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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건설노동자’ 사망하자마자 경찰에 “분향소 저지” 요청한 서울 중구청

 

  • 발행 2023-06-15 16:37:04

 

  • 수정 2023-06-15 17:13:50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열린 고 양회동 민주노총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 추모 문화제에서 경찰들이 기습 설치된 분향소를 강제 철거하고 있다. 2023.05.31 ⓒ뉴시스


서울시 중구청이 건설노조 탄압에 항거하며 분신한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이 사망하자마자, 경찰에 '분향소 설치를 저지해달라'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당시는 양 지대장의 장례 절차와 관련해 아무것도 논의되지 않았던 시점이었지만, 중구청은 경찰에 "적극적인 행정응원"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부터 서둘러 보낸 것이다.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2023년 집회의 자유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토론회에서 이 같은 사실이 공개됐다. 이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강민정·소병철·최혜영 의원과 공권력감시대응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인권네트워크바람, 참여연대 등이 공동 주최한 것이다.

토론자로 나선 민주노총 건설노조 서일경 법규부장은 지난 5월 31일 경찰이 양회동 지대장 분향소를 강제로 철거한 사례를 언급하며 "서울 중구청이 양회동 열사가 분신하시고 산화하신 5월 2일 날짜로 경찰에 행정응원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실제 민중의소리가 입수한 중구청의 '도로상 집회(시설물) 관련 행정응원 협조 요청' 공문의 접수 일자는 양 지대장이 숨진 5월 2일이다.

공문에는 "건설노조 소속 간부의 분신 사망 이후 우리 구 관내 주요 지역에 분향소 설치가 우려된다는 정보가 있어 도로법 75조 위반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경찰의 적극적인 행정응원을 요청한다"며 "농성시설물(분향소 등) 설치 행위 적극 제지(인력, 장비 등 지원), 행정대집행 시 경력 지원 등"을 요청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요청 일시는 '5월 2일~상황 종료 시'까지며, 요청 지역은 시청 주변과 파이낸스 빌딩 등 중구 관내로 적혀 있다. 수신자는 서울남대문경찰서 공공안녕정보외사과장과 경비과장이다.

 

 

 

서울 중구청이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이 사망한 뒤 경찰에 보낸 공문. ⓒ민중의소리


양 지대장은 노동절인 5월 1일,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에 항거하며 분신했다. 전신화상을 입은 양 지대장은 강릉의 한 병원에서 화상전문병원인 서울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분신 이틀째인 5월 2일 오후 1시 9분경 사망했다. 양 지대장이 유명을 달리한 후, 유가족들은 강원 속초에서 가족장을 치렀다.

당초 유가족은 조용히 장례를 마무리하고자 했으나, 양 지대장이 노조 탄압 중단을 요구하는 유서가 뒤늦게 공개되면서 5월 3일 오후 건설노조에 장례 절차를 위임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5월 4일 오전에야 언론에 공개됐다. 그런데 서울 중구청은 양 지대장의 장례와 관련해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던 5월 2일, 유가족과 양 지대장의 동료인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깊은 슬픔에 잠겨 있던 시점에 경찰에 분향소 설치를 적극 막아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중구청의 요청에 따라 경찰은 5월 31일 건설노조가 청계광장 인근에 양 지대장의 분향소를 설치하자 대규모 경력을 투입해 강제 철거에 나섰다. 당시 서울경찰청은 "관할구청의 행정응원 요청에 따라 천막 설치를 차단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분향소를 지키려는 건설노조 조합원 3명이 부상당해 병원으로 이송됐고, 조합원 4명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연행됐다. 건설노조는 경찰의 강제 철거가 위법하다며 윤희근 경찰청장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박동현 서울경찰청 기동본부장, 임동균 서울남대문경찰서장, 임영재 서울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 등을 지난 13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한 상태다.

 

 

 

“이명박·박근혜 때보다 심각”
'교통불편' 이유로 집회 무더기 금지하는 경찰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연속토론회 '증언과 토론:2023년 집회의 자유 시간은 거꾸로 간다' 2023.6.15 ⓒ뉴스1

이날 토론회에서는 과거 보수 정권 시절보다 윤석열 정권에서 집회의 자유가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표적으로 '교통 불편' 등을 이유로 집회를 과도하게 금지 통고하는 경우다. 집시법 12조는 교통 소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시위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경찰이 이 조항을 앞세워 집회 금지 통고를 남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발제를 맡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 김선휴 변호사는 "2016년 가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행진에 집시법 12조를 적용한 경찰의 금지 통고에 대해 법원이 제동을 가했다"며 "또 2017년 9월 경찰개혁위원회에서 '집시법 12조를 적용해도 전면적인 금지 통고나 신고한 집회시위를 사실상 금지하는 제한 통고나 조건 통보는 원칙적으로 하지 않도록 권고'한 것을 경찰이 수용함에 따라 집시법 12조를 적용한 금지 통고는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경찰의 입장은 180도 달라졌다. 김 변호사는 "윤석열 정부의 경찰은 시민들의 교통불편을 표면에 내세워 집시법 12조를 적용한 금지 통고를 다시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12조를 적용한 전면적 금지 통고를 자제하겠다는 경찰의 과거 입장은 손바닥 뒤집듯 뒤집혔다"며 "윤석열 정부 집권 1년차인 2022년에만 서울지역에서 집시법 12조가 금지 통고 근거로 제시된 사례는 219건이고, 집시법 12조만 단독으로 금지 통고사유가 된 것도 154건"이라고 제시했다.

그러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1~2016년 사이 서울지역에서 집시법 12조를 적용한 금지 통고가 가장 많았던 게 한 해에 121건이었던 것에 비춰보면 과거로의 퇴행이 아니라 그때보다 더 심각하다"고 꼬집었다.

특히 김 변호사는 "집시법 12조를 단독으로 적용한 금지 통고 154건 중 100건이 용산경찰서의 처분인 것을 보면, 시민의 교통불편을 내세운 집회 금지 통고가 실제로 무엇을 지키는 데 복무하고 있는지 추정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건설노조 서일경 법규부장은 지난달 집회를 열기 위해 낸 집회신고 대부분이 집회법 12조를 이유로 '불허' 또는 '부분금지'됐다며 "불법집회를 만들어내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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