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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방구뽕은 어린이를 '해방'할 수 없다

[인권학의 프런티어] 100년 전 어린이의 외침, 지금은 다른가?

낭만크루황준서 성공회대학교 강사  |  기사입력 2023.10.05. 05:03:30

 

인권에 대한 물음이 쏟아지는 나날이다. 인권보장을 외치는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커져가는 사이, 한편에선 그 목소리의 정당성을 두고 격론이 펼쳐진다. 갖은 물음에 답하기 위해 <프레시안>과 한국인권학회가 만났다. 인권은 사회적 화두인 동시에 연구와 학문의 대상이다. 학계가 쌓아온 '인권학' 연구를 사회적 화두로 다시 던진다. 평화-인권-환경 연구자인 황준서 박사가 글을 쓴다. 편집자

 

지난해 화제였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는 '어린이 해방'을 주장하는 어른이 피고인으로 등장했다. 작중인물 방구뽕(구교환 분)은 자신을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이라고 칭하며 학교와 학원을 다니느라 놀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데리고 놀다가 미성년자 약취 및 유인 혐의로 기소된다. 

 

법정에 선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합니다. 나중엔 늦습니다." 단순한 발언이지만, 이 장면은 아동을 보는 두 가지 시선의 충돌을 상징했다. 어린이·아동을 교육과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전통적 시선과, 자유로운 권리의 주체로 보는 진보적 시선의 충돌. 이번 글에서는 아동의 권리를 주제로 아동기본법에 대한 논의를 소개한다.

 

 

 

아동기본법 제정을 향한 노력

어린이를 독립된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의미로 만들어진 어린이날은 올해 5월로 100주년을 맞이했다. 100년 전에 발표된 '어린이선언'에는 어린이의 권리와 의무가 담겨있다. 예를 들어 어른들은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말고 쳐다보아"야 하며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야 하고 "서로 모여 즐겁게 놀만한 놀이터나 기관 같은 것을 지어"야 한다. 어린이들은 "어른에게는 물론이고 서로 존대"해야 하며 "꽃이나 풀을 꺾지 말고 동물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1961년 제정한 '아동복지법'에 따라 5월 5일을 법정공휴일인 어린이날로 지정하였다. 필자도 유년시절 학교를 안 가도 되고, 용돈과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어린이날을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어린이날의 취지가 무색하게 당시 아동들이 얼마나 자유로운 인격체로 인정받았는지는 의문이 든다. 지금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욱 치열한 학업 경쟁에 시달리고, 더욱 다양해진 형태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지는 않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동의 권리를 말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세상처럼 느껴진다. 

 

다행히 우리 사회에서도 한쪽에서는 아동을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4월 28일과 5월 1일 대한민국 국회에는 두 건의 아동기본법 법안이 제출되었다. 아동기본법은 1989년에 유엔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아동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의 온전한 이행을 목적으로 두고 있다. 아동권리협약은 아동기본법을 제정하여 아동의 권리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동권리협약 비준국이지만, 아동기본법은 미비했다. 따라서 아동기본권 법안 발의는 아동이라는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를 인정하기 위한 한 걸음 전진이라는 의미가 있다.

 

▲지난해 5월 4일 '어린이 차별 철폐의 날' 기자회견에 참여해 피켓을 들고 있는 김한나 어린이 ⓒ프레시안(한예섭)

 

동등한 권리 주체로서의 아동 

 

법이 아동을 '권리의 주체'로 인정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 물론 현재 법률로도 '아동복지법'이나 '청소년기본법'에서 아동의 권리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아동 관련 법률들은 아동학대 등 아동 관련 중대사건이 발생한 뒤 현안대응 차원에서 개정된 것이라 서로 유기적이지 못하고, 아동을 훈육과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을 벗어나지 못했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아동기본법 법안들은 아동을 성인과 동등한 권리의 주체로서 인정하기 위한 '국가의 적극적인 의무'를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김희진 변호사가 지적했듯 아동 관련 법률과 규정이 양적으로 늘어난다고 해서 아동의 권리가 더 잘 보장되고 실현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2016년에 출생 미신고 아동의 권리 보호를 위해 검사 또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직권으로 아동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규정이 생겼으나, 실제로 이뤄진 경우는 거의 전무하다.

 

김 변호사는 "(아동에 대한) 보호의 필요는 미숙함의 근거가 아니며, 보호받을 권리에 대한 의무이행자의 책무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아동복지법'은 "사실상 아동에 관한 기본법으로 그 무게를 더해왔지만, 보호대상아동에 대한 서비스 제공에 중점을 두는 한계"를 안고 있다. 오늘날 국회에 제출된 아동기본법 역시 법률 제정의 의미에 더하여 실질적으로 권리보유자인 아동의 입장을 충실히 반영할 필요가 있다. 

