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여 평 남짓한 마늘밭에 스프링클러 10여 대가 거친 소리를 냈다. 사방으로 힘차게 뿌려지는 물방울이 마른 흙바닥을 적셨다. 마늘대는 키가 30~40cm 정도 자랐다. 봄 햇살을 받아 번들거리는 마늘잎에 물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후두둑 소리를 냈다. 나무로 만든 허름한 창고에서는 개가 짖었다.
지난 4월 20일 찾아간 대구 달성구 구지면의 전원 풍경은 여느 농촌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의 얼굴에선 불편함이 묻어났다. 그는 마늘밭 한 귀퉁이에서 드론을 날렸다. 'S자'로 휘어진 낙동강을 따라 반달형 밭이 길쭉하게 펼쳐졌다. 양파밭과 감자밭도 보였다. 어릴 적 목을 심하게 다쳐 허스키한 목소리로 굳어진 그가 말했다.
"조금 전에 갔던 OO양수장에서 퍼올린 낙동강 물로 농사를 짓는 곳인데, 상당히 넓어요."
마늘밭으로 오기 전, 정 국장이 들른 곳은 이 마을 바로 위쪽의 양수장이다. 낙동강 절벽 둔치에 선 양수장에서는 양수펌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가파른 풀밭으로 내려간 그는 낙동강에 코를 박듯이 허리를 구부린 채 강물 상태를 살피며 사진을 찍었다. 녹조 알갱이 같은 것이 양수펌프 흡입구가 박힌 강변에 흩어져 있다.
"녹조는 아니고, 풀씨인가 봅니다."그가 강 빛깔에 예민한 까닭이 있다. 지난 3월 22일 환경운동연합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그는 "낙동강 쌀에서 '발암물질‧생식 독성' 녹조 독성 물질이 검출됐다"라며 "프랑스의 생식 독성 기준 15.9배를 초과하는 수치"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2월 8일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낙동강·금강의 물로 재배한 쌀과 무, 배추에서 발암성과 간·폐·혈청에 영향을 미치는 남세균(Cyanobacteria)의 독성물질 마이크로시스틴(Mcrocystin)이 검출됐다는 내용을 발표했다"라고 말했다. ㈔세상과함께 후원으로 진행된 정밀조사 결과였다.
당시 조사에 사용됐던 무가 이 밭에서 나왔다.
"무의 녹조 독성을 검사했는데, 1.85μg/kg의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습니다. 국제 암 연구기관은 마이크로시스틴을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죠. 특히 간, 폐, 신경, 뇌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최근에는 정자와 난자 등 생식기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보고가 있죠."
정 국장은 "6월 중순부터 9월까지 녹조가 창궐할 텐데, 그때 이곳에서는 단무지용 무를 생산한다"라면서 "주의 조치 없이 전국으로 유통되는 농산물이 국민 식탁에 오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 국장과 함께 다음으로 간 곳은 경북 상주보 선착장이다. 보로 정체된 물 위에 부유 물질이 잔뜩 떠있다. 바닥에는 펄이 쌓였다. 가슴 장화를 꺼내 신은 그는 삽을 든 채 물속으로 10m 정도 들어가서 펄을 퍼왔다. 모래가 섞여 있지만, 시커먼 펄이다. 악취가 심했다.
"어, 여기 실지렁이다."
맨손으로 펄을 뒤적이던 그가 말을 이었다.
"수질을 1~4등급으로 나눌 때 4급수 지표종이 실지렁이, 깔따구입니다. 여기에서 실지렁이가 나왔다는 것은 4등급, 최악 수질로 전락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과거에 이곳은 1급수 지역이었어요. 지금 상주 시민들이 이 물을 취수해서 먹고 있죠."
그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말을 떠올렸다. 윤 당선자는 지난 2월 상주 풍물시장 유세에서 "민주당 정권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하신 4대강 보 사업을 폄훼하며 부수고 있다"라면서 "이것을 잘 지켜서 이 지역의 농업용수와 깨끗한 물을 상주·문경 시민들이 마음껏 쓰실 수 있도록 잘 해낼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정 국장은 "심하게 말하면 문경과 상주 시민들에게 시궁창 물을 많이 주겠다는 말과 같다"라면서 "실지렁이와 깔따구 등 시궁창에 사는 지표생물들을 더 채집해서 5월에 취임할 때 선물로 보내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도 좋겠다, 아주 특별한 선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주보에서도 드론을 날렸다. 과거 상주보 지역의 항공 사진을 보면서 같은 높이, 각도에서 비교한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그의 입 밖으로 신음하듯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날 정 국장과 마지막으로 간 곳은 경북 예천 삼강리 전망대다. 안동 하회마을을 돌아 나온 낙동강과 모래강 내성천, 죽월산에서 흘러드는 금천 합수부이다. 강물은 지는 해를 받아 은빛으로 반짝였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연출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한 장면 같았다. 강물은 휘돌아가면서 이곳 이목리의 낙동강변에 크고 흰 반월형 모래톱을 쌓았다.
