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오는 21일 서울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일본을 먼저 방문하던 관례를 깨고 이번에는 한국 방문 후 24일 일본에서 열리는 쿼드 정상회담에 참석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한국 대통령 취임 후 11일 만으로 역대 가장 빨리 열린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 후 51일, 이명박 전 대통령은 5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71일 만에 열렸다.
1952년 이승만-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시작으로 한미정상회담은 총 71회 열렸지만, 이번처럼 관례를 깬 다급한 회동은 처음이다. 그만큼 바이든 대통령의 들고 올 방한 청구서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신냉전’ 질서와 바이든의 청구서
윤석열 정부는 출범 전부터 “한미동맹을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격상한다”(한미정책협의단 박진 단장)고 공언해 왔다.
포괄적 전략동맹은 2009년 6월 이명박-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시작되었는데, 트럼프 행정부를 거치며 지지부진하다가 이번 윤석열 정부에서 완성하려는 것이다.
포괄적 전략동맹이란 한미동맹을 대북군사동맹으로 국한하지 않고, 인권, 민주주의, 경제협력 등의 이슈로 확대하자는 취지이다.
문제는 과거 포괄적 한미동맹 격상이 전작권 반환을 전제로 협의된 반면 윤석열 정부에선 미국의 강력한 요청에 화답하는 형식을 띤다는 데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바이든은 윤석열 정부에 대중국, 대러시아 관계를 단절하고, 미국의 ‘신냉전’ 질서에 완전한 편입을 강제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미국의 요청대로 윤석열 정부가 대중‧러 압박의 선봉대로 나선다면, 한국이 입게 될 경제적·외교적 타격은 상상 이상으로 심각해진다.
바이든은 방한 중에 ‘대(對)아시아 공개연설’을 예고했다. 이 연설에서 바이든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지역 귀환”을 선포하고,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한반도에서 중국의 세력 확장을 견제한다”라는 ‘바이든 독트린’을 발표할 계획이다.
과거 ‘트루먼 독트린’이 냉전을 불러왔고 한반도에 전쟁이 터졌다. 그렇다면 ‘신냉전’ 질서 구축을 위한 이번 ‘바이든 독트린’이 한반도에 어떤 위기를 몰고 올지 걱정이 앞선다.
IPEF와 바이든 청구서
바이든은 윤석열 정부에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가입을 종용하고, 4대 재벌에는 미국 투자 확대를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IPEF는 한 마디로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구상이다. 기존 FTA 등 자유무역질서 대신 미국을 중심으로 한 공급망 체계, 인프라, 에너지, 무역, 조세질서가 새롭게 구축된다.
미국은 내년 11월 출범을 목표로 호주, 뉴질랜드를 비롯해 싱가포르, 일본, 한국, 인도,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 같은 아시아 국가들을 IPEF에 포함시킨다는 계산이다. 이번 일본 쿼드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이런 구상을 공식화할 예정이다.
미국은 CPTPP 등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달러패권 질서를 유지하는 한편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몰락에 대비한 미국 중심의 블록경제 구축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다.
한편 한국이 미국의 새로운 경제질서에 편입되고 나면 대중국 무역 단절이라는 경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에 한국이 동참함으로써 유연탄 등 원자재 수입이 중단돼 이미 시멘트 대란을 경험하고 있다. 여기에 75% 이상 중국에 의존하는 원자재 품목이 1800여 개에 달하는 한국으로선 대중국 무역에 장벽이 생기면 한국경제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
4대 재벌과 바이든의 청구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정책으로 인해 한국이 입게 될 피해 따위는 안중에 없다.
바이든은 방한 중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 그룹 회장 등 4대 재벌총수들과의 면담하고, 평택 삼성반도체 공장도 방문한다.
4대 재벌과의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바이든은 미국에 투자를 주문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삼성전자는 20조원 규모 파운드리 증설을 확정했고, SK이노베이션은 포드와 6조원 규모의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 '블루오벌SK' 설립을 발표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파트너 GM(제너럴모터스)와 배터리 생산 등 사업 협력에 5조원 이상 투자비를 쓰기로 한 상태이다.
현대차는 바이든 방한 일정에 맞추어 미국 조지아주에 70억 달러(약 9조 원) 규모의 전기차 전용 생산 공장 건립 투자계획을 발표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문제는 ▲미국으로의 투자가 국내 내수와 고용증대 기회를 빼앗고, ▲중국과 러시아 원자재에 기반한 반도체, 배터리 등의 생산에 불안정을 조성하고, ▲미국의 자체 국산화를 위한 시간벌기용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팽 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이 크다.
이 때문에 국제경제질서가 다극화되는 시점에 미국 일변도의 선택이 타당한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바이든식 ‘빨대 꽂기’를 일방적으로 수용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안보 불안과 바이든의 청구서
윤석열 정부는 대북 선제타격론에 입각한 킬체인, 다층방어체계, 압도적 대량응징보복라는 3중체계의 완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의 군사적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특히 성주 사드의 추가배치, 부산, 벌교의 레이다 배치 등 다층방어체계는 중국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윤석열 정부는 연대급 이상의 한미 연합 야외기동훈련(FTX)을 재개와 키리졸브(KR), 독수리(FE), 을지프리덤가디언(UFG) 등 대규모 한미연합기동훈련 정상화를 공언했고, 전략자산 전개를 위한 한미 공조 시스템 구축 및 정례 연습 강화도 발표했다.
바이든은 이러한 윤석열 정부의 요구를 수용하는 척하면서 군사분야 청구서를 내밀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바이든은 한미일 군사동맹 완성을 위해 한일관계의 일괄타결을 강박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사 왜곡, 일제강점기 성노예와 강제징용 문제, 독도 영유권 주장 등 해결되지 않은 일본의 범죄행위에 면죄부를 주고, 대신 한미일 동맹을 위해 한일관계의 미래만 생각하자는 식의 억지를 부리지 않을까.
다음으로 바이든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를 위해 한국의 대전차 무기 지원 등을 요구할 것이다.
이미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한국 국회 화상연설에서 한국형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 신궁(新弓, KP-SAM) 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
실제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보낼 제블린 등 대전차 미사일 재고가 이미 바닥 난 상황이다. 특히 지난 5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이버방위센터(CCDCOE) 정회원 가입 행사에서 한국이 나토 준회원임이 확인되었다. 이는 한국이 미국의 대리전인 우크라이나 전쟁에 무기를 보내야 하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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