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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가 온몸으로 지키던 ‘양회동 분향소’, 경찰은 끝내 부쉈다

경찰 대치 중 부상자까지 발생, 경찰은 ‘엄정 대응’ 되풀이

31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 인근에서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분신 사망한 양희동 씨 분향소를 설치하는 도중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2023.05.31. ⓒ뉴시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31일 고 양회동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의 시민 분향소를 기습 설치했지만, 경찰은 곧바로 강제 철거에 나섰다.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온몸으로 강제 철거에 저항했고, 이 과정에서 부상자까지 발생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건설노조는 이날 오후 6시 35분경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양 지대장을 추모하는 시민 분향소를 기습 설치했다. 20여분 뒤 경찰은 분향소를 중심으로 사방에서 에워싸더니 경찰 방패로 분향소를 지키는 조합원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경찰은 "장애물 설치는 불법행위로 처벌할 수 있다", "현행범으로 체포하겠다"는 경고 방송을 수차례 내보냈고, 조합원들은 "폭력 경찰 나가라"라고 맞섰다.

분향소 구조물을 두 손으로 붙잡으며 완강히 버티던 조합원들은 경찰과의 충돌 끝에 10여분 만에 인도 안쪽으로 밀려났다. 경찰이 분향소 뒤쪽과 옆쪽에서 동시에 진압하기 시작했고, 곳곳에서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 분향소 내부에는 양 지대장의 영정 등이 설치돼 있었지만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경찰과의 대치 과정에서 부상 당한 조합원 3명은 병원으로 이송됐고, 1명은 응급조치 후 복귀했다. 조합원 4명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연행됐다.

서울경찰청은 분향소를 철거한 뒤 "관할 구청의 행정 응원 요청에 따라 천막 설치를 차단했다"며 "앞으로도 경찰은 시민들의 큰 불편을 초래하고 공공질서를 무너뜨리는 불법행위에 대해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분향소 강제 철거 뒤 시작된 촛불 문화제
양 지대장 친형도 참석해 눈물 

 

31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 인근에서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분신 사망한 양희동 씨 분향소를 설치하는 도중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2023.05.31. ⓒ뉴시스

아수라장이 된 현장에서 양 지대장을 추모하는 촛불 문화제가 시작됐다. 약 300여개의 노동·종교·시민단체가 모인 '양회동 열사 투쟁 노동시민사회종교문화단체 공동행동(공동행동)'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같은 장소에서 촛불 문화제를 진행해 왔다. 그런데도 경찰은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불법 집회이니, 자진 해산하라"며 끝까지 양 지대장의 추모를 방해했다.

건설노조 강한수 수석부위원장은 "이 옆에는 코로나19 피해자 유족들의 천막이 있다. 시청 광장에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분향소가 있고, 그 맞은 편에는 또 다른 가습기 살균제 희생자 분향소가 있다"며 "이곳 인근에만 해도 수많은 천막이 있고, 수많은 추모의 공간이 있다. 그런데 왜 유독 양회동 열사의 분향소는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경찰이, 정권이 폭력적으로 짓밟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강 부위원장은 "이 정권은 경찰의 강압 수사로 양회동 열사를 한번 죽였다. 맞은 편에 있는 조선일보가 두 번째 죽였다. 세 번째는 오늘"이라며 "오늘 경찰은 또다시 자신들이 양회동 열사를 죽고 만들었던 걸 숨기고 가리기 위해서 세 번의 죽음을 맞게 했다"고 규탄했다.

강 부위원장은 "저들은 시민들과 양회동 열사가 만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서울 곳곳에 양회동 열사를 모시자. 여러 단체가, 여러 노조가 있는 건물에서 시민들이 볼 수 있게 양회동 열사를 기리자"고 제안했다.

공동행동 소속 권영국 변호사는 "공동행동을 만든 이유는 노동자들의 싸움을 더 이상 우리 시민들이 방관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열사의 죽음에 침묵하는 건 이제는 죄악이다. 시민들이 함께하겠다. 너무 조급해 하지 말자. 무도한 정권을 끌어내릴 때까지 지치지 말자"고 위로했다. 공동행동은 매일 이곳에서 촛불 문화제를 열겠다고 예고했다.

양 지대장의 친형인 양회선 씨도 촛불 문화제에 합류했다. 문화제 내내 양 지대장의 희생을 애통해하는 발언과 양 지대장을 추모하는 노래가 이어졌고, 양 씨와 조합원들은 함께 눈물을 흘렸다. 문화제가 끝난 뒤, 양 씨는 문화제에서 양 지대장의 명복을 빌어 준 종교인들을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31일 양회동 지대장 시민 분향소 철거를 온 몸으로 막고 있다. ⓒ민주노총

 

31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 인근에서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분신 사망한 양희동 씨 분향소를 설치하는 도중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2023.05.31. ⓒ뉴시스
 
31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 인근에서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분신 사망한 양희동 씨 분향소를 설치하는 도중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2023.05.31.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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