"이게 낙동강 모습이었죠. 4대강 보에 영향을 받지 않은 유일한 곳. 내성천에 들를 때마다 여기에 옵니다. 죽어가는 낙동강을 보며 가슴이 아파올 때마다 여기서 재충전을 하죠."
정 국장은 달봉교를 건너 이목리 강변 모래톱 위에서 드론을 띄웠다. 드론은 내성천 회룡포까지 날아갔다. 그곳에서부터 이목리까지 굽이치는 낙동강 풍경을 영상에 담으면서 그는 입 꼬리를 치켜올렸다.
"진짜 멋지지 않나요."
그는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강을 보면서, 예전의 아름다웠던 강을 떠올려 그 소중함을 발로, 가슴으로 느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정 국장과 동행한 것은 ㈔세상과함께가 주관한 2020년 제1회 '삼보일배오체투지 환경상' 공로상을 받았던 그를 조명하기 위해서였다. 14년째 싸움을 벌이는 그와 함께 다니면서 달리는 차 안이나 강변 풀밭에 주저앉아 인터뷰를 했다. 이날 그와 동행하면서 든 느낌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그도 낙동강처럼 아파하면서, 때로는 쉬거나 굽이치기도 하면서 흘러가고 있구나.'
사실 공로상을 탔던 2020년과 그 전해인 2019년에 그는 낙동강에 없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500여 편의 기사를 쓰며 4대강 사업을 고발해왔지만 녹조가 창궐하고, 홍수가 터졌을 때에도 그는 한 건의 기사도 올리지 않았다. 이때 주변 환경운동가들로부터 이런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정수근만 있었다면..."
그는 지독한 마음의 병을 얻어 2년 동안 집에 칩거했다. 공로상 수상자 결정문에는 그의 정신적 치유에 작게나마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겼다.
정수근은 '낙동강 귀신' '낙동강 지킴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헌신하면서 4대강 싸움을 치열하게 전개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2년 동안은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환경운동을 잠시 접고 개인 건강 회복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심사위원회는 낙동강에서 생명과 평화를 지키면서 지난 10여 년 동안 고군분투해왔던 정수근의 헌신과 노고를 높게 평가했습니다.<br />- 오체투지환경상 결정문에서
그는 녹색평론사에서 10년간 근무했다. '앞산꼭지'(앞산을 꼭 지키려는 사람들)를 결성해 대구 앞산 터널공사 중단 운동을 벌였지만 공사는 강행됐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대운하를 밀어붙일 때였다. 이 모임은 '낙동대구'(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로 명칭을 바꿔 새 싸움을 벌였다.
낙동대구는 대구환경운동연합과 4대강 사업 저지 대구연석회의와 공조해 싸움을 이어갔다. 그는 천주교 신부들과 함께 10번의 낙동강 생명평화미사를 이끌었다. 2011년 대구환경운동연합의 국장으로 영입된 뒤 싸움은 본격화됐다. 낙동강 순례단을 조직했고, 시민들과 아이들과 함께 낙동강과 내성천을 누비고 다녔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참, 많이 싸웠어요. 4대강 공사현장에서 출입을 막는 수자원공사와 하청업체 관계자들과 멱살잡이한 채 흙바닥에 뒹굴기도 했죠. 주먹으로 얻어터진 적도 있어요. 경남 남지에서 준설선이 침몰했을 때 둔치가 무너지는 바람에 죽을 뻔한 적도 있죠."
그는 글 쓰는 환경운동가이기도 했다. 낮에는 현장을 누볐고, 저녁에는 논평과 성명서를 썼다. 기자회견에 쓸 피켓을 만들고, 늦은 밤과 새벽까지 <오마이뉴스>에 올릴 기사를 썼다. 4대강 사업 이후 매년 창궐했던 녹조와 물고기 떼죽음의 참상을 알렸다. 꽁무니에 기생충이 달라붙은 물고기들이 죽어가는 참혹한 특종 기사도 썼다.
