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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성 매몰된 범죄보도 현실 보여준 정유정 살인사건

  •  윤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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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06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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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0

[비평] CCTV 공개 등 구체적 범행 과정 설명, 전문가 멘트 기사화하며 기사 수 늘려…사건과 무관한 ‘고유정’ 연결 짓고, 젠더갈등 부추기는 기사도

경찰이 지난 1일 또래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한 정유정씨의 신상정보를 공개한 직후 언론보도가 쏟아졌다. 경찰의 신상공개와 정씨 진술 공개 등을 두고 언론에선 구체적인 범행 과정이나 전문가 멘트 중 일부를 기사화하며 기사 수를 늘렸다. 확인할 수 없는 의혹제기가 있었고, 무관한 다른 사건과 연결하기도 했다. 젠더갈등도 부추겼다. 언론의 범죄보도 가이드라인은 완전히 무너져있었다.

피의사실 보도 원칙 무시하고 자극적 보도로 피의자 악마화

대다수 기사에선 현재 피의자의 범행 과정과 발언을 구체적으로 쪼개어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피의자의 발언을 통해 그를 악마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선정성을 극대화했다.

▲ TV조선 방송화면 갈무리.

언론은 국민일보 <‘교복 차림’ 정유정…살인 후 피해자 옷 꺼내 갈아입어> 기사처럼 피의자의 범행 과정 중 한 장면을 구체적으로 기사화하는 식이다. TV조선은 <[단독] “정유정, 살해 후 시신 훼손 도구·쓰레기 봉투 구매”>, <[단독] “정유정, 시신 유기 서두르려 신체 일부만 훼손”>과 같이 사용한 도구와 수법 하나 하나를 일일이 ‘단독’을 붙여가며 보도했다. 이는 피의자의 범죄 수법을 자세하게 보도하지 말자는 취재윤리를 위반하며 오히려 범행 수법을 소개하는 기사에 가깝다.

피의자의 범행 CCTV 영상도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언론은 피의자가 시신이 담긴 여행가방을 끌고 걸어가는 CCTV 영상을 공개하며 제목에는 ‘발랄한 발걸음’(국민일보 <정유정, 살인 후 발랄한 발걸음…손엔 시신 담을 가방>), ‘여행가듯 경쾌하게’(헤럴드경제 <“여행가듯 경쾌하게”…정유정, 캐리어 끄는 모습 ‘경악’> 등의 표현을 붙였다. CCTV와 같은 자극적인 화면들을 받아쓰기하면서 계속해서 재생산하고, 영상에 대한 기자 개인의 자의적 해석이 덧붙여져 범행이 확대되는 식이었다.

▲ 국민일보 기사 제목 갈무리.

▲ 헤럴드경제 기사 제목 갈무리.

▲ 머니투데이 기사 제목 갈무리.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5일 미디어오늘에 “(CCTV 영상을 통해) 당사자가 어떤 심경이었는지는 알 수 없는 건데, 언론이 ‘경쾌하다’, ‘소풍가는 것처럼’이라고 해석해 보도하는 게 맞는가”라며 “CCTV를 이용한 언론보도 양이 많아지고 있다. 반드시 언론사 내부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피의자가 진술 과정에서 밝힌 “살인해보고 싶었다”는 말은 수많은 언론 보도의 제목으로 뽑혔다. KBS <“살인 해보고 싶어서”…‘또래 살해’ 정유정의 자백>, SBS <“살인해 보고 싶었다”…‘또래 살해’ 정유정 신상 공개> 등의 기사들은 피의자의 진술에서 ‘자극적 발언’으로 판단되는 부분을 강조해 보도했다.

▲ KBS 보도 제목 갈무리.

▲ SBS 방송화면 갈무리.

 

피의자가 여성이란 점 이용한 부적절 보도 이어져

피의자 신상정보 공개 이후 피의자가 여성이란 점을 이용한 부적절한 보도도 있었다. 언론에선 온라인 일부 여론을 검증없이 인용하며 이번 살인사건으로 '여성 대 남성'의 갈등을 조장하는 기사를 썼다. 뉴스1 <“정유정 신상공개, 여자라서 빨랐다”…댓글 2000개 ‘시끌’>, 국민일보 <정유정 신상공개 두고 “여자라서 빠르네” 충격 댓글들> 등의 기사는 온라인에 떠도는 이야기를 그대로 캡쳐해 보도하며 여성과 남성 갈등을 유발했다.

▲ 국민일보 기사 제목 갈무리.

▲ 뉴스1 기사 갈무리. 커뮤니티발 댓글을 캡쳐해 인용하고 있다.

홍남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는 “커뮤니티발 보도는 디지털 저널리즘 환경에서 계속 언급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여성 범죄자이기 때문에 이야기되는 내용들을 굉장히 자극적으로 받아쓰고 있다”며 “‘여성 범죄자라서 더 빨리 공개됐다’ 등의 내용은 분석해서 나온 사실이 아닌 심증적 측면인데, 피의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특이 케이스로 비춰지며 더 자극적으로 소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피의자가 여성이고 자극적 소재라는 이유로 해당 사건을 과거 살인사건 가해자 ‘고유정’씨와 엮은 보도도 다수였다. 두 사건은 사실상 관련이 없는 사건이고 기사에서도 관련이 없다는 내용을 담았지만 기사 제목에서는 마치 관련이 있는 것처럼 엮어서 보도하기도 했다.

