 한 뒤 패배의 혼란에서 벗어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실제 사용할 수 있도록 핵탄두의 위력을 낮춘 핵무기도 개발했다. 특히 2005년 배치된 이스칸데르 미사일(추정 사정거리 500㎞)의 핵탄두는 위력을 히로시마 원폭의 3분의 1 수준까지 낮출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학자연맹’(FAS)의 한스 크리스텐센은 러시아가 이런 전술핵탄두를 2천기 정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도 저위력탄 개발 등 대응 나서

 

미국도 냉전 해체 이후 한동안 핵 감축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와 중국의 핵 전력 강화 움직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이런 움직임에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다.

 

냉전 해체와 함께 옛소련의 재래식 침략에도 핵 사용 옵션을 배제하지 않는 이른바 ‘유연대응전략’이 공식 폐기됐다. 핵이 아닌 공격에는 핵 사용을 자제하기로 한 것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1991년 해외 배치 전술핵무기의 감축·철수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한반도에 전진 배치됐던 핵무기도 공식 철수했다. 미국이 이런 조처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냉전 해체로 소련의 군사적 위협이 줄고 첨단 무기와 미사일방어(MD) 등이 극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핵 없는 세계’를 목표로 했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나온 2010년 ‘핵 태세 검토보고서’에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비핵국가에 대해선 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소극적 안전보장’(NSA)이 명확히 선언됐다.

 

이런 흐름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이후 멈추게 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핵 태세 검토보고서’에서 소극적 안전보장을 일부 재확인하면서도 “핵이 아닌 다른 중요한 전략적 공격”을 당했을 때도 핵을 사용하겠다고 밝히는 등 핵 사용 옵션을 다시 넓혔다. 또 위력이 히로시마 원폭의 3분의 1 이하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용 저위력 핵탄두 ‘W76-2’를 개발했다. 핵무기 사용 문턱을 낮춘 것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후보 시절엔 W76-2 개발에 대해 “나쁜 아이디어”라고 비난했지만, 취임 뒤 폐기하지 않고 있다. 또 후보 시절엔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핵 공격을 억제하기 위해서만 핵무기를 쓴다’는 이른바 ‘단일 목적’ 원칙을 공약했으나, 지난달 공개된 2022년 ‘핵 태세 검토보고서’ 요약본에선 이 원칙을 포기했다.

 

미국 해군의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SSBN) ‘테네시’. 저위력 핵탄두 W76-2를 장착한 트라이던트 탄도미사일을 탑재하고 있다. 미국 해군 누리집 갈무리
미국 해군의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SSBN) ‘테네시’. 저위력 핵탄두 W76-2를 장착한 트라이던트 탄도미사일을 탑재하고 있다. 미국 해군 누리집 갈무리

통제되지 않는 핵 충돌유혈 낭자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러 간 대립이 격화하면 뜻하지 않은 실수·사고·오산 등이 우발적 핵 충돌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우크라이나가 나토와 러시아의 대립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 또 미국과 러시아의 핵 사용 ‘레드 라인’이 비교적 모호한 용어로 규정되어 명확하지 않은 점 등이 핵 위험성을 더 높이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미국과 러시아라는 두 대국 간에 핵전쟁이 벌어지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미국의 프린스턴대학 연구팀이 2019년 9월 공개한 시뮬레이션을 보면, 나토와 러시아가 핵전쟁을 벌이면 불과 몇시간 만에 9천만명 이상이 희생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러 간의 핵 충돌은 곧바로 반격과 재반격 등으로 이어지며 눈 깜짝할 사이에 확대될 수 있다.

 

핵전쟁의 서막은 미-러의 전술핵무기가 열 가능성이 높다. 미-러는 인명 피해가 없는 공해나 황무지 등에 위력이 낮은 핵탄두로 경고 및 위협 사격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립이 격화하면 야전 지휘부나 전투부대 등 전술 목표로 그 대상이 바뀔 수 있고 나아가 적의 핵 능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전략핵무기를 동원한 전면적인 핵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미·러 양국이 자제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정보국장을 역임한 제임스 클래퍼는 푸틴 대통령이 핵 공격을 할 때 바이든 대통령에게 어떻게 조언해야 할지 확신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핵 보복과 관련해 “언제 멈추느냐”는 <뉴욕 타임스>의 질문에 “반대쪽 뺨을 또 내줄 수는 없는 일이다. 어느 시점엔가 우리도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브라운대학의 니나 태넌월드는 ‘핵 억지력’ 전략에 의문을 제기하며 “위기 때 의도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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