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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통치 찬양발언'을 처벌할 수 있을까?

'일제 식민통치 찬양발언'을 처벌할 수 있을까?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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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09 16: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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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통치를 찬양하고 침략 역사를 부인하는 자들을 국가가 나서서 처벌할 수 있을까?

1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인 아베 신조가 총리가 되면서 일본 내 우경화.재무장 흐름이 가속화되고, 아베에게 '과거사 직시'를 촉구하고는 있으나 민주화 역사를 부인한다는 점에서 한국역사를 보는 데서 아베식 관점을 답습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사회에 던져진 과제다.

 

   
▲ 왼쪽부터 박한용 실장, 이재승 교수, 한홍구 교수, 장완익 변호사. [사진-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2층 제1세미나실에서 홍익표(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일본 제국주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 등을 부정하는 개인 또는 단체의 대한 처벌에 관한 법률안(이하 법률안) 검토' 토론회는 이러한 문제들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홍 의원은 지난달 14일 제68주년 광복절 즈음한 일본대사관 '수요시위'에서 이번 정기국회에 동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법률안은 크게 두 가지를 처벌대상으로 삼고 있다. 하나는 친일반민족행위를 찬양.정당화하는 내용으로 역사적 사실을 날조하여 유포하는 행위,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고 독립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했던 행위를 비방하거나 그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날조하여 유포하는 행위 등 '과거사를 왜곡하는 행위(주로 표현)'이다. 다른 하나는 순국선열.애국지사,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강제동원피해자 등에 대하여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표현)'다.

사회자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1970~80년대만 해도 친일파들이 과거를 숨기고 개인사를 조작했는데 이제는 친일이 뭐가 문제냐고 나온다. 나아가 (교학사 교과서 파동에서 보듯) 일제 식민통치까지 미화하고 나온다"며 "친일파 처벌에도 실패했는데 친일 발언을 처벌할 수 있는가? 왜 꼭 '친일'만 처벌해야 하는가? 처벌한다고 하면 표현의 자유 문제는 어떻게 되는가"고 논점을 제시했다.

'국가범죄'에 대해 오래 천착해온 이재승 건국대 교수는 "전시 또는 평시를 막론하고 권위주의적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의 진실을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행위"를 "역사왜곡"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나치의 유대인학살(홀로코스트)을 부인하는 행위와 증오 표현을 처벌하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의 사례를 검토하면서, 규제옹호론를 뒷받침하는 몇 가지 논리들을 소개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만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건 독단적인 견해라는 것, 홀로코스트 부정은 인간존엄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사악한 견해로서 이에는 자유를 부여해서는 안된다는 것, 역사의 부인은 일정한 분위기를 조장하여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 증오적 표현을 감싸고 있는 광적 사고방식은 '자유시장'에서 여과되지 못한다는 것 등이다.

반면, 규제반대론에 설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 명확성, 실효성 등이 논점이 된다.

 

   
▲ 왼쪽부터 박경신 교수, 이재정 전 장관, 홍익표, 이종걸 의원. [사진-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이 교수는 "보수 정권이 극우적 사상을 가진 자들을 단속.처벌하라고 하면 하겠는가"는 말로 한국적 풍토에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보듯 한국 '보수' 정권은 극우적 언사를 일삼는 자들의 발호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챙겨왔다는 인식이다.

 

결론적으로, 이 교수는 참여정부 시기 친일진상규명위원회의 권위있는 결정을 행위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지 검토할 것을 권고했다. 서구에서 '홀로코스트 부인죄'가 과거 나치에 대한 유죄판결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염두에 둔 것이다. 또 부인행위의 정도를 따져서 중죄, 경죄로 구별하고, 찬양의도 아래 친일파나 인권침해자의 기념물을 조성하는 행위를 규제하자고 제안했다.

장완익 변호사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훼손은 현행 형법으로도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과거사 왜곡 표현' 처벌은 전례가 없는데, "범죄행위로서의 '역사적 사실을 날조'하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애매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도 "일본 침략을 정당화, 부인 또는 사소화하는 발언을 처벌한다면, ('보수'측에서) 북한 남침을 정당화, 부인, 사소화하는 발언을 처벌하는 규제를 제시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는 양면성의 문제를 제기했다. 또 "반민족 '행위'의 처벌과 반민족 '발언'의 처벌은 다르다"며 "우리의 법도 '행위'에 대한 처벌로 좁힐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친일문제에 천착해온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이런 법안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가 (역사문제에서) '위험사회'에 이르렀다는 반증"이라며 규제를 지지하고 나섰다. 한국 국가테러리즘의 뿌리는 일제 식민통치와 그 부역자들이며, 동아시아의 평화.협력적 질서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과거사 왜곡 발언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운현 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도 '친일청산운동' 차원에서 이 법률안을 한국사회에 던져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별도로 유사 법안을 준비해왔던 노영민 의원은 법제처 등에 문의한 결과 "부정적인 반응이었다"며, 표현의 자유와 명확성 등이 쟁점이 됐다고 했다. 다만, 한일병합의 강제성과 침략성을 부인하는 표현은 우리 헌법정신에 의거해 처벌할 수 있으며, 나머지는 구체적인 사건별로 접근할 수 있다고 봤다. 거창학살사건이나 제주 4.3사건 등 제노사이드 범죄에 대한 부인행위, 일본군'위안부' 등 반인륜범죄에 대한 부인행위 등으로 특정해 규제하는 식이다.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은 "과거사 문제가 권력자와 연계됐기 때문에, 권력자들이 이걸 덮고 왜곡시켜 나가는 상황에서 이 문제에 우리가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느냐는 방법의 문제가 크다"며 "법안을 내놓고 법안을 통해서 일반사회에 공론화하는 길밖에 없겠느냐는 생각이 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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