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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의 직격] 선거제도, 또 프랑켄슈타인을 만들 것인가?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3년 1월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 출범식에 참석해 김진표 국회의장 등 참석자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3.01.30. ⓒ뉴시스
선거제도 논의가 길을 못 찾고 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정치권이 ‘그들만의’ ‘짜맞추기’식 논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또다시 ‘프랑켄슈타인’ 같은 선거제도가 탄생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2020년 총선 당시에 적용된 준준연동형(준연동형 방식을 47석 비례대표 의석 가운데 30석에만 적용) 비례대표제가 ‘프랑켄슈타인’ 선거제도였는데, 어떻게 보면 더 심한 짜맞추기식 선거제도가 탄생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개혁이라고 볼 수 없는 방안들

지난 2월 6일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1박 2일 워크샵의 결과물이라면서 내놓은 브리핑을 보면,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브리핑에서는 워크샵을 통해 4가지 방안을 논의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개혁’이라고 볼 수 없는 방안들, 국민들이 봤을 때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방안들이 포함되어 있다.

4가지 방안 가운데 “소선거구제와 병립형 비례대표제의 결합”은 과거의 선거제도이다. 이 선거제도가 거대양당의 기득권 구조와 영·호남에서의 일당지배체제를 낳은 원인이다. 그런데 이것을 논의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과거로 퇴행하자는 말인가? 이런 방안을 논의대상의 하나로 포함시켰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국민의힘의 기존 입장이 과거로 퇴행하자는 것이어서, 이 부분을 논의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거면 ‘정치개혁’이라는 단어를 특위명칭에서 지워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조차 선거구제 개편을 얘기하는데, 과거로 퇴행하자는 것을 어떻게 논의대상에 올릴 수 있는가?

4가지 방안 가운데 2번째는 “소선거구제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결합”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2020년 총선 당시에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방안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방안이다. ‘준’자를 뗀다면 논의대상에 올릴 수도 있겠으나, 어느 정도 ‘표의 등가성’을 보장하려면, 비례대표 의석의 획기적인 증대가 보장되어야 한다. 독일의 경우에 지역구 의석 대 비례대표 의석의 비율이 299:299인데도, ‘표의 등가성’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비례대표 의석을 100석 이상 확보하는 방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논의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농촌에 도움이 안 될 도·농 복합 선거구제

4가지 방안 가운데 3번째는 “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결합”이라고 하는데, 이것 역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이다. ‘준연동형’의 ‘준’자를 뗀다면, 논의대상에 올릴 수도 있겠지만, ‘준’자까지 붙여서 논의한다면 진짜 ‘프랑켄슈타인’이 탄생할 수 있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1일 서울 구로구민회관에 마련된 구로제5동제4투표소에서 한 시민이 투표를 하고 있다. 2022.06.01 ⓒ민중의소리

또한, 농촌 지역을 생각해서 도시지역은 중대선거구제로 하고, 농촌지역은 소선거구제로 하자는 발상을 하는 것 같은데, 이것은 농촌 지역 정치의 현실을 모르는 얘기이다. 농촌 지역이야말로, 승자독식 소선거구제의 폐해가 극심하고, 영·호남에서는 일당지배가 극심한 상황이다. 또한, 농촌에서 1인을 뽑는 소선거구제 방식의 선거를 하면, 농민이나 농촌주민을 대표하는 사람이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우세한 정당의 공천을 받는 사람이 거의 자동으로 당선되는 실정이다. 서울에서 살면서 지역의 현실도 모르던 사람도 낙하산으로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것이 현실 아닌가?

오히려 소선거구제를 깬다면, 농촌 지역부터 깨야 할 수 있다. 선거구역이 너무 넓어지지 않느냐는 말을 하지만, 이미 농촌지역은 선거구가 넓어서 ‘작은 규모의 지역대표성’은 희박해진 상황이다. 여러 개의 시·군을 합쳐서 1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전북, 전남, 경북, 강원이라는 도(道) 단위의 광역을 대표하면서, 그 내에서 정치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농민이나 ‘진짜’ 농촌주민을 대표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 절실한 실정이다.

만약 지금의 소선거구제가 농촌에 도움이 되는 선거방식이었다면, 지금 농촌의 현실이 이렇게 어려워졌겠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또한, 지금까지 소선거구제로 선출된 농촌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농민과 농촌을 제대로 대변해 왔는가? 라는 질문도 던져본다. 답은 명확하다. 도·농복합선거구제는 농촌을 지역구로 하는 국회의원들의 기득권 유지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농민들과 농촌주민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얘기이다.

‘전면적 비례대표제’라는 부정확한 명칭

4가지 방안 중에서 유일하게 논의대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전면적 비례대표제’ 뿐이다. 다만, 이 방안을 왜 ‘전면적 비례대표제’라고 이름을 붙였는지부터 의문이다. 현재의 비례대표와는 전혀 다른 선거방식을 제안하고 있는 것인데, ‘전면적 비례대표’라고 이름을 붙이면 마치 지금의 비례대표(사실은 군사정권 시절에 도입된 ‘전국구’의 후신)를 전면화하자는 것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전면적 비례대표제’라고 이름을 붙인 방식은, 제대로 된 비례대표제를 하면서 유권자들의 선택권도 높이자는 제안이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대선거구(권역별) 비례대표제’ 방식이다.

