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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마른 미류와 종걸, 그리고 연대의 발길들…차별금지법 농성장의 하루

[르포] 한 달 넘긴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단식 농성, 평등 텐트촌은 온종일 북적였다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왼쪽)와 미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행위원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 33일 째 이어가고 있다. 2022.05.13 ⓒ민중의소리 
 
"춥진 않았어요? 모기는 안 물렸고요? 셋이서 같이 잔 거예요?"

미류 활동가는 농성장에 들어서자마자 밤새 이곳을 지킨 지킴이에 대한 걱정부터 쏟아냈다. 전날의 농성장 지킴이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활동가들이다. 방금 전까지 "입이 돌아가는 줄 알았다"며 얼마나 추웠는지 얘기하던 이들은 혹여 미류 활동가가 걱정이라도 할까 "괜찮았다"는 말만 연신 반복했다.

따로 들은 얘기로는 태양열 발전기가 고장나 전기장판을 켜지 못해서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낮에는 초여름 날씨지만, 해가 지면 기온이 크게 떨어지는 탓이다. 농성장 한쪽에는 추위를 이기기 위해 이들이 껴입었다던 패딩 조끼, 카디건, 코드가 걸려 있었다.

지난달 11일부터 국회 앞에는 평등 텐트촌이 차려져 있다. 인권 운동가인 미류·이종걸 활동가는 이곳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물과 소금, 효소만으로 버티는 단식을 이어가는 중이다. 단식 농성 33일 차였던 지난 13일, 평등 텐트촌의 하루는 이렇게 서로를 향한 걱정으로 시작했다.

많이 야윈 미류와 종걸,
"기운은 조금씩 빠지긴 하지만 아직은…"
 
미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행위원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 33일 째 이어가고 있다. 2022.05.13 ⓒ민중의소리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 33일 째 이어가고 있다. 2022.05.13 ⓒ민중의소리

미류·종걸 활동가의 하루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농성장에 오자마자 신문과 책을 읽거나 매일 다양한 단체가 주최하는 차별금지법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할 내용을 정리한다. 농성장을 방문하는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산책이나 요가 등 운동도 빼놓지 않는다. 모두 "잘 싸우기 위해서"라고 한다. 

날마다 소화해야 하는 정기적인 일정도 있다. 오후 1시부터는 동조단식을 하기 위해 시민들이 모이는데, 이들의 동조단식이 끝난 뒤 마무리 집회에 참석하고, 오후 7시에 열리는 저녁 문화제도 함께 한다.

단식 33일 차, 두 사람의 건강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시기다. 의료진은 단식 30일을 넘기기 시작한 시점부터 "정말 힘든 시기"라고 얘기했다. 이전까지는 몸속에 가지고 있는 지방으로 영양분을 쓰지만 30일이 넘어서기 시작하면 영양분으로 쓸 수 있는 게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날 두 사람을 진료한 녹색병원 임상혁 원장은 "별로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질문에 두 활동가는 괜찮다는 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 먼저 입을 뗀 종걸 활동가는 "걱정하셔야죠, 이제는"이라며 크게 웃었다.

그는 "아무래도 기운이 조금씩 빠지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단식을 못 할 정도는 아닙니다"라며 "단식도 잘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잘 관리하고 있습니다. 산책도 하고, 요가도 하고요"라고 답했다.

미류 활동가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최소한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아직은 괜찮다고 말하지만, 이들의 몸은 많이 야위어 있었다. 짧은 대화 중에도 여러 번 물을 마셔야 했고 근육통이 있는지 연신 몸을 두들겼다. 종걸 활동가의 눈가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화장실을 가던 중 갑자기 어지럼증이 찾아와 넘어지면서 생긴 멍이었다.

차별금지법 바라는 이들이
함께 만들어간 평등 텐트촌

 
시민사회인권단체 회원들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즉각 제정 촉구 동조단식에 동참하고 있다. 2022.05.13 ⓒ민중의소리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들쭉날쭉한 기온이다. 이날도 그랬다. 아침에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쌀쌀했다가, 1~2시간이 지나자 금세 땀이 맺힐 정도로 더워졌다. 그러다 해 질 무렵이 되면 몸이 오들오들 떨릴 정도로 추워진다. 단식 이후 두 사람의 몸은 기온 변화에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작은 농성장에는 잘 싸우기 위한 각종 물품이 갖춰져 있다. 두툼한 전기장판을 깐 2개의 간이 침대와 솜이불, 핫팩, 모기향 등 종류도 다양했다.

