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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 왜 떨어져 죽었나” 사과 한마디 없는 건설사서 울부짖은 노모

노동시민사회, 시민대책위 구성…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사망자만 8명 나온 DL이앤씨에 진상규명 및 공개 사과 요구

지난 8월 부산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고 강보경 이십대 노동자의 어머니가 4일 서울 종로구 DL이앤씨 본사 앞에서 열린 디엘이앤씨 중대재해 근절 및 고 강보경 일용직 하청노동자 사망 시민대책위원회 발족 및 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10.04 ⓒ민중의소리
지난 8월 11일 부산 연제구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일용직 하청노동자 고 강보경(29) 씨가 거실 창호 유리를 교체하는 작업 중 아파트 6층(높이 20m) 아래로 떨어져 숨졌지만, 사건 발생 후 두 달이 다 되어가도록 사측은 유가족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4일 드러났다.

이 현장의 원청 건설사는 ‘e편한세상’ 건설사로 잘 알려진 DL이앤씨다. DL이앤씨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부터 1년 반 동안 사망자만 8명이 나온 건설사로, 강 씨는 그중 8번째 희생자였다. 고인의 노모는 회사 본사를 찾아가 “DL이앤씨는 지금이라도 사과하라”며 억울한 심경을 토해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김용균재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28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서울 종로구 DL이앤씨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DL이앤씨 중대재해 근절 및 고 강보경 일용직 하청노동자 사망 시민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 출범을 선언했다. 이들은 DL이앤씨를 향해 진상 규명과 공개 사과, 재발방지책 등을 촉구하며 이를 위한 활동을 이어 나가겠다고 예고했다. 기자회견에는 고인의 유가족도 함께했다.

유가족에 따르면, 사측은 강 씨의 사고 경위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았다. 빈소에는 원청은 물론 하청업체 책임자도 찾아오지 않았고, 사측 노무사는 경황이 없는 유족에게 위로금을 운운하며 합의를 종용하기에 급급했다. 유가족은 여전히 강 씨가 왜 목숨을 잃게 됐는지, 수사는 제대로 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강 씨의 친누나인 강지선 씨는 동생의 죽음을 감추기에 급급했던 사측의 태도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지선 씨는 “동생이 하늘나라로 떠난 뒤 현장 답사를 갔다. 아파트 6층 사고 장소를 직접 보고 싶다고 했으나 잠금장치를 걸어두고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고, 현장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으나 정당한 이유 없이 찍지 못하도록 제지당했다”며 “(당시 현장은) 3인 1조라는 말에 동료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으나 연락처를 알려줄 수 없다고 했고, 근로계약서상 기초안전보건교육을 8시간 받았던 이수증 사본이 있다고 했지만 이수증 사본은 주지 않았고, 경찰도 이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고 전했다.

또한 “(사측은) 안전모, 안전벨트 등 안전 장비를 지급했지만, 본인이 장비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고 장소 6층에는 안전벨트를 걸 고리조차 없었고 안전망 하나도 없었으며 착용했던 안전모를 보여달라는 말에 (사측은) 찾기 힘들다고 했다. 경찰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며 “사측과 처음 만났을 때 친인척은 몇 명 오는지, 친인척이 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보면서 필요한 서류부터 요구한 것이 매우 불쾌했다. 동생 사고 상황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답답한 마음에 간 현장 답사였는데 경찰의 말과는 너무 달라서 화가 났다. 사고를 작게 덮기 위해 유가족에게 거짓말을 늘어놓은 것”이라고 분노했다.

지선 씨는 “6층 사고 장소는 누가 올라가더라도 죽을 수 있는 위험한 장소였다. 안전장치 하나 없었다”며 “DL이앤씨 마창민 대표는 얼마나 멀길래, 얼마나 바쁘길래 장례식장에 오지 못했나. 전화 한 통 못했나. 어머니에게 직접 죄송하다고 사과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고인의 어머니인 이숙련 씨는 “매일매일 현관만 바라보면 아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내 자식의 얼굴로 보인다”며 “아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같이 전화해 어머님은 무엇을 잡수셨는지, 오늘 하루는 어떠셨는지 물었다. ‘엄마, 사랑해요’라는 음성이 매일 같이 생각나 우리 집은 울음바다가 된다”고 통곡했다.

