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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전환을 한다고요?] 기후위기 시대, 우리의 삶을 지켜주는 집

 

가진 돈’이라는 게 누구에게나 뻔하다지만, 이사를 앞두고 집을 구하다 보면 서울살이의 나의 자리가 어느 수준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씁쓸한 기분을 앞으로 몇 번이나 나는 더 경험해야할까. 하필이면 전세가가 몇십 주째 상승하고 있다는 시점이었고, 임대사기 문제가 시끌시끌해지면서 매물 자체가 많이 없는 시점에 집을 구해야 했다. 

번잡스러운 번화가가 싫고 집 가까이 숲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니, 뻔한 예산에서 빌라와 언덕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크게 상관없다. 그래도 겨울에는 좀 따뜻한 집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 나의 ‘소박한’ 바람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얻을 때,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었다. 오래된 빌라의 창호가 개선되고 보일러도 바꾸는 공사를 하는 중이었다. 이정도면 되겠다 싶었는데, 여름에 이사를 와서 겨울을 나던 어느 날 나는 새벽에 깨서 어디 벽돌이 빠진 게 아닐까 싶어 이불을 쓰고 벽을 더듬거렸다. 가스비도 낼만큼 내는데, 대체 왜 이렇게 춥단 말인가. 

춥고 오래된 빌라에서 살아서 그런가, 어떤 집들은 딱 봐도 견적이 나왔다. 부동산 중개인과 들어선 한 집은 방 두 개의 창만 이중샷시로 바뀌어 있었다.  왜, 거실과 부엌의 창문은 그대로 둔 건가요? 하고 묻고 싶었지만, 이 질문에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집을 구하는 내내 만날 수 없었다. 시세가 주변보다 훨씬 싸다는 말에 헐레벌떡 중개인을 따라나서 본 집 하나는, 2년 후에는 무조건 나가야 한다는 조건이 걸려있었다. 보일러가 오래되고, 결로의 흔적이 보여서 이런 건 좀 고쳐줄 수 있냐고 물을까 하다, 재개발이 추진되어 곧 철거 될 집에 집주인이 세입자의 불편함을 해결해줄까 싶어 발길을 돌렸다. 

에너지 전환과 기후정책을 만드는 일을 하며, 그래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집을 보러 가서는 세입자를 붙들고 이 집에 겨울철 난방비는 얼마가 되느냐고 꼭꼭 물었다. 중개인이 눈치를 줘도, 젊은 세입자가 나를 맞이하면 기어이 핸드폰을 켜서 가스비와 전기비 이체 내역을 확인하게 했다. 그러면, 지금 내가 사는 집과 비교해서 겨울이 얼마나 추울지 대충 짐작이 갔다. 
 

서울의 빌라 주택가(자료사진) 2023.05.11. ⓒ민중의소리


신축 주택의 단열기준 강화와 낡은 집에 사는 사람들

국토교통부가 지난 2019년도 발표한 ‘제 2차 녹색건축물 기본계획’에 의하면, 30년 전 지어진 건물과 최근 건물을 비교해보니 아파트의 경우 43%, 단독주택은 31%의 난방 사용량이 줄어든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국에서는 1976년 처음으로 단열기준이 제시된 이후,  2001년, 2008년, 2013년, 2016년, 2018년 기준이 강화되어왔다. 같은 면적이라 하더라도, 최근 지어진 집일 수록 에너지효율이 좋은데, 이는 적은 돈을 들여 난방을 해도 집이 충분히 따뜻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오래된 건물의 단열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낡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점차 강화되는 건축법상 단열 기준이 기존에 건축된 건물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개선의 의무가 없어서다. 게다가 오래된 저층 주거지역은 대부분 재개발을 기다린다. 집에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오래 된 동네의 빌라를 사서 재개발을 통해 차익을 얻는 것이 집주인의 목적이라면 임대인을 위해 창호를 바꾸거나 단열을 강화하는 리모델링에 굳이 돈을 들일 이유가 없다. 더 낡은 동네의 낡은 집이 많은 것이 재개발에 유리하다면, 집에 돈을 투자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시내를 무심코 걷다가 ‘안전진단 D등급 진단’을 축하하며 플랑카드를 내건 아파트를 보게 된다.  내가 사는 집이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뻐하는 동네를  지나며 셋집을 얻는 것은 여러모로 심란한 경험을 하게 한다. 재건축과 재개발을 중심으로 집의 사회적 수명이 정해지니, 오래된 건물을 고치고 가꾸는 것 보다는 빠르고 신속하게 재개발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모두가 새 집, 신축 아파트에서 살 수 없다. 누군가는 낡고 오래된 집에서 살아간다. 이들의 삶의 안전성과 쾌적성을 높여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그린리모델링이다. 겨울에는 좀 덜 춥게, 여름에는 덜 덮게, 폭우에도 물이 들이닥칠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집을 만드는 중요한 방법이다.    

그린리모델링, 주거 복지와 기후위기를 대응하는 기후복지 정책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난해 말 부터 국토교통부가 민간 건축물에 대한 그린리모델링 이자지원 사업을 없애버렸다. 그린리모델링 사업이 효과가 없어 사업이 중단 된 것인가라고 묻는 다면 그렇지 않다. 이미 많은 지자체들이 공공건물과 어린이집, 경로당 등에 대한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광명시의 경우 1999년에 준공된 건물의 단열을 강화, 창호개선, 냉난방 장치 개선 등을 통해 난방비가 리모델링 전보다 47.9%를 절감시킨 사례가 있다. 사무실, 주거, 어린이 집이나 심지어 아파트의 경우도 그 린리모델링을 통해 낡은 건물을 개선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인 사례가 있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좋은 사례는 더 많다.  

