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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여당 되자마자 노동시간 규제완화 포문 열어

“워라밸 추구하는 MZ세대 고려해야”, “근로시간보다 숙련공 고령화 문제 더 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과 국민의힘 중소기업위원회, 한국경영자총협회는 11일 오전 9시 40분 국회의원회관에서 ‘근로시간 유연성 개선,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2022.05.11. ⓒ민중의소리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바로 다음 날인 11일, 국회에서는 여당 국회의원이 주최하는 ‘노동시간 규제 완화’ 토론회가 열렸다. 6개월 또는 1개월 이내로 운영되던 유연근무제도의 사용기간을 1년으로 대폭 확대하는 방안, 노동자대표와 서면합의가 있어야만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을 회사와 노동자 개인 간 쉬운 합의로도 가능하도록 도입 문턱을 크게 낮추는 방안 등에 관한 토론회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시절 노동 분야에서도 규제 완화를 예고한 바 있는데, 집권여당이 된 국민의힘이 그 포문을 연 것이다.</figcaption>
특히, 이번 토론회에서는 ‘자연재해 또는 재난’ 등에서만 활용할 수 있도록 한정한 특별연장근로 인가 제도를 ‘경영상 사정 등에 따라 한시적으로 주1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가 필요한 경우’ 등으로 폭넓게 확대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참석한 고용노동부 관계자도 경영계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주40시간 효과가 크게 상쇄되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뀔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과 국민의힘 중소기업위원회,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이날 오전 9시 40분 국회의원회관에서 ‘근로시간 유연성 개선,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한무경 의원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국회 토론회”라며 노동시간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노동시간, OECD 중 최상위
그런데 “규제완화” 목소리 내는 여당
“활용기간 1년 확대, 도입요건 완화”

 
OECD 국가 1인 연간 노동시간 ⓒOECD Data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장시간 노동 국가다. 지난해 8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20년 국가별 1인당 노동시간 통계를 보더라도, 한국의 노동시간은 1908시간으로 OECD 가입국 중 최상위에 속한다. 2021년 OECD에 가입한 코스타리카(1913시간)와 2~3위를 경쟁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주40시간제가 도입된 이후 개선된 게 이 정도다. 주40시간제가 도입되기 전에는 2000시간을 훌쩍 넘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경영계는 경영효율성 등을 이유로 노동시간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주40시간제를 도입하면서 유연근로제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활용기간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경영계의 요구를 국정운영에 반영했지만, 경영계는 이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경영계는 활용기간이 짧고, 도입 절차가 까다로워 기업이 유연근로제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주장이 탄력근로제·선택근로제 단위기간을 1년으로 확대하고 도입 요건을 변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탄력근로제는 대표적인 유연근로제 중 하나다. 3개월 단위로 탄력근로제를 시행한다고 하면, 비성수기인 1~6주는 주28시간씩 일하고 성수기인 7~12주는 52시간씩 일해서 평균 주40시간을 맞춰 경영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선택근로제도 비슷한 제도로, 이를 시행하는 기간 동안 노동자가 자율적으로 근무시간을 조정하여 주40시간을 맞추는 제도다. 현행 제도에서 탄력근로제·선택근로제의 최대 활용기간은 각각 6개월·1개월이다.

경영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회사 입장에서는 좋아 보이지만, 노동자는 집중적으로 일하는 기간에 과로하기 때문에 주40시간제 도입 취지가 상쇄되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토론회에 발제자로 초청된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년에 성수기가 2~3개월씩 2번이거나, 생산물량을 맞추기 위해 집중근로가 필요한 시기가 3~4개월이 넘는 경우는 탄력근로제 6개월 단위로도 대응이 어렵다”라며 단위기간을 1년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최대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된 탄력근로제 활용기간을 1년으로 더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이를 노동자 개인 또는 팀·부서와의 합의만으로도 도입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행 제도에서는 기업이 탄력근로제 등 유연근로제를 활용하려면 반드시 전체 노동자대표와의 서면합의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노동시간 유연화에 부정적인 노조가 있으면 제도 도입이 어려우니 쉽게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정 교수는 “탄력근로제 취지를 고려할 때 개인, 팀, 부서, 직무 등 업무단위로 합의 또는 과반수 동의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 한국경영자협회 주최 '근로시간 유연성 개선, 어떻게 해야하나?' 토론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2.5.11 ⓒ뉴스1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도 대폭 확대?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도입 주장도


