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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교훈은 어디로…윤석열 정부가 보장 않는 이태원 참사 유족의 권리

세월호 참사 조사했던 사참위, ‘재난 피해자의 알 권리 보장’ 권고했지만 윤석열 정부는 외면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한 시민이 국화꽃을 놓고 있다. 저작권:뉴스1
 
세월호 참사 후 우리가 얻은 교훈 중 하나는 재난 피해자의 권리다. 국가는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났는지 피해자들에게 상세히 알려야 하고, 치유와 회복의 첫 과정인 진상규명에 있어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동안 재난 피해자들은 정부가 정한 배·보상안에 대한 수용 여부를 밝히는 정도에 그쳤다면, 세월호 참사 후 재난 수습의 전 과정에 있어서 피해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데에 사실상 사회적 합의를 이룬 셈이다.
 
이는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3년 6개월간 조사해 내놓은 보고서에도 명확히 담겼다. 사참위는 참사의 재발 방지와 피해자의 회복, 치유를 위해 "재난 피해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정보 제공·소통 방식을 개선할 것"을 국가에 권고했다.

하지만 반복된 참사에 이 같은 권고는 이행되지 않았다. 더욱이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정부는 해당 권고를 이행하기는커녕 권고에 담긴 의미를 철저히 외면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는 사이 참사 피해자인 유가족들은 고립과 소외를 호소하고 있다. 

참사 후 정부 역할 방기한 채 '조심스럽다'는 말만 반복한 이상민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생각에 잠겨있다. 2022.11.16 ⓒ뉴스1

"지금 한 분 한 분한테 연락드리는 것 자체가 굉장히 조심스럽다.(11월 16일 국회 현안질의)"
"유족들의 마음이 다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서로 만나게 해드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 것인지 굉장히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11월 16일 국회 예결특위 회의)"

국회에 출석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내놓은 답변들이다. 정부가 유족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유족들이 원치 않아 개별 접촉이 조심스럽다는 답변을, 유족들이 서로 만나고 얘기할 기회가 필요하지 않겠냐는 질문에는 시점상 조심스럽다고 답했다. 사실상 '조심스럽다'는 핑계로 유족들을 방치하고 있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심지어 이상민 장관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유족들의 명단도, 연락처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강변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일었다.

현재 유가족에 대한 의견 수렴은 서울시가 희생자 유족에게 1대1로 배정한 담당자를 통해 진행되는 중이다. 현재로선 이러한 소통이 충분히 이뤄지고 있는지, 정부는 어떤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지 등은 세세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일부 유족의 인터뷰나 유족과 만난 이들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정부의 대응에 대한 지적이 공통적으로 나오고 있다.

두 차례 간담회를 통해 34명의 희생자 유족들을 만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및 법률지원 TF는 희생자 유족들은 참사 발생 후 지금까지 정부 차원에서 참사의 진상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던 점과 유가족들이 모여 위로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점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했다고 전한 바 있다.

TF 간사인 오민애 변호사는 21일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정부는 언론에 1대1로 공무원을 배치하고 보상하겠다는 말을 하고 있지만, 유족들을 한데 모이게 해서 정부가 계획 중인 것과 유족들의 의견이 어떤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이야기를 듣고 설명하고, 결정하는 절차 자체가 지금 없는 것"이라며 "이것을 할 수 있는 곳과 해야 하는 곳이 정부인데 그걸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세월호 참사와 달리 유족들은 전국에 흩어져 있으며, 서로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상황인데 정작 유족들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정부는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진행되는 진상규명 과정에서 유족의 목소리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경찰은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 관계 기관의 사전 대비와 사후 대응이 적절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지만 경찰 역시 수사 대상인데다가 행안부 등 정부를 겨냥한 수사가 진행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여전하다.

정치권에서는 야당 중심으로 국정조사 작업에 착수했지만 국민의힘의 비협조적인 태도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세월호 참사 후 박근혜 정부와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은 참사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설립부터 조사 활동 전반을 방해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오 변호사는 "피해자의 목소리가 배제된 상태에서 진상을 규명한다는 것은 진상 규명을 하겠다는 주체의 입장만 반영될 수밖에 없다"며 "이태원 참사의 경우 특수본과 정부 부처인데, 이들을 수사하거나 조사하는 주체가 100% 독립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피해자로서 의구심이 있는 부분이 진상규명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될 수 있어야 내가 왜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알 수 있고, 이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데 이런 과정이 차단되면 이것은 누구를 위한 진상규명인가"라며 "(정부의 역할은) 단순히 보상을 해주고 지원을 해주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피해자들의 온전한 치유와 회복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고, 내가 왜 이런 피해를 입어야 하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사 전 과정에서 피해자의 알 권리 보장하라는 권고는 어디로
세월호 담은 사참위 권고안, 직접 보지도 않았다는 이상민
정부 두 손 놓은 사이 용기 내 모인 유족들
 
사참위 권고안 중. ⓒ사참위 권고안


'재난 피해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라'는 사참위의 권고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사회적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가 대비하지 못한 데 있는 만큼, 진상규명의 신뢰성을 보장하기 위해선 피해자들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으며, 이를 통해 의견을 낼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을 법에 명시하라는 주문이었다.

권고를 이행할 대상으로는 행안부 장관과 국회의장이 지목됐다. 그러나 이상민 장관은 국회 현안 질의에서 "사참위 보고서를 본 적 있느냐"는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의 질문에 "직접 본 건 없다"고 말했다.

해당 권고안을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한 사참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참사는 국가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충분히 사건을 설명해주는 것이 당연한데, 우리 사회는 '피해자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식으로, '슬픔을 애도하기만 하라'는 식으로 얘기를 해왔다"며 "특히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는 피해자들의 요구를 귀 담아 듣지 않았고, 진상규명 과정에서도 피해자들을 사찰하고, 결집하지 못하도록 막았던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알 권리를 구체적이고 실효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국가의 책무라는 것을 권고안에 명확히 규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UN 인권위원회도 참사의 진상규명에 대해 어디까지 할 것인지, 어떤 과정으로 할 것이지, 그 구성은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 피해자의 의견을 무조건 청취하고 가급적 객관적인 조사가 이뤄지기 위해 피해자를 참여하게 해야 한다는 권고를 계속해왔는데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피해자들에게 진상에 대한 검증이나 진실에 대한 공개를 해야 하고, 그에 따른 사실인정이나 책임에 대한 사과가 충분히 이뤄져야만 그때부터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기 때문에 피해자들 또는 피해자를 대리하는 이들의 진상규명 참여가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유경근 전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도 페이스북 글에서 "'피해자중심'의 출발은 '피해자가 모일 권리'로부터 시작한다. 배려가 아니라 권리"라며 "이 말은 '피해자가 모일 권리'를 실현하게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의무라는 뜻이다. 이 권리를 침해하는 순간, 이 사회가 의무를 저버리는 순간 참사의 수습, 해결을 절대로 시작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부가 두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유족들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용기를 내서 모이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때처럼 이들 곁에는 시민사회가 함께 서주었다. 민변과 대한변호사협회 등은 유족이 모일 수 있는 장을 만들었고, 법률 지원을 하고 있다. 전국민중행동, 참여연대 등 8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은 매주 촛불집회를 열어 피해자 지원과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외치고 있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은 오는 22일 처음으로 기자회견에 나서 현재의 심경과 요구 사항 등을 직접 밝힐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는 참사 후 정부여당의 미흡한 대처에 대한 질타도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 남소연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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