▲ 중앙일보 기사 제목 갈무리.

▲ 아시아경제 기사 제목 갈무리.

뉴스1 <정유정, 치밀한 고유정과는 달랐다…“살인이 목표, 이후 행동 너무 허술”>, 아시아경제 <고유정에게는 있는 ‘이것’ 정유정에게는 없었다…전문가들 "여자라는 것 말고 공통점 없어">, 중앙일보 <정유정, 고유정과는 달랐다…“강한 살인 욕구” 괴물 깨운 것> 등의 기사는 ‘정유정 사건이 고유정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며 두 사건을 엮어 더 자극적으로 만들어냈다. MBC는 <제2의 고유정 사건의 범인 정유정‥할아버지도 이웃도 설마‥> 제하의 보도에서 이번 사건을 ‘제2의 고유정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 MBC 보도 제목 갈무리.

권순택 사무처장은 성별에 따른 범죄수법 차이를 고려해 보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 사무처장은 “여성과 남성은 보통 물리력에서 차이가 있어 여성은 남성보다 우발적 범죄가 어려울 수 있고 더 계획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데 이런 특성을 고려하며 보도해야 한다”며 “여성범죄의 특성을 이해하지 않은 채 ‘잔혹성’에만 초점을 뒀다. 여성범죄의 특성을 이해해 보도해야한다”고 말했다.

“추정컨대…” 검증되지 않은 전문가 멘트 실어나르는 언론

이번 사건 관련 보도가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전문가 발언을 무분별하게 인용했기 때문이다. 전문가 멘트 하나로 또 다른 기사를 써내거나, 다른 언론사와 인터뷰한 전문가 멘트를 그대로 인용해 재생산해내는 식이다.

▲ 한국일보 기사 제목 갈무리.

한국일보 기사 <“살인하고 싶었다”는 정유정…“일반적인 사이코패스와는 달라”>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방송 내용을 인용했는데, 방송에 출연한 손수호 변호사는 정유정에 대해 “충분히 사이코패스 가능성이 있지만 약간 이상한 부분들이 있다”며 의심가는 부분을 언급했지만 기사의 제목으로 인용됐다. YTN <“살인해 보고 싶었다”…정유정은 사이코패스일까?>는 피의자의 행동이 사이코패스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전문가의 멘트를 인용했는데, 대다수 전문가 멘트는 ‘추정컨대’로 시작하는 등 검증할 수 없는 영역의 멘트들이었다.

▲ YTN 방송화면 갈무리.

검증되지 않은 전문가의 멘트를 실어나르는 언론 보도는 논점에서 이탈된 프레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명문대생’ 대 ‘공시생’ 프레임으로 보도한 기사도 다수 있었는데, “(피해 여성이) 온라인상에서 인기 있는 과외 교사였지 않냐. 본인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 여성의 정체성(아이덴티티)을 훔치려고 했던 것 같다”라며 ‘피해자의 신분 탈취’를 범행목적으로 거론한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의 MBC 인터뷰 내용을 인용한 기사들이었다.

▲ MBC 방송화면 갈무리.

중앙일보 <명문대생 살해한 ‘공시생’ 정유정…이수정 “신분 탈취 노린 듯”>, 국민일보 <또래 명문대생 죽인 ‘공시생’ 정유정…“신분 탈취 노려”> 기사 등은 이수정 교수의 똑같은 멘트를 인용해 ‘정유정이 명문대 학생인 피해자를 동경의 대상으로 보고, 그 정체성을 훔치기 위해 이같은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 중앙일보 기사 제목 갈무리.

홍 교수는 이에 대해 “피의자가 그런 발언을 한 것이 아닌데, 해당 발언이 추리소설같은 방식으로 언급되고 있다”며 “전문가 발언조차도 검증이 되지 않은 발언들이 보도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권 사무처장은 “강력범죄가 발생하기까지 다양한 원인이 있는데 ‘범죄물을 보고 배웠다’거나 시기 질투나 은둔형 외톨이 등을 원인으로 쉽게 단정하고 있다”며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는데 오히려 방해요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클릭을 유도하는 낚시성 보도도 여전했다. 세계일보 <정유정이 또래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고른 이유는>이란 제목의 기사는 “정유정이 왜 A씨를 범행 대상자로 골랐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게 없다. 지난 2일 경찰로부터 정유정을 넘겨받은 검찰이 풀어야할 과제”라고 보도했다.

▲ 세계일보 기사 제목 갈무리.

서울경제 <‘또래 살해·유기’ 정유정…그녀의 폰에는 ‘이것’ 없었다>, YTN <정유정, 충격적인 살인동기…피해자 집에 남겨둔 건> 등의 기사는 제목에 핵심을 넣지 않고 본문으로의 클릭을 유도하는 전형적인 낚시성 기사다. 파이낸셜뉴스 <“정유정 고등학교 때도 이상했다”..동창 주장한 누리꾼 댓글 주목> 기사는 진위 여부도 확인되지 않은 유튜브 댓글을 그대로 기사화했다. 권 사무처장은 “범죄보도의 경우 자극적인 발언 등은 클릭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언론에서 무분별하게 보도되고 있는데,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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