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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6월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공기업이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인식을 했다고 밝히며 강도 높은 공공부문 개혁을 주문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강도 높은 공공부문 개혁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달 16일 정부가 발표한 경제정책 방향은 민간부문과 중복되는 사업은 줄이고 자발적 조직축소와 자산매각, 구조조정, 인력감축 등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복지국가 자본주의가 발달했던 서구 선진국에서 1980년대 유행했던 신자유주의 개혁, 그리고 2010년 전후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공공부문 개혁의 부활로 보인다.
사회적 가치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강조하는 시대적 흐름과는 거리가 있고 다소 상충하는 면도 있다. 특히, 민간부문과 중복되는 사업을 줄인다는 것은 적절한 원칙이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 사업자들이 놓치기 쉬운 공공성이다. 민간과 다소 중복되더라도 공익 침해가 우려되는 영역에서는 공공부문의 선도적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처럼 공정경쟁 질서가 확립되지 못한 시장 환경에서 민간사업자의 진출은 공공성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과거 신자유주의 개혁 사례를 통해 자본주의 발전의 다양한 경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개혁을 주도했던 미국이나 영국처럼 공공부문의 민영화, 영리기업의 진입과 경쟁 강화에 적극적이었던 나라들이 있었던 반면 북유럽, 프랑스, 이탈리아 등과 같이 영미식 개혁과 다른 경로를 선택한 나라들도 있었다.
전자가 성공적이었는지, 후자가 성공적이었는지는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민영화 혹은 민간부문의 확대라는 개혁만이 왕도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미식 민영화를 선택했던 미국, 영국, 일본과 같은 나라의 공공부문 고용 비중은 한국보다 낮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반면 다른 길을 선택했던 북유럽,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한국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이 나라들은 민영화만이 아니라 공공부문의 합리적 지배구조를 갖추기 위한 개혁도 지속했다.
영리기업이 더 효율적이다?
과연 지금 대한민국에서 민영화 혹은 민간부문의 확장과 공공부문의 축소라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필요한가?
유럽연합(EU) 선진국들의 자료를 분석하면 기업성과의 측면에서 공기업과 영리기업 사이에 뚜렷한 우열 관계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EU 집행위원회 2016년 보고서의 결론이다. 공기업도 합리적 지배구조를 통해 관리한다면 충분히 영리기업 못지않은 기업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공성을 담보하는 역할까지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지배구조 개혁이다. 공기업이 추구해야 할 비상업적·상업적 목적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성과관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공기업은 재무적 성과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성과를 추구한다. 앞의 보고서는 이런 사회적 성과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평가체계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또한 공기업 운영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인사제도 역시 강조한다.
한국에서 공공부문 지배구조의 선진화는 매우 중대한 과제로 남아있다. 정부 정책과 관련 부처의 영향력 행사로 공기업 경영의 자율성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원칙 없는 낙하산 인사로 공기업 인사의 독립성과 전문성 역시 취약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공기업 이사회는 주요 의사결정에서 그 역할이 미약하다. 공공기관 평가제도 역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원칙 없이 돌변하여 지속가능한 경영을 어렵게 한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국가의 소유권을 내세워 공기업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다. 이런 지배구조를 가지고 어떻게 기술경쟁력을 가지고 혁신을 선도하는 공기업으로 발전하기를 바라겠는가?
맹목적으로 공공부문을 축소하고 민간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한 개혁 방향이 아니다. 지난 대선 기간 논란이 됐던 '대장동 개발사업'에서 이 같은 폐해가 잘 드러났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민간사업 영역 확대 방침에 따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공개발 사업이 철회됐다. 그 방침은 민간 사업자에게 천문학적 수익을 안기는 결과로 이어졌다.
대규모 부동산 개발사업과 투기가 국민 경제에 초래하는 폐해는 대다수 국민들이 공감하는 바와 같다. 공공투자, 위치재, 토지 등 공유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투기 세력이 땀 흘리지 않고 독점하여 부의 불평등을 가중시킨다. 그렇게 과열로 치달은 부동산 시장이 서민의 주거 안정을 침해한다. 이런 공공성의 침해를 방지하는 것이 공공부문의 역할이다. 그 역할이 공공부문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희생된 것이다.
발전정비산업의 경쟁 도입과 민간시장 개방 정책도 비슷한 사례다. 공기업인 한전KPS가 독점적인 사업자였다가 2013년 이후 본격적으로 경쟁 체제를 도입해 민간사업자가 진입하기 시작했다.
말이 경쟁도입이지 발전정비 시장의 일정 비중을 경쟁력 없는 민간사업자에게 배정하고 그 비중을 인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이었다. 정부는 민간사업자들이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관여했다. 실제 민간사업자의 영업이익률이 공기업에 비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됐다. 그 결과 공기업은 높은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민간사업자보다 낮은 수익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재생에너지 비율이 낮은 이유
▲ 탄소중립 사회로 전환하려면 공공부문이 화석연료 에너지로부터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만 가능하다. ⓒ enrique
안정적 수익을 예상한 사모펀드가 회사를 인수하는 사례들도 나타났다. 경쟁 도입 정책으로 기술우위에 있는 공기업이 손해를 감수하고 민간 사업자들의 기술 공백을 메워주는 형식의 기이한 산업구조가 만들어졌다. 근속연수, 보수, 고용형태 등 고용의 질 측면에서 공기업과 영리기업의 격차 또한 매우 크다 보니 산업 전체에서 고용의 질을 낮추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금 세계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사회로 전환해야 하는 중대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주요 선진국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전환에 뒤처진 나라는 미래 경제활동에 지대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한 나라의 지속적 경제발전이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에 성공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공부문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에너지산업에서 화석연료 에너지로부터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적합한 공공부문 개혁 방향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에너지 전환에 있어서 대한민국이 처한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주요 선진국 중 가장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고 말할 수 있다. 가장 단기간에 이 난관을 극복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높은 비중의 재생에너지 발전에 성공했다. 특히 독일과 영국 그리고 북유럽의 경우 전체 발전량 중 재생에너지 비율이 2020년 기준 40% 이상에 이르는 성과를 거뒀다. 미국과 호주도 각각 19%와 23%대를 달성했다. 우리의 경우 8% 수준으로 세계 최하위권이다.
