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부여군 규암리에 자리한 자온길 ⓒ 세간
충청남도 부여 백마강변에 자리한 작은 시골 마을 규암리엔 '자온길'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스스로 따뜻해지는 길'이란 뜻처럼 찾는 이 없던 이 마을엔 최근 몇 년 사이 책방과 카페, 공방과 스테이들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모처럼 따뜻한 기운이 흐르고 있다. 작은 시골 마을이 이렇게 바뀌는 건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스스로 따뜻해진다고는 하지만 길이 저절로 생기는 법은 없다. 길이 없던 땅에 첫발을 뗀 누군가가 꼭 있게 마련이다. 자온길의 첫발을 뗀 건 '세간'을 운영하는 박경아 대표다. 그는 스물셋이던 대학 4학년 때 서울 인사동 쌈지길에 첫 가게를 내고 사업가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한국의 고유한 멋이 담긴 옷과 공예가 우리 일상에 스며들 수 있게 그 쓰임새를 제안하는 일을 해왔다.
그는 어릴 적부터 박물관, 미술관에서 노는 걸 좋아했고 커서는 미술을 공부하다 부여에 한국전통문화대학교가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공예학과에 들어갔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전국 방방곡곡 아름다운 유적을 돌아보며 우리의 멋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가 어린 나이에 창업을 하게 된 것도 "이 아름다운 전통 미술 공예가 사라지지 않으려면, 수요가 늘어나야 하고 시장이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그는 사랑하는 공예를 더 알리고 싶었고 살아남게 하고 싶었다고 한다.
▲ 박경아 세간 대표가 옷을 만들고 있다 ⓒ 세간
다행히 그가 만든 옷이며 공예품은 인기가 좋았고, 얼마 안 가 다른 곳에 또 가게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가게를 낸 곳들은 하나같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몸살을 앓았다. 한 달에 1000만 원이 넘는 월세를 몇 년을 내야 했고, 삼청동, 서촌과 북촌 등에 새로 문을 연 공간들도 몇 년 지나지 않아 임대료가 가파르게 오르곤 했다.
그는 살아남으려면 부동산을 알아야 한다는 걸 깨닫고 그때부터 부지런히 책을 읽고, 현장을 돌면서 보는 눈도 길렀다. 그렇게 돈과 시간을 쏟아 배운 것들이 없었다면 자온길 프로젝트도 없었을 거라고 그는 말한다.
한국의 멋을 알릴 수 있는 거리를 꿈꾸다
▲ 100년이나 된 한옥이 복합문화공간 '이안당'으로 되살아났다 ⓒ 세간
그렇다면 그는 왜 부여의 작은 시골마을에 '자온길'을 만들었을까.
"여러 거리들의 흥망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 거리를 만들고 싶은 바람이 생겼어요. 좋은 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비싼 임대료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일을 놓아야 하는 동료들을 보면 늘 안타깝기도 했죠. 그래서 그들이 마음 편히 일에 몰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섰고, 사람들이 떠난 비어있는 마을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았어요."
자연스레 학교를 다녔던 부여를 떠올렸다. 처음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 주변을 둘러봤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 규암리가 떠올랐다."대학 때 목욕탕에 갔다가 할머니 한 분이 혼자 때를 밀고 계시길래 등을 밀어드렸어요. 집에 놀러 오라고 하시길래 민속조사도 할 겸 찾아갔던 곳이 이곳 규암리였어요. 오래된 건물이 드문드문 있던 그 마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어요. 부여를 샅샅이 뒤져도 마땅한 곳이 없던 그때 불현듯 그 기억이 떠올라 다시 찾아갔죠. 다시 찾은 마을을 보면서 서울 삼청동 거리가 변해가던 모습이 다시 머릿속에 그려졌어요."
▲ 세간이 처음으로 되살린 공간 '책방세간' ⓒ 세간
▲ 책방세간은 여느 책방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 세간
그때만 해도 마을은 정말 거짓말처럼 비어있었다. 거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은 건 물론이고, 길을 가다 사람 한 명 마주치기도 쉽지 않았다. 그는 그토록 찾던 마을이란 생각에 가슴이 설렜다. 알고 보니 이 마을도 1950-60년대엔 200여 가구가 살던 제법 큰 마을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 곳곳엔 극장과 양품점, 양조장과 여관 등의 흔적이 남아있다.
"처음부터 공방들만 모여있는 마을을 생각하진 않았어요. 사람들이 찾아올 만한 공간이 필요하다 생각했고, 그래서 처음엔 책방과 카페를 열고, 그 다음엔 게스트하우스와 술집을 열었어요. 이 모든 공간들이 우리의 멋과 맛을 경험할 수 있는 쇼룸인 셈이에요. 자온길에서 보고 먹고 자는 모든 행위가 우리 전통 공예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랐죠."
오래된 한옥이 가진 매력에 반하다
그는 특히 마을에 버려진 오래된 집들을 되살려 한옥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을 쏟아왔다. 자온길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책방 세간'도 아주 오래된 담배 가게와 살림집을 손본 곳이다.