그간 그와 여러 차례 동행 취재를 했다. 그때마다 그는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다. '녹조는 언제 시작되나?' '내일 현장에서 마이크로시스틴에 대한 인터뷰를 할 수 있냐?' 언론사 문의 전화였다. 그는 운전하면서 인터뷰에 응했고, 전날 쓴 기사에 대한 해명이나 항의 전화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는 '낙동강 스피커'이기도 했다.
이랬던 그가 2년여 동안 멈춰 섰다. 그 이유를 물었으나 그는 말을 아꼈다. 아직도 온전한 몸으로 회복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그와 오랫동안 현장 취재를 해왔던 터라 미루어 짐작할 만한 게 있었다. 그는 4대강사업이 완공됐던 2011년에도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
"아무리 떠들어도 준공식까지 하더라고요.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우린 패배했습니다. 우울증을 앓았고 정신과 치료도 받았죠. 하지만 녹조가 피고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패배감으로 한가하게 허우적거릴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싸움은 다시 시작됐고, '4대강 재자연화'를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문 대통령이 집권하기 전에 낙동강 현장을 직접 안내도 했던 그였다. 기대가 컸다고 한다. 하지만 문 정권은 집권 후반기까지 낙동강 8개 보의 수문조차 열지 못했다. 결국 '희망 고문'을 당하다가 여러 개인사까지 겹치면서 증상이 재발했을 것이다.
이런 그가 낙동강에 돌아온 건 2021년 3월이다. 낙동강 현장으로 복귀한 뒤 일주일에 2~3차례 낙동강 현장을 찾는다고 한다. 이날 <뉴스타파> 최승호 PD(전 MBC 사장)는 상주보에서 정 국장과 함께 물속에 들어갔다. 정 국장이 잡은 실지렁이를 보며 인터뷰하는 최 PD 역시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파헤쳤고 지금도 현장에 있다.
최 PD에게 '정수근은 어떤 사람인가'를 물었다. "한결같은 사람. 저는 2급수인데, 정수근 국장은 1급수"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부연했다.
"2008년부터 강을 살리려고 노력해온 것은 죽어가는 강을 보며 마음으로 아파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현장 조사하고, 운동은 운동대로 하면서 그걸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써서 알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이날 정 국장과 함께 삼강주막 근처에서 순댓국으로 배를 채우고 대구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물었다. '환경운동에도 많은 분야가 있는데, 4대강만 판다고 욕하는 사람들은 없었나?' 그가 공백기를 가졌던 이유의 하나이기도 했을 법한 질문이었다. 그는 침묵했다. 잠깐 동안 차 안에는 2004년산 낡은 엔진이 씩씩거리며 돌아가는 소리만 들려왔다.
"강과 습지 생태계만 보는 건 아닙니다. 물을 마시러 오는 야생동물, 산과 맞닿은 강에서는 숲 생태도 보이죠. 4대강은 생태계 축소판입니다. 가뭄에 무력하고 홍수를 유발하는 4대강 16개 보를 걷어내는 건 기후위기 해법의 하나죠. 멸종위기 1급인 귀이빨대칭이가 집단 폐사하고, 흰수마자가 내성천에서 자취를 감추고, 물고기들이 떼죽음 당하고... 얘들은 하소연할 데가 없잖아요. 저라도 알려야죠."
때로는, 멈춰 설 필요가 있다. 더 단단해지기 위해서이다. 지금도 4대강 주변에 잠시 멈춰 선 이들이 있다. 더 큰 희생을 요구하며 이들을 닦달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다만, 지금도 'MB 삽질'로 유린됐던 4대강 곳곳에서는 스스로를 치유하는 위대한 자연을 볼 수 있다. 사람도 그렇다. 자연의 시간으로 보면 찰나의 순간이다.
뭇 생명과 함께 아파해온 걸걸한 목소리의 '낙동강 허스키'. 멈췄던 그가 다시 강을 누빈다.
▲ 펄 속에서 캐낸 생명체..."윤 대통령 취임 선물로 주고싶다" 윤석열 당선자는 지난 대선 때 'MB 4대강 사업'을 계승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의 4대강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요?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과 낙동강 동행취재를 했습니다. 낙동강물을 퍼올려 농사를 짓고 있는 농경지와 상주보, 삼강전망대 등을 돌면서 인터뷰했습니다. 4대강사업 이후 낙동강에서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를 확인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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