 

권리주체로서 아동의 입장을 반영한 법 및 정책수립을 위해서는 종종 보여주기 식으로 끝나는 당사자의 의견수렴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완전한 이행을 위한 국내법 및 행정체계의 전환이 필요하다. 인권의 불가분성, 상호의존성, 상호연관성을 고려할 때 아동기본법은 고정된 특정 연령대에 속한 아동에게만 보장되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과 동등한 주체로서 아동이 모든 인권을 향유하기 위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아동기본법이 아동이 향유해야 하는 권리를 열거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려면 "아동 청소년의 폭넓은 권리 보장을 총괄하는 정부조직, 정책조정, 아동권리에 관한 독립인권기구를 포함한 아동권리 이행 제도화 방안"을 다뤄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체적으로는 아동권리협약 이행을 위한 거버넌스 구축, 아동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한 독립적 인권기구 설립, 아동인권 관점에서 기본 3법(헌법, 민법, 형법)에 대한 개정 등의 내용을 고민할 수 있다.

아동의 권리 침해를 방지하고, 구제하기 위한 독립기구로서는 옴부즈퍼슨(Ombudsperson) 제도 운영을 고려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독립인권기구로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아동 권리를 다루고 있지만, 권리를 침해당한 아동이 구제절차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인권위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옴부즈퍼슨은 아동 권리 침해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인권위와도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사회적 의식이 향상된다면, 그에 맞게 아동인권의 관점에서 우리나라 사법체계를 지탱하는 기본 법률들에 대한 재검토도 필요할 것이다.

 

이에 더해 아동기본법은 아동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뼈대의 역할을 해야 한다. 향후 장애, 이주, 범죄소년, 지방 등 상이한 상황에 놓여있는 아동 및 청소년 집단의 권리를 포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정책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스틸컷. 해당 회차에선 배우 구교환이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을 자처하는 극중 인물 방구뽕을 연기했다. ⓒ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낭만크루

 

아동기본법을 딛고 인권문화 확산으로 

 

현재 국회에 제출된 아동기본법 이전에도 아동기본법을 제정하려는 시도들은 몇 차례 있었다. 2008년에는 보건복지가족부에서 현행 '청소년기본법'과 '아동복지법'을 통합하여 '아동청소년기본법'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논의는 정부의 의지 부족, 아동 관련 부처의 혼란, 반대여론 등으로 좌초되어왔다. 

 

아동기본법을 반대하는 측에선 아동 및 청소년정책의 통합이 '보호' 대상인 아동과 '육성' 대상인 청소년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확히 아동 및 청소년을 수동적인 관리대상으로 보는 그 이유 때문에 아동기본법이 필요한 것이다. 

 

"저는 금년 얼마 안 되는 나이를 먹은 어린이입니다마는 오늘날까지 자라오는 그 짧은 동안에 저는 어른들의 무수한 비난과 권리에 눌리어 자라났습니다." 

 

1928년 <어린이>라는 잡지에 실린 한 어린이가 쓴 글이라고 한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만, 오늘날 아동의 삶은 100년 전에 비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우리 사회에 깊숙하게 박혀 있는 어떤 원인이 아동의 권리 인정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아동을 수동적인 보호대상으로 낙인찍는 사회규범과 문화가 바로 그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면 좋은 법이 만들어지기도 어렵고, 설령 극적으로 좋은 법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 법이 사회에서 실질적인 효력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다시 강조하지만 법과 규정이 많아진다고 해서 곧바로 권리가 실현되진 않는다. 법률 제정 또는 개정을 통해 아동을 권리의 주체로 인정한 이후로도, 국가가 아동에 대한 차별과 권리침해를 시정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 본 연재에서는 한국인권학회·인권법학회에서 공동 발간하는 학술지 『인권연구』에 실린 시의성 높은 논문을 선정하여 소개합니다. 본문에 언급된 논문은 아래 링크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소개논문> 김희진. 2022. "아동기본법 제정을 위한 당사국의 책무", 『인권연구』 5(2): 67–104.

 

<다운로드 방법> 

링크 클릭→(오른쪽) 'KCI 원문 내려받기' 클릭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913973

황준서

퀸즈벨파스트대학교(Queen's University Belfast)에서 북아일랜드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한 삼중 전환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고, 2022년에 졸업하였다. 생태정의, 환경범죄, 지속가능한 평화, 탈인간중심적 인권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지금은 성공회대학교에서 환경사회학과 환경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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