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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에 만난 가족·친구 모두 윤 대통령 부부를 이렇게 말했다

[이게 이슈] 대통령과 여당, 설 연휴 '진짜' 민심의 소리를 들었는가

24.02.13 18:16최종 업데이트 24.02.13 18:16

▲ 지난 1월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이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관련 동영상을 틀어놓은 채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온 가족이 모인 설 연휴 밥상에 오른 민심의 소리는 단연 '민생'이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이 설 연휴 마지막 날 낸 짤막한 논평이다. 기실 하나 마나 한 이야기다. 지금껏 서민 경제가 어렵지 않았던 때는 없었고, 먹고 살기 힘들다는 하소연은 명절 때마다 오간 레퍼토리다. 그는 애써 모르는 척하고 있지만, '민생'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진짜 '민심의 소리'다.

'민생'이라는 두 글자로 퉁치고 있지만, 그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을 것이다. 정권을 향한 국민의 들끓는 분노가 임계점에 다다라 욕조차 아깝다는 반응이 태반이라는 사실을. 국민의 삶을 돌보아야 할 대통령이 도리어 국민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많은 이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인 게 창피하다고 했다. 이번 연휴 동안 가족과 친지, 친구와 선후배 등을 취재하듯 두루 만났다. 택시를 탔을 땐 부러 기사가 귀찮아할 정도로 말을 걸었다. 말 그대로, 밑바닥 민심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모두 "불경기에 힘드시죠?"라는 의례적인 인사말에 하나같이 '대통령 뒷담화'로 대꾸했다. '불경기'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통령'으로 인해 더 힘들다는 거다.
"역대 정권을 통틀어 이토록 불공정하고 몰상식한 대통령이 있었나 싶어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번 연휴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민심의 소리'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덜컥 대통령이 됐고, 취임 이후에도 국정에 대한 학습에 소홀했을 뿐 아니라 비판의 목소리에 겸허히 귀 기울이는 마음가짐조차 없는, 민주화 이후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단언했다. 어떻게든 3년여 세월을 견뎌내야 한다고 서로를 다독이기도 했다.

지난 대선 때 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당선된 대통령에게 불공정하고 몰상식하다는 평가는 치명적이다. 차라리 무능하고 무책임하다는 비판이라면 덜 고통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대표적 공약과도 같은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이율배반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디올백과 KBS의 대통령 신년 대담
 

▲ 지난해 12월 11일 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1일(현지시간)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에 도착,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서 내린 뒤 차량에 탑승해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어디 이뿐이랴마는, 이번 연휴 때 만난 사람마다 현 정부의 불공정하고 몰상식한 행태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로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의혹'과 'KBS의 몰락', 이 두 가지를 꼽았다. 특히 연휴 직전 녹화 방송된 대통령의 신년 대담은 혹을 떼려다 되레 붙인 꼴이 됐다면서, 분노하는 민심에 더욱 불을 질렀다는 반응이 많았다. 대부분 아니함만 못한 기획이었다며 혀를 끌끌 찼다.

"(명품백 수수 의혹은) 영부인이 아니었다면, 정확하게는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이 아니었다면, 누구라도 법적 처벌을 피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세상에 이보다 더 불공정한 일이 또 있을까요?"