▲ 버려진 한옥의 모습 ⓒ 세간
▲ 시골엔 이렇게 함부로 버려진 한옥들이 많다 ⓒ 세간
▲ 카페 '수월옥'의 모습 ⓒ 세간
▲ 자온길 스테이 청명이 리모델링을 거쳐 몰라보게 달라졌다 ⓒ 세간
▲ 뼈대를 그대로 되살린 스테이 '청명'의 모습 ⓒ 세간
▲ 스테이 '청명'의 내부 모습 ⓒ 세간
복합문화공간 '이안당'은 일본식 건축양식이 남아있는 100년이나 된 집을, 카페 '수월옥'은 술을 팔던 요정 수월옥을 이름 그대로, 그리고 팝업 스토어이자 스테이인 '청명'은 오래된 국밥집을 되살린 공간이다. 최근 문을 연 '자온양조장'도 버려져있던 양조장을 이름을 그대로 따와 독특한 분위기의 술집으로 되살려낸 곳이다.
"세간이 되살린 자온길 공간 하나하나엔 그걸 되살리기까지 겪어야했던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요. 가령, 수월옥 하나만 해도 땅 주인과 집 주인이 다른 데다 불까지 났던 곳이라 누구 하나 관심을 두지 않는 그야말로 폐허였어요. 되살린다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죠. 다들 '이 시골에 무슨 카페냐', '부수고 다시 지어라' 하셨어요.
하지만 상업 공간으로 지은 한옥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현실에서 저는 이 낡은 상가 한옥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마을에서 가장 어려운 곳을 먼저 바꿔야 마을의 표정이 바뀐다고도 믿었죠. 수월옥이 몰라보게 달라지는 걸 보고 나니 비로소 주민과 지자체도 이렇게 낡고 오래된 공간들이 가치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의 말처럼 그는 지금껏 세간이 꾸려갈 공간만이 아닌 마을의 전체 풍경을 생각하면서 움직여왔다. 스스로 마을 기획자로 살아온 셈이다. 하지만 낡은 공간 하나를 되살리는 일도 만만치 않은데 마을 전체를 바라보면서 기획을 하고 일을 벌이는 건 벅찬 일일 수밖에 없다.
▲ 마을에 흉물로남아있던 빌라를 박 대표가 어렵게 사들였다 ⓒ 세간
"건설사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짓다 만 빌라가 마을 한 가운데에 흉물로 남아있었어요. 알고 보니 채권이 다른 지역 조직폭력배에게 넘어갔더라구요. 그걸 사려고 문신한 조폭들을 만났어요. 지금은 다시 부여군이 사서 마을에 꼭 필요한 시설로 만들 계획이에요."
마을 주민들도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해마다 7~8채씩 들어오던 멸실 신청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 다들 죽은 상권이라 여기던 마을에 어느새 카페가 10개가 생겼고 편의점과 치킨가게도 생겼다.
투기꾼으로 몰리고 음해에 시달리고...
처음부터 모두가 박 대표를 반겼던 건 아니다.
"갑자기 젊은 여자가 와서 집들을 사들이니 투기꾼이니 사기꾼이니 하면서 절 의심했어요. 또 중간에 투자사와 갈등이 생기면서 나쁜 소문들이 보태졌죠. 모두 '혐의없음'으로 결론이 났는데도 꼬리표를 떼는 데 몇 년 걸렸어요. 재판 한 번 해본 적이 없는데, 지금도 저랑 말 한 번 안 섞어본 이들이 선입견을 가지고 대할 때면 마음이 아파요.
처음 마을에 들어올 땐 이런 일들을 겪게 될 거라곤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마을 살리는 좋은 일이니 모두가 반겨줄 거라고 순진하게 생각했죠. 투기라고 하는데, 누가 이렇게 어렵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투기를 할까요. 그래도 오랫동안 안 떠나니까 믿어주시더라구요. 입으로만 떠들던 사람들은 벌써 다 떠났죠."
한 번은 수십 년간 버려져 있던 한옥 문간방에서 자면서 온몸을 빈대에게 물린 적도 있다. 동물 사체는 셀 수 없이 봐왔고, 말벌에도 쏘여봤다. 그래도 현장을 떠나지 않은 건 애정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도 오래된 한옥들을 지켜야 할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또 버려진 공간들에 새로운 쓰임새를 불어넣는 일은 힘들지만 분명 보람 있는 일이라고 했다.
▲ 최근 새롭게 문을 연 '자온양조장' ⓒ 세간
사람들이 떠난 마을에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서고 찾는 이들이 늘면 공간의 자산가치가 높아지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시세차익을 노리고 돈을 쏟아붓는다고 해서 뜻대로 다 되는 건 아니다. 규암리 같은 시골 마을에선 더더욱 기대하기 힘든 일이기도 하다.
"마을이 이렇게 변한 건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시골 마을에선 몇 년을 버티면서 공간을 가꾸고 운영해야 비로소 작은 변화들이 생겨요. 도시에서도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게 어려운데 하물며 이곳까지 사람들을 오게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겠어요. 20년 가까이 나름대로 쌓아 올렸던 경험이 없었다면 저도 불가능했을 거예요."