농성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아기자기한 소품들이다. 이곳에서는 '평등 상징물'로 불린다. 무지개색 깃발부터 알록달록한 별이 가득한 모빌, 따스한 응원 문구가 더해진 손 그림이 농성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농성장이 참 예쁘다'는 말에 이날 평등 텐트촌을 지키는 당번인 랑 활동가는 이렇게 답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과 손길이 계속 보태지는 거예요. 자기도 농성장의 일부를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뿌듯함이 들기도 하고, 미류·종걸에게 즐거움을 줄 수도 있고요. 이렇게 한 땀 한 땀 보태고 이어가고 완성된 게 지금의 평등텐트촌이죠."
 
5월 13일 기준, 단식 33일차를 맞은 이종걸·미류 활동가가 선물받은 모빌을 보고 즐거워하는 모습. ⓒ민중의소리

 
잠시 후 또 다른 활동가가 10여 년 전 제주 강정기지 투쟁 당시 모았다는 소라 껍데기와 산호를 한 아름 챙겨 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손뜨개로 별을 만들어 세월호 엄마·아빠에게 선물했다는 박은경 활동가와 랑 활동가는 손뜨개로 뜬 별과 소라 껍데기, 산호를 이용한 모빌을 만들어 미류·종걸 활동가에게 가져다줬다.

농성장 어느 곳에 모빌을 달아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진 미류·종걸 활동가의 웃음소리가 농성장 밖까지 흘러 나왔다.

미류·종걸에게 큰 힘이 되는 '연대'
고 김용균 어머니도 동조 단식
"힘 보태주고 싶다"
 
故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가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즉각 제정 촉구 동조단식에 동참하고 있다. 2022.05.13 ⓒ민중의소리
 
 
농성장을 찾기 전, 기약 없이 길어지는 단식에 농성장 분위기도 많이 침체돼 있진 않을지 걱정도 됐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막상 농성장을 가보니 자신의 삶을 걸고 싸우는 미류·종걸 활동가와 매일 이들 곁을 지켜주는 활동가들, 그리고 이들을 응원하는 수많은 시민은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미류·종걸 활동가가 여전히 씩씩하게 싸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이 싸움이 우리만의 싸움이 아닌 우리 모두의 싸움이라는 걸 알려주셔서 너무 큰 힘이 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도 수많은 이들이 농성장을 방문했다. 오전 11시에는 교수·연구자 단체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나가던 길에 응원 인사만 전하고 싶다며, 수줍게 "파이팅"을 외치고 간 시민도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 박진 사무총장도 격려차 농성장에 방문했다.

오후 1시부터 1시간 30여분간 이어지는 동조 단식에는 20명이 넘는 시민들이 동참했다. 고 김용균씨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도 이날 동조단식에 참여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위해 한달여간 단식농성을 한 '산증인' 김 이사장은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단식하는 이들에게 힘을 보태주고 싶어요" 김 이사장이 이곳을 찾은 이유였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보잘것없을지 몰라도, 그게 모이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저도 겪어봐서 알고 있어요. 이런 마음이 모아져 큰 물결이 되고, 그래서 법이 통과되는 거잖아요. 어차피 단식하겠다고 마음먹은 만큼 하루빨리 단식을 끝낼 수 있도록 법이 통과됐으면 좋겠어요."
 
시민사회인권단체 회원들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즉각 제정 촉구 동조단식에 동참하고 있다. 2022.05.13 ⓒ민중의소리


대학원생인 전혜현(25)씨도 같은 마음이었다. 전 씨는 "차별금지법이라는 최소한의 안전망도 없으면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차별받거나 정말 위험해지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이게 마지막 투쟁이라고 생각해서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미류·종걸 활동가와 오랜 친분이 있던 '상상행동 장애와여성 마실' 김광이 대표는 두 사람을 보자마자 "너무 말랐다"며 눈물을 훔쳤다.