사람들은 이를 '유권무죄, 무권유죄'라고 한껏 조롱했다. 두루뭉수리 '권력'으로 눙칠 게 아니라, 대신 '김건희'라는 이름을 넣어야 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논문과 경력을 위조하고 주가 조작 혐의를 받아도 수사를 받지 않고, 이번처럼 현행법을 대놓고 위반해도 '몰카 공작' 운운하며 '방귀 낀 놈이 성내는' 모습이 참담하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놓고도 대통령은 "매정하게 좀 끊지 못한 것이 어떤 문제라면 문제고, 좀 아쉽지 않았나 생각이 된다"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행법을 위반한 영부인을 짐짓 두둔하는 듯한 태도다. 대통령에게 '춘풍추상(春風秋霜 :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자신에게는 서릿발처럼 엄격하게 대한다는 뜻)'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질타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일선 학교조차 모든 교사를 대상으로 '청렴 연수'가 의무화되어 있다. 청렴이란 성품과 행실이 높고 맑으며 탐욕이 없는 상태를 일컫는다. 모름지기 미래세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라면 청렴을 비롯한 도덕성은 가장 기본적인 자질이다. 하물며 국가의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과 가족들에겐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학부모가 상담하러 학교를 방문할 때 들고 온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도 손에 들려 돌려보내는 게 모든 교사의 불문율이다. 이른바 '김영란법'의 허용 액수를 일일이 따져보는 건, 법 제정의 취지를 훼손한다는 생각에 애초 받지 않는 것이다. 요즘 동료 교사 중에는 찾아오는 학부모에게 외려 커피를 미리 준비해 대접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영부인이 고가의 '디올백'을 받고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다면, 과거처럼 교사들이 학부모들로부터 촌지를 받는다고 해도 처벌할 명분이 없다. '영부인은 되고, 장삼이사는 안 된다'라면, 그걸 더는 법이라고 할 수 없다. 특정 개인에게 '치외법권'이 허용되기 시작하면, 추상 같은 법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만다. 영부인과 대통령의 사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만신창이가 된 공영방송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KBS와 특별대담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KBS를 '개비에스'로 부르던 이명박 정부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죠. 공영방송을 제 손안의 공깃돌처럼 여기는 대통령의 몰상식함에 두손 두발 다 들었네요."

사람들은 KBS 뉴스를 더는 눈 뜨고 보질 못하겠다고 아우성쳤다. 누구는 '국민의 방송이 아니라 대통령의 방송'이라고 비아냥거렸고, '또 하나의 극우 종편의 탄생'으로 규정지었다. KBS의 'K'가 '김건희'의 영문 이니셜 앞 글자 아니었냐며 키득거리기도 했다. '국민의 방송' KBS가 불과 몇 달 만에 '땡윤 방송'으로 전락했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뉴스를 보노라면, 혹여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볼까 싶어 민망하다고 입을 모았다. 여느 때라면 가십거리도 안 되는 대통령 찬양 보도를 눈 하나 깜빡거리지 않고 소개하는 앵커의 천연덕스러움에 닭살이 돋을 지경이라고 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의 역할을 망각하고 사회의 공기로서 언론의 사명을 저버린 행태라며 저마다 분을 삭였다.

몰상식한 권력에 부역한 자들이 득세한 KBS의 몰락은 이미 예견된 바다. 압권은 대통령의 신년 대담이었다. 대통령을 광고 모델 삼은 낯 뜨거운 정권 홍보물을 제작해 버젓이 방송하는 모습에서 누구라도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앵커는 국민을 대신해 질문하는 기자가 아니라 대통령실의 충직한 대변인을 자임한 모양새였다.

만신창이가 된 지금 KBS의 모습은 강제 민영화한 뉴스 보도 채널 YTN의 미래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정권으로부터 치도곤당하고, 인터넷 언론 <뉴스토마토>가 대통령실 출입을 제한당하는 현실을 통해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절망의 목소리도 들린다. 하나 남은 공영방송 MBC를 사수하자는 시민들의 결연한 의지 또한 드높다.

만난 사람마다 공영방송 지키기를 상식과 몰상식의 싸움으로 규정했다. 대통령이 역대 정권에서 해오던 신년 기자회견을 거부하고 대담 형식의 녹화 방송을 요구했다면, 단호히 거절했어야 옳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만약 KBS가 먼저 대통령실에 그렇게 하자고 요구했다면, 더는 공영방송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했다.

공영방송의 신뢰 추락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유튜브가 활개를 치는 데도 한몫하고 있다. 정치 성향의 양극화를 부추기며 가짜뉴스까지 퍼트리는 유튜브가 방송의 역할을 대신하는 우스꽝스러운 현실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이젠 극우 유튜버가 버젓이 언론인 행세를 하고 고위 공직까지 진출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 전체가 몰상식의 늪에 빠져드는 형국이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어 "국민께서는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질 민생의 행복한 변화를 원하셨다"고 덧붙였다. 그에게 진짜 궁금해서 묻는다. 지난 2년 가까운 임기 동안 대다수 국민으로부터 불공정과 몰상식의 대명사로 낙인찍힌 대통령이 과연 '민생의 행복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보는지.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그도 잘 알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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