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파랗다. 우주에서 내려다보는 지구는 파란 바다색으로 물들어 있어 더욱 아름답다. 지구 표면적의 70%를 차지하는 바다는 지구에서 살아있는 생명체가 처음으로 탄생한 곳으로 생태계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좋아하고, 탁 트인 바다를 보면서 어머니의 품과 같은 안식을 느끼는 것 같다.
바다 생태계가 제공하는 가치
바다에서 생명의 싹이 트고 이후 수억 년이 흐르면서 단세포 해양식물로부터 고래 크기만 한 고등동물까지 다양한 해양생물이 진화해왔다. 이러한 진화의 흐름 속에서 해양생물 중 일부가 육상으로 진출하였고 습지, 숲, 초원과 같은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보고 접할 수 있는 육상생태계가 만들어졌다. 진화라는 열차의 마지막 승객이었던 우리 인류는 지구생태계 먹이사슬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해 있고 해양생태계와 육상생태계가 제공해주는 다양한 혜택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해양생태계가 사람에게 제공해주는 혜택을 우리는 해양생태계서비스라고 부른다. 2007년에 국제 생태경제학회지에 발표된 논문에서는 전 세계 가까운 바다 생태계가 제공하는 서비스 가치가 연간 2000조 원이 넘으며 전 세계 GDP의 약 46%를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바다가 주는 생태계서비스가 학문의 대상이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필자가 대학에서 해양생태계를 배우기 시작한 90년대 초만 해도 생태계서비스라는 용어는 강의 시간에도 거의 들어보지 못했던 아주 생소한 개념이었다. 해양생태계서비스는 크게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수산물을 공급하고(공급), 오염정화와 온실가스 흡수로 환경을 조절하며(조절), 해수욕과 휴양의 문화적 혜택을 주고(문화), 일차생산과 산란지 제공을 통해 바다 전체를 지원 또는 지지한다(지원). 지원서비스는 영어로 'supporting service'를 번역한 것인데, 최근에는 지지서비스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육상과 다른 바다 환경
우리나라 바다는 한반도 남한 면적보다 4배 정도 넓으며 1만3000종이 넘는 해양생물이 살아가고 있다. 면적당 생물종수로 하면 우리 바다의 생물다양성이 전 세계에서 1등이다. 이렇게 우리 바다에 많은 생물종이 살고 있는 이유는 서해에는 갯벌, 남해에는 아름다운 섬, 동해와 독도에는 깊은 바다, 제주도에는 아열대 생태계가 있어 환경과 서식지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생물들이 조화롭게 어울리며 만들어 내는 생태계 기능이 바로 우리가 바다로부터 누리고 있는 풍요로운 혜택의 원동력이다.
우리의 출발은 바다였으나 너무나 오랫동안 육상에서 살아오면서 육상 환경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인지 바다라는 환경은 어색하고, 두렵고, 접근하기 어려운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바다에 살고 있는 생물의 특성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다를 채우고 있는 물이 주는 독특한 환경을 먼저 알면 된다. 바다에서 처음 생명이 탄생한 이유는 물이 가져다주는 안정적인 환경 때문일 것이다. 바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생물학적 현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 생물해양학인데 생물해양학 교과서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내용이 육상 환경과 바다 환경의 차이이다. 바다를 이루고 있는 물은 공기에 비해 밀도가 높다. 밀도가 높은 물에 살고 있는 생물은 높은 부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중력에 의한 영향을 덜 받고 수중에 떠 있기가 수월하다. 우리가 수영장에 들어가면 편하게 떠 있을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물에서는 쉽게 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해양생물은 육상생물에 비해 부드러운 조직을 가질 수 있도록 진화해 왔다. 해파리와 같은 흐물흐물한 동물이 바다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이다.
물에 뜨기 쉽다는 것은 식물플랑크톤에서 고래까지 다양한 해양생물이 바다의 3차원 공간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육상에서는 중력 때문에 공중에 떠서 살기가 어렵다. 곤충이나 새와 같은 날개가 달린 동물이나 솜털이 달려서 바람에 날릴 수 있는 씨앗 정도가 공중에서 살 수 있으나 평생을 쉬지 않고 떠서 사는 육상생물은 지구상에 없다. 그러나 바다에서는 평생을 물에 떠서 생활하는 해양생물이 아주 많다. 이러한 특징을 염두에 두면 바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생물 현상을 이해하기가 쉬워진다.