이는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이 하고 있는 방식으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전국을 30~40개 정도의 권역으로 나눠서 각 권역별로 비례대표제 방식으로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방식이 적절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 방식의 경우에는 유권자들에게 정당도 고르고 후보(비례대표 후보)도 고르게 하는 ‘개방형 명부’ 방식을 결합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느 권역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을 뽑는다고 하면, 각 정당이 얻은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것이다. 그래서 A당이 30%의 득표를 했다면, 3석을 받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영ㆍ호남의 지역일당 지배체제는 당연히 깨진다. 대구ㆍ경북에서도 민주당이 받고 있는 20~30%의 지지율이 그대로 의석에 반영된다. 호남에서 국민의힘이 받고 있는 10% 이상의 지지율도 의석에 반영된다.

그리고 기존의 비례대표와는 다르게 유권자들이 비례대표 당선자도 직접 정하게 된다. 위의 예에서 A당이 낸 후보자(권역별 비례대표 후보자)들 가운데서 유권자들이 많이 선택한 순서대로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유권자들이 비례대표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신도 해소할 수 있다. 또한 여성, 청년을 위해서는 각 권역별로 1~2석씩만 고정순번을 부여하는 것(부분개방형)도 가능하다.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시민단체가 2019년 3월 7일 국회 앞에서 ‘정치개혁과 권력기관 개혁 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의철 기자

그런데 이런 장점이 있는 ‘전면적 비례대표제’는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사실상 후순위처럼 거론되는 분위기이다. 정치개혁특위 워크샵 결과 발표문에서도 “대안적 유의성을 확인”했다는 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좋은 얘기’이지만 현실로 만들 생각은 없다는 것처럼 비쳐진다.

정당·정치인은 모델에 대한 입장만 밝히고, 국민 앞에서 논의해야

이처럼 국회 정치개혁특위의 논의를 보면, 선거제도 개혁 논의는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따라서 이런 식의 논의가 아니라, 국민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논의가 필요하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논의에 관계없이, 김진표 국회의장은 약속한 대로 3월에 전원위원회를 열어야 한다.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만들겠다는 (안)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정치인들끼리 짜맞추기식 (안)을 만든답시고 시간만 허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리고 각 정당과 정치인은 더 이상 (안)을 얘기하지 말고, 어떤 선거제도 모델을 선호 또는 지지하는지에 대해 단순ㆍ명쾌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복잡하게 짜집기한 (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자신이 선호하는 선거제도의 모델은 무엇인지만 밝히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동차나 휴대폰을 사더라도 검증된 모델을 선호하는 것처럼, 선거제도도 검증된 모델들이 있다. 그 모델들 가운데 어느 것을 선호하는지를 밝히면 된다. 크게 보면 아래와 같은 4가지 모델이 있다.

⓵ 소선거구제(다수대표제)가 하나의 모델이다. 영국, 미국, 캐나다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채택하고 있는 모델이다.

⓶ 지역구는 소선거구로 하되, 일부 비례대표 의석을 갖다 붙이는 모델이다. 이는 사실상 소선거구제와 유사하게 작동하는 모델(일본, 한국의 병립형 비례대표제 모델)이다.

⓷ ‘소선거구제 + 비례대표제’를 결합시키되 ‘표의 등가성’을 제대로 보장하는 독일/뉴질랜드 연동형 비례대표제 모델이 있다. 이것은 지역구 선거는 소선거구제로 하되, 충분한 비례대표를 통해서 전국 정당득표율과 의석비율을 맞추는 방식이다. 그리고 지역구-비례대표 동시 출마를 보장해서, 지역구에서 낙선한 사람이 비례대표로 당선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우리처럼 지역구에서 출마도 안 한 사람들이 ‘낙하산’ 또는 ‘운 좋게(또는 지역구 출마자의 희생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는 방식이 아닌 것이다.

⓸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대선거구(권역별) 비례대표제 모델이 있다. 대선거구(권역별) 비례대표제의 경우에는 ‘표의 등가성’을 보다 완벽하게 보장하기 위해 조정의석(권역별 선거에서 표의 등가성이 깨졌을 때 보완하기 위해 일정 정도의 의석을 떼어두는 방식)을 둔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모델이 있고, 그렇지 않은 모델(핀란드, 스위스)이 있다.


사실 ⓵과 ⓶는 우리가 어느 정도 경험을 한 모델이다. 즉 현재의 정치구조를 낳은 모델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델을 선호한다면, 솔직하게 자기주장을 얘기하는 것이 낫다. 그래야 제대로 된 토론이 될 것 아닌가?

각 정당과 정치인들은 이 중에 어느 모델을 선호하는지를 밝히고, 전원위원회에서 그 모델의 장ㆍ단점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더 낫다. 공론화도 이런 모델을 갖고 공론화를 해야 한다. 그래야 주권자인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고 토론에 참여할 수 있다.

물론 선거제도를 확정하는 과정에서는 절충도 필요하다. 그러나 절충을 하더라도 국민들의 참여 속에서 절충해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프랑켄슈타인’이 탄생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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