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연구원은 14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민족공동체통일방안 30년 평가 및 통일담론 발전방향'을 주제로 강인덕·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의 원로대담을 진행했다. 맨 왼쪽[은 사회를 맡은 김천식 통일연구원장, 가운데 강인덕 전 통일부장관, 맨 오른쪽이 임동원 전 장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통일연구원은 14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민족공동체통일방안 30년 평가 및 통일담론 발전방향'을 주제로 강인덕·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의 원로대담을 진행했다. 맨 왼쪽[은 사회를 맡은 김천식 통일연구원장, 가운데 강인덕 전 통일부장관, 맨 오른쪽이 임동원 전 장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현 시점에서 통일방안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완,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렇게)할 필요도 있는가 하는 생각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통일부장관과 국가정보원장, 외교안보통일 특보 등을 맡아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인 임동원 전 장관은 14일 '민족공동체통일방안 30년 평가 및 통일담론 발전방향'을 주제로 열린 원로대담에서 이같이 밝혔다.

"통일정책이나 통일방안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추진해야 되는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통일정책과 달리 대북정책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지만,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미국을 설득해서 태도변화를 유도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어떻게든 북한을 상대해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전쟁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있는 조그마한 충돌도 일어나지 않도록, 어떻게해서든지 전쟁을 막아야하고, 깨지기 쉬운 소극적 평화이지만 정전체제하에서도 이걸 계속 유지하면서 평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밖에 무슨 방안이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한반도 전쟁위기에 대한 우려가 날로 커지고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포방하는 등 급변하는 정세속에서 여러 요청에도 불구하고 침묵을 유지하던 그의 이날 발언은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통일담론'의 형성을 표방하는 정부의 정책방향에 대해 '통일정책과 방안'의 기본은 그대로 유지하고 평화 지향의 대북정책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읽힌다.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임 전 장관은 '지난 35년간 7개의 정권이 교체되는 동안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수정,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가장 이상적이고 현실적인 통일방안으로 인정받으며 계속 유지되어 오고 있다'고 언급했다. 

비록 그동안 남북관계가 가다 서고, 전진하다 후퇴하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명시한 헌법 제4조에 가장 부합하는 통일방안이며, "국민들도 통일은 갑자기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 단계적인 과정을 통해서 서로 변화하고 창조해가면서 접근해 나가자는 것으로 잘 이해하고 지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987년 헌법 개정이 이루어지고 여야 합의를 거쳐 1989년 노태우정부에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채택했기 때문에 남북당국회담 제의에 대해 북에서도 호응한 것이라는 점. 이후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남북연합 이전에 남북의 화해, 교류협력, 상호 신뢰조성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러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완성의 3단계를 민족공동체통일방안(1994.8.15)으로 정리하게 된 흐름에 대해 잘 이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민적 합의가 있고 그래서 북과의 협의가 가능했으며, 수정·보완도 가능했다는 언급이 눈에 띈다.

임 전 장관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3가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먼저, 대한민국이 흡수통일이 아닌 평화적인 통일을 원한다는 점을 북이 깨닫고 남북고위급회담에 나와 1991년 12월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이전에 남북관계 발전에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유엔동시가입(1991.9.17)이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서로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던 남과 북이 유엔 동시가입을 통해 국제사회와 함께 한반도에 두개의 주권국가가 있다는 걸 처음으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비록 국제사회에서는 각각 주권국가이지만 남북관계는 국가와 국가의 관계로 볼 것이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라는 합의가 이루어졌고, 이 특수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남북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의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이에 대한 남북공동의 노력을 다짐한 것이 남북기본합의서.

25개 조항의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화해 △상대방 체제에 대한 인정과 존중, 내정불간섭과 체재 파괴·전복 행위 금지 △경제·사회·문화·체육 등 여러 분야의 교류·협력, 자유왕래·접촉 실현 △상대방에 대한 무력 사용 금지 △군비통제 및 군비감축 △정전상태를 평화상태로 전환하는 공동의 노력 등을 중요 내용으로 하며, 이후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2007년 10.4남북정상선언, 2018년 4.27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으로 이어지게 된 초석이 되었다.

즉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이후 일련의 남북합의를 이끌어내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분단 이후 남북 정상이 처음 마주 앉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평화적· 단계적 통일'과 함께 '남북연합이라는 협력기구를 통해서 어려운 문제들을 합의 해결한 뒤 완전한 통일로 간다'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골자를 설명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의를 구해, 2항에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한다는 합의를 도출함으로써 '남북간에 통일문제에 대한 공통인식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했다.

6.15남북공동선언은 선언으로만 끝난게 아니라 남북 철도·도로연결과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등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서 제시한 1단계 화해협력의 시대를 실천에 옮기는 역사적 사명을 다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왼쪽부터 김영호 통일부장관, 강인덕 전 통일부장관,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김천식 통일연구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왼쪽부터 김영호 통일부장관, 강인덕 전 통일부장관,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김천식 통일연구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이 본격화되고 북의 핵무력 완성으로 인한 한반도 주변 환경변화로 인해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수명이 다했다는 일각의 의견에 대해서도 임 전 장관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우리가 지향하고 추구하는 국가 목표와 이익에 충실해야지 북한이 한때 이랬다, 저랬다, 깨려고 한다고 해서 거기에 같이 동조해가지고 우리의 입장을 바꾼다는 건 마땅치 않다"며 "물론 대북정책은 가변적이어서 그때 그때 다를 수가 있지만 통일정책, 통일방안을 바꿀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거듭 밝혔다.

최근 북이 남북관계를 동족관계가 아니라 '적대적 두 국가관계'이며 통일할 수 없다고 한 상황이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일시적으로 분단은 되었지만 언젠가 다시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이 남북, 우리 민족의 염원인데,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계속 유지하면서 실천 가능한 방향으로 대북 정책을 잘 추진하는 것 외에 별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북의 이른바 '근본적 노선 전환' 배경에 대해서는 "한반도 문제는 민족 내부문제인 동시에 미국이 깊이 개입된 국제문제"이며, 따라서 "미북관계가 깨지면 남북관계도 깨지게 되어 있다. 남북관계가 악화되는 원인도 크게 보면 다 그런데(북미관계 악화) 있다"고 짚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미소 냉전이 끝난 1990년대 초부터 북한은 더 이상 소련이나 중국에 기댈 수가 없는 상황에서 국가 최고정책목표를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과의 관계정상화에 두었다.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외교와 핵개발을 병행 추진하는 이중접근전략이 몇 차례 성사 직전에 무산되자 북한은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핵개발에 나서 결국 2017년 11월 29일 핵무력완성을 선언하게 된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 기회가 있었는데 미국이 호응해 주지 않았다. 그것은 미국의 큰 잘못이었다." 북한 핵 문제의 최고 전문가인 지그프리드 해커박사의 진단이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적대관계 해소와 관계 정상화,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대신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지만, 합의는 깨졌다. 이후 4년간 새로운 대화조건을 기다리고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이후 1년을 지켜보았으나 더 이상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022년도부터 북한은 더 이상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미련을 버리고 러시아, 중국과 함께 가기로 결심했다. 비핵화 약속은 핵능력 강화로 180도 달라졌다.

미국과의 관계개선 가능성은 있을까? "없지 않다고 본다"는 것이 임 전 장관의 대답이다.

"미국의 정책이 항상 대통령 바뀔 때마다 많이 변해 온 것을 경험하지 않았나? 혹시 트럼프가 들어와서 또 다시 '핵 문제 해결하고 (북과) 관계 개선하겠다' 이렇게 되면 남북 관계도 좀 달라지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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