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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엑셀 밟고 ‘좋아! 빠르게 가!’ 외친 윤석열 1년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4월 27일(현지시간) 워싱턴 앤드루스 합동기지 공항에서 보스턴으로 향하는 공군 1호기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 김창길 기자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4월 27일(현지시간) 워싱턴 앤드루스 합동기지 공항에서 보스턴으로 향하는 공군 1호기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주간경향] 흥미로운 책 한 권이 출간됐다.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나라>라는 제목의 책이다. ‘윤석열 정부와 대한민국 1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최종건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광수 부동산 애널리스트, 김성회 정치연구소 와이 소장 3인 대담집이다. 윤석열 정부의 1년을 외교·경제·정치 3부로 나눠 각각 기조 발제를 한 다음 의견을 주고받는 내용이다. 각 분야에 우이독경(牛耳讀經), 교언영색(巧言令色), 자가당착(自家撞着)이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다. 평가는 박하다.

최종건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안보실 비서관, 외교부 1차관을 역임했다. 여러 시사 토론 프로그램에서 패널로 활약하고 있는 김성회 소장은 ‘민주당 입장을 대변하는’ 토론자로 주로 참석한다. 이광수 부동산 애널리스트는 경제전망으로 유명세를 얻고 있지만, 그동안 딱히 정치성향이 알려진 적은 없다. 대담 사회를 맡은 한윤형 <추월의 시대> 공저자와 함께 그러니까 “윤석열 정권 1년에 비판적인 평가를 내리는 건 대담참석자들이 민주당 지지성향 혹은 진보 진영 입장이기 때문”이라는 말로 퉁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일까.

기자는 2013년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이 여론의 관심을 받기 전부터 정치 분야를 취재해 왔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서부터 2017년 중앙지검장 발탁, 2019년 검찰총장 임명과 추·윤 갈등, 그 후 총장 사퇴와 전격적인 대선 출마 선언과 당선, 지방선거와 올해 3·8 당대표 선거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윤석열’을 팔로업하며 기사를 써왔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미궁이다. 이 사람은 왜 정치에 뛰어들었을까. 왜 대통령이 되려 했고,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 걸까.

이전까지 역대 대통령과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확연한 차이는 대통령 당선 후 자신의 적수였던 야당 대표를 1년이 되도록 ‘패싱’하고 있는 첫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외교도 마찬가지다. 정치를 출입처로 두고 있는 기자들 사이에 불문율처럼 거론되는 공식이 있다. 정치적으로 곤란해 미뤄둔 사안은 대통령의 해외 순방 기간에 결정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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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2013년 11월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서유럽 순방 기간 중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 무제한 기자간담회’는 문재인 대통령의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3국 순방 첫날 열렸다. 정치적 논란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혹여나 누를 끼치는 일을 막기 위한 정무적 판단에 따른 결정으로 해석된다.

이번 정부 들어선 그런 것도 없다. 퇴행 일변도의 내치가 꾸준히 이어진다. 외치라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순 없다. 윤 대통령의 해외순방 일정이 나오면 오히려 ‘이번에는 또 어떤 사고를 치진 않을지’ 국민적 걱정이 앞선다. 앞의 책이 담고 있는 문제인식도 비슷하다. ‘우이독경’이라는 화두로 외교 문제를 가장 먼저 다룬 이유일 것이다.

윤석열 1년 박한 평가, ‘진영논리’ 때문일까

책에서 김성회 소장은 “그렇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유’를 강조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언론의 자유에 대해서는 어떻게 했냐”며 도어스테핑이 사라진 후 벌어진 상황에 대해 거론하고 있다.

“그 후 대통령이 출입하는 걸 안 보이게 하려고 벽을 쳤어요. 없던 벽이 생긴 건 상징적인 사건이잖아요. 매일 화면에 나가던 장면인데, 거기에 벽을 쳐놓은 이후에 국가안보시설이라는 이유로 사진도 찍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 벽 사진 한 장이라도 본 분 있나요? 이런 경우 기자들이 뉴스엠바고를 깨고라도 보도할 만한 일이죠. 이 사건은 용산 대통령실에 출입하는 기자들이 얼마나 얌전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을 막아버린 이 장벽을 보도하는 언론사가 단 하나도 없다는 거죠. 이 정도로 자유가 제한된 상태입니다.”(책 191~192쪽) 꼼꼼히 짚어볼 만한 의견이다.