숙련 씨는 “엄마는 가슴을 치고 또 친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회사의 잘못이 많으니, 엄마 앞에 와서 꼭 무릎 꿇고 빌길 바란다. 두 달 넘도록 전화 한 통 하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죄송하다고 빌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후 숙련 씨는 DL이앤씨에 유가족 입장문을 전달하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들의 영정을 꼭 끌어안은 숙련 씨는 이렇게 외쳤다.

“내 아들 살려내세요. 내 아들 살려내세요. 안전고리도 하지 않고, 밑에 그물도 설치 않고, 너무나 억울하게 갔습니다. 여기 회사의 잘못으로 우리 아이는 영영 가고, 이젠 음성도 들을 수 없습니다.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전화하던 내 아들을 왜 이렇게 억울하게 죽게 만들었는지 정말 알고 싶어요. (중략) 이 엄마의 가슴은 찢어지도록 아픕니다. 이 억울한 심정을…지금이라도 와서 무릎 꿇고 비세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1년 반 동안 사망자만 8명
강 씨 유족들, 5일부터 DL이앤씨 앞에서 1인 시위

 

지난 8월 부산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고 강보경 이십대 노동자의 유족들과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4일 서울 종로구 DL이앤씨 본사 앞에서 디엘이앤씨 중대재해 근절 및 고 강보경 일용직 하청노동자 사망 시민대책위원회 발족 및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마친 뒤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대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전달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2023.10.04 ⓒ민중의소리

강 씨의 죽음 이전에도 DL이앤씨 현장에서는 6번의 사고로, 7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 벌어진 일만 따져도 이 정도다.

지난해 3월에는 서울 종로구 건설현장에서 전선을 내리는 작업을 하던 중 전선을 감아두는 전선 드럼에 맞아 노동자가 사망하는 일이 있었고, 불과 한 달 뒤 경기도 과천에서는 굴착기와 철골 기둥 사이에 끼이는 사고로 노동자가 숨졌다. 같은 해 8월에는 경기도 안양시 건설현장에서 펌프카 작업대가 부러져 이에 맞은 노동자 2명이 깔려 숨졌고, 10월에는 광주시에서 크레인 붐대에서 미끄러져 추락한 노동자가 숨졌다.

올해 7월에는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콘크리트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해, 노동자가 건설장비에 깔리는 사고로 숨졌다. 강 씨 사고 직전에는 철거업체 소속 노동자가 지하 전기실 양수 작업 중 물에 빠져 숨졌다.

반복되는 중대재해에 고용노동부는 지난 7월 DL이앤씨의 전국 모든 시공 현장을 일제 감독했다. 그 결과 DL이앤씨의 61개 건설현장에서 209건의 위반 사항이 적발됐고, 약 3억 8천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사망사고는 계속 이어졌다. 시민대책위는 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것을 원인 중 하나로 지목했다.

시민대책위는 “DL이앤씨는 7건의 사망사고와 관련해 아직 한 건도 송치되지 않았고 관련 기관은 여전히 수사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며 “노동현장에서 연이어 사망사고가 발생하는데도 불구하고 늑장 수사와 늑장 기소로 책임자가 처벌받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연쇄 사망사고에도 처벌하지 않는 수사당국의 태도가 DL이앤씨에서 중대산업재해가 끊이지 않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시민대책위는 “DL이앤씨의 반복적인 중대재해 발생에 대해 DL그룹 차원의 실효성 있는 근본 대책을 수립하고 공개하라”며 “고용노동부는 7건의 중대재해에 대한 수사 진행 및 송치 관련 상황을 밝히고 최고 책임자를 수사, 처벌해야 한다. 검찰 역시 7건의 중대재해에 대한 수사 지휘 및 기소 관련 상황을 밝히고 최고 책임자를 기소,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유가족과 시민대책위는 5일부터 DL이앤씨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갈 예정이다. 고용노동부 국정감사가 예정된 내주에는 국회 기자회견과 추모 문화제 등을 계획하고 있다. DL이앤씨 마창민 대표이사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돼 있어, 반복되는 중대재해에 대한 질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8월 부산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고 강보경 이십대 노동자의 유족들과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4일 서울 종로구 DL이앤씨 본사 앞에서 열린 디엘이앤씨 중대재해 근절 및 고 강보경 일용직 하청노동자 사망 시민대책위원회 발족 및 투쟁 선포 기자회견애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10.04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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