2010~2019년 주요국의 재생에너지 설비투자 총액을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약 153억 달러로 중국(8180억 달러), 미국(3923억 달러), 일본(2109억 달러) 등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멕시코(248억 달러), 터키(211억 달러), 칠레(180억 달러)의 투자금액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처럼 큰 격차를 짧은 기간 줄여야 하는 것이 현재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다.
설상가상으로 우리가 처한 지정학적 여건 역시 최악이다. 유럽과 북미 선진국처럼 주변국과의 전력망을 통한 협력도 어렵다. 대한민국의 단일 전력망으로 에너지전환에 성공해야 한다. 제2의 한강의 기적이라 칭할 수 있는 일이다.
얼마 전 전력산업 전문가들과 전력산업의 시급한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전력가격의 정상화에 대해 얘기했고 이런 정상화를 막고 있는 전력가격 결정과 관련된 제도의 문제, 계통여건과 유연성 자원을 무시하는 도매전력가격의 문제, 천편일률적인 가격체계로 다양한 지역과 소비자에 맞추지 못하는 문제, 장단기 계약과 실시간 시장의 부재 등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시급한 과제들이 거론됐다.
경쟁력 있는 조직이 전환 선도해야
▲ 지난 5월 30일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권의 민영화 정책 추진을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그런데 내가 동의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이런 문제의 근원에 독점적인 공기업이 있고, 그래서 민간사업자들과의 경쟁이 필요하다는 논리 전개였다. 공기업은 영리 추구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므로 독점적 지위에 있더라도 영리기업의 독점과 같은 사회적 폐해를 초래하지는 않는다.
경영이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공기업 고유의 사회적 성과와 공공성을 추구한다면 공기업 독점이 사회적으로 가장 효율적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양한 민간사업자들이 진입하는 방향으로 전력시장이 "발전"할 것을 희망한다. 그것이 발전이라면 말이다.
발전은 혁신이 이뤄질 때 가능하다. 에너지 전환에서 민간사업자가 진입하여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면 민간사업자가 진입해야 한다. 그러나 민간사업자가 혁신이 아니라 지대추구 행위만 일삼는다면 전력시장의 공공성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공공부문의 감축과 민간 경쟁사업자의 시장 확대라는 맹목적 성과만 강조하는 개혁으로는 대한민국 경제의 지속발전의 길이 열릴 수 없다. 에너지 전환을 선도하는 공기업의 혁신을 가로막고 전력공급 안정성까지 희생하여 국민경제에 큰 손실을 야기한다면 이런 개혁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에너지 전환은 발전산업을 비롯하여 탄소배출이 큰 산업과 지역에는 어마어마한 충격이 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할 사회갈등과 혼란은 전환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따라서 당사자들의 충격을 최소화하고 모든 국민들이 고통을 분담하는 공정한 전환이 필수적이다. 국제노동기구(ILO)가 강조하는 공정한 전환의 핵심요소는 노동자의 권리와 대표성을 확보하는 길이다. 공정한 전환을 어렵게 하는 개혁 방향은 수정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이 성공하려면 가장 경쟁력 있는 조직에 높은 사회적 책무를 부여하고 이들이 전환을 선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에너지 산업에서 기술과 인적역량이 가장 높은 경쟁력을 가진 조직은 대부분 공기업이다. 이런 공기업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공기업이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을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지금까지 전력산업의 공공부문은 전력시장의 공공성, 도매시장의 효율성과 소비자의 편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정부와 부처의 정책에 봉사하는 소극적 경영의 제도적 울타리에 갇혀 있었다.
이런 제도적 울타리를 없애고 지배구조를 선진화해야 한다. 그래야 공공부문이 에너지 전환을 선도하는 혁신의 주체로서 자율성과 독립성 가지고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다. 공공부문이 높은 사회적 책무를 부여받고 민간사업자와 상생협력을 통해 혁신을 선도할 때 대한민국 에너지전환, 제2의 한강의 기적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주병기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소셜 코리아 편집·운영위원) ⓒ 주병기
* 필자 소개: 이 글을 쓴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셜 코리아>의 편집·운영위원과 서울대 경제연구소 분배정의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미 캔자스대와 고려대 경제학과에서 재직했으며 한국응용경제학회장, Journal of Institutional and Theoretical Economics 편집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미시경제학, 재정학, 정치경제 등이고 분배적 정의, 불평등과 소득분배, 공정한 경제기제 등의 주제로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 <분배적 정의와 한국사회의 통합>, <정의로운 전환>, <정책의 시간>, <혁신의 시작>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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