기자는 당시 보도에서 동원된 인부들이 대통령실 가림막 공사하는 사진을 본 기억이 있다. 가벽 설치속보가 나오던 날은 지난해 11월 21일이다.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김 소장의 말마따나 당시 임시로 설치된 가벽 사진보도는 남아 있지 않다. 어떻게 된 걸까.

벽 설치 관련 보도가 없는 건 아니다. 많다. 현장 사진은 없지만 여러 언론사가 컴퓨터 그래픽으로 현장을 재현해놓았다. 한 종편 언론사는 대통령실 출입기자가 나와 칠판에 직접 그림까지 그리며 “가벽은 가로 6m×4m 사이즈의 합판 재질로 만들어졌으며 이후 불투명 보안유리로 교체될 예정”이라며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대부분 언론의 보도 기조는 대통령실 조치에 비판적이다.

기자가 앞서 당시 보도에서 봤다는 가벽설치 사진은 잘못된 기억이 아니었다. 한 언론사의 속보 보도에 실렸다. 가판에 실린 이 사진은 그 후 대통령실 경호처의 항의로 삭제됐다. 당시 대통령실은 보안상의 이유로 촬영이 금지된 시설을 무단촬영해 공개했다며 해당 기자에게 한 달 동안 출입정지 조치를 취했다.

 

윤석열 정부 1년을 커버스토리 기사로 다루고 있는 주간경향 1527호 표지

윤석열 정부 1년을 커버스토리 기사로 다루고 있는 주간경향 1527호 표지

책에서 김 소장은 윤석열 정부 등장 후 지난 1년간 공무원 사회에서 일어난 ‘변화’도 전하고 있다. 일단 새로 만들어진 국정과제가 없어서 이전사업을 계속하면 되니 편하다는 반응이다. 또 하나, 지시를 받으면 이제 문서에 예컨대 ‘과장님 지시사항’이라고 수기로 일부러 쓴다고 했다.

“자신이 하려고 한 일이 아니라 과장이 지시해서 한 일이라고 표시를 한다는 겁니다. 또 지시받은 일도 문서에다 그렇게 적은 후에 적극적으로 안 합니다. 왜? 그 지시를 본인이 이행했을 경우에 직권남용에 걸릴 것 같아 못하겠다는 거죠.”

기자도 지난 1년간 공무원 지인들로부터 비슷한 증언을 들은 적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어공’ 아닌 ‘늘공’ 출신 공무원들이 지난 정부 정책수행을 두고 구속되는 일이 벌어지자 나타난 ‘태업’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일부 정치적으로 주목을 받은 부처만의 일일까. 아니면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상황일까. 관련 증언을 전한 김 소장과 통화해봤다.

“국회에서 어쩌다 보니 보좌관 생활을 오래 했다. 그 과정에서 안면을 튼 공무원들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방향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있어야 거기에 맞춰 계획을 짜는데 의견을 내면 직권남용이 되기 때문에 다 가만히 있다고 한다. 이런 기류가 지금 공무원 사회 내에 존재한다.” 대통령이 추진하겠다고 하는 몇 가지 과제를 제외하곤 대부분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진단이다.

“간단히 말하면 검찰이 너무 정치영역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의 말이다.