이러한 환경에서 비롯되는 해양생태계와 육상생태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먹이사슬의 복잡성을 들 수 있다. 먹이사슬은 원숭이로 시작해서 백두산으로 끝나는 말 잇기 동요의 원리와 같다. 광합성을 통해 식물이 자라고, 식물을 초식동물이 먹고, 초식동물을 육식동물이 먹고, 동물 사체를 미생물이 분해하여 영양염을 만들고, 영양염을 이용하여 식물이 다시 광합성을 하는 것이 생태계 먹이사슬의 기본적인 모습이다. 해양생태계의 먹이사슬이 긴 이유는 식물-초식동물-육식동물의 단계를 구성하고 있는 해양생물이 몸의 크기에 따라서 더 많은 단계로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마이크로미터에서 밀리미터 크기의 소형생물인 피코(pico), 나노(nano), 마이크로(micro) 플랑크톤들이 피식-포식 관계로 얽혀서 복잡한 먹이사슬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미생물먹이망을 영어로 'microbial loop'라고 부르는데, 육상생태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해양생태계의 가장 독특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작은 식물 플랑크톤을 이보다 조금 더 큰 동물 플랑크톤이 잡아먹고, 이를 조금 더 큰 동물 플랑크톤이 잡아먹는 식으로 미생물먹이망이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다.
리질리언스란
그렇다면 해양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복잡하고 길다는 것이 어떤 장점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스템의 리질리언스(resilience)를 높여준다. 리질리언스란 생태계의 특징을 기술하기 위해 생태학 분야에서 사용하던 용어인데 최근에는 사회-생태시스템의 특징을 설명하는 분야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다. 1992년 리우회의에서 지속가능발전이 전 세계적인 화두로 제시되면서 지속가능한 자연과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인지를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했고, 그 결과로 2000년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용어라고 이해하면 된다.
리질리언스는 외부 충격을 견디는 능력과 무너진 시스템을 회복시키는 능력을 함께 고려하는 개념이다. 리질리언스를 우리말로 번역하기 위해 여러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해보았지만 적절한 용어가 없어서 일단 리질리언스라고 부르기로 하고 있어 세종대왕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리질리언스의 복잡한 개념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어떤 시스템이 리질리언스가 높은 것인지를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첫째 생물다양성이 높은 생태계는 다양한 기능을 하는 생물들의 시스템이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하고 빠른 회복을 돕는다. 둘째 중복성이 높은 생태계는 비슷한 기능을 하는 생물의 종류가 많아서 한 종이 멸종을 하면 다른 종이 그 기능을 대체하여 시스템 붕괴를 막는다. 셋째 소생태계(전체 시스템을 이루는 여러 개의 작은 시스템으로 보면 된다)의 기능이 잘 작동하게 되면 전체 시스템의 리질리언스가 높아진다. 예를 들면 소모임이나 커뮤니티가 잘 작동하는 사회가 재난 극복에 강하고 위기에 잘 대처한다. 이 세 가지가 시스템의 리질리언스를 진단하는 항목인데 이를 다양성 또는 이질성(heterogeneity), 중복성(redundancy), 모듈성(modularity)이라는 전문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중복을 낭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리질리언스 관점에서 보면 중복은 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는 일
지금까지 해양생물학의 이론을 가지고 해양생태계가 갖고 있는 특징을 설명해 보았다. 찬찬히 살펴보면 우리가 왜 해양생물 다양성을 보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결국 그 이유는 해양생태계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생태계서비스를 잘 즐기고,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기 위함이다.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은 생태계의 리질리언스를 높이는 행위이다. 리질리언스가 높은 생태계는 외부의 충격에 잘 견디고, 만에 하나 시스템이 무너졌을 경우라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 개발 이론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가 자연을 보존하고 환경을 깨끗하게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과학적인 이론을 찾기 위해 오늘도 많은 과학자들이 수고하고 있다. 5월 31일 바다의 날을 맞이하여 건강한 바다를 위해 노력하는 많은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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