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섭외 전화를 했을 때부터 ‘언론의 위기’라는 말을 강조했다. 사실 언론이 위기에 닥쳤다는 건 이전부터 나온 이야기다. 어떤 점을 보고 위기라고 진단한 것인가.
“산업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뉴스 산업 자체는 분명 성장세다.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의 미디어 영향력 조사 결과를 보면 신문과 뉴스전문채널의 영향력은 높아지고 있다. 명백하게 상향세다.
문제는 언론 규범의 위기다. 디지털화 이후 지상파, 종이신문 등 레거시 미디어라고 불리는 언론은 위기를 겪고 있다. 레거시 미디어 대신 인터넷 신문, 유튜버 등이 흥행을 이끌고 있다. 이들이 저널리즘 활동을 하면서 신종 유형의 언론이 나타난 모양새인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저널리즘이라는 가치가 생략되고 있고, 뉴스를 산업으로만 접근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난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 인터넷 언론, 유튜브 등 말이다.
물론 레거시 미디어에도 많은 문제가 있고, 이를 반복해서 설명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들에게 문제가 있더라도, 그들이 저널리즘 가치를 앞세운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레거시 미디어는 사실성, 공정성, 규범성 등을 지켜나가고 있다. 그 차이가 있다.”
- 언론의 위기가 디지털화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최근에는 레거시 미디어 역시 디지털화에 편입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레거시 미디어의 콘텐츠 유통 흐름이 유튜브 등 디지털로 전환되는 것, 자연스럽게만 보이진 않는다. 레거시 미디어가 중심에 두고 있는 저널리즘의 기본 가치가 유튜브 등 온라인 영역에선 옅어지기 때문이다. 시장 논리가 레거시 미디어를 지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시장 논리에는 진영논리도 포함된다. 시장 논리가 강화됨에 따라 진영논리도 강화될 수밖에 없다. 미디어가 정치적으로 진영화된 언론에 의해 대체된다면 규범성 역시 무너질 수밖에 없다.
레거시 미디어는 규범성을 바탕으로 언론의 소명을 완수해왔다. 이들에게 규범성은 곧 상품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시장에선 규범성을 이야기하기 힘들다. 선정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는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다.”
- 레거시 미디어가 지켜온 규범성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까.
“종이신문·지상파 등 기존의 유통 방식에 대한 영향력은 떨어지고 있다. 집토끼라 불리는 충성 독자를 지키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어진 상황이다. 진영화 된 콘텐츠를 생산해 독자의 취향에 맞는 뉴스를 제공하는 최후의 보루까지 갔다. 그렇게 되면 온건한 성향의 독자들은 진영화된 언론을 보기 싫어 뉴스를 회피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 같은 언론의 위기는 사회적 위기로 이어지게 된다. 한국에 언론의 위기만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그 위기 중 언론의 위기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해도 다름이 아니다. 언론의 위기는 다른 문제를 증폭시키는 파급력이 있기 때문이다. 언론은 사회를 연결하는 소통의 중심인데 언론이 병든다면 여론형성 과정, 정책 결정·집행 과정이 모두 병들게 된다.”
- 언론의 진영 양극화를 생존의 문제로 보는 것 같다.
“생존이라는 문제가 너무 컸다. 새롭게 등장한 언론들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언론이 등장했고, 경쟁도 비례해서 커졌다. 그러다 보니 언론의 규범성을 지켜주는 장치가 없었다. 언론의 무대가 디지털로 옮겨가는 상황에서 규범성이 마련되지 않았으니 위기가 온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레거시 미디어를 편들자는 것이 아니다. 레거시 미디어도 마찬가지로 위기에 직면해 있다. 같이 무너지는 상황으로 달려가고 있다. 때마침 포털이 등장하지 않았나.”
- 디지털 뉴스 생태계가 포털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포털이 뉴스 소비의 중심이 됐다.
“대부분 이용자가 포털을 통해 뉴스를 소비하는 시대다. 읽고 있는 기사가 조선일보인지, 한겨레인지 구분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알고리즘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뉴스 서비스 페이지 내 기사 배열과 ‘관련도’ 배열에서 알고리즘이 작동하고 있다. 이처럼 알고리즘이 정해준 뉴스의 순서는 우리가 중요하게 받아들여 소비하는 뉴스로 직결될 만큼 굉장히 중요한 결정인데, 우린 알고리즘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지 않은가.
네이버는 기본적으로 사기업이고, 움직임의 동기는 이윤이다. 네이버가 언론 산업의 발전, 언론 규범성 회복, 저널리즘을 1순위로 추구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아니다. 한 사기업이 모든 언론을 합친 것보다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뉴스 전송 수단을 장악하고 있다는 건 기형적인 현상이다. 뉴스 플랫폼은 공적 가치가 요구될 수밖에 없는데, 사기업이 만든 플랫폼이라고 해서 방치해야 하는 건가. 그렇지 않다. 식품도 사기업이 만드는데 규제의 주체는 정부다. ‘식품과 포털을 동일하게 볼 수 있는가’라는 반박이 들어올 수도 있는데, 포털도 식품 못지않게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언론사가 포털에 대응하려는 시도는 수차례 있었지만 유의미한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특정 시점을 단정하긴 어려울 것 같다. 일각에선 언론사에 ‘왜 디지털 전환을 못 했는가’라고 따져 묻기도 하지만, 언론사가 힘을 합쳐서 네이버에 대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 잘 나간다는 조선일보, 한겨레라고 할지라도 산업적인 규모만 따지고 본다면 영세하다. 영향력은 클지 몰라도 매출액만 놓고 보면 대기업과 비교할 수도 없다. 구성원들은 하루하루 신문 만들고 기사 쓰기에도 벅차다.
디지털화가 목전에 다가오면서 언론사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편집국을 바꿔나가고 있다. CMS를 만들기도 하고, 온라인 뉴스 전담팀을 꾸리기도 한다. 그런데 솔직히 이야기하면 이 같은 노력은 기존 신문을 만드는 방식을 디지털로 확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국내 신문사가 내놓은 디지털 혁신 중 진정한 의미의 혁신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AI, 빅데이터 등 당대 떠오르는 기술과 저널리즘을 결합해 시대에 부합하는 기사를 쓰는 언론이 얼마나 있을까. 언론사의 문제가 아니다. 언론사가 기술을 개발하는 것 자체가 언감생심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언론사 디지털화를 지원하고 있지만 적은 예산을 여러 언론사에 나눠줘야 하는 상황이니 성과는 뻔하다. 일부 언론사가 디지털화를 위해 이용자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지만 그 규모는 네이버에 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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