“이런 정권 분위기에서는 공무원들이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검찰이 전방위 압수수색을 하고 들어오는데 뒤탈 안 생기려면 몸조심할 수밖에 없다. 선출직 대통령부터 단체장까지 위임된 권한을 넘어서 과도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도 문제지만 고유한 정책의제에 대해 해당 부처 공무원들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정치적으로 쥐락펴락하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리서치뷰는 2011년부터 매년 현직을 포함 역대 전·현직 대통령 호감도 조사를 해왔다. 이번 조사가 마흔 번째다. 지난 4월 29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조사를 바탕으로 5월 3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위는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30%였고, 2위는 23%를 기록한 박정희였다. 리서치뷰 조사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16%를 기록해 3위였다. 윤석열 현 대통령은 10%를 기록해 8명 대통령 중 김대중(11%)에 이어 5위를 기록했다. 지표만으로 드러나는 국민정서는 “구관이 명관이었다”는 평가로 풀이된다. 안 대표의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가 제일 호전됐을 때가 40% 안팎이었는데 다시 외교이슈가 불거지면 오히려 더 떨어지고 낙하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 조사에서 각 정당이 내년 총선에서 최대위협이 되는 문제가 뭔지를 물어봤을 때 국민의힘의 경우 절반이 ‘윤석열 리스크’라고 답했다. 그게 일반적인 민심인 것 같다. 내가 보기엔 지난 1년과는 확연히 다른 뭔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반등은 어렵다. 대체적인 국민 반응은 더 이상 사고나 치지 말고 악화될 일을 안 만들면 좋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기대감 자체를 접어버린 듯싶다.”

 

4월 26일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국빈만찬 특별공연에서 가수 돈 맥클레인의 ‘아메리칸 파이’를 부른 뒤 바이든 미 대통령으로부터 가수의 친필사인이 적힌 통기타를 선물로 받았다.  / UPI연합뉴스

4월 26일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국빈만찬 특별공연에서 가수 돈 맥클레인의 ‘아메리칸 파이’를 부른 뒤 바이든 미 대통령으로부터 가수의 친필사인이 적힌 통기타를 선물로 받았다. / UPI연합뉴스

“윤 정부, 한국정치사 첫 출현 검찰통치”

위의 책 대담에 참여한 인사들만의 인식이 아니다. 여야 정치권 사정에 밝은 교수·시사평론가들의 시각도 대부분 엇비슷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윤석열 정권의 지난 1년을 평가하면 대화와 타협보다는 정국주도권을 쥐고 상대를 몰아붙이면서 받아들이든 안 받아들이든 자기 뜻대로 운영하는 국정운영 방식으로 일관했다”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내치뿐 아니라 외치도 마찬가지다. 자신에 대한 공격을 국익 논리로, 설령 내가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공개적으로 비판해 그렇게 망신줄 수 있느냐는 식으로 반응한다. 엄청나게 코너에 몰리지 않는 한 태도 변화는 없을 것 같다. 대화와 타협은 없고,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강공드라이브로 자신들 수하를 포진시켜 내년 총선에 이기고 상대방을 굴복시키고 말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전형적으로 검사들이 개인을 수사할 때 코너에 몰아넣어 자백을 받는 방식이다.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에게는 ‘따거’처럼 아량을 베풀지만 자기의 권위에 도전하는 경쟁자들에게는 같이 공존하겠다는 생각을 지난 1년 동안 단 한번도 보여주지 못하는 리더십이었다.”

박신용철 더체인지플랜 선임연구위원은 “역대급으로 처음 보는 정권”이라며 “지난 1년은 점수로 매기기도 부끄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통 정치 경험이 있는 사람은 측근뿐 아니라 다양한 그룹으로부터 의견을 듣는다. 윤 대통령이 새벽 5시에 일어나 신문을 읽는다고 하는데 특정신문만 보는 게 아니라면 위험수위가 이미 지난 것을 알 것이다. 위험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는 것 같다. 문제는 앞으로도 달라질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범죄자 이재명’과 전 정권만 두드려 잡으면 된다는 식의 얄팍한 셈법인데, 누구도 브레이크를 못 걸고 있다. 물론 지지기반은 있어야 한다. 대통령실에 앉아 있다 보니 지지기반에 대한 필요성은 느끼는 듯하다. 자기가 보기에 일도 똘똘히 잘하고, 시시콜콜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이는 핵심 정치그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듯싶다. 그런데 현재의 여당, 국민의힘으로 성이 찰까. 안 찰 것이다. 검찰 조직처럼 한번 말하면 알아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을 원하는데, 당대표 선거에서 국힘을 기껏 ‘친정체제’로 만들어 놨지만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난해 10월 30일, 전날밤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현장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이 소방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지난해 10월 30일, 전날밤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현장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이 소방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윤 대통령 지지율 반등 가능성은