그는 지자체가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힘을 보탰다면 조금은 더 쉽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 거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주식회사라서, 외지인이라서, 또 여러 오해가 더해져서 세간은 지난 몇 년 동안 행정의 지원으로부터 소외돼 왔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다. 늦게나마 부여군이 흉물로 남은 빌라를 사들인 것도 그동안의 오해가 풀려서다.
▲ 세간은 오래된 뼈대를 그대로 살리면서 리모델링을 한다 ⓒ 세간
최근엔 부여읍에 있던 부여도서관이 이 마을로 옮겨오기로 했다. 책방세간과 이안당 사이 4700㎡ 땅에 곧 부여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 생긴다. 1968년 백마강을 가로지르는 백제교가 놓이면서 강 건너 부여읍으로 빠져나갔던 사람들이 이제는 다시 강을 건너 이 마을을 찾아올 일이 생긴 것이다. 이런 변화가 세간이 뿌린 씨앗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지금은 모르는 이가 없다.
모든 한옥은 저마다의 가치가 있다는 믿음으로
서울·수도권 밖 작은 도시들은 집값이 서울에 한참 못 미쳐 리모델링에 많은 돈을 쓸 수 없다. 오랫동안 버려진 한옥들에는 더더욱. 그래서 세간은 몸을 갈아 넣어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귀촌을 하거나 시골에 세컨드하우스를 마련하려는 이들이 다 돈이 많은 건 아니에요. 그래서 1억 원 미만으로 한옥 리모델링을 하는 시장도 필요해요. 뜻있는 젊은 건축가들이 더 나서주길 바라죠. 그래야 시골 빈집들이 살아나요. 그런데 농림부는 자꾸 부수려고만 들어서 걱정이에요.
또 크고 멋진 한옥만 가치가 있는 건 아니에요. 비단옷만 유물이 아니잖아요. 무명옷도, 모시옷도 다 유물이에요. 잘못된 잣대로 나누다 보면 다양성이 사라질 수밖에 없어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점에서도 한옥 리모델링은 굉장히 가치가 있어요. 흙과 나무, 돌로 지은 집을 되살리는 일이니까요."
▲ 사람들이 떠난 마을에 다시 사람을 불러들이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 세간
세간이 부여에서 되살린 공간만 10곳이 넘고 부여 밖의 것까지 따지면 20개쯤 된다고 한다. 이 가운데는 가수 양희은씨 집도 있다. 자온길에 자리하고 있던 제법 큰 한옥을 부순다길래 박경아 대표가 덜컥 계약금 5000만 원을 걸고 지켜낸 집이다.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고 한다. 1년간 세를 내가면서 지킨 집도 있는데, 상업적 잣대로만 따지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저는 사업가이기도 하지만 크래프터(공예가)이기도 해요. 계산기만 두드리면 할 수 없는 선택들도 많아요. 길게 보려는 마음이 없으면 이 일은 절대 할 수 없어요. 오래된 집들을 보면 앞으로 어떻게 되살아날지가 눈에 보이고 또 귀하게 여겨지니 그렇게 할 수 있었죠.
가끔은 '왜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공공이 나서줬으면 하는 일도 많아요. 그래도 아기 때 왔던 손님이 조금 커서 작은 선물을 주고 가기도 하고, 해마다 오는 손님들이 마을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맙다고 해주면 다시 기운이 나요. 공간을 완성하는 건 그 공간을 쓰는 사람들이에요. 공간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운을 내죠."
▲ 사람들이 이안당에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 세간
그는 자온길에 새로운 공간을 준비하고 있다. 고미술과 엔틱 가구를 체험하는 갤러리이자 매장이다. 책방과 카페로 사람들을 조금씩 불러 모으기 시작해 게스트하우스와 식당, 공방과 술집으로 머물고 싶은 길을 만든 데 이어 한국의 멋을 대표하는 문화거리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마음 깊은 응원을 보내는 이유
▲ 세간이 되살린 '이안당'의 내부 ⓒ 세간
"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라지만 무작정 권할 순 없어요. 고된 일이니까요.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하고 흔들려서도 안 돼요. 빠르게 뭔가가 바뀌길 기대해서도 안 되고요. 여긴 서울이 아니니까요.
이 마을이 아름다운 곳인 건 분명해요. 전 지금도 부여가 세계적인 관광 도시가 될 거라 믿고 힘을 보태고 싶어요. 하지만 농업 인구가 많다 보니 그동안 지자체 정책은 농업에 무게를 두고 있었고 관광 분야엔 관심이 덜했죠. 앞으로는 저 같은 사람을 잘 활용하길 바라죠.
10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6년 됐어요. 그래도 이만하면 싹은 틔우지 않았을까요."
자온길이 생기고 부여의 작은 마을 규암은 한결 따뜻해졌다. 하지만 세상에 없던 길을 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자온길은 잘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자온길은 생길 수 있을까, 그러려면 무엇이 먼저 바뀌어야 할까,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무거웠다. 부디 그가 더 많은 응원을 받으며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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