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지난 2월 10일 오후 대전지법 서산지원에서 열린 고(故) 김용균(당시 24세) 노동자 사망 사건 원·하청 관련자들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끝난 뒤 법원의 솜방망이 판결에 눈을 감은 채 망연자실하고 있다. 2022.2.10 ⓒ뉴스1
고 김용균 씨가 사망한 지 3년여 만에 나온 1심 판결에서 실형을 받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의 당시 대표에게는 무죄가, 다른 원·하청 관계자 대부분에게도 집행유예와 벌금형이 선고됐다. 1년 매출이 4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한국서부발전에는 벌금 1천만원이, 김용균 씨가 속한 한국서부발전의 하청 한국발전기술에는 벌금 1천500만원이 선고되는 데 그쳤다. 김용균 씨 유족을 대리해 온 박다혜 변호사는 19일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교육장에서 열린 '이제, 재판부에 묻다' 토론회에 참석해 "법원이 (김 씨 사망에 대한 원·하청의) 책임은 다 인정해놓고 죄의 무게는 굉장히 가볍게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1심 재판부는 원·하청 임직원들이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위험한 작업 현장에서 별다른 장치 없이 작업하도록 지시·방치했고, 위험 방지를 위해 필요한 2인1조 근무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독으로 작업하도록 지시·방치하는 등의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에 대해서도 하청에 대한 실질적인 관리·감독과 하청 노동자들의 안전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원청과 하청 노동자 간 실질적인 고용관계는 없다는 결론을 냈다. 결국 이러한 해석은 원청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근거로 작용했다.
박 변호사는 이 같은 법원의 해석이 매우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서 하청에 죄가 있다고 인정된 내용은 안전 조치를 원청에 요청하지 않고 방치했다는 것이다. 만일 하청이 요청했으면, 그 요청을 실행해야 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는 자명하다"며 "하지만 (이번 판결에서는) 이런 실태가 고려되지 않은 판단이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원청 사업주 책임에 대한 소극적인 (법원의) 해석으로, 사업장 내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권한과 능력이 있는 사업주의 책임이 계속 공백으로 남아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법원이 안전 범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의 문제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그 부분도 항소심에서 바로잡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균 특조위(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간사를 맡았던 권영국 변호사는 터무니없이 가벼운 판결이 사용자에게 위험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권 변호사는 "한국서부발전의 1년 매출을 조사했더니, 4조가 넘는다. 그런데 이번에 선고된 벌금은 1천만원"이라며 "이건 그냥 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조치는 안 취해도 된다, 벌금 내고 말라는 신호를 주는 게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권 변호사는 "중대재해가 줄지 않는 이유는 (기업이 처벌을) 겁내지 않기 때문이다. 법원이 안전 범죄에 대한 심각성을 판결로써 정확하게 지적하지 않고 있다"며 "이것이 바뀌지 않으면 기소가 되고, 재판에 이른다고 해도 기업들은 또다시 법을 우습게 보고, 예전과 같은 관행으로 일터를 만들지 모른다. 이번 기회에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소속 최정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도 "이번 김용균 판결은 우리 사법부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판결문을 읽어보면 (재판부는 원·하청의) 업무상 주의 의무 위반 정도가 중하다는 표현을 여러 군데에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가벼운 형을 선고하고 있다"며 "이건 모순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결국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범죄를 법원이 과실범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중대재해에 대해 가벼운 형벌이 반복해서 선고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법원은 (사측의) 주의 의무 위반이 고의로 이뤄졌더라도 노동자를 죽이려고 한 건 아니니까 본질적으로 과실범이라고 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최 교수는 "하지만 중대재해를 (단순한) 과실로만 볼 수 있나. 여기에 고의가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중대재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최 교수는 "(이를) 법적으로 인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과실이라고 하더라도 가장 높은, 고의에 의한 단계로 볼 수 있고, 특히 계속해서 사고가 발생했다면 이건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며 법원을 향해 엄정한 처벌을 촉구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도 참석했다. 김 이사장은 "지금도 지난 재판을 생각하면 참을 수 없는 분노로 피눈물이 난다"며 "자식이 죽은 것도 억울한데, (사망의 원인이) 본인의 잘못이라고 덮어씌우는 사측을 보니 먹은 것을 토하고 싶을 정도로 역겨웠다"고 분노를 쏟아냈다.
김 이사장은 "판사는 용균이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원·하청의 안전 소홀에 있었다고 인정했음에도, 원청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등 처벌은 미약하게 선고했다"며 "살인죄가 이토록 가벼울 수 있다는 게 도저히 용납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산재는 기업에 의한 살인이고, 그렇다면 그에 합당한 처벌이 있어야만 기업의 야만적인 살인을 막을 수 있다"며 "항소심은 저에게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막다른 골목이다. 한국서부발전 가해자에 살인죄에 합당한 처벌이 내려지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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