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검찰주의자 윤석열의 먹튀
비장하게 시작한 검수완박 전쟁이 박병석 국회의장이 제시한 중재안을 여야가 수용함으로써 맥없이 끝났다.
8개항으로 구성된 여야합의안은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고, 직접수사는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것이다.
그동안 검찰이 직접 수사해오던 ‘6개 범죄’ 중 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는 삭제하고 부패·경제수사권은 중대범죄수사청(소위 한국형FBI)이 출범하는 1년 6개월 후에는 폐지된다.
입법안은 4월 국회에 처리되고, 윤석열 정부 출범전에 마무리 된다.
이에 반발한 김오수 검찰총장을 비롯 6개 지역 고검장 등 검찰 지도부가 줄줄이 총사퇴입장을 밝히는 사태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의 최대 수혜자는 누구일까?
바로 윤석열 당선자이다. 윤석열은 누구보다도 검찰주의자로 알려져 왔다. 검찰의 이익, 검찰의 권력을 사수하기 위해 검찰개혁론자 조국과 맞서며 검찰개혁을 저지했던 검찰옹호자였다. 그런데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입장을 180도로 바꾸었다.
검수완박 여야중재안이 통과될 본회의에서는 한덕수 국무총리 청문회 보고서도 채택될 것이라는 예상이 눈에 뛴다.
권성동 국민의 힘 원내대표가 윤석열 당선자와 협의없이 중재안에 도장을 찍었을 리가 없다. 윤석열이 자기 정치를 위해 검찰을 버린 것이다.
바보가 된 것은 검찰만이 아니다. 바로 윤석열의 직계이자 법무부 장관 내정자 한동훈이다. 아마 한동훈은 낙마할 것이다. 장관이 된다한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칼잡이 윤석열은 검찰권력이 최정점에 오를 때 검찰주의자로 행세하며 검찰총장에 오르고 대권까지 거머쥐었다. 그리고 이제 검찰을 버렸다.
윤석열이 검찰공화국시대의 막차를 탄 희대의 먹튀였음을 검찰청 사람들은 씁쓸하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2. 보복수사의 칼을 내려놓자는 야합
그 동안 검찰은 정권 초기에는 정권을 위한 수사로 정권에게 아부하고, 정권말기에는 현정권의 치부를 수사하며 미래권력에 빌붙는 방식으로 검찰권력을 확장해 왔다. 그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세상을 떠났고, 이명박근혜는 모두 감옥에 갔다.
문재인 대통령은 잊혀지는 것이 개인적 소망이란다. 그런데 까닥 잘못하면 검찰청에 끌려나올 판이다.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과 이재명 대선후보 중 누구든 떨어지면 감옥간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게다가 검찰출신 윤석열이 집권을 하였으니,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이 보복수사의 공포에 휩싸이는 것은 당연하다.
검찰개혁의 명분은 둘째치고 이렇게 속전속결로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윤석열의 보복수사가 시작될 것이라는 공포가 자리잡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윤석열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검찰내에는 윤석열파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기 후 자신의 운명도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다.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박탈하는 이번 야합이 성사된 것은 바로 이 보복수사의 악순환에서 서로 해방되자는 큰 그림도 작용했다.
이렇게 보면 이번 합의가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의 완성, 피의 복수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는 정치적 성숙’이라고 바라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본질은 아니다. 본질은 야합이다.
내로남불은 하되, 정치적으로만 싸우고 칼을 들고 서로 죽이지는 말자는 야합. 보수양당체제로 갈라먹기를 제도화하자는 야합이다.
이로써 민주화를 위한 적폐청산의 역사적 장정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촛불항쟁은 친일친미수구세력을 적폐로 규정하고 청산을 요구했다. 그러나 180석을 가진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은 커녕 오히려 수구세력을 부활시키고 되치기를 당했다.
