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삭제 내역 선거 때마다 증가 추세
삭제내역 요구에 ‘폐기했다’며 거부, “견제할 수 있어야”
20대 대선 기간 동안 전국 선거관리위원회가 허위사실 유포 등의 이유로 삭제 요청한 게시글이 8만여건으로 나타났다. 이는 역대선거 가운데 가장 많은 삭제 건수로 2020년 총선 때보다 3만 건 이상 삭제 건수가 급증했다. 선관위가 삭제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게시글 삭제 조치가 적절한지 견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허위사실공표글 1만여건 삭제, 정작 고발은 1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대 대선 기간 동안 삭제요청한 게시글은 8만6639건(고발 등 포함 전체 조치건수 8만6783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단법인 오픈넷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보 공개청구한 내용을 미디어오늘이 입수했다.
항목별로 보면 ‘허위사실 공표’가 1만2643건, ‘후보자 등 비방’이 1만2597건, 지역·성별비하·모욕 731건, 선거운동 금지자의 선거운동 40건, 여론조사 공표 보도금지 5만5507건, 선거의 자유 방해 3145건, 기타 1976건으로 나타났다.
전체 조치내역 기준으로 시기별로 보면 19대 총선, 18대 대선, 6회 지방선거 때만 해도 각각 1만 건 미만으로 나타났다. 2016년 20대 총선 때 1만7430건으로 처음 1만 건이 넘었다. 2017년 19대 대선 때 4만343건까지 급증한 데 이어, 21대 총선 때는 5만3902건으로 처음 5만 건을 넘어섰다. 2022년 20대 대선 국면에선 8만6639건으로 또 다시 급증했다.
주목할 대목은 ‘후보자 비방’ 게시글 삭제가 1만2597건으로 허위사실공표(1만2643건)와 비슷한 규모라는 점이다. 허위사실공표는 ‘허위’의 글을 올렸을 때 조치를 하지만, 비교적 진위 여부가 분명한 사안에 적용하고 있다. 반면 ‘비방’ 게시글은 기준이 불분명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후보자비방은 후보자들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욕설이나 부정적인 감정표현들에 불과하다”며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표현이 오가야할 선거기간에 검열, 삭제, 차단되어야 할 만큼 선거의 공정성에 실제적 해악을 불러일으키는 표현물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8만 건이 넘는 게시글에 삭제 요청을 하면서도 정작 선관위가 ‘고발 조치’를 한 게시글은 허위사실 공표 게시글 기준으로 1건에 그쳤다. 사법 처리를 할 정도의 심각한 게시글이 거의 없음에도 선관위가 과도한 권한 행사를 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손지원 변호사는 “인터넷 게시글에 대해 선거법 위반 여부를 엄정히 판단하지 않고, 선거법 위반 여부가 명백히 판단되지 않는 정보에 대해서도 만연히 삭제명령을 내리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견제 받지 않는 선관위, 정보공개 청구에 “이미 폐기했다”
그동안 오픈넷,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가 선관위의 인터넷 게시글 삭제 제도를 견제하기 위해 ‘정보공개청구’에 나섰지만 선관위는 구체적인 삭제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2016년 총선 당시 선관위는 시민단체의 정보공개청구를 수용해 삭제 내역 1만여건의 캡처(채증 자료)본을 공개한 바 있다. 당시 선관위가 유승민 후보를 내시에 빗댄 합성 이미지를 삭제하거나, 당시 뉴스타파가 보도한 ‘나경원 의원 자녀 부정입학 의혹’ 기사를 언급하며 “의혹은 더 있다”고 밝힌 게시글을 삭제하는 등 과도한 대응이 드러났다.
이후 2020년 시민단체가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선관위는 2016년과 달리 삭제 게시글 내용을 알 수 있는 캡처(채증 자료)를 ‘비공개’했다. 당시 선관위 입장을 보면 선관위 훈령 20조 제1항에 따라 ‘전자 게시물 정보는 공직선거법 위반혐의 조사를 위한 분석이 종료된 후에는 지체 없이 삭제·폐기해야 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삭제했다는 입장이다. 2022년 대선 관련 게시글 삭제 내역 요구 역시 선관위는 ‘폐기했기에 자료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민선영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는 “선관위가 유권자들의 글을 선거법 위반이라며 삭제 조치를 하는 상황에서 시민사회가 정보공개 청구를 해도 훈령을 이유로 제출하지 않고 있다”며 “선관위의 삭제 조치가 과연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집행이 되었는지 시민사회가 감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는지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야당이던 19대 국회 때는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표현의자유특위 위원장)이 후보자비방죄를 폐지하고 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정보 삭제 명령 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선관위 게시글 삭제 조치는 한국의 ‘특수한’ 규제다. 미국 국무부가 공개한 ‘2021 국가별 인권보고서’에도 해당 내용이 언급될 정도다. 보고서는 ‘표현의 자유’ 챕터를 통해 제도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는 부문을 지적하며 “정부는 선거법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거짓이라고 판단하는 표현을 제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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