지난 4월 27일 사단법인 생활정치연구소는 ‘위기의 민주공화국: 윤석열 정권 1년의 평가와 전망’이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서 발제한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윤석열 정부는 한국정치사에 최초로 등장한 검찰통치의 정치질서”라며 ‘검찰통치(prosecracy)’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검찰통치’는 검찰의 기소(prosecute)와 통치행위를 의미하는 크라시(cracy)를 결합해 안 교수가 만든 신조어다.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는 법과 규범의 자유주의 국내외 정치질서를 표방하고 소통의 정치 복원을 약속했지만,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아니라 법을 활용한 지배(rule by law)를 일삼았고, 이는 정치과정을 무시한 결단주의(decsionism)로 나타났다고 안 교수는 본다. 또 윤 대통령은 헌정주의 가치를 검사 시절부터 가장 중요한 소명으로 언급해왔다. 이는 국내뿐 아니라 국제관계에도 일관되게 드러나는 그의 세계관이라고 안 교수는 지적했다. 문제는 헌정주의를 강조하는 만큼 민주주의라는 가치는 등한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윤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에 바이든 대통령이 선물했다는 트루먼 대통령의 경구 ‘벅 스톱스 히어(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뜻)’가 적힌 팻말을 놓고 있다고 하는데, 그동안 자신이 결단을 내려온 것이 일관되게 그 문구와 모순된다는 것을 인식 못 하는 점이 문제다. 대통령의 외로운 결단을 통해 최종적인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데, 그간 대통령이 보여온 ‘야당이 문제가 있기 때문에 안 만난다’는 식의 전도된 책임 전가 논리와 정확히 반대되는 자세다.”

그는 “‘자유’를 강조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면서도 “그 세계관 자체에 근본적 문제가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치가로서의 태도에서 결격사유가 있다. 자신이 근거하겠다는 헌정주의에서도 결격사유는 뚜렷하다. 윤 대통령은 헌정주의에 대해 대한민국에서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있고 자신부터 치열하게 지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자유주의의 기본, ABC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상대 당대표가 범죄자이니 대화나 협상테이블에 같이 앉을 필요가 없다고 보는데, 헌정주의에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가치가 무죄 추정의 원칙이다. 나는 근본적인 관점의 문제 때문에 앞으로도 여러 가지 문제가 예정돼 있다고 본다.”

윤석열 대통령 쪽에서는 어떻게 볼까. 취임 1년 지지율은 형편없다. 미국 방문 중인 지난 4월 말 실시해 발표한 갤럽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전 주에 비해 1% 하락해 30%를 기록했다. 반면 부정평가는 3% 올라 63%를 기록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정권 1년차에 지지율 하락을 경험했다가 정권 중반에 지지율이 오른 보수 대통령이 없지는 않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정권 초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로 한 자릿수로 떨어졌던 지지율이 정권 중반기 ‘친서민 중도전략’으로 40%대의 지지율을 복원해낸 바 있다. 윤 대통령 지지율도 반등할 수 있을까.

내년 총선에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예정인 김장수 제3정치연구소 소장은 MB(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하면서 정권 중반기 ‘친서민 중도전략’에 관여했던 인사다.

“(MB 정부와) 윤석열 정부는 다르다. MB 정부의 경우 초반 인사 과정에서 ‘강부자’(강남 땅 부자) 딱지가 달렸다.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은 없었다. 그래서 MB가 방향전환을 약속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야권의 윤석열 비판은 과녁을 잘못 설정했다고 본다. 지금 윤석열이 주장하는 것, 다 공약했던 내용이다. 이 양반처럼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하겠다고 한 말을 그대로 하는 사람은 드물다. 한·미 관계, 탈원전 공약대로 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왜 비호감이 높을까. 두 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다 떠나 검사 시절부터 만들어진 애티튜드(태도)다. 또 하나, 예컨대 MB는 민주당 지지자들을 두고 틀렸다고 안 했다. 그런데 이 양반(윤석열 대통령)은 말을 한다. 당신들은 낡은 운동권 논리를 주장하고 있다고. 그 사람들(민주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은 자신이 모욕당했다고 생각한다. 비호감인 건 맞는데, 그렇다고 역대 정치지도자들을 보면 호감이냐 비호감이냐의 문제가 꼭 정권 재창출과 직접적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단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호감도가 높았지만,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지 않았나.”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외치, 즉 한반도 주변 국가를 대응하는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의 태도에 대한 불안감 내지는 불신을 보이는 사람들이 대폭 늘었다.