자연재해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주52시간을 초과할 수 있도록 허용한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인가사유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업무량이 갑자기 많아져 현행 주40시간제에서 허용한 12시간 연장노동을 넘어서도, 추후 일정 기간 내에 정부의 인가만 받으면 문제없도록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정 교수는 “입법개선을 통해 ‘경영상 사정 또는 직무 특성 등 주1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가 필요한 경우’ 등으로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를) 폭넓게 확대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연구개발 분야는 아예 시간당 임금제를 적용하지 않는 규제 완화 방안도 나왔다.

이정 교수와 류준열 서울시립대 경영대학 교수는 ‘화이트칼러 이그젬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collar exemption)은 미국에서 시행 중인 제도로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을 받는 관리직·전문직·영업직은 일하는 시간 및 장소에 대한 자유를 보장하는 대신 노동시간 한도 및 시간외수당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제도다.

이 같은 노동시간 규제 완화가 진행되면 ‘일과 삶의 균형’이 깨지기 쉽고, 노동자의 건강 또한 위협받게 될 가능성이 크지만, 이에 대한 실효적인 대안은 1일 연속휴식시간제 도입 정도만 언급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유연근로제가 확대되면서 ‘11시간 연속휴식제’가 도입된 바 있지만, 이정 교수는 이조차 유연근무제 활용의 제약요소로 여겼다. “근로시간제도 유연화에 대한 요구로 국회는 탄력근로제와 선택근로제를 일부 개정하고, 정부는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를 일부 보완했으나, 11시간 연속휴식제 등 새로운 규제 도입으로 활용하는데 제약이 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 나온 전문가들은 일본과 유럽의 사례를 제시하며 유연근로제 규제 완화를 주장했다.

이정 교수는 일본도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시행하고 있다며 한국도 이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고, 최홍기 한국고용노동교육원 교수는 “유럽 선진국에서는 연장근로 산정 단위를 일간으로 하지 않고 주간 단위로 하고 있고, 최근에는 월간 내지 연간 단위로 변화하는 상황”이라며 “연장근로에 대해 연간 단위 규제를 모색할 때 1일 8시간 현행체제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제도적 실익이 없기에 이것도 같이 풀어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OECD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유럽 27개국의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1513시간으로 한국과 395시간의 차이가 났다. 일본 또한 1598시간으로 한국보다 노동시간이 짧았다.

‘워라벨’ 깨는 유연근로제
“MZ세대 고려해야


토론회 말미에는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 세대)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워라밸’(Work-life balanc의 준말,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함)을 기업 선택의 우선순위로 삼는 MZ세대가 주40시간이 지켜지지 않는 기업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 3월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의 조사결과 발표를 보면, MZ세대가 가장 기피하는 일자리는 ‘정시근무가 지켜지지 않는 직장’이었다. 조사에 참여한 1990년생 8353명 중 75%가 “근무시간이 잘 지켜지지 않는 회사에 취직하고 싶지 않다”라고 답했다.

박종필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정책단장은 “과거에는 정책을 결정할 때 노·사만 고려하면 됐다. 하지만 이젠 MZ세대가 (사업장에서) 소수가 아닌 다수가 되고 있다”라며 “세대변수를 같이 고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토론회 질의응답 시간에 한 제조업 사장도 뿌리산업에 젊은 세대들이 유입되지 않고 숙련공 고령화로 생산 대비 가공비용이 너무 높아져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근로시간 유연화보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먼저 개선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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