김광이 대표는 "배제되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차별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그 아픔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며 "그 간절함으로 법 제정을 요구해 온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진전이 없는 모습에 이렇게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두 활동가에게 하고픈 말을 묻자 "빨리 쓰러졌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하면서도 "그 마음도 솔직히 있지만, 두 사람의 빛나는 의지에 제가 힘을 받고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오늘의 힘을 모아서 꼭 평등의 봄을 쟁취합시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잘 싸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미류·종걸 활동가는 동조단식 마무리집회에서 더 열심히 싸우겠다는 다짐으로 감사 인사를 대신했다.

단식의 시간은 길어지는데 꿈쩍 않는 국회
"하겠다는 말 들으려 단식한 거 아냐,
구체적인 계획 내놓고 실행해야"


농성장에 돌아오니 한쪽에 쌓인 피켓이 눈에 띄었다. 한 차례 문구를 고친 듯 종이가 덧붙여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차별금지법 '4월' 쟁취에서 '봄' 쟁취로 수정됐다. 단식의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데, 국회의 시간은 멈춰 있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국회 과반인 더불어민주당은 최근에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공론화에 나서겠다는 뻔한 다짐만 내놨다. 미류·종걸 활동가는 이제 말뿐인 약속은 믿지 않는다. 두 사람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민주당의 모습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저희가 작년에 부산에서 서울까지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걸었잖아요. 그때 이미 민주당은 공론화하겠다고 얘기했거든요. 지금 와서 '해보겠다', '하겠다' 이런 얘기 들으려고 단식 시작한 거 아니거든요. 하는 모습을 보이시라는 겁니다." - 미류 활동가

"공론화하겠다는 이야기 민주당이 대선 때부터 계속 얘기해 왔던 것이죠. 지금은 민주당이 책임질 수 있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계획을 얘기하고 실행하는 게 필요합니다." - 종걸 활동가

하루 일과의 마지막 순서, 저녁 문화제를 시작할 시간이 다가오자 농성장은 다시 분주해졌다. 다들 익숙한 듯 농성장 바깥에 의자를 깔고 조명을 설치하고, 라이브 방송을 위한 장비를 꺼낸다. '이제 농성의 달인이 됐다'며 우스갯소리도 주고받았다.

이날은 여성주의 자기방어 훈련을 강의하는 강사 미정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미류·종걸 활동가도 자신의 경험을 나누며 손뼉을 치고, 깔깔 소리 내 웃었다. 그들 옆으로는 퇴근하는 국회의원을 태운 차량이 끝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단식 33일차를 맞은 지난 5월 13일, 미류·이종걸 활동가를 비롯한 이들이 저녁 문화제에 참석했다. ⓒ민중의소리

아무리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가는 단식이라지만, 단식은 단식이다. 앞으로 두 사람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 걸까.

종걸 활동가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뗐다.

"버틴다기보다 우리는 계속 싸우고 있어요. 버티는 것만이 아니라 성난 마음을 어떻게 더 잘 보여줄 수 있을까, 이 고민을 하고 있는 거죠. 이런 마음을 보여야 저들이 움직인다는 게 안타깝지만, 끝까지 잘 싸우는 게 중요하지 않겠어요?"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미류 활동가는 "멋있다"며 맞장구를 쳤다.

"저희는 민주당을 믿어서가 아니라 우리를 믿기 때문에 싸우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제 너무 많은 사람이 차별금지법이 무엇이고,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를 알아버렸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사람들이 모두 스스로를 믿으며 싸우다 보면, 차별금지법은 제정할 수밖에 없는 법이지 않을까요."

오후 8시, 어느덧 하늘은 어둑해졌다. 한 활동가가 "지금 하늘이 예술"이라며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고 분위기를 띄우자, 미류·종걸 활동가와 함께 하루를 보낸 이들이 속속 한 자리에 모여 단체사진을 찍었다.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은 채로, 왁자지껄하게, 단식 33일차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5월 13일 기준, 단식 33일차인 미류·이종걸 활동가가 하루를 마무리하며 하늘에 뜬 달을 함께 보고 있는 모습.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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