처음부터 이번 검수완박을 밀어붙이듯이 뭐라도 했으면 역사가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결국 윤석열은 문재인 정권을 적폐로 몰고 수사를 공언했다.
이제 적폐는 친일친미수구세력을 의미하는 용어가 아니라 여야 모두를 의미하는 말로 확장되었다.
다시 말해 적폐 프레임이 내로남불 프레임으로 바뀐 것이다. 서로 내로남불 하는 마당에 보복수사로 피를 흘려가면서까지 싸울 이유가 사라졌다. 그러니 이제 검찰권력축소를 여야합의로 진행하는 것이다.
보수양당체제를 고착시키기 위한 새로운 정치게임의 룰이 만들어지고 있다. 앞으로 무수한 부정부패와 비리들이 이런 야합구도속에서 은폐되고 감추어질 것이다.
오직 하나 올인했던 문제인 정부의 검찰개혁은 이렇게 막을 내리고 있다. 이것을 코메디라고 하지 않고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여진은 아직 남아있다. 검찰권력을 되살려 검찰공화국을 완성하고 보복수사의 칼을 휘두르고자 하는 윤석열의 야망은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부패, 경제수사와 중수청 신설 논란, 차기 총선에서의 검찰권 부활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3. 직접정치를 통한 사법권의 통제가 필요하다
어떤 변화속에서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이 땅의 법이 민중을 탄압하는 도구라는 점이다.
법이란 무서운 것이다. 일단 법이 제정되면 전 사회가 지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배자들은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각종 국가기구와 법을 통하여 민중에 대한 통제를 실현한다.
친미예속국가의 길을 걸어온 이 나라는 법을 통하여 민중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인권을 유린해 왔다.
이승만은 친일경찰을 통하여 경찰독재를 실시하였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군사력을 동원한 군사독재를 실시했다.
6월 항쟁 이후 경찰과 군부가 물러난 자리를 검찰이 대신했다.
공안질서가 어떻게 바뀌어왔든 동일한 것은 친미예속국가질서를 재생산하는 것에 복무하고 여기에 저항하는 민중을 탄압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막강한 법을 집행하는 국가기구가 사법기구이다.
사법권은 수사권, 기소권, 재판권으로 구성된다. 애초에 재판부에 집중되어있던 이 3가지 권리는 역사적으로 재판부, 검찰, 경찰의 권한으로 분화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사법권은 해방 직후에는 미군정이 가지고 있었고, 경찰과 더불어 서북청년단 등 민간폭력기구도 초법적 권리를 행사했다.
군사독재시절에는 경찰이고, 검찰이고, 재판부고 모두 군사독재의 시녀에 불과했다.
국민의 피어린 투쟁으로 정치민주화가 진척되고 그 사법권의 최정점에 검찰이 올라탔다.
오늘날 검찰이 독점하던 수사권과 기소권, 영장청구권, 구형권 중에서 수사권을 박탈당하는 것은 역사의 필연이고, 검찰의 자업자득이다. 이 와중에서도 부끄러운 역사에 대해 말 한 마디 없는 검찰은 더 개혁되어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분산된 권력이 어디로 사라지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어딘가에 이 사법권을 그대로 살아있다. 중수청이든, 어디든, 그리고 다시 그 시퍼런 칼날은 의연히 민중을 향할 것이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재판부든 국민배신과 민중탄압, 집단이익을 위한 선택적 정의로 점철된 사법권에 대한 진정한 개혁은 그 권력을 민중의 통제하에 두는 것이다.
당장은 쉽지 않다. 그러나 비록 친미예속국가, 친미보수양당체제의 사법권력이라 할지라도 국가기구간 권력분산과 조정과정을 통하여 민중의 개입공간이 발생하게 된다.
검사장 직선제, 검찰총장 직선제, 경찰 자치제의 완성, 재판배심원제 도입 등등의 공간이다. 바로 이러한 공간에 민중은 직접정치를 통해 사법권에 대한 통제력을 발휘하는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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