미국 뉴욕의 상징이기도 한 102층의 초고층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그린리모델링을 통해 사용 에너지의 38%를 절감하고 그 효과로 연간 440만 달러의 에너지 비용이 줄어들었다. 기존의 창호를 완전히 교체한 것이 아니라 코팅필름을 붙여 창호의 단열을 개선하고, 냉난방 설비를 교체하고, 조명과 단열을 개선했다. 무려 1931년에 지어진 건물이 그린리모델링을 통해 친환경 건물로 거듭난 것이다. 그렇다면 1990년대, 2000년대 지어진 한국의 아파트나 빌라가 그린리모델링을 못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뉴욕은 그린리모델링을 기후위기에 대응하면서 새로운 녹색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지역의 산업 동력으로 논의하고 있다. 건물의 용도와 에너지 이용 패턴을 파악하고, 건물의 특성에 맞는 그린리모델링 전략을 제시한다.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인데, EU의회는 리모델링 비율을 높여 2050년까지 모든 건물의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최저에너지효율제도'를 운영하여 건물의 에너지 효율등급을 평가하여 우선적으로 리모델링이 이뤄져야 하는 대상을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를 통해 영국, 프랑스 등에서 에너지 효율이 낮은 건물의 임대를 규제하고 있다. 그린리모델링 비용에 대한 보조금이나 대출을 지원을 통해 주택 소유자의 건물 개선 비용의 부담을 줄이면서,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제도가 시장의 방향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공공 그린리모델링 지원이 주택 소유자들의 이익으로만 한정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린리모델링 지원이 이뤄진 주택의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광명시의 경우 저층 주거지역의 그린리모델링을 시가 지원하는 경우 집주인과 협약을 통해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는 협약을 맺고 있다. 이러한 조치를 통해 낡은 주택의 환경을 개선하면서 임차인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낡고 오래되어 에너지 효율이 낮은 집을 모두 밀어버리고 새 집을 지어, 에너지 효율도 높이고 재생에너지 설비도 설치하고 효율 좋은 가전기기를 들여 탄소중립을 달성 한다는 목표는 그럴 듯 해보이기는 한다. 누군들 깨끗하고 말끔한 집에서 살고 싶지 않을까. 그러나 누구나 새 집에 살만큼 돈이 있지 못하다는 게 문제다. 게다가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짓는 과정에서 막대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건물의 사용기간을 30년으로 한정했을 때, 건설과 폐기 과정에서 약 25%정도의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국가에서 부문별 온실가스 배출량을 계산하여 공개하는 인벤토리 자료에서 건물부문의 건축, 철거과정 정보는 빠져 있다. 그러니까, 건물의 이용, 에너지 사용 과정의 온실가스 배출정보는 파악되지만,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짓는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따지고 있지 못하다. 온실가스 배출 정보를  않음으로써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새건물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은 무시되고 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경 ⓒ뉴시스


누구나 따뜻하고 안전한 집, 기후위기시대 적응 정책의 우선 과제 


서울시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건물부문은 66.5%를 차지한다. 기후위기 시대, 건물의 탄소중립은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거기에다가 주거문제는 기후위기 적응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누구나 따뜻하고 시원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집을 만드는 것은 더 더워지고, 비는 더 거세지고, 한파는 더 매서워지는 지금, 생존의 문제와 연결된다. 월세와 보증금만이 아니라, 극한 기후문제에 생활과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이들도 늘어난다.  

이번 계절의 더위와 비를 우려하는 기사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는 여름의 목전에서 겨우 이사할 집을 계약했다. 오래된 동네의 언덕길에 위치한 오래된 빌라. 그래도 집주인의 부모님이 사는 집이라 그런지 창호도 깨끗하게 바뀌었고 결로의 흔적이 보이지는 않았다. 이미 충분히 지칠 만큼 온갖 집을 뒤져보고 난 뒤의 결론은 내가 가진 예산에서 이 정도 집이면 괜찮다는 것이었다. 집을 소개한 중개인의 말을 얼마나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집을 고쳐 겨울에도 따뜻하다는 말에 어르신들을 붙들고 겨울 난방비가 얼마가 나왔냐고 묻지 않았다. 계약서를 쓰는 날, 집주인은 내게 특약조건으로 집을 매매할 때, 매입자에게 집을 보여주는 것에 협조하는 것을 특약조건으로 넣어달라고 했다. 옆에 앉아 있던 중개인은 내게 집을 매매할 생각은 없냐며, 이 동네는 언젠가 재개발이 될 거라며 차익을 얻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설득했다. 웃으며 매매가를 부담할 만큼 능력이 있지 않다고 말했다. 집을 구하자마자, 임차기간에 집주인이 바뀌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인터넷에 찾아보니,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세입자의 권리는 보장된다고 되어 있었다. 안도하며 돌아서는데 질문이 남는다. 세입자의 권리에 임대하는 집의 에너지 효율과, 냉난방의 적정성과 안전은 왜 포함되지 않는가? 낡고 오래된 집에 사는 것이, 덥고 추운 것을 견여야 하는 이유가 되어야 하나? 기후위기 시대, 온실가스 감축이 국가와 기업과 자치단체의 과제가 되는 것처럼, 기후위기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최소한의 주거 조건을 만족시키는 집을 제공하는 것 역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 되어야 한다.
 

참고

국토교통부, 2019, ‘제 2차 녹색건축물 기본계획’
녹색전환연구소 외, 2022, 대한민국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K-Map
문보람, 박성남, 2023, 에너지 빈곤층을 위한 집수리 정책 개선방안
박기현, 2021, 그린리모델링 사업 추진을 위한 경제성 모형 구축 및 운용, 에너지경제연구원
조상규, 2010, 공동주택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 연구, 건축도시공간연구소

“ 배보람 녹색전환연구소 지역전환팀장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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