“윤석열 대통령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고 세상이 바뀌었는데 (민주당 혹은 진보는) 지금도 옛날이야기를 하고 있다. 노무현의 ‘운전자론’ 이런 것이 대표적인 과대망상 중 하나다. 안 해봤으면 또 모르겠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운동권이 꿈꿨던 내용을 다 시도해봤다. 안 됐지 않나. 나는 윤석열 정부의 선택이 현실주의적 외교정책이라고 본다. 윤석열 대통령을 두고 자꾸 바보, 술꾼이라거나 김건희가 꼬드겼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누군가에겐 솔깃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지금 민주당이 주장하는 프레임이 만약 주효하다면 국민의힘이 차기 총선이나 대선에서 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100% 국민의힘이 이긴다고 본다. 민주당이 너무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실수 안 하고 젠틀했을지 모르지만, 민주당 노선 전체가 국민에게 거부를 당한 셈이다.”

 

지난해 5월 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원회 잔디광장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해단식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인수위 사진기자단

지난해 5월 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원회 잔디광장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해단식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인수위 사진기자단

다시 문제는 민주당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지지율 상승의 모멘텀을 구조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윤석열 정부는 당을 직할체제로 만들면서 결국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위험체제로 만들었다”라면서 “과거 이준석 당대표 시절엔 정당지지율이 대통령 지지율 하락을 막아주는 면이 있었는데 직할체제로 재편한 후에는 브레이크도 안 걸리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하이리턴’은 없이 ‘하이리크스’만 무한대로 확장되는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문제는 정치적 대안의 부재다. 엄 소장은 “민주당이 지금과 같은 스탠스를 고수하면 내년 총선에서 못 이긴다”고 말했다.

“선거는 수년간의 유권자 판단이 작용한다. 구체적으로 2020년 이후, 그리고 대선에 진 이후 민주당이 어떻게 해왔는지 이미 70~80%의 결과는 결정돼 있다고 본다. 닥쳐서 뭐를 하겠다고 해서 판세를 뒤집을 수는 없다. 하려면 지금 해야 한다. 결국 내년 총선에서 이재명 심판으로 가느냐 윤석열 심판으로 가느냐의 문제인데, 윤석열 심판은 실익이 없다. 현재로선 5년 내내 식물정권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이재명 심판은 현 야권의 성찰 쇄신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실익이 있다고 유권자들이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은 이미 지나간 사람인데 뭐하러 심판하려 들겠는가.”

과연 그럴까.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사에서 정권 중반기에 치러지는 역대 선거는 모두 집권세력에 대한 심판 선거였다.

“과거 정권 중반기 전국 선거는 거의 예외없이 중간평가의 성격을 지녔던 건 맞다. 그런 선거지형이 바뀌었다. 2030이 정치적으로 독립한 상태다. 정권심판의 성격이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2030 남녀가 뭉쳐서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으로 가지 않는다. 2021년 재보궐부터 계속 국민의힘을 찍어온 이대남, 삼대남이 어느 순간 확 민주당으로 갈아타겠나. 안 한다. 이대녀 삼대녀도 마찬가지다. 2021년 재보궐에서 민주당에 올인했던 흐름이 시간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지난 대선 때도 이재명이 좋아서 찍은 것이 아니다. 한 예로 지난 지방선거 때 김동연 경기도지사에 대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보니 이대녀의 73%가 김동연을 찍었다. 이대녀 삼대녀의 민주당 올인이 역으로 다시 이대남 삼대남의 방향성을 규정한다. 이 정치적 갈등의 무한반복 재생산 구조를 끝내는 쪽이 결국 총선승리의 열쇠를 거머쥐게 된다고 본다.”

민주당 등 야권이 스스로 환골탈태를 목표로 내년 총선과 같은 정치적 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변화의 모멘텀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 예정된 윤석열 정권의 역진(逆進)을 